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강연계 BTS’ 김창옥의 힐링 메시지

상처 가득한 맨몸을 드러내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김창옥 강사는 현재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이들에게 거의 신격화된 존재다. 유머를 가미해 아픈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그의 강연은 듣는 이에게 위로와 힐링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강연을 듣는 순간만은 왠지 모르게 현재의 아픔이 깨끗하게 잊히는 마력이 있다. 그가 ‘강연계의 BTS’라 불리는 이유도 그 힘 덕분이다. 아픔을 보듬어주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김 강사가 용기를 냈다. 강사라는 철갑을 벗고 인간 김창옥이라는 민낯을 보여주는 용기. 다큐멘터리 영화 <들리나요?>에서는 김 강사의 상처 가득한 맨몸이 보인다. 그렇게 자신을 드러낸 김 강사를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 ‘강연계의 BTS’로 불리는 김창옥 강사

‘소통전문가’라 불리는 김창옥 강사에게도 아픔이 있을까. 강연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썩 좋지 못하다고 털어놓기는 하나,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의미로 읽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픔이 그리 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스스로 소통전문가라 칭하는 그에게 인간관계서 오는 아픔이 크면 또 얼마나 크겠느냐는 얕은 편견도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들리나요?>를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아픔을 짊어지고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우울증만 두 번, 몇 년 전에는 정신과 치료도 받은 적이 있는 그였다. 반백년 가까이 살아오는 동안 아버지와 교감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한 그는 꽤 많이 아파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경험을 통해 깨우친 깨달음을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솔직하게 전하는 그의 이면에는 해묵은 숙제가 있었다. 청각장애를 겪고 있는 아버지의 귀를 치료하는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아버지의 귀를 치료하는 과정, 이것은 사실 영화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 자신이 주위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것도 엿볼 수 있다. 늘 바쁘게 빨리, 열심히 사는 동안 얻게 되는 불안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영화를 통해 드러난다. 

영화는 그가 내면의 아픔과 불안을 직면하고, 조금씩 성장하는 몇 개월을 담고 있다. 


아버지와 가족 간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조금은 더 희망찬 내일을 바라보는 영화 <들리나요?>의 김 강사를 최근 삼청동 한 커피숍서 만났다. “영화를 보고 부끄러웠고, 쪽팔렸다”고 말하는 그는 영화 촬영 이후 조금씩 성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숨겨져있던 속살을 내비친 작품인데. 기자간담회 때도 창피하다고 말하긴 했었는데. 

▲아마 그렇게 찍겠다고 했으면 안 했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제가 보기엔 제가 너무 ‘돌아이’ 같더라. 내가 화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화가 많더라. 속내를 너무 드러낸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더 한 게 많았는데, 편집하고 드러낸 게 그 정도였다. 

-그렇게 자신의 민낯을 봤는데, 그 느낌은?

▲제일 먼저 선명했던 감정은 ‘부끄럽다’였다. 더 명확하게 말하면 ‘쪽팔린다’에 가깝다. 되게 당황스러웠다. 나조차 한 번도 못 본 내 등을 저 큰 스크린으로 본 것이다. 메이크업을 안 한 내 얼굴을 많은 사람과 함께 본다는 것에 당혹감이 있었다.
 

▲ ▲▲ 김창옥 강사 ⓒ트리플픽쳐스

-평소에 강연할 때 자신이 가면을 쓴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게 민낯을 보여주고 나니 후련하다는 감정은 없었나?

▲사실 가면이 나 자신을 숨긴다는 의미의 가면이 아니라, 영화서 표현하는 캐릭터의 형태로 사용한 가면이었다. 강연할 때 나는 광대처럼 군다. 사실 광대 표정을 안 하고 싶을 때도 많다. 광대 표정을 지어야지만 사람들이 마음을 연다. 그래야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들어간다. 


남에게 보이는 나와 실존의 나가 있었는데, 실존의 나를 보여줬다. 시원하긴 하다. 이제 커밍아웃을 했으니. 이런 면은 나 혼자만 죽을 때까지 알고 있을 부분이었는데, 다 깠다. 이 영화가 없었다면 나는 남에게 들킬까봐 두려운 마음에 계속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미 내 모습을 다 알고 있는데, 또 내게 관심조차 없는데 나 혼자만 노심초사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아버지의 귀를 치유하는 과정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어떻게 해서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건가?

▲큰딸과는 잘 지냈는데, 쌍둥이 아들들에겐 엄하고 무뚝뚝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서 문제를 일으켜 상담을 받아보니 아빠와 소통이 없어 그런 것 같다고 하더라. 생각해 보니 제가 아버지와 소통을 하지 못했다. 그게 제 아들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것 같았다. 묵은 숙제를 풀어야겠구나, 아버지와 못했던 소통부터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부끄럽고 쪽팔렸지만 후련하다”
“영화 속 모습 ‘돌아이’ 같았다”

-영화서 보면 비판에 취약한 면이 나온다. 비속어를 강렬하게 쓴다. 그런데 일부 지인 중에 비판적인 요소가 강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괜찮았나.

▲3명 정도는 의절했다. 하하. 나한테 절대 인터뷰를 보여주지 않았다. 나도 시사회 가서 처음 본 것이다. 배우 조달환은 먼저 사과도 했다. 달환이는 ‘영화를 봤는데 내가 뭐라고 말을 저렇게 했는지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래서 내가 ‘아니다. 괜찮다. 그러니 이제 그만 보자’라고 했다. 하하. 농담이다.

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희 말이 맞다. 하지만 70은 맞아도, 20∼30은 너희 시점으로 본 거다’라는 생각. 내가 저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내 방식의 삶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칼로 훅 찌르는 느낌도 있었다. 언어가 좀 강했다.

-여행작가로 나오는 분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김 강사가 자신의 일상을 인스타그램에 열심히 올리는 모습을 보고 힘들게 사는 것 같다고 여겼다. 남에게 보이는 나에 집착하는 듯이 말했는데, 실제로 그런가. 

▲사실 그 말은 좀 서운했다. 왜냐면 그건 그의 시선으로 날 바라본 것이기 때문이다. 김미경 강사는 홍보를 정말 잘한다. 100만명의 구독자가 있다. 정말 잘한 거다. 난 스스로 고집이 있어 홍보를 잘 안 했다. 교묘하게 치고 빠지고 사라지는 게 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안 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도 안 했다. 나는 내 개인의 삶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안 했는데, 책을 내든 전국투어 콘서트를 하든 비즈니스적 측면에선 전혀 관리를 안 한 게 됐다.
 

▲ 강연 중인 김창옥 강사 ⓒ트리플픽쳐스

나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홍보가 잘 안 돼서 서비스를 못 받는 상황이 나왔다. 내 최소한의 양심은 책을 냈으면 적어도 홍보를 해야 하는건데, 그냥 책 소개만 달랑 올리면 인간미가 없다. 그래서 콘텐츠를 만들어서 홍보하려 했던 거고, 숙제하듯이 한 건데, 마치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 여겼다. 그 부분은 사실 많이 서운했다.

-그러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는가.

▲강사 김창옥으로서는 의식을 많이 한다. 강사로서 깔끔해 보여야 하는 게 있어 옷을 가린다거나 수염을 기르지 않는 것이 그 예다. 누군가 돈 많이 벌었다고 할까봐 시계도 안 찬다. 어쩌면 이 모습이 나로 못 사는 셈이다. 평소 비속어도 안 쓰고 싶고, 웬만하면 예의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나는 긍정적인 방향의 의식적인 행동을 하는 건데, 정반대로 해석을 해버리니까 화도 좀 나고 그러더라.


-아버지의 귀는 좀 어떤가?

▲맨 처음에는 귀 수술을 해드리려고 한 게 아니라 검사만 받으려고 했다. 어차피 안 들릴 것으로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소리를 듣게 되시지 않나. 근데 소리가 들리는 거랑 언어가 해석되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 소리와 언어가 매칭이 돼야 한다. 언어 재활을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엄마가 해야 한다. 엄마는 까막눈이다. 엄마가 그걸 하기엔 너무 짜증이 나는 거다. 단순하지가 않다. 

그래서 언어 재활센터에 보냈었다. 버스를 30분 넘게 타고 가야 하기에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갔다 오셔서 2시간을 짜증냈다고 한다. 그래서 택시비를 드리려고 했다. 택시는 너무 비싸서 아깝다고 못 타신다고. 그래서 결국 아버지가 안 한다고 하셨다. 

-너무 희망적이지 않은 결과 아닌가. 

▲정말 희망적이지 않다. 하하. 어디서 얘기하기도 아름답지도 않고.

-자료에 보면 이 영화를 개봉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한다. 어떤 의미인가. 


▲지금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이 알리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건 많이 떨린다. 강연의 경우에는 사람이 많이 안 와도 돈을 준다. 이건 사람이 오는 대로 돈을 버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더욱 홍보를 열심히 한다. 사실 처음에는 개봉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극장서 엄마와 아빠와 처음 영화를 보는 셈이다. 엄마는 글을 못 읽으셔서 외화를 못 보고, 아버지는 못 들으셔서 한국 영화를 못 본다. 볼 수 있는 영화가 없다.

근데 이 영화는 가능하다. 그것만으로 엎드려서 감사드린다. 그래서 개봉 안 해도 좋다고 했더니, 김봉한 감독이 내 돈은 어떡하냐고 해서, 개봉까지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 분이라도 보고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아버지 귀, 희망적이진 않은 결말”
“코로나로 오히려 성숙해지는 단계”

김창옥 강사에게 <들리나요?>는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아직 잘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야 알 것 같다. 

-공고를 나와 군대 다녀와서 대학에 갔다. 성악과였다. 전혀 상관없는 강연의 길로 접어들었다. 살아온 굴곡을 보면 여러 시련이 있었다. 어떻게 강연을 선택하게 된 것인가. 

▲강연을 선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가 노래를 계속했다. 합창단 단원으로.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도 좋아할 때 잘한다고 정의를 내린다. 나는 언젠가 남들이 나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들이 나에게 잘한다고 인정하는 것은 돈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안 주면 사실 잘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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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서 ‘기사 좋다’고 하는데, 돈을 안 준다면 그건 취미가 된다. 나의 노래는 페이를 받을 만큼은 아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나한테 ‘성악을 하면 잘 하겠다. 재능이 있다’고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였다. 내가 돈을 받을 수 있는 직종을 찾다가 강연을 하게 됐다. 

-영화는 소통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영화를 통해 고백을 많이 했다. 사실 강연을 봐도 다른 거장과의 강연과는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김 강사의 가장 큰 무기는 일상의 이야기라고 본다.

▲나는 거장의 학문을 공부하지 않았다. 심리학이나 철학을 공부하지도 않았다.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수면 위로 올리는 것은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 현장에서는 학문적인 언어보다는 현장의 언어가 통한다. 사람들이 쓰는 용어로 다가가야 그들도 마음을 연다. 나는 실제로 비속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비속어를 좋아해서 그런 표현을 많이 쓴다. 

정형화된 아나운서 톤이 어쩌면 나랑은 더 잘 맞는 용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 유통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폭넓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다보니 일상의 언어라는 무기를 갖게 된 것 같다. 

-요즘 SNS가 문제라는 의견이 많다. 남과 비교하면서 더욱 박탈감을 느끼는 삶으로 인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SNS가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목욕물이 더럽다고 물만 버려야지 그 안에 있는 아이를 버릴 수는 없지 않나. SNS는 많이 더러워졌다. 하지만 이 안에 아이는 있다고 생각한다. 방향성을 제시하는 고급 콘텐츠가 늘어난다면 유튜브든 SNS든 얼마든지 깨끗한 채널을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영상산업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종목은 게임과 포르노다. 유튜브도 어쩌면 시작단계다. 점차 고급 콘텐츠가 나오면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강연계도 상황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안다. 어떻게 살고 있나. 

▲영화보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해서 난 요즘 좀 지쳐있는 것 같다. 강연은 내 인생을 다 먹어버린 철갑이었다. 그 철갑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날 지키는 무기였다. 지금은 그걸 벗고 싶다.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소명은 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의도치 않게 쉬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제주도에 있었는데 유튜브만 봤다. 제주도서 서울서 해도 되는 유튜브만 본 것이다. 살면서 쉼이라는 건 내게 늘 부정적이었다. 

아버지가 석공 일을 하셨는데, 비가 오면 일을 못 했고, 추우면 일을 못 했다. 그러면 불안감이 생긴다. 쉬는 날이면 아버지는 화투를 치셨다. 그리고 와서 엄마를 때리고 폭력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내게 휴식이란 문제만 일으키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여태 일하려고 쉬었다. 쉬려고 일한 게 아니라. 처음으로 그냥 몽땅 쉬어버렸다. 처음에는 쉬고 있는 내가 너무 어색했는데, 이제 조금씩 자연스럽게 쉬고 있다. 몸이 많이 지친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몸도 좋아졌다. 강연중독자가 억지로 쉬면서 좋아진 것이다. 

-오랜 굴곡을 지나왔는데, 혹시 스스로 듣고 싶은 말이 있나.

▲애썼다. 혹은 욕봤다. 수고했다와는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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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