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제약 오너 3세 ‘별난’ 승계 구도 막전막후

조카는 달리고 아들은 제자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동성제약 승계 구도서 특이한 점이 관측된다. 오너 2세의 자녀보다 조카의 존재감이 더 뚜렷하기 때문이다. 지분과 경력, 대외적 활동에 있어 모두 앞서있다. 이를 두고 후계 경쟁력을 선점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 동성제약 ⓒ고성준 기자

동성제약은 지사제 ‘정로환’으로 유명하다. 정로환은 국민 상비약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회사는 염색약으로 더 이름을 날렸다. 동성제약은 ‘훼미닌’에 이어 ‘세븐에이트’ ‘버블비’를 출시해 셀프 염색 시대를 열었다.

지사제
염색약

창업주는 고 이선규 명예회장으로 지난 1957년 동성제약을 설립해 사세를 확장시켰다. 회사는 1990년 1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다. 경영권은 장남 이긍구 사장이 이어받아 약 20년간 동성제약을 이끌었다. 이후 창업주 삼남 이양구 대표가 회사 경영을 맡았다.

동성제약 주력 제품은 염색약으로 지난해 기준 전체 매출 88%를 차지했다. 나머지 12%는 화장품이 채웠다. 제품 대부분은 동성제약 아산공장서 제조된다. 동성제약은 주력 제품에 집중하면서 유산균, 생활용품 시장으로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최근 동성제약 실적은 꾸준히 하락세다. 지난 3년간 동성제약 매출은 823억원, 919억원, 865억원으로 오르내렸다. 같은 기간 9억원, 영업이익은 -18억원, -75억원으로 주저앉았다. 순손실은 1억원, 57억원, 83억원으로 내리 곤두박질쳤다. 동기간 배당도 없었다.


올해 성적표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동성제약의 지난 1분기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4.24% 소폭 상승한 227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영업손실은 67.96% 증가한 12억원이었고, 순손실은 3배 이상 증가한 50억원이었다.

동성제약은 계열사가 없어 지배구조가 단순하지만 오너 일가의 지배력은 낮다. 이들의 보유 지분은 20% 정도다.

최대주주는 이양구 대표로 지분 18.02%를 쥐고 있다. 2대 주주는 이양구 대표의 누나인 이경희 오마샤리프화장품 대표로 2.71%를 보유 중이다.

이양구 대표의 부인 김주현씨에게는 0.12% 지분이 있고 이양구 대표의 두 아들은 각각 0.09%씩 소유했다. 오너 일가 지분합은 21.03%에 불과하다.

최근 동성제약 지분 구조에 변화가 있었다. 이경희 대표는 동성제약 지분 절반가량을 자신의 아들인 나원균 동성제약 실장에게 증여했다.

이경희 대표는 전체 70만5310주서 30만주를 나 실장에게 물려줬다. 이경희 대표의 지분율은 기존 2.71%서 1.56%로 감소했다. 나 실장은 지난 2018년 2월 동성제약 지분 667주를 취득한 바 있다. 모친의 증여로 나 실장은 모두 30만667주를 확보, 지분율은 1.15%로 상승했다.

이양구 대표 2세들 존재감 미약
누나 아들 3대 주주에 실장으로


이로써 나 실장은 이양구 대표 일가를 제치고 동성제약 3대 주주로 올라섰다.

앞서 이양구 대표의 두 아들도 동성제약 지분을 추가로 확보했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장남 용훈씨는 지난 4월 3775주를 매입했다. 차남 용준씨도 같은 날 4087주를 사들였다. 이들의 지분율은 각각 0.11%, 0.1%에 그쳤다.

지분만 놓고 봤을 때 당장 승계 구도를 언급하기에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여러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나 실장이 후계 경쟁력을 선점한 것으로 보인다. 나 실장은 단순 지분량 외에도 이양구 대표 자녀들보다 존재감이 비교적 선명하다.

무엇보다도 나 실장의 모친이 대표로 있는 오미샤리프화장품의 역할이 크다. 오미샤리프화장품과 특수관계회사들은 동성제약과 사업적 관계를 구축했다. 나 실장은 동성제약서 부장급으로 재직 중이다.

반면 이양구 대표의 두 아들은 아직 동성제약에 입사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 실장의 존재감이 여러 반사효과로 인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마샤리프화장품 최대주주는 리케아화장품(31.41%)으로 루맥스(24.21%), 퀀트와이즈투자자문(14.11%), 이경희 대표(4.34%) 순이다. 나머지 지분은 기타(25.92%)서 보유하고 있다.
 

▲ 동성제약 아산 공장 ⓒ동성제약 홈페이지

최대주주 ‘리케아화장품’은 이경희 대표가 지난 2010년까지 대표이사로 있던 회사다. 현재는 새로운 대표이사가 회사를 경영 중이다.

리케아화장품 주소지는 동성제약 본사와 일치하며 연락처 역시 동일하다. 동성제약서 둥지를 틀고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양구 대표와 전임이었던 이긍구 사장은 지난날 이곳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오마샤리프화장품 2대주주 ‘루맥스’는 LED 및 염색약 관련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원래 사명은 ‘동성루맥스’였지만 지난해 변경됐다.

이양구 대표와 이경희 대표는 이곳 임원은 아니다. 다만 루맥스는 오마샤리프화장품의 특수관계자로 분류된다. 지난해 루맥스는 오마샤리프화장품과의 거래서 1억5000만원의 수익을 냈다. 오마샤리프화장품은 452만원을 벌었다.

지분 우세
경력까지

루맥스 본사 소재지는 충청남도 아산시로 사업 공간은 동성제약이 제공했다. 동성제약은 지난 2007년 토지와 건물을 매입했다. 소유자는 현재까지 동성제약이다.


루맥스는 수익성이 좋은 편으로 분석된다. 지난 2016∼2018년 매출액은 42억원, 48억원, 70억원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영업이익 역시 5억원, 8억원, 8억원으로 안정적이었다. 순이익은 4억원, 4억원, 7억원으로 증가했다.

오마샤리프화장품의 또 다른 특수관계자는 ‘타임물류’다. 창고·물류 관리 대행업체다. 애초 사명은 ‘동성타임물류’였지만 지난해 12월 변경됐다. 이경희 대표는 지난해 타임물류 사내이사로 취임했다. 타임물류는 앞서 언급된 회사들보다 동성제약과 사업 연관성이 뚜렷하다.

동성제약 온라인스토어 ‘동성이샵’은 지난해 7월 말 물류센터를 타임물류로 이전했다고 공지했다. 당시 담당자는 ‘배송 물류센터가 이전돼 8월1일부터 출고지·반품지가 변경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전 출고지 등은 동성제약 본사였다.

타임물류는 충남 아산에 위치해 있으며 실적은 양호한 편이다. 지난 2016∼2018년 매출액은 23억원서 보합세를 보였다. 반면 영업이익은 1억원, 1억원, -2억원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순이익은 1억원, 1억원서 4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동성제약은 동성이샵을 통해 오마샤리프화장품과 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오마샤리프화장품서 제조한 제품을 동성제약 본사서 매입하고, 이를 동성이샵서 판매하는 구조다.

오마샤리프화장품 실적 흐름은 감소세를 띤다. 최근 3년간 회사의 매출액은 80억원, 134억원, 73억원으로 들쭉날쭉했다. 영업이익은 9400만원, 2억원으로 증가하다가 -12억원으로 고꾸라졌다. 순이익은 1억원, 5억원서 -11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오마샤리프화장품 3대주주인 퀀트와이즈투자자문은 동성제약과도 관련이 있다. 동성제약은 퀀트와이즈투자자문에 3.3% 지분이 있다. 10년 넘게 지분을 소유 중이다. 퀀트와이즈투자자문이 오마샤리프화장품 주주로 이름을 올린 기간도 비슷하다.

사업 관계
지속 유지

오마샤리프화장품은 한때 동성제약 계열사였지만 ‘스테로이드 파문’으로 관계가 단절됐다. 지난 2011년 포쉬에화장품(오마샤리프화장품의 전신)의 ‘스킨탑’서 스테로이드 성분이 검출됐다. 당시 이양구 대표는 포쉬에화장품 지분을 쥐고 있었다.

곧 이양구 대표는 해당 지분 전량을 정리했다. 당시 동성제약 측은 “동성제약 대주주 이양구 대표가 보유하고 있던 포쉬에화장품 지분 10.26%를 지난해 12월에 모두 매각했다”며 “이제 포쉬에화장품과 동성제약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동성제약서 강경 기조를 보인 까닭은 스테로이드 관련 악재가 계속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동성제약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출시한 제품들에 스테로이드 함유 사실이 적발된 바 있었다.
 

▲ ⓒ고성준 기자

동성제약은 대주주 지분 매각으로 포쉬에화장품과 선을 그었지만 ‘완전히 무관한 회사라고 볼 수 있겠느냐’라는 지적이 있었다.

포쉬에화장품 최대주주는 리케아화장품이었다. 당시 리케아화장품은 동성제약 화장품 유통을 맡고 있었다. 동시에 리케아화장품은 동성제약 지분도 소유하고 있었다.

이후 포쉬에화장품은 동성제약 지분 정리에 나섰다. 회사는 2011년까지 동성제약 지분 3.81%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듬해 주주 명부서 제외됐다. 리케아 화장품 역시 동성제약 주주 명부서 빠졌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포쉬에화장품은 동성제약과 사업적으로 밀접한 관계였다. 이들의 상당한 내부거래 비중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 2005∼2009년 포쉬에화장품 매출액은 77억원, 79억원, 68억원, 66억원, 85억원이었다. 이 중 동성제약서 비롯된 매출액은 59억원, 61억원, 62억원, 61억원, 64억원이었다. 비중을 놓고 봤을 때 76.22%, 76.97%, 90.75%, 92.94%, 75.86% 등으로 높았다.

포쉬에화장품 매출이 동성제약에 좌우될 만큼 이들의 관계는 가까웠다.

모친 회사·동성제약 사업 연관성
유리한 승계 위치 선점…결과는?

포쉬에화장품은 동성제약과 특수관계가 끊기기 전까지 동성제약과 내부거래를 지속했다. 특수관계가 마지막까지 유지되는 동안 포쉬에화장품은 전체 매출 80억원 가운데 65억원을 동성제약으로부터 얻어냈다. 비율은 81.38%이었다.

포쉬에화장품은 지난 2014년 10월 사명을 오늘날의 오마샤리프화장품으로 수정했다. 오마샤리프화장품이 동성제약과 계열 관계가 끊긴 이후 이들의 거래 관계는 공식적으로 끊겼다. 두 회사의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에서 이들의 거래 내역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들은 사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마샤리프화장품은 동성제약 온라인몰 동성이샵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 특수관계자이자 이경희 대표가 사내이사로 있는 타임물류는 동성이샵의 새로운 배송 물류센터가 됐다. 또 다른 특수관계자인 리케아화장품은 동성제약에 본사를 두고 있다.

오마샤리프화장품이 동성제약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 만큼 동성제약에 근무 중인 3대주주 나 실장에게 눈길이 간다는 해석이다.

나 실장은 동성제약을 대표해 대외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은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를 순방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같은 달 9일부터 16일까지 6박8일 일정으로 스웨덴 등 3국에 국빈 방문했다.
 

당시 스웨덴 경제사절단에 기업을 비롯해 여러 기관과 단체가 동행했다. 동성제약은 경제사절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당시 대표자가 나 실장이었다. 나 실장은 이 외에도 문 대통령 순방에 맞춰 진행된 스웨덴 비즈니스 파트너십과 폴란드 비즈니스 파트너십에 동성제약을 대표해 참석했다.

반면 이양구 대표의 자녀들은 미미한 지분을 쥐고 있을 뿐이고, 동성제약에 입사하지 않았다. 여러 모로 나 실장이 동성제약 오너 3세 가운데 후계 경쟁력을 선점한 상황이라고 관측되는 까닭이다.

동성제약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나 실장의 지분 증여와 관련해 “이경희 대표가 연로한 까닭에 그의 아들인 나 실장이 주식 관리 차원서 증여 받은 것”이라며 “승계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사절단에
이름 올려

또 나 실장의 스웨덴 경제사절단 참석에 대해선 “나 실장은 동성제약 유산균 브랜드 ‘바이오가이아’를 맡고 있는데, 관련 제품을 스웨덴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어 사절단에 동행했다”고도 했다. 동성제약 승계 구도에 대해선 “이양구 대표가 회사를 경영하는 데 특별한 문제가 없는 만큼 승계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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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