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00만원’ 알바만도 못한 열정페이 백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6.22 14:23:09
  • 호수 12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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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차비도 안 되는 허드렛일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2020년 시급은 8590원이다. 주 8시간으로 가정한다면 주휴수당까지 포함해 월급이 170만원은 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근무 강도가 약하거나 일을 배운다는 의미로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곳도 많다. 여전히 ‘열정페이’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15년 ‘열정페이’란 단어가 시대를 관통했다. 무급이나 아주 적은 월급을 주면서 취업준비생을 착취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로, 청년층이 특히 공감을 했다. 2020년 현재도 그 단어는 유효하다. <일요시사>는 청년들의 노동착취가 지금까지도 이뤄지는 특수 직종들을 정리했다. 

공부하면서
돈도 번다고?

▲헬스장 트레이너= 피트니스센터에는 견습생 트레이너가 있다. 견습생 트레이너란 다른 트레이너들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는 사람을 말한다. 센터 내 업무로는 내부 청소, 전단지 팜플렛 관련해 홍보활동 등이 있다. 

트레이너 희망자들은 견습생 트레이너가 돈을 벌면서 교육도 받고, 경험도 쌓고, 실무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센터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일반 트레이너와 비슷한 급여를 받는다. 일반 트레이너의 급여가 100만∼120만원 수준으로 형성됐고 견습 트레이너는 이보다 더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반 트레이너의 경우 PT라는 주 수입원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받는 급여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소수의 센터에서는 교육비 명목으로 돈을 지불하라는 곳도 있다.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곳이라면 해부학, 영양학, 역학, 세일즈, 트레이닝 방법론, 운동 등 전문성이 띠지 않더라도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육이 진행된다. 하지만 다수의 센터서 잡일만 시키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는다. 알려준다고 해도 자기와 운동하면서 원판 옮기기나 시키지, 자신의 운동이라도 제대로 전수하는 곳은 드물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다수의 트레이너 견습생들은 며칠 또는 1∼2개월 교육 받다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는 버티고 버티면서 자기 운동하고 공부해서 센터서 자리 잡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그전에 그만두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트레이너의 인성에 따라 다르지만, 괜히 트레이너 견습생에게 텃세를 부리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견습 기간은 보통 2개월서 3개월로 정해져있지만, 센터마다 제각각이다. 일반적으로 견습 트레이너, 퍼블릭 트레이너, 퍼스널 트레이너 등 3단계로 나뉜다. 보통 기본적인 교육이 끝나면, 간단한 테스트를 진행한 후 테스트 통과 시 퍼블릭 트레이너로 진급시켜 주고, 회원 OT를 진행시킨다. 기본적인 회원 OT를 진행하면서 배운 것을 실습한다고 보면 된다.

시간 지나도 1일 12시간 근무
근무 강도 낮아서 저임금 지급

자체 교육 후 퍼스널 트레이닝 교육 과정 이수증을 발급하는 곳도 있지만 이 같은 이수증 및 수료증은 다른 센터서 인정하지 않는다. 어느 센터에서는 기본적인 머신 사용법만 지도한 후, 몇 가지 트레이닝 매뉴얼을 주고 바로 PT를 진행하는 센터도 있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허드렛일만 하다 보면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센터에 남을지, 이직할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체계적인 교육과 더불어 트레이너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센터들도 있긴 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예전부터 트레이너들의 최저임금 문제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근무시간만 늘어난 상태다. 팀장급들은 하루 12시간씩 근무하는데 많이 받아야 월급 150만원밖에 받지 못한다. 일반 트레이너들도 하루 9시간 근무하는데 80만원서 100만원을 받는다. PT를 받는 회원이 없는 상태서 기본임금을 말하는 것이고, 자기가 알아서 회원을 끌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독서실 총무= 독서실은 낮은 근무 강도로 인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독서실 자리를 하나 준다는 명목으로 독서실 총무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수준이다. 대개 동네 고급화 독서실이 평균 시급이 2500원∼3500원 수준이고, 소규모 일반 독서실은 시급이 1000원대까지 떨어지거나 그 미만을 주는 경우도 많다. 독서실 관리감독 업무는 하루 4시간 독서실 청소, 회원등록과 응대, 내부 온도조절 등이다. 
 

해당 업무를 하루 4시간씩 하고 받는 월급은 30만원수준, 시급으로 따지면 2500원이 된다. 독서실을 무료로 이용하는 20만원을 월급에 더해도 시급은 4000원정도 수준에 머문다. 2020년 최저임금 8590원의 절반 수준이다.

한 독서실 근로자는 ”다른 업종에 비해 업무가 쉽고 일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받는 돈이 너무 적어 자괴감이 든다”며 “프리미엄 독서실서 총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부분이 빨리 합격해서 떠나고 싶은 마음에 업주들에게 최저임금을 달라고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위와 같은 사례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 고용노동부에서는 최근 독서실 총무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하고 있다. 가맹점주를 대상으로 최저임금 준수 교육을 진행하는 프랜차이즈 본사서도 이런 불법고용 사실을 알고도 방관하거나 오히려 장려하기 때문에, 독서실 근로자들은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어깨너머로
배우고…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피해 당사자인 근로자들이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하고 수긍하면서 프리미엄 독서실의 최저임금 미준수와 관련된 민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들이 최저임금보다 적은 시급을 받으면서도 신고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무법인 리인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받지 못한 임금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민원절차가 복잡해서’ ‘비용이 부담되기 때문’ 등의 답변이 그 뒤를 이었다.

한 커뮤니티에 페*****는 “독서실 총무로 하루 10시간 일하고 한 달에 하루 쉬는데 월급 50만원 줘서 놀랐다. 근데 또 찾아보니 이렇게 주네. 물론 하는 일이 없어서 이해는 간다만 이런 건 법에 안 걸리나?”라고 게시했다.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에서는 독서실 총무대신에 ‘무료회원’이라고 표기한 뒤 사람을 채용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도 독서실 총무 자리를 두고 근로자인지 대한 명확한 답은 내려지지 않았다. 최저임금이 철저히 무시되는 상황은 이미 오래전부터 공공연하게 이뤄져왔다.

과거 독서실 총무 경험이 있다는 한 공무원은 “5년 전 내가 독서실서 일했을 때와 지금 그곳 임금이 똑같다. 그러나 당시에도 어느 누구도 최저임금을 달라고 요구한 직원은 없었다. 그곳은 그런 곳”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부분은 취업포털 업체들도 자세히 인지하고 있었다.

잡코리아 관계자는 “독서실이나 고시원의 경우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점 등 그런 특수성이 존재하는 부분도 있다. 구인공고를 낼 때 최저임금이 아니면 등록 자체가 되지 않게 돼있는데, 일부 사업주들이 일단 최저시급으로 설정해놓고 상세모집요강서 최저시급에 미치지 못한 급여를 포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모니터링 과정서 발견되면 해당 공고를 삭제 조치한다”고 말했다.

▲미용실= 지난 2013년 청년유니온이 미용실 스태프들의 열악한 근무실태를 폭로하고 나섰다. 미용실 스태프들은 하루 최대 12시간, 주 6일을 근무하고도 평균 93만원의 월급을 받아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13년 당시 시간당 최저임금은 4860원이었다. 그러나 평균 월급을 기준으로 한 미용실 스태프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2980원이었다. 


“못 받아도 
꿈 때문에”

언론은 청년유니온을 비롯해 각종 노동연구소서 발표한 노동 실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고용노동부도 집중 근로감독을 벌여 일부 제재를 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2020년 현재도 미용업계의 열정페이는 이어지고 있다. 하루 12시간 주 6일 근무해서 받아가는 돈은 100만원 수준이다. 

미용업계는 전형적인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는 곳이다. 미용전문대학을 나와 기본기술을 습득하거나 별도의 자격증을 취득해도, 결국은 매장서 최소 3년의 실습경험을 쌓아야 미용사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스태프들은 ‘인턴(교육생)’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미용실서 원장이나 수석 디자이너, 실장급 디자이너로부터 머리감기부터 커트, 펌, 염색 기술 등 미용실서 이뤄지는 각종 기술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얘기다. 다른 미용실서 1∼2년의 스태프 경험이 있어도 3년을 채우지 못하면 또 다른 미용실에 가서도 처음부터 다시 스태프 기간을 밟아야 한다. 

교육을 명목으로 한 각종 착취가 이뤄져도 버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학이나 학원서 배우는 ‘기술’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교육비의 액수가 15만원서 20만원까지 책정돼있는 관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매장은 회당 10만∼20만원의 교육비를 스태프들로부터 관행적으로 받고 있다. 이 돈은 결국 최저임금 이하의 월급을 받게 하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다. 사업주 입장에선 세금 포탈의 방식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급여명세서상의 지급액과 실지급액은 교육비 및 각종 재료비만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스태프 한 명당 50만∼80만원을 돌려받았다면, 스태프 10명 기준으로 약 500만∼800만원의 돈이 지출내역만 있을 뿐 매달 사업주의 주머니로 다시 들어간 셈이다. 일부 사업주는 ‘돌려받기’를 감추기 위해 사업주 명의 계좌가 아닌 수석 디자이너나 부원장급 디자이너의 계좌로 스태프들의 교육비를 돌려받고, 그 돈을 현금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정당한 대우 못 받아 퇴사 고민
휴게시간도 제대로 인정 못받아

스태프들은 휴게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설령 근로계약서에는 ‘1일 2시간의 휴게시간 제공’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도 실제 2시간을 쉬는 것이 불가능하다. 일부 미용실 스태프들은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합해 30분 이상의 휴게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서 “미용업계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전통적인 도제식 교육을 통해 운영되고, 그런 과정서 실습비 명목으로 노동자에게 보장된 가장 기본적인 최저임금 지급이 지켜지지 않는 대표적인 곳이 미용업계라는 이야기다. 김 부소장은 2013년 서비스산업 노동과정 실태 기획연재 프로젝트 중 하나인 ‘헤어숍 헤어 디자이너와 스태프 노동 과정’을 연구한 당사자다. 

김 부소장은 “이쪽 업계는 아무리 문제점을 지적해도 개선될 수가 없는 구조”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용 스태프들은 잦은 이직으로 고용 자체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업계의 유입과 이탈이 많아 특정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의 줄임말인 ‘게스탭’은 부정적인 의미로 알려졌다. 게스탭은 게스트하우스서 근무하면서 노동의 대가로 급여 대신 숙식을 제공받는다. 게스트하우스의 모든 직원이 숙식 제공으로 보상을 받는 건 아니다.
 

예전에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서 ‘낭만페이’ 논란이 일어났던 적이 있다. 게스트하우스서 직원이 아닌 ‘스태프’를 모집한다고 해 돈이 아쉬운 청년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간단한 소일거리라고 생각한 청년들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지원한다. 게스트하우스 업주는 스태프에게 손님 체크인과 안내 등 게스트하우스 내 잡무를 시킨다. 또 바비큐파티와 관련해 준비 및 정리도 해야 한다. 게스탭은 청소 2시간, 잡무 6시간 등의 노동을 하게 된다. 이로써 게스탭은 근로 과정서 게스트하우스의 관리자에게 상당한 지휘 감독을 받고, 근무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으며, 근로의 대가를 받는 종속관계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월급 받아도
교육비로 반납

다만, 게스트하우스의 사업주와 스태프는 1∼2개월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명확한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게스탭 경험자였던 A씨는 “게스탭으로서 과중하게 노동을 부담했던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정당하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호받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게스트하우스느 스태프를 모집할 때 근로시간과 휴게 시간을 명확하게 표기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배움 핑계로…아직도 도제식 교육?

대가로 기술 배울 수 있어도제는 상인과 장인의 직업 교육 제도이며 젊은 세대를 업무에 종사시키는 제도를 의미한다.

도제와 제자도 경력을 구축할 수 있으며, 공공 기술 인증을 취득하는 것이 가능하다. 도제는 고용주와 계약한 기간 지속적인 노동에 종사하여 대가로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디자이너부터 포토그래퍼, 연극 배우 등 예술업계에서 하는 일에 비해 터무니없는 것이 월급과 대우로 그곳을 쉽게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진 스튜디오나 헤어샵 등은 대부분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배우는 도제식 근무가 많은 데서 일어나는 문제가 많았다.

배움을 핑계로 적은 월급을 정당화하거나 자신의 업무를 넘기는 식의 불공정한 대우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사진과를 졸업한 김모(30)씨는 작년까지 모 작가의 스튜디오서 일했다.

계약한 기간 지속적 노동

그는 스튜디오 실장 밑에서 사진 기술을 배우고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도제식 교육이 일반화된 업계 특성상 개인의 권리를 챙기기 힘든 구조라고 했다. 

김씨는 “매일 출근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100만원 초반대의 월급을 받고 일한다. 최근에 일하러 갔던 한 스튜디오에서는 하루에 4만원을 받고 수습 기간이 끝나면 건 당 수입을 받는 것으로 하자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하루에 4만원이면 시급 5000원꼴이다. 그렇게 일을 배운 신입 포토그래퍼는 개인 스튜디오를 오픈해 자기가 배운 것을 반복한다. 결국 뿌리 깊은 사진업계의 악습은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를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닌 개인이 추구하는 사진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스튜디오가 있는 전문가의 경우 그 자체가 브랜드이기 때문에 실력 향상에는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스튜디오 내에서 부당대우를 받더라도 쉽게 내부고발을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업계가 좁아 섣불리 고발했다간 불이익을 얻을까 두렵다는 것이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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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