‘문심’ 통일부 장관 하마평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6.29 11:49:57
  • 호수 12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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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배는 누구에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권한은 적은데, 책임은 무겁다. 독이 든 ‘성배’를 넘어 ‘독배’라는 평까지 받는 통일부 장관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여권 정치인이 통일부를 맡는 안이 기정사실처럼 굳어지는 가운데 유력 후보들을 추려봤다. 
 

▲ (사진 왼쪽부터)우상호·이인영(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통일부가 권한에 비해 짊어져야 하는 짐은 너무나 무거웠다.” 지난 19일,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이임식서 밝힌 소회다. 이날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의 사표를 수리한 날이다. 앞서 김 전 장관은 남북관계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지 하루 만이었다. 

권한↓

정치권의 관심은 차기 통일부 장관에게 쏠렸다. 정무직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차기 통일부 장관은 정치인 중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학자 출신인 김 전 장관이 관료 장악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평가와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일련의 한반도 긴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정무적 감각을 지녔다는 점에서 ‘정치인 통일부 장관론’이 힘을 받고 있다.

그중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의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인영 전 원내대표와 우상호 전 원내대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그들이다. 

이 전 원내대표는 전대협 1기 의장 출신으로, 매년 ‘통일걷기행사’를 개최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큰 의지를 보여왔다. 또 원내대표직을 수행하며 민주당의 21대 총선 압승을 견인, 여권 내부서 조직 장악력을 이미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우 전 원내대표는 통일부 장관 하마평에 꾸준히 오르내렸다. 문재인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인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을 때도 우 전 원내대표의 이름이 오르내린 바 있다.

임 전 실장은 전대협 3기 의장 출신으로, 임수경 전 의원 방북 사건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문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 중 하나다. 지난 2018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었으며, 지난 총선에 불출마한 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그 외에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민주당 송영길 의원을 포함해 21대 총선서 낙선한 여권 인사 중 외교·통일 분야에 정통한 전직 국회의원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그러나 거론되는 당사자들이 통일부 장관직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어 인선에 난항이 예상된다. 이들은 아직 청와대로부터 공식 제안을 받지 못했고, 스스로도 적임자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유력 후보 중 한 명인 이 전 원내대표는 침묵 속에 ‘정중동’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 전 원내대표는 최근 “(난)적임자도 아니고 생각도 없다”며 “임 전 실장이 적임자다. 다만 본인이 그럴 의사를 갖고 있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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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전 원내대표의 지목을 받은 임 전 실장 측은 “남북관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서 일할 수 있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한다”며 통일부 장관직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당분간 민간 영역서 활동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정치권서 부정적 기류가 흐르는 이유는 통일부 장관직이 권한은 적은데 책임은 무겁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김 전 장관이 소회를 통해 “통일부가 권한에 비해 짊어져야 하는 짐은 너무나 무거웠다”고 말한 이유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런 연유로 김 전 장관이 통일부 수장으로서 제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반대로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는 ‘동정론’도 분명 존재한다.

실제로 지난 16일에 열렸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는 김 전 장관을 질책하는 성토의 장이었다. 이날 회의에는 여당 의원들만 참석했음에도 김 전 장관을 질책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업무보고하는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그중 대북전단 살포에 통일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태년 의원은 “지난 4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 이후 ‘전단살포 금지를 위한 법률 정비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는데, 통일부 인식이 얼마나 둔감했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메시지”라며 “통일부의 소극적 태도가 있고 나서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김 전 장관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면서도, 통일부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의 권한도 부여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자 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아주 부적절한 이야기”라며 “(김 전 장관은)정무직 장관이다. 다음 상임위 때는 책임과 권한이 없어서 부족했다는 것 이상의 답변을 해달라”고 되받았다.

관가 일각에선 통일부를 ‘욕받이 무녀’라고 칭하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주요 대북정책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결정되지만, 비판은 통일부의 몫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정부 통일부 장관직은 독이 든 ‘성배’를 넘어 ‘독배’라는 평까지 받는다. 통일부 장관에게 힘을 실어줬던 참여정부와 비교된다. 

책임↑

문정부 핵심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통일부가 아닌 청와대 국가안보실 주도로 진행됐다. 반면, 참여정부는 이종석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을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동시에 그에게 외교·안보 분야를 총괄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맡기는 등 힘을 실어줬다. 이 때문에 여권 일각에선 차기 통일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승격시켜 통일부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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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