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미도가 직접 밝힌 ‘슬기로운…’ 후일담

“이렇게까지…온 우주가 날 돕나 봐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데뷔 15년 차 전미도는 공연계에서 다양한 수상 경력이 있는 베테랑 배우이자 티켓 파워다. 뮤지컬과 연극을 오가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그가 단숨에 드라마까지 접수했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채송화를 통해 단번에 스타의 반열에 오른 것. 매력적인 외모는 물론 누구나 꿈꿔보는 이상적인 캐릭터 채송화를 매끄럽게 연기했던 터라, 그의 인기는 치솟는 중이다. 마치 채송화가 TV를 뚫고 나온 듯, 차분하면서도 생기 있는 전미도rk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촬영하면서 느낀 소회를 가감 없이 털어놨다. 
 

▲ ▲ 배우 전미도 ⓒ비스터스 엔터테인먼트

신원호 PD를 비롯한 제작진이 의사들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의 인생을 그려보고 싶어 만든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기존 메디컬 드라마의 공식을 비껴갔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있는 병원서 사투를 벌이는 의사들 이야기가 아닌 평범과 특별함이 오고 가는 에피소드를 통해 의사들의 이면을 그려냈다. 

멈출 줄 모르는 
채송화의 인기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20년 지기 의대 친구들이 한 병원서 동고동락하며 지내는 내용이 큰 줄기다. 아울러 다양한 군상이 관계를 맺어가고 무수한 상황이 벌어지는 병원 이야기를 통해 ‘힐링 드라마’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물론 <슬기로운 감빵생활>까지 4연타석 홈런을 친 신원호 사단이 미국드라마 <프렌즈>를 염두에 두고 수년간 준비한 작품이다. 이우정 작가의 인생 내공이 고스란히 전달될 뿐 아니라 그의 예쁜 마음이 곳곳에 녹아있다. 자극적이면서 악한 사람 하나 없이 누구나 이해되고 사랑스러운 인물들만이 가득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 전미도가 맡은 ‘채송화’다. 의대 99학번 동기 5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신경외과의 유일한 여교수, 독할 정도로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은 물론, 환자를 따뜻하게 대하는 인간적인 의사다. 친구는 물론 고민이 있는 후배들까지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알뜰살뜰 챙긴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스스로 캠핑도 즐길 줄 알며, 남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노래 못하는 것만 빼면 단점이 없는 완벽한 인물이다. 흠이 없는 것이 흠인 채송화를 연기한 전미도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채송화 캐릭터는 초반부에 모든 것이 세팅됐다. 정말 좋은 사람. 나는 이렇게까지 좋은 사람이 아닌데, 그런 선한 면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다. 나도 저런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완벽하고 모범생이고 다 잘하는 면이 있는 반면에 엉뚱한 면도 있지 않나. 노래도 못하면서 잘한다고 사기 쳐서 보컬을 한다든지, 음식에 대한 집착이라든지. 그런 엉뚱한 면들이 있어서 캐릭터가 조금 더 매력적으로 보인 게 아닌가 생각한다.”

베테랑서 신인으로 드라마 도전기
예상 못한 사랑…한편 두렵기도

비록 대중적인 인지도는 부족했던 전미도지만, 공연계에선 실력파 스타로 꼽힌다. 심지어 조승우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배우로 전미도를 꼽을 정도다.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조정석과 유연석이 신원호 PD에게 전미도를 추천한 건 유명한 일화다.

이미 자신의 영역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전미도가 tvN 드라마 <마더>와 영화 <변신>을 통해 변화를 꾀한다. 자신이 모르는 낯선 환경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었다. 이유는 정체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15년 동안 공연을 했는데, 그렇게 긴 시간을 하다 보니 멈춰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적으로도 정형화되는 느낌이었다. 연기에 대한 갈증과 답답함이 있었다. 그래서 좀 더 낯선 곳에서 부딪혀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더>와 <변신>에 출연했다. 스스로 연기에 자책이 있을 정도로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설사 캐스팅에 떨어지더라도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를 만나게 되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신원호 PD는 앞서 전미도를 보자마자 ‘채송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밝은 이미지가 채송화와 어울린다고 느꼈던 것이다. 실제로 채송화와 전미도는 그리 간극이 커 보이지 않는다. 조곤조곤한 말투와 진정성 있는 말투서 채송화가 보인다. 


“첫 오디션 장면이 첫 장면 대사였다. 여자 주인공이라는 설명도 없었다. 당시 PD님께서 ‘송화라는 사람이고 의사인데 차분한 성격이니 미도씨가 저랑 대화한 톤 그대로 부담 없이 읽어보라’고 하셔서 정말 담백하게 읽기만 했다. 그게 감독님이 원하셨던 송화 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실 주인공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작은 배역 하나라도 맡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났다. 이런 행운을 얻을 줄은 몰랐다. 조정석과 유연석은 굉장한 은인이다. 연석의 한마디가 특히 시의적절했던 것 같다. 사적으로 인연이 없었는데 추천해줘서 더 감사하다.”
 

▲ ⓒtvN

워낙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이 채송화다 보니,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그를 좋아한다. 매사 조심스러우며 의젓하고, 상냥하며 따뜻한 마음씨의 채송화는 그 어떤 작품서도 볼 수 없는 이상적인 인물이다. 연기한다는 건 곧 인물을 품는 것이기도 한데, 전미도는 채송화와 얼마나 닮아 있을까.

“일을 열심히 책임감 있게 하는 면은 비슷하다. 배우로서 작품에 임하는 자세가 송화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한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후배들을 대할 때는 정말 다르다. 나는 그렇게 후배들을 챙기진 않았는데 채송화를 맡은 후에 조금씩 챙기고 있다. ‘나 원래 성격이랑 드라마랑 달라’라고 할 수 없어 잘 챙기려고 한다. 이제는 두말없이 잘해주고 있다.”

“80세까지 
하고 싶다”

홍일점 채송화를 중심으로 ‘이익준’(조정석 분), ‘김준완’(정경호 분), ‘양석형’(김대명 분), ‘안정원’(유연석 분)이 ‘99즈’로 불린다. 늘 같이 밥을 먹고, 속사정을 털어놓으며 희노애락을 공유한다. 서로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며 누구보다도 친구가 행복해지는 데 최선을 다한다. 누구나 원하지만 그렇게 쉽지 않은 관계성이다.

“실제로도 많이 친해졌다. 아마 드라마 촬영만 했으면 이렇게 친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작년 가을부터 합주를 했다. 그곳에서는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다. 사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훨씬 빨리 친해졌다. 드라마처럼 죽마고우가 돼 이제는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낸다.”

이들의 케미스트리는 매장면마다 느낄 수 있다. 진짜 친구 같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과 챙기는 마음, 모든 것이 진심서 우러나온다.

“공연은 두 달 정도 부대끼면서 알아가는 시간이 있는데, 드라마는 그런 시간이 없다 보니 연기할 때 어색하거나 낯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분들과 연기하면서 그런 게 없다는 것에 놀랐다. 진짜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명이 함께 촬영하는 날만 기다렸다. 그 정도로 좋았다.”

언제나 즐거웠던 다섯 명과의 촬영 중 전미도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석형을 위로하는 신이다. 이기적인 아버지로 인해 우울해할 거라고 생각한 네 명의 친구가 얼굴을 망가뜨리는 장면이란다. 

“석형이 헤드폰을 끼고 소파에 누워있는데, 네 명이 그 앞에 서 있었다. 대본에는 ‘안대를 벗으니 네 명이 서 있다’였고, 그렇게 찍었다. 그러고 나서 감독님이 재미 삼아 한 번 웃긴 표정으로 찍어보자고 해서 따로 또 찍었는데, 방송을 보니 웃긴 표정으로 찍은 장면이 나왔더라. 해당 신 찍을 때 자지러질 정도로 웃었다. 감독님이 ‘쓸지 안 쓸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막상 방송으로 보니 되게 뭉클하더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그 표정에 위로가 다 담겨있었다. 나 역시도 위로를 받았다. 작가님이 기본적으로 잘 써주시는데, 감독님의 역량도 대단한 것 같다. 그래서 감독님께 손 하트를 날렸다. 하하.”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사들의 사랑 이야기기도 하다. 각 주인공이 새로운 사랑 앞에서 고민하거나 주저하고, 또는 행복감을 느낀다. 송화는 익준과 ‘치홍’(김준한 분)의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시즌1에선 이렇다 할 진전 없이 애매한 상황에 매듭을 짓는다. 치홍은 저돌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며, 익준은 마지막 화에서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다며 고백을 한다. 그 고백에 대한 피드백 없이 시즌1은 끝난다. 

재밌는 익준
따뜻한 치홍


“작품이 결정난 후 대본을 받았을 때 3부까지 있었는데, 러브라인에 대한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송화라는 사람의 기본적인 성격에 대해서만 듣고 그걸 표현하려고 노력하면서 촬영했다. 송화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마지막 장면서도 익준이 액션을 하고, 송화는 당황하기만 한다. 준한도 계속 밀어붙인다. 대본에도 송화가 누구한테 마음이 있는지 전혀 정보가 없다. 작가님에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전미도가 만약 채송화라면 익준과 치홍 중 누구를 택할까. <슬기로운 의사생활> 팬들은 이미 ‘익송’과 ‘치송’으로 패를 갈라, 티격태격 중이다. 

“두 분 다 멋있는 캐릭터다. 익준은 재밌고, 치홍은 따뜻하다. 개인적으로는 재밌는 사람을 좀 더 좋아한다. 아마 익준을 택하지 않을까 싶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후 전미도의 위상은 달라졌다. 당장만 하더라도 광고 러브콜이 급물살 타듯 들어오고,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수는 회를 거듭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남녀노소 모두가 전미도를 알고 좋아한다.

권위 있는 시상식으로 꼽히는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에 올랐으며, 그가 부른 OST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는 각종 음원사이트 1위를 독식했다. 팬덤이 막강한 가수 아이유와 맞붙어 일군 결과다. 워낙 많은 관심은 부담스러워 조심했었다는 그는 이제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스타가 됐다.

“온 우주가 나를 돕고 있다, 하하. 이렇게까지 좋은 반응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초반에 실시간 검색어에 내 이름이 올랐을 땐 뭐 잘못했나 싶어 두렵기도 했다. 방송 나가기 전에는 대중이 어떻게 볼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나를 안 좋아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회를 거듭하면서 반응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사람이 걱정했었다. 매체에 나가는 게 ‘양날의 검’이라고. 관심을 받는 만큼 일상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이런 점과 맞닿아있다. 혹은 상처를 받는 결과가 될 수도 있어서 걱정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 된 것 같다.”
 

▲ ⓒ비스터스 엔터테인먼트

조심스러운 성격 탓에 반응을 확인하지 않는다. 공연에 대해 좋지 않은 평을 보면 심적으로 상처를 받는 터라 평도 잘 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각종 댓글을 만끽하고 있다. 

“드라마 댓글 보는 재미가 생겼다. 저는 사실 공연할 때도, 공연 평을 잘 안 봤다. 어차피 주변서 잘 얘기해 준다. 악플이 있거나 상처받는 일이 있을까 봐 일부러 안 보는 편이다. 이번에도 주위서 많이 알려줬다. 요즘에는 메이킹 영상 보면서 댓글을 본다. 재밌고 참신한 댓글이 많아 기쁜 마음으로 보고 있다.”

조정석·유연석, PD에 직접 추천
‘99즈’ 5인방 실제로도 죽마고우

앞서 <마더>와 <변신>을 촬영하면서 카메라 공포증도 생겨났다. 특히 <마더> 때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연기에 불만이 있었다고 했다. 

“<마더> 때 스스로 연기를 너무 못해서 카메라 연기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변신> 찍으면서 조금 재미를 느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제작진이 정말 좋은 분들이어서 부담스럽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주셨다. 거부감이나 무서움이 있었는데, 이제는 사라졌다. 그 덕분에 송화가 가진 차분한 면이 잘 드러난 것 같다.”

연기를 전공하던 시절, 어린 전미도는 자신의 미래를 구상한 적이 있다. 공연계로 입문해 주인공을 맡고, 수상을 하고 등등의 계획이었다. 얼마 전 우연히 본 과거의 일기장을 보고 그대로 흘러왔다는 생각에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대학교 졸업할 때쯤에 미래를 구상했는데,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소극장서 대극장으로 넘어왔고, 배우로 자리를 잡는 시기나 공연을 안정적으로 하면서 상을 받아 관심받는 것까지, 디테일하게 썼었다. 꽤 비슷하게 흘러온 것 같다.”

뮤지컬계의 베테랑으로, 또 대중 스타로서 40대를 준비하고 있는 전미도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이제부터 계획을 세워보려고 한다. 브로드웨이나 할리우드라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하. 사실 내 꿈은 돌아가신 장민호 선생님처럼 80대에도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역할에 대한 동경이 있다. 지금은 그때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약 6개월의 휴지기를 갖고 11월 촬영에 돌입해 내년 봄에 다시 시즌2로 돌아온다. ‘99즈’는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다른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전미도는 공연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향한다. 

어쩌면
해피엔딩

“쉬는 동안 다른 작품을 하라고 그렇게 시간을 뺀 것 같다. 공연 <어쩌면 해피엔딩>을 하기로 했다. 다른 드라마를 하기에는 좀 미안함이 있었다. 정경호가 ‘다른 드라마 안 할 거지?’라면서 계속 확인한다. 그래서 더 못한다. 사실은 쉬고 싶었다. 그런데 이 공연으로 상을 받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연계가 침체돼있기도 해서 이 작품을 택했다. 아직 여러 스케줄 때문에 연습에 매진하지는 못하고 있는데, 백상 스케줄까지 소화하면 그때부터는 여유가 있으니 제대로 연습하려고 한다. 공연도 잘 지켜봐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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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