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옥죄는 ‘삼각 포위망’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6.15 11:39:41
  • 호수 12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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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아미타불’ 다시 긴장모드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중대 기로에 섰다. 북한은 대화의 창구를 끊었으며, 국내에선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가 안팎에선 문재인정부가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말한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한국사진공동취재단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중략) 우선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버릴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중략) 6월9일 12시부터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유지해오던 북남 당국 사이의 통신연락선, 북남 군부 사이의 동서해통신연락선, 북남통신시험연락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폐기하게 된다.

갑작스런
태도 변환

이는 지난 8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내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대남사업 부서 사업총화회의서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김 부부장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판하는 담화를 낸 지 닷새 만이다. 지난 4일 그는 담화를 통해 “남조선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북남(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북전단 살포를 원천 차단하라는 북한 측의 압박이다.


북한은 경고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나섰다. 청와대와 북한 국무위원회를 연결하는 핫라인이 설치 2년 만에 끊겼다. 청와대는 1차 남북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2018년 6월20일 핫라인을 개통한 직후 4분19초 동안 북한 측과 시험통화를 하기도 했다.
 

▲ 판문점 남측 분계선 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한국사진공동취재단

핫라인은 문 대통령의 유화적 대북정책의 상징이다.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한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문 대통령의 핫라인 사용 여부가 관심을 받았다. 청와대는 실제 핫라인을 사용했는지 밝힌 적은 없다.

핫라인은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남북 정상이 언제든 대화할 수 있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끊긴 것은 청와대 핫라인뿐만이 아니다. 통일부·국방부와도 연락이 끊겼다. 통일부는 지난 9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업무 개시 통화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국방부는 같은 날 남북 간 군 통신선을 통한 정기 통화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여정, 남북 연락선 모두 차단
반기문·주호영 “대북정책 잘못”

외신들은 이번 사태를 긴급 속보로 다뤘다. AFP 통신은 지난 9일, 통신연락선 차단에 대한 조선중앙통신 기사를 전하며 북한이 남한을 적으로 규정했다고 해석했다. 로이터통신은 북한의 조치가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려는 노력에 중대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통신은 북한 당국이 탈북민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위협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폐기가 북한 액션플랜의 첫 단추라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조치가 김 부부장 등이 심의한 ‘단계별 대적사업계획’의 첫 단계라고 밝혀 후속 조치를 예고했다.
북한의 다음 액션 플랜은 개성공단 완전 철거, 9·19남북군사합의 폐기 등이 예상된다. 그중 남북군사합의는 문 대통령이 자랑해온 대북관계서의 성과 중 최고로 꼽힌다. 지난 2018년 9월19일 송영무 당시 국방부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은 만나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 즉 남북군사합의에 서명한 바 있다.


남북협력 교류를 넘어 평화의 상징인 개성공단은 존폐 위기다. 2016년부터 가동이 전면 중단된 상태지만, 평화의 상징으로서 가치가 있다. 북한이 실제 개성공단 철거에 나선다면 이는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

이런 상황서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곳곳서 높아지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지난 6일 현충일에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지적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메시지를 통해 “정부는 평화를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어가되, 국민적 공감이 결여된 대북정책으로 국민의 안보의식에 분열이 생기지 않도록 숙고하고 통찰해야 한다”며 “굳건한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흔들림 없는 국제공조를 이뤄, 북한의 핵 도발을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문정부의 대북정책이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민의 안보 의식에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군사합의
위태롭다

반 전 총장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대통령 직속 기구(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의 위원장이다. ‘국민적 공감이 결여된 대북정책’은 문 대통령의 대북유화정책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래 유화 메시지를 북한 측에 지속적으로 전달해왔다. 지난해 12월 문 대통령은 기고 전문매체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행동이 필요하다.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를 실천해나간다면 국제사회도 이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보낸 바 있다.

대북유화정책을 지속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기존 노선을 고수하고 있음을 표명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대북유화정책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취임 4년 차를 맞은 상황서 보수 야권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긴급 안보 간담회를 열고 “정부는 불통적인 대북유화정책을 포기하고 현실적이고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 자리서 “북한 측이 남북 연락사무소를 폐쇄하고 적대관계로 전환해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폭언을 한 것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평화 프로세스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주영대사관 공사였던 탈북민 출신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북한 대남전략은 대적투쟁이었다. 필요할 때마다 대적투쟁을 우리 민족끼리로 포장했을 뿐이고 수틀리면 대적투쟁 본색을 드러냈을 뿐”이라며 “북한이 도발 명분을 찾는 데 미국에 (시비를)걸지 못하고 가장 비겁하게도 치졸하게도 힘 없는 탈북민이 보낸 삐라(선전이나 광고 또는 선동하는 글이 담긴 종이쪽) 몇 장을 가지고 도발 명분을 찾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폐기 이후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1일 논설서 “이후에 판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북남(남북)관계가 총파산된다 해도 남조선 당국자들에게 응당한 보복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인민의 철의 의지”라며 적대감을 보였다.


남남 갈등
더욱 고조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같은 날 평양시 인민위원회 부원 리영철의 글을 통해 “평양과 백두산서 두 손을 높이 들고 무엇을 하겠다고 믿어달라고 할 때 같아서는 그래도 사람다워 보였고, 촛불민심의 덕으로 집권했다니 그래도 이전 당국자들과는 좀 다르겠거니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오히려 선임자들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난했다.

앞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9월20일 백두산 천지를 찾았을 때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북한의 비판은 이례적이다. 그간 북한이 문정부에 대한 비방 때도 문 대통령에 대한 직접 언급은 삼갔었다. 이는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 동력이 힘을 잃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문 대통령 입장서 딱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북관계는 급랭됐으며, 과거 보수정권 때보다 더한 긴장관계가 형성됐다. 북한은 ‘대북전단’(삐라) 살포를 대적사업 계획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정부·여당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제정 의지를 밝혔지만,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더불어민주당 김홍걸 의원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한 바 있다.
 

▲ 김여정 북한 제1부부장

대북전단 살포를 막는다고 해도 북한의 격앙된 태도를 바꿀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북남(남북)관계가 총파산된다 해도 남조선 당국자들에게 응당한 보복을 가해야 한다”는 논설을 낸 <노동신문>은 북한 주민들이 모두 볼 수 있는 당 기관지다. 북한 측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정부는 국내외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당장 미국의 도움을 얻기 힘든 상황이다. 미국은 오는 11월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내부서 흑인 사망 항의 시위 등이 열리며 어지러운 상황이다.

군사 도발 가능성↑
대북유화정책 기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지난 9일(현지시각) 북한의 통신연락선 완전 차단·폐기에 대해 “실망했다”고 표현하자,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같은 날 “제 집안일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의 집 일에 쓸데없이 끼어들며 함부로 말을 내뱉다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좋지 못한 일에 부닥칠 수 있다”고 맞받아쳤다. 권 국장은 미국의 어지러운 내부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남남갈등으로 시끄럽다. 통일부가 지난 10일 대북전단을 살포한 탈북민단체 2곳을 고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통일부가 불과 몇 달 전엔 단속할 근거가 없다더니 ‘김여정 하명’이 있고 나서 이제는 남북교류법으로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지난 11일 입장문을 통해 “오래전부터 대북전단 및 물품 등의 살포를 일체 중지했고, 북한 측도 지난 2018년 판문점선언 이후 대남전단 살포를 중지했다”며 “정부는 앞으로 대북전단 및 물품 등의 살포 행위를 철저히 단속하고, 위반 시 법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히며 통합당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국민 여론도 팽팽히 맞선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10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11일 발표한 대북전단 금지법 제정 찬반 여론조사에 따르면, 찬성이 50.0%, 반대가 41.1%, 잘 모르겠다가 8.9%로 집계됐다.
 

▲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문병희 기자

같은 조사서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도는 전주보다 1.6%포인트 하락한 57.5%로 나타났다. 대통령 지지도보다 대북전단 금지법 찬성이 7.5% 낮은 상황이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 중에서도 대북전단 살포를 원하지 않는 여론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한미연합
합동훈련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9·19남북군사합의에는 군사분계선(MDL) 5㎞ 내에서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 전면 중단, 동·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일정 구역을 완충수역 지정, MDL 상공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안보와 관련한 중요한 사항이 담겨 있다. 만약 북한이 9·19남북군사합의를 폐기한다면, 접경지대에서의 군사적 긴장감은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한미 군 당국은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미사일방어체계 통합연동훈련을 실시했다. 대적사업계획 등 군사도발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북한을 향한 경고 메시지로 해석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왜’ 김정은 대신 김여정인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대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전면에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 북한 전문가들의 해석을 종합하면, 남측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변환시킬 여지를 남겨두기 위함으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0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서 열린 통일연구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김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모양새를 통해 향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정상우의’ 차원서 상황을 역전시킬 여지를 두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유사한 사례가 있다. 지난 3월 김 부부장은 자신 명의의 첫 담화서 청와대를 비난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는 등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번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이 지난 7일 주재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회의서 대남정책을 의제로 거론하지 않은 점 또한 김 위원장이 적대적인 대남정책을 주도하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함으로 읽힌다.

홍 위원은 “보도는 안됐지만, 이 정치국 회의서 최근 상황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모종의 의논이 있었을 것”이라며 “보도된다면 김 위원장이 이걸 주도하는 것처럼 해석이 되기 때문에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이려는 게 아니었나 싶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계획된 수순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백두산을 등정했을 시점부터 대남정책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의 백두산 등정 후 김 위원장이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직접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대남정책 전환이 늦춰져 지금에 이르렀다고 복수의 북한 전문가들이 진단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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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