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휴대폰 복제 파문’ 풀리지 않는 의문점 <넷>

‘연기 먼저 피워보고 ’진실게임‘은 나중에

톱스타 전지현이 휴대폰 무단복제로 문자메시지 내용 등이 타인에게 노출된 것으로 밝혀져 연예계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이번 사건에 소속사의 개입 정황이 확인됨에 따라 이를 둘러싸고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소속사가 어떤 이유로 전지현의 휴대폰을 복제해 1년 넘게 도청해 왔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지현의 사건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의문점을 추려봤다.


하나 재계약 히든카드?
전지현은 오는 2월말 소속사인 싸이더스HQ와의 계약이 만료된다. 일각에서는 소속사가 전지현과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재계약을 유리하게 진행할 목적으로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전지현과 싸이더스HQ는 재계약 여부를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기획사와 연예인은 계약 만료 몇 개월 전에 소속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비해 전지현과 싸이더스HQ는 최근까지 구체적인 계약 논의가 오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연예 관계자는 “으레 재계약을 앞두고 연예인과 소속사의 미묘한 신경전이 있기 마련이다”라며 “전지현의 향방을 파악하고 그와 접촉하는 기획사를 사전에 알아내려는 목적이 아니었겠느냐”고 의견을 밝혔다.
해당 연예인의 사생활을 협상카드로 사용하려는 속셈을 지적하기도 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일부 소속사의 경우 연예인의 사생활을 문제삼아 계약 조건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한다”면서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엔 일부로 몰카를 설치해 약점을 잡는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톱스타들의 몸값은 드라마 출연료를 비롯해 CF, 영화 개런티에 이르기까지 한 해 매출액이 수 천만원에서 수십억원까지 높아졌다. 많은 스타들을 보유한 연예 기획사일수록 힘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연예기획사들은 톱스타와의 전속계약이 만료될 즈음이면 재계약의 의지를 보이며 안간힘을 쓰곤 한다.

둘 스캔들을 차단하라?
여배우에게 스캔들은 ‘독’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전지현 휴대폰 복제 파문 역시 자사 연예인의 스캔들 차단과 밀접하다는 주장이다. 전지현의 경우 배우보다 CF 스타로서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소속사 측에서 ‘스캔들=치명타’라는 공식을 세웠을 거란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전지현은 1997년에 데뷔한 이래 완벽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10년 이상 최고의 CF 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럼에도 불구 크고 작은 열애설로 구설에 올랐다. 지난 2004년 소속사 대표와의 뜻하지 않은 결혼설에 이어 지난해 9월에는 재미교포와의 열애설로 구설에 휩싸였다.
실제로 연예계 관계자들은 지난해 가을 일부 매체에 보도된 바 있는 전지현의 미국 열애설을 주목하고 있다. 당시 전지현 측은 이 같은 이야기에 대해 “어처구니없다. 친구 결혼식을 도와주러 미국에 들렀을 뿐이다”라고 부인한 적이 있다.     
매니지먼트사가 소속 연예인의 스캔들에 민감한 까닭은 무엇일까. 스캔들은 이미지에 치명타라는 구시대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획사가 ‘광고주는 스캔들을 싫어한다’는 옛날 생각에 잡혀있다”면서 “소속 연예인이 스캔들에 민감한 이유는 결국 돈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속사의 전근대적인 사생활 관리 시스템은 늘 존재해왔다. 전지현은 소속사라면 스타의 애정사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구시대적 논리에 희생당한 것이다”라면서 “특히 전지현의 경우 소속사의 대표격이다 보니 극단적인 관리를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재계약 유리하게 진행할 목적으로 일거수일투족 파악 의혹 제기
재미동포와 열애설 ‘진짜 이유’ 추측… 여배우에게 스캔들은 ‘독’

셋 전지현-소속사 2월 결별?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 전지현은 소속사와 무난하게 재계약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전지현과 소속사 대표 J씨는 오랜 기간 동고동락해오며 스타와 매니저의 모범사례로 불릴 만큼 끈끈한 유대관계를 자랑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전지현이 싸이더스HQ와 결별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복제폰 파문이 불거진 지난 19일에도 소속사는 “전지현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예전 같지 않은 사이임을 보였다.
최근 CF 퀸으로 꼽히는 한예슬이 싸이더스HQ로 이적하며 전지현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지현이 더 이상 의리를 지킬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지현이 자신을 발굴하고 할리우드 진출까지 성공시킨 J씨를 떠나는 것도 큰 부담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싸이더스HQ의 한 관계자는 “전지현과 아직 재계약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없었던 걸로 안다”면서 “전지현의 향후 행보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경제불황으로 연예계 자금줄이 말라붙은 현실에서 전지현급의 ‘대어’를 영입할 회사가 쉽게 나올지도 의문이다.
대형 매니지먼트사의 한 관계자는 “전지현급의 톱스타의 전속 기간이 만료되면 연예기획사 어디라도 관심을 쏟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지현 영입을 제안할 기획사가 몇 군데나 되겠느냐”며 “전지현이 싸이더스HQ와 결별한다면 다른 기획사로 옮기기보다는 독자적인 매니지먼트 회사를 세울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넷 회사차원에서 지시했나?
이번 사건의 최대 쟁점은 복제폰 제작이 회사 차원에서 이뤄진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여부다. 경찰의 첩보처럼 계약 만료를 앞둔 연예인의 동향 파악을 위해 복제폰이 사용됐다면 위법 행위로 처벌 대상이 될 뿐 아니라 도의적인 비난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내 굴지의 연예기획사 대표가 복제폰까지 동원해 연예인의 사생활을 감시했다면 싸이더스HQ의 모회사인 SK로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여론이다. 그러나 J 대표가 복제폰 제작을 지시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또 담당 직원들이 보고하지 않고 복제폰을 만든 뒤 J 대표가 이를 뒤늦게 알았을 가능성 또한 있는 만큼 경찰 소환 조사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의 향방은 열쇠를 쥔 J 대표의 진술과 혐의 내용 입증에 따라 가려질 것이다. 이들이 복제폰 제작에 가담한 사실이 입증될 경우 정보통신비밀법 등이 적용될 전망이다.
경찰에 따르면 싸이더스HQ P씨 등 세 명은 작년 11월21일 심부름센터에 의뢰해 전지현의 휴대전화를 복제했고, 통화내역과 송수신 문자메시지를 본인 모르게 열람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연예인 사생활 침해…어디까지?
 “누군가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
 
    
톱스타 전지현의 휴대폰 복제 파문이 일면서 관리를 빙자한 연예 기획사들의 연예인 사생활 침해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대형 연예기획사 10개사를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해 연예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10개 유형의 불공정 약관을 수정 또는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조항은 ‘과도하게 사생활을 침해하는 조항’이었다. 이 유형의 예로는 ‘을은 자신의 위치를 항상 갑에 통보해야한다’(올리브나인, 웰메이드스타엠, 팬텀엔터테인먼트), ‘을이 출국할 경우에는 사전에 갑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IHQ), ‘을은 을의 신상문제, 사생활(신변, 학업, 국적, 병역, 교제, 경제활동, 사회활동, 교통수단 등)과 관련해 사전에 갑에게 상의해 갑의 지휘감독을 따라야 한다’(JYP엔터테인먼트) 등이 있었다.
당시 공정위는 “계약서에 해당 연예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조항이 포함되는 등 불공정계약 관행이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강력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
연예인들이 수시로 자기 위치를 기획사 측에 보고하는 것은 기본 의무에 속한다. 일부 연예인들은 활동을 안 하는 시기에도 하루 2~3회쯤 전화를 해야 한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도 양자 간 합의에 의해 이뤄지곤 한다.
미행도 한다. 흥신소에 의뢰를 하거나 로드 매니저가 직접 뒤를 밟는다. 연예인이 ‘엉뚱한 짓’ 안 하고 제때 잠을 자는지 확인하기 위해 로드 매니저가 집 앞을 지키는 경우는 더 많다.
영화배우 J씨의 매니저 출신인 A씨는 “연예인이 어느 정도 위치가 되면 매니저와 함께 다니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행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나도 몇 차례 해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여배우가 남자를 사귀는데 그걸 매니저가 모르고 있으면 일 터지고 나서 수습하기 힘들다. 위기관리 차원에서 미리 파악을 해둬야 한다는 생각으로 미행한다. 일찍 집에 들어갔는데 배우가 다음 날 ‘피곤해서 못 일어나겠다’며 얼굴이 부어 있으면 그건 100% 문제가 있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신인들의 경우 기획사나 매니저가 통장을 관리하기도 한다. 매니저 B씨는 “대형기획사는 그렇지 않지만 소규모 기획사에서는 그런 상황이 간혹 생긴다”며 “아주 드물지만 자금을 관리해주겠다며 여배우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매니저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기획사들은 연예인과 로드 매니저가 너무 친밀한 사이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기도 한다. 서로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고 연예인이 갑자기 인기를 얻게 되면 뜻 맞는 로드 매니저와 따로 회사를 차려 독립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까지 연예기획사 대표를 지냈던 C씨는 “각 연예인들에게 붙여주는 로드 매니저는 통상 6개월, 짧게는 3~4개월에 한 번씩 교체했다”고 말했다.
연예인의 입을 통해 직접 알려진 ‘악덕관리’의 유형도 있다. 이는 특히 신인의 경우 종종 발생하는 사례로 연예인 데뷔를 미끼로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감금을 시키기도 하는 등 일부 연예기획사의 행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실제로 가수 솔비는 지난 2007년 초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전 소속사의 부당행위를 밝히기도 했다.
솔비는 당시 방송에서 “고등학교 시절 여성 3인조로 데뷔시켜준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엉터리 연예기획사에서 밥이며 청소를 하게 하고 외출도 하지 못하게 했다”며 “이후 함께 준비하던 두 명과 숙소를 탈출했고 나를 제외한 두 친구는 소속사와 소송까지 진행했다”고 고백했다.
이밖에 사생활에 대한 불법 비디오 촬영분을 보관, 이를 소속사 잔류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연예기획사의 예도 이전의 여성 연예인 비디오 사건 등을 통해 공공연히 알려진 바 있다.
한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아직도 연예인을 악덕 관리하는 행태가 남아있어 양심적으로 기획사를 운영하는 이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인권을 침해하는 소속사의 불법관행은 사라져야 한다”고 전했다.                           
 


다른 연예기획사들은?  
“우린 아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펄쩍

톱스타 전지현 휴대폰 복제 파문과 관련해 전지현과 같이 한류 톱스타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전지현 휴대전화의 복제는 엄연한 불법이다”라며 “하지만 이번 사건은 전지현 휴대폰 불법 복제 사건으로 봐야한다. 연예계의 관례로 해석될까봐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소속 연예인을 아무리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해도 휴대전화 복제, 해킹은 도를 넘은 처사다”라며 “결코 연예인과 매니지먼트사에서 공공연하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라고 피력했다.
국내 톱스타가 대거 포진한 또 다른 연예기획사 대표 역시 “소속사가 연예인의 휴대전화를 복제해서 감시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결코 관행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배우 매니지먼트만 15년을 해온 한 매니저는 “여배우의 경우 신변보호차원에서 배우와 매니저 상호 협의하에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신청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상호협의하에 진행되는 휴대전화 위치추적의 경우 사생활 침해라고 보긴 힘들다. 배우 역시 매니저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점에서 먼저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 연기자 매니지먼트사 대표 A씨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소속사가 배우의 사생활까지 관여할 수 있겠느냐”며 “특히 톱배우들의 경우 매니지먼트사들은 말이 관리지, 떠받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휴대전화 무단복제는 처음 들었는데 어이없고 놀라울 뿐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A씨는 “싸이더스HQ가 국내를 대표하는 매니지먼트사로 유명한 만큼 이번 일로 인해 대중들이 연예인과 소속사 간 관계를 오해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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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