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삼양그룹 오너 4세 부동산 쪼개기 투자 추적

‘역시 금수저’ 투기도 조기교육?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삼양그룹 오너 4세들이 한때 부동산 투자에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눈길이 가는 건 이들의 나이. <일요시사> 취재 결과, 12억원에 가까운 토지를 매입한 이들은 대부분 10대, 20대였다.
 

▲ 최근 삼양그룹 오너 4세들이 한때 부동산 투자에 나섰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고성준 기자

삼양그룹은 2조 매출을 자랑하는 대기업이다. 올해 창립 96주년을 맞는 등 국내서 손꼽히는 장수 기업이다. 주요 사업은 화학·식품·바이오다. 삼양라면의 삼양식품과는 다른 회사다.

그룹은 독특한 승계 전통을 잇고 있다. 바로 ‘형제·사촌’ 경영이다. 이들은 함께 경영에 참여하고, 경영권을 번갈아 맡는다. 현재까지 특별한 경영권 분쟁은 없다.

형제·사촌
경영 전통

김연수 창업주는 3남 고 김상홍 명예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줬다. 고 김상홍 명예회장은 자신의 장남이 아닌 동생 김상하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다시 김상하 회장은 고 김상홍 명예회장의 장남인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에게 경영권을 건넸다.

김윤 회장은 그의 형제, 사촌과 함께 경영 전면에 나섰다. 김윤 회장 동생은 김량 삼양홀딩스 부회장이다. 김윤 회장의 사촌이자 김상하 회장의 장·차남은 김원 삼양홀딩스 부회장, 김정 삼양패키징 부회장이다.


이 같은 승계 전통은 계속될 전망이다. 삼양그룹 오너 4세는 모두 10명이다. 김윤 회장의 장·차남은 김건호 삼양홀딩스 상무(1983년생)와 김남호씨(1986년생)다. 김량 부회장은 슬하에 1남1녀로 김민지씨(1986년생)와 김태호씨(1988년생)를 뒀다.

김원 부회장의 세 딸은 김남희씨(1989년생), 김주희씨(1993년생), 김율희씨(1997년생)다. 마지막으로 김정 부회장에겐 2남 1녀인 김희원씨(1993년생), 김주형씨(1997년생), 김주성씨(2000년생)가 있다.

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오너 4세는 김건호 상무가 유일하다. 김건호 상무는 지난 2014년 삼양그룹에 입사했다. 그는 삼양사 AMBU 해외팀장 등을 역임하며 화학사업 해외시장 확장 등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그룹의 화학, 식품, 패키징 사업의 글로벌 전략 수립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오너 4세들에겐 별다른 직책이 없다. 나이도 비교적 어린 편으로 삼양그룹 지주사 삼양홀딩스 지분을 쥐고 있을 뿐이다.

독특한 승계 전통…일가 4세까지
83년생부터 00년생까지 모두 10명

눈길이 가는 건 오너 4세들의 부동산 투자전력으로, 이들 나이가 주목할만하다. 당시 김건호 상무가 31세로 가장 많은 나이였다. 그 외 오너 4세들은 10대, 20대에 불과했다. 반면 초기 투자비용은 12억원에 달했다. 자금 출처에 물음표가 찍히는 까닭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너 4세들은 지난 2013년 5월 충청북도 소재 토지 6곳을 매입했다. 면적은 모두 2500평을 넘었다. 부동산 법인등기부등본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토지 취득 비용은 11억9000만원으로 파악된다.

오너 4세들이 매입한 토지는 ▲4278m²(6억453만원) ▲2229m²(3억1498만원) ▲1355m²(1억9148만원) ▲503m²(7110만원) ▲32m²(452만원) ▲24m²(339만원) 등이었다(표1).

토지 소유권은 각자 지분을 통해 공유하는 형식이었다. 김건호 상무(15%)·태호씨(15%)·남호씨(10%)·민지씨(10%)·남희씨(8.5%)·주희씨(8.25%)·율희씨(8.25%)·희원씨(7.5%)·주형씨(8.75%)·주성씨(8.75%) 등이다. 모든 토지에 대한 지분은 동일했다.
 

▲ ▲▲ ⓒ고성준 기자

당시 이들의 나이는 12억원에 가까운 토지를 취득하기엔 비교적 어렸다. 김건호 상무가 31세인 점을 제외하면 태호씨(26)·남호씨(28)·민지씨(28)·남희씨(25)·주희씨(21)는 모두 20대였다.

율희씨(17)·희원씨(21)·주형씨(17)·주성씨(14)는 겨우 10대였다. 이들이 매입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11억9000만원
그 나이에?

삼양그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개인자금 출처를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오너 4세들은)삼양홀딩스 주주로서 배당을 통한 일정 수입이 있었다”고 전했다.

오너 4세가 소유한 토지는 이후 분할됐다. 대상이 된 토지는 3곳(4278m², 2229m², 1355m²)이었다. 해당 토지는 모두 15곳으로 나뉘어졌다. 나머지 3곳(503m², 32m², 24m²)은 변동이 없었다. 즉, 토지 6곳이 18곳으로 재편된 셈이다(표2).

분할된 토지는 다양하게 활용됐다. 크게 ▲일반 매매(표3) ▲기부채납(표4) ▲현물출자(표5) 등이다. 세부적으로 일반 매매 10건, 기부채납 3건, 현물출자 5건이었다.

일반 매매는 지난 2015년 성사됐다. 6개 토지는 그해 10월 팔렸다. 521m²(1억6000만원), 521m²(1억5800만원), 507m²(1억5000만원), 483m²(1억4500만원), 38m²(1200만원), 24m²(800만원) 등이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4개 토지가 거래됐다. 2075m²(5억9073만원), 503m²(1억4300만원), 140m²(3984만원), 128m²(3643만원) 등이었다.

오너 4세들은 토지 매매를 통해 14억4300만원을 취득했다. 초기 비용 11억9000만원과 비교해봤을 때, 차익은 2억5300만원이었다.


약 1년 뒤 이들은 토지 4곳을 지방자치단체에 기부채납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11월 549m², 63m², 30m² 등에 대한 기부채납이 이뤄졌다.
 

▲ ▲ⓒ고성준 기자

기부채납이란 국가나 지자체가 무상으로 사유재산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정비사업 등의 사업시행자가 지역에 필요한 시설을 기부채납으로 제공하면 건폐율, 용적률, 높이 등이 완화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물출자는 지난 2018년 4월 성사됐다. 현물출자란 회사를 설립하거나 신주를 발행할 때 재산을 출자해 주식을 배정 받는 것이다.

대상이 된 토지는 93m², 1336m², 53m², 1325m², 32m² 등이었다. 오너 4세들은 현물출자로 그해 5월 ‘우리’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5년 안에
작업 마무리

우리는 부동산 임대업과 주차장 관리업을 영위한다. 발행주식 223만5514주에 자본금은 111억7000만원이다.


우리 임원들은 오너 4세와 삼양그룹 직원으로 채워졌다. 대표이사는 김건호 상무다. 사내이사에는 김량 부회장의 장남 태호씨, 김원 부회장의 삼녀 율희씨가 있다.

김정 부회장의 장남 주형씨는 법인설립 당시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지난 3월 사임했다. 빈자리는 김정 부회장의 장녀 희원씨가 대신했다. 감사는 삼양홀딩스 재경팀장 송모씨다.

앞서 우리는 삼양그룹 ‘승계 지렛대’로 조명 받은 바 있다. 삼양그룹과 내부거래를 통해 몸집을 키운 뒤, 삼양홀딩스 지분을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삼양그룹 측은 우리와 그룹 사업의 접점이 없다는 입장이다. 즉 내부거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삼양그룹과 우리 간 거래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른 나이 토지 매입…자금 출처는?
매매에 법인 출자까지 다양하게 활용

우리가 삼양홀딩스 지분을 취득할만한 규모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공시에 따르면 우리의 지난해 매출액은 4억7000만원이었다. 영업이익은 1억8000만원으로 기타수익도 300만원 발생했다. 순이익은 1억7500만원으로 흑자를 봤지만 규모 있는 회사라고 보기 어렵다.

이 외에도 다양한 해석이 제기된다. 오너 4세들이 회사 가치를 높인 뒤 유상감자를 진행하거나, 보유 지분을 매각하는 형식이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실탄’이 마련되는 시나리오다. 다만 우리가 경영 승계와 무관한 회사라는 게 그룹 측의 입장이다.

10명의 오너 4세들은 모두 삼양홀딩스 지분을 쥐고 있다. 김건호 상무(2.23%·19만1080주)에게 가장 많은 지분이 있다. 이어 태호씨(1.73%·14만8464주), 남호씨(1.49%·12만7993주) 등은 모두 1% 이상씩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김윤 회장과 김량 부회장의 장·차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머지 오너 4세들의 지분율은 1% 미만이다. 차례로 희원씨(0.94%·8만736주), 민지씨(0.75%·6만4620주), 주희씨(0.66%·5만6376주), 남희씨(0.66%·5만6283주), 주형씨(0.52%·4만4551주), 주성씨(0.52%·4만4358주), 율희씨(0.29%·2만5191주) 등이다.

김량 부회장의 장녀 민지씨를 제외하면 모두 김원 부회장, 김정 부회장의 자녀들이다.

보유 주식
수십억대

이들의 지분은 미미한 듯하지만 가치는 상당하다. 지난 18일 종가 기준(5만8500원) 김건호 상무의 지분 가치는 111억7800만원이다. 유일하게 100억원을 넘겼다.

태호씨와 남호씨는 각각 86억8500만원, 74억8700만원이다. 희원씨는 47억2000만원으로 그 뒤를 잇는다. 민지씨의 지분 가치는 37억8000만원이다. 주희씨와 남희씨는 32억9000만원으로 비슷하다.

1997년 동갑내기 율희씨와 주형씨는 각각 14억7000만원, 26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2000년생 주성씨의 지분 가치는 25억9000만원을 웃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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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