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영화 ‘침입자’ 송지효 “매주 뛰느라 연기에 목 말랐죠”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에게 있어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양날의 검’으로 통한다. 매주 예능서 보이는 밝고 웃는 얼굴이 악역이나 미스터리한 역할을 맡았을 때 생경함을 주기 때문이다. 연기를 훌륭히 해내지 않으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배우 송지효는 무려 10년이나 ‘양날의 검’을 쥐고 있었다. SBS <런닝맨>서 환한 미소를 보여 온 송지효는 신작 <침입자>의 화려하고 독특한 ‘유진’을 통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 ▲ 가수 겸 배우 송지효 ⓒ에이스메이커

SBS <런닝맨>에서만 무려 10년이다. 배우라는 타이틀보다 방송인 이미지가 더 강해져 버렸다. 신비하고 묘한 어두움이 있었던 아우라는 어느덧 걷히고, 매주 일요일이면 웃음을 주는 친근한 친구로 변모했다. 

묘한 아우라

사실 배우 송지효의 본적은 영화라고 해도 무방하다. <여고괴담>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여고괴담3-여우계단>을 통해 데뷔해 <색즉시공>을 지나 <쌍화점>으로 파격 노출까지 시도했다. <신세계>서 목숨을 걸고 범죄자를 쫓는 위장 경찰이기도 했고, <바람 바람 바람>에선 식당 직원과 바람을 피우는 식당 사장이었으며, <성난 황소>에서는 악당에게 붙잡혀 생사를 넘나들었다. 

매주 <런닝맨>이라는 예능을 촬영하면서도, 한 해 두 작품씩은 필모그라피를 쌓아왔다. 연기에 대한 목마름은 어쩌면 그에겐 타고난 본능인지도 모른다. 미스터리한 여성이 등장하는 <침입자> 시나리오를 발견한 순간, 송지효의 두 눈이 반짝거렸던 건 당연한 현상이 아니었을까.

송지효는 <침입자>의 유진을 맡고 싶어 곧바로 감독을 찾아갔다. <성난 황소>서 인연을 맺은 영화 제작사 비에이엔터테인먼트서 그녀에게 손을 먼저 내밀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였다. 


“유진은 제 이미지와 반대되는 이미지였어요. <런닝맨>을 10년간 하고 있고 그간 캐릭터나 장르 모두 어두운 걸 별로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 걸 하고 싶다는 갈망을 <침입자> 시나리오를 읽고서야 알게 됐어요. 그래서 더 욕심이 났나 봐요.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는 제가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잘 해내고 싶었어요. 또 잘 어울리고 싶었고요.”

송지효가 왜 그렇게 욕심을 부렸는지는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이해된다. 극중 유진이라는 인물은 미스터리하고 의문스럽다. 어린 시절 잃어버린 동생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서진(김무열 분)의 가족에게, 25년 만에 진짜 동생 유진이라며 찾아온다.

여러 정황과 증거가 서진의 가족이 25년 전에 잃어버린 동생이란 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서진은 의심을 놓지 않는다. 서진의 의심을 불식시키면서 가족과 녹아드는 지점도 자연스러워야 하는 희미한 선이 송지효와 이 영화에 주어진 숙제였다. 

“이 인물을 연기하면서는 스트레스가 정말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더 낯설면서도, 가족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지에 대한 지점을 많이 고민했어요. 후반부에선 이 인물을 관객이 더 궁금하게끔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고요. 또 어떤 신념에 확실하게 빠져 있는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 ⓒ에이스 메이커

그런 송지효의 고민과 정성은 작품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초반부에 약간 급작스럽고 성급하게 가족에게 스며들려는 노력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나, 어느새 그 그림이 자연스러워진다. 어색할 수 있는 상황을 단란한 느낌으로 풀어낸다. 점차 여러 사건이 벌어지고, 서진의 의심이 가속화되면서, 영화는 스릴러 장르의 형태를 강하게 띤다. 점차 진해지는 화장과 색조, 화려해지는 의상과 날렵해지는 턱선까지, 어느덧 흑화한 유진의 얼굴이 보인다. 

“어떤 타이밍에 어떤 강도로 어떤 색깔로 유진의 모습을 어느 정도까지 보여줘야 하나. 그게 가장 힘들었죠. 많은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에요. 반대로 제 내면의 어두운 면을 끌어 올리는 건 사실 어렵진 않았어요.”

미스터리 인물에 대한 진한 갈망
30대 공유한 <런닝맨>과의 약속


침입자>는 이 영화와 연관된 관계자들에게 유독 아픈 손가락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두 차례나 개봉을 연기했다. 심지어 방송을 통해 많은 홍보 활동을 해놓고도, 방영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다. 다시 날짜를 잡았지만, ‘이태원 클럽’이 터졌고, 미루고 미루다 어쩔 수 없이 개봉하려는 시점에서는 배달업체서 코로나19가 확산됐다.

혹독한 추위를 버티고 버티다 피어난 꽃이어서인지, 영화 종사자들의 응원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주말동안 23만명을 동원하며, 코로나 악재에도 고군분투 중이다. 

“부담은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저희 영화를 알려드리고 싶은 것도 있지만, 안 좋은 소식이 들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있어요. 사실 지금, 좋아졌다 안 좋아졌다가 길어지다 보니까, 더 답답해지는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이 힘겨운 시기에 조금이나마 여유를 드릴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 배우 송지효 ⓒ에이스 메이커

과거 송지효는 <런닝맨>을 두고 ‘매주 만들어내는 작품’이라고 했다. 스토리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 없다고 해도 무방한 예능 프로그램에 작품이라는 단어를 붙였다는 건 얼마나 그가 <런닝맨>에 애정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일요일마다 시청자를 만난 지 10년이 지났다. 서른 살에 시작한 <런닝맨>. 송지효는 이제 마흔을 앞두고 있다. 

“저의 30대는 <런닝맨>이 전부였다고 할까요. 제 일생의 한 부분을 차지한 작품이에요. 이렇게 10년 넘게 제 옆에 있는 게 많지 않더라고요. 핸드폰이고 집이고, 10년 넘은 게 거의 없어요. 기분이 이상했어요. <런닝맨>을 통해 얻는 게 정말 많아서 감사한 프로그램이죠.”

배우들은 예능에 종종 출연한다. 하지만 기능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기껏 길어봐야 3년 정도 예능을 하다 다시 배우의 길로 나선다.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본업에 충실하겠다는 전략이다. 연예기획사 입장에선 매우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송지효는 이러한 공식과 무관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과거에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 체력적으로 부침이 오던 시기도 있었거든요. 그래도 저는 마무리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막연히 있어요. 이전 제작진과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요.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기 전에 신의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런닝맨> 앞으로도 쭉 하려고요.”

마지막 로코

차기작은 JTBC <우리, 사랑했을까>다. 손호준, 송종호, 구자성, 김민준 등이 출연한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다. 송지효는 “마지막 로맨틱 코미디라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열심히 방방 뛰고 있는데 여러분이 잘 아는 밝은 이미지가 될 것 같다. 다들 힘든데, 같이 웃었으면 좋겠다”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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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