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기다리는 선수들- 영국 여자 육상 에이미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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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0.06.22 10:06:23
  • 호수 12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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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뜨거운 발을 담그다

[JSA뉴스] IOC는 최근 1년 연기된 ‘도쿄올림픽’과 관련, 주어진 1년의 기간 동안 참가 선수들은 어떻게 자신들을 관리해야 하는지에 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주인공은 영국 여자 육상선수 에이미 헌트다.
 

▲ 에이미 헌트

2019년 6월, 에이미 헌트(Amy Hunt)는 독일 만하임서 18세 이하 200미터 단거리 육상 세계기록을 세우며 역사 속으로 뛰어들었다. 영국의 이 스프린터는 인터뷰를 통해 왜 도쿄올림픽 연기가 그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최고의 일이었는지를 설명한다.

[열기]

에이미 헌트가 영원히 기억하는 순간은 레이스의 한 장면이 아니었다. 첫 번째 100미터 구간서 치열한 경쟁자 중 한 명을 압도적으로 따돌렸을 때, 상대 선수들의 추격 의지를 꺽었던 코너 부근서의 강력한 질주, 그리고 22.42초의 세계 신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던 순간도 아니었다.

‘주체할 수 없는 열기’, 열기 그 자체가 그의 인생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트랙이 너무 뜨거웠다. 심지어 내가 출발선서 대기하고 있을 때도 나는 내 손이 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나는 ‘우리가 이 경주를 해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더웠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경주를 시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질주하던 순간에도 내 발은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기억이다. 내 발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마지막 50미터는 무아지경에 빠져 달려나갔다.”


[출발]

헌트는 인내 그 이상의 것을 해냈다. 비록 당일 레이스의 세세한 것들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날 경기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단거리 선수가 됐다.

그는 현재 18세 이하 여자 선수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그의 기록은 나이를 불문하고 영국 선수들이 세웠던 역대 200미터 달리기 세 번째 기록이다.

“도쿄올림픽 연기는 최고의 일”
주위 환경 이용해 몸 상태 유지

더욱 인상적인 것은 에이미 헌트가 200미터 단거리 종목을 선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전 그는 단지 다섯 차례 정도의 200미터 단거리 실외 경기에 출전했을 뿐이었고, 그 출전 경험조차 좋아하지 않았다. 

“기록을 내기 전까지 내가 가장 선호하는 종목은 100미터 단거리였다. 200미터 종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해 전까지는 많이 달려 본 적도 없었다. 200미터를 달리고 주저앉으면 어지럽고 기절할 것 같았고, 그래서 별로 좋아하는 종목이 아니었다.”

[기록]


그러나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헌트와 코치는 200미터 종목의 출전을 결정했고, 그 결정은 역사를 만들어냈다.

“200미터에 출전했던 유일한 이유는 바로 한 주 전에 출전했던 주니어 대회서 100미터를 뛰었기 때문이었다. 유럽 주니어 대회를 목표로 하고 있었고, 한 번쯤 재미삼아 (200미터 종목에)출전한 것이었다. 한 주 전에 100미터를 세 번이나 뛰었고, 그래서 기분도 전환할 겸 이번에는 200미터를 뛰자고 한 것이다.”

그 레이스 이후 헌트의 스파이크는 말 그대로 녹아내렸다. 그의 인생과 200미터 단거리 종목의 세계신기록도 바뀌게 됐다.
 

“경기 후 공항에 도착해서야 스파이크를 벗을 수 있었다. 선수들끼리 각자의 스파이크를 비교해 봤는데, 정말 스파이크 바닥들이 다 녹아버린 상태였다. 어떤 브랜드이건 밑창의 플라스틱 부분이 전부 녹아 있었다. 경기장의 트랙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었다. 말이 안 될 정도로 그만큼 더웠다.”

[재능]

에이미 헌트는 재능이 많다. 현재 그는 18세 이하 200미터 단거리 육상 세계기록 보유자일 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보로스서 열린 유럽 20세 이하 챔피언십서 200m 금메달을 따낸 뒤 영국 육상 기자협회서 수여하는 ‘올해의 청년 여자 체육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재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헌트가 이제 겨우 18세고, 그가 목표로 했던 것을 전부 이뤄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케임브리지대학교로부터 영문학과 입학 제의를 받은 그는 현재 훈련 중인 영국 최고의 스포츠 대학 ‘러프보로(Loughborough)’ 진학 사이서 고민하고 있다.

재능 있는 첼로 연주자이기도 하다. 영국 전역이 코로나19 사태로 폐쇄되기 전에 학교에서 현악단을 운영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학교 공부와 음악 공부,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육상훈련을 지속한다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칠 테지만 에이미 헌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헌트는 자신의 열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언젠가 지금을 돌이켜보면, ‘맙소사! 어떻게 그런 것들을 전부 할 수 있었지?’라고 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고, 어떻게든 다 하게 되었다. 나는 항상 바쁘게 지내는 것이 좋다. 정말 터무니없이 바빴다.”

[일상]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헌트의 일상에도 변화가 왔다. 그가 세계신기록을 세우던 때와는 다른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헌트는 훈련 일정을 지키고 있다. 차고에 훈련장을 만드는 등 주위 환경을 이용해 몸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큰 공원 근처에 살기 때문에 그곳에서 훈련을 하거나 빈 주차장을 이용하고 있다. 근처에 언덕이 있어서 오르막 달리기 훈련을 하면서 스피드 강화 훈련하기에도 좋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 거주지 근처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참 행운이다.”

즐거운 격리 생활
도쿄를 향한 시선

헌트는 당연히 도쿄올림픽을 생각하고 있다. 인터뷰 주제가 내년 올림픽으로 바뀌자, 헌트는 대회 일정 연기에 대한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헌트에게 남은 1년은 세계 최고 대회에서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더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연기는 나에게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올해에도 출전 준비가 돼있었겠지만, 추가의 1년은 나를 더욱 강하고 빠르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압박]

만약 그가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면, 헌트는 자신이 항상 우러러 봤던 많은 우상들과 이제는 경쟁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어떤 선수들은 승부에 대한 압박감을 느낄 때 좋은 성적을 내곤 한다. 하지만 에이미 헌트의 경우, 지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대회를 돌이켜 보면 헌트는 압박감이 없을 때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대회 이후에 참 많이 생각해 봤다. 그저 대회를 즐기려고 해서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었던 것일까? 확실히 그렇다. 스스로가 매우 편안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쿄올림픽을 앞두고도 비슷하게 준비할 예정이다.

“스스로 부담 주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 상황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이전의 경험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기 자체만 놓고 본다면 나는 완전히 집중하고 싶다. 남은 1년 동안 나의 기량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영국서 가장 촉망받는 육상 선수인 헌트에게 도쿄올림픽 준비를 위한 시간이 1년 더 생겼다. 내년 여름 도쿄 날씨가 매우 덥고 습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헌트가 다시 한 번 놀라운 일을 벌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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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