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국민 상간녀’ 한소희가 직접 밝힌 ‘부부의 세계’ 후일담

“결혼? 안 했지만 하고 싶지 않아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드디어 JTBC <부부의 세계>가 끝났다. 시청자마저 감정 소모를 일으키는 작품이라고 불린 이 드라마는 비지상파 최고 시청률(28.3%)을 기록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여러 스타가 조명된 가운데, 가장 화제의 인물은 ‘국민 상간녀’의 닉네임을 획득한 배우 한소희다. 욕하지 않을 수 없는 불륜녀 여다경을 연기한 한소희는 엄청난 사랑과 관심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여다경을 버리는 게 숙제”라며 다음을 기약했다. 
 

▲ 배우 한소희 ⓒJTBC

배우 한소희가 <부부의 세계>서 맡은 ‘여다경’의 4년은 파란만장 그 자체다. 남부러울 것 없는 부모의 재력 안에서 호위호식하며 자랐을 뿐 아니라, 미모와 교양도 갖췄다. 그야말로 ‘엄친딸’에 해당하는 그가 유부남 ‘이태오’(박해준 분)를 사랑한다.

악역?
호감도↑

남의 남자를 뺏는 것도 모자라, 내연남 아내 ‘지선우’(김희해 분)의 직장에 찾아가 신경전을 벌이는가 하면, 자신의 치부를 들춰냈다고 뒤통수를 후린다. 온갖 불명예를 뒤집어쓰면서까지 내연남과 결혼하고, 살던 동네를 떠난다. 그러더니 무슨 연유인지 모르게 다시 돌아와 지선우를 이기려고 덤벼든다.

온갖 못된 짓에 술수를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사랑을 지키려고 아등바등하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이태오에게 있어 자신이 지선우의 대용품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 뒤 이혼한다. 그리고 이태오 사이서 낳은 딸 ‘제니’는 이제 혼자 키워야 하는 신세가 된다. 

20대 여성으로서 쉽게 겪을 수 없는 파도같은 인생을 배우 한소희가 감당했다. 이 작품전까지만 해도 한소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는 사람만 아는 수준이었다. 이제는 ‘국민  상간녀’라 불릴 정도로 그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악역을 맡았음에도 좋은 연기력 덕에 호감도 많이 얻었다.


하루아침 스타의 반열에 오른 그, 한소희를 만났다. 

“안녕하십니까?”라며 크게 인사하는 한소희는 여다경과는 달리 소탈했다. 울산 출신이라 그런지, 집중하는 순간 사투리 억양도 곧잘 튀어나오는 그였다. 여다경과는 다른 수더분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럼에도 수개월간 여다경을 표현한 한소희는 아직 캐릭터를 털어내지 못했다고 했다.

“<부부의 세계>는 내 이름을 올린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 아직 떠나보내기가 싫다. 마음이 이상하기도 하고. ‘처음 촬영으로 돌아갈래?’라고 물으면 돌아갈 것 같다. 애착이 남아 있다. 이제 여다경이 자연스러워졌는데, 끝난다고 하니 아쉽고 슬프다.”

<부부의 세계>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 중 하나가 “여다경은 왜 이태오를 좋아하는가?”였다. 유부남을 거둬줄 정도로 여다경은 이렇다 할 부족함이 없었다. 환경은 물론 부모의 사랑과 관심도 독차지한 그다. 딱히 아쉬울 게 없는 그가 지질하고 못난, 심지어 성공한 적조차 없는 이태오를 사랑하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한소희도 마찬가지였다.

“애착 큰 명작 드라마…아쉬움만 남아”
“김희애는 지선우 그 자체, 무력감 느껴”

“사실 나도 이해가 안 됐다. 그래도 내가 생각한 게 있다. 다경이 금수저 집안에 태어났음에도, 하고 싶었던 게 없었을 것이다. 인생에 열정이 있지는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이 예술에 대한 열정만 갖고 맨땅에 헤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을 것 같다. 다경의 눈에는 태오가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그런 열정이 있다는 건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태오가 아내한테 빌붙어먹고 사는 인생은 맞지만, 다경에게는 그런 모습을 절대 보여주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유부남 이태오를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한 이태오가 유부남이었다는 식으로 생각을 전환했다. 그리고 박해준 선배님이 찐으로 잘 생기셨다. 사랑, 가능하다.”


<부부의 세계>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여다경과 이태오의 불륜 사실을 지선우가 알고 폭로하는 과정이고, 후반부는 결혼한 이태오와 여다경이 다시 고산으로 돌아올 때부터 시작된다. 태오·선우의 아들 ‘준영’(전진서 분)과 고산 인맥 간의 복잡한 관계, 여다경이 지선우의 대용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 등 후반부로 갈수록 관계가 혼란 양상을 띤다. 또 하나의 질문, 여다경은 왜 지선우를 이기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 열연 중인 배우 한소희 ⓒJTBC

“선우와 다경 사이엔 묘한 동질감이 있다. 아마 2년 후에 태오에게는 선우의 존재가 남아 있었겠지만, 다경은 선우를 배제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선우가 ‘이태오 믿지 마’라고 하는 부분부터 충격을 받는다. 사실 고산에 와서 선우를 의식한 순간부터 다경이 진 것이다. 다경은 태오와의 관계가 단단했다고 생각했는데, 선우가 건드릴 때마다 흔들린다. 내 가정을 지키고 싶은 다경이지만, 현실서 보이는 강력한 불안 때문에 선우를 이기려 한 게 아닐까 싶다.” 

여다경과 지선우가 맞부딪히는 장면 중에는 명장면이 수두룩하다. 초반부 서스펜스 가득한 진료실 시퀀스, 6화 지선우가 모든 진실을 폭로하는 장면, 후반부 지선우로부터 자신이 지선우의 대용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부분 등이 <부부의 세계> 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한소희에게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6화였다. 

선우와 다경 
묘한 동질감

“아침부터 토할 것 같았다. 원작에선 머리통을 깨버리더라. 어설프게 때리기도, 세게 때리기도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김희애 선배님을 그렇게 때리나. 상황 자체가 너무 불편했다. 그날 리허설하는데, 연출부 스태프가 김희애 선생님 대역을 했다. 한 번 세게 쳐보라고 해서 쳤는데, 손이 미끄러져서 너무 아프게 때렸다. 그때부터 머리가 하얘졌다. 혹시 실수할까봐 너무 무서웠다.”

시종일관 지선우의 안타고니스트였던 여다경을 연기한 한소희는 김희애를 극찬했다. 언제나 지선우의 모습으로 촬영장에 도착하는 점이 늘 경이로웠다고 했다. 덕분에 촬영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있었다. 한소희가 지선우에게 감정이입을 해버린 것이다. 

“김희애 선배님은 늘 지선우로 오셨다. 현장서도 저와 해준 선배님과 거리를 뒀다. 몰입에 방해된다는 이유였다. 나 같은 신인은 쉽게 집중하기 힘든데, 덕분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런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선배의 모습에 감동했다. 그러다가 중반부에 지선우에게 감정이 이입됐다. 선배님의 눈을 봤는데 너무 불쌍하더라. 맞상대를 해야 하는데, 혼자 울컥해버렸다. 혼란스러웠다. 그런 상황서 여다경을 연기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사투였다고 할만한 <부부의 세계>를 통해 결국 한소희에게 돌아간 건 찬사였다. 역할이 가진 그릇된 행동 때문에 욕을 먹으면서도, 한편으로 ‘연기를 잘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초반부에 언뜻 보였던 부자연스러움은 완전히 사라지고, 후반부로 갈수록 여다경의 얼굴만 남았다.

“배움이 크니 박탈감도 컸던 것 같다. 선배들의 연기를 보면서 따라갈 수 없는 격차를 느꼈다. 예를 들어, 나는 슬픔을 두 갈래로만 표현 가능한데, 선배님들은 여러 갈래로 표현을 하더라. 무기력했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칭찬을 한다면 ‘여다경을 놓지 않은 것’은 기특하다. 왜 태오를 사랑했으며, 왜 지선우에게 열등감을 느끼는가 등 이해 못할 상황을 던져두지 않았다. 그래도 그건 잘 한 것 같다.”

후반부까지 욕만 먹던 다경에게 반전이 일어난다. 다경이 사용했던 화장품과 의상, 속옷, 심지어 웨딩드레스까지, 모든 것이 선우가 사용했던 것과 일치했다. 그저 다경은 선우의 대용품이나 마찬가지였다. 몰랐으면 괜찮았을 텐데, 선우가 이 사실을 정확히 알려준다.
 

▲ ▲배우 한소희 ⓒ아토엔터테인먼트

다경이 받았을 충격은 곧 벌이었다. 시청자들은 벌을 받은 다경 역시 피해자라고 인지한다. 다경을 향한 좋지 않았던 인식은 이 장면 이후 가라앉는다.

“촬영하면서도 의상이나 이런 것들을 선우의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웨딩드레스도 마찬가지였다. 막상 보니까 너무 비슷했고, 그 충격에 집중하기 편했던 것 같다. 선우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태오를 붙잡으려 하지만, 다경은 감정적인 것 같다. 바로 이혼하지 않나. 그것만으로 다경이 벌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다경이 더 망가져야 한다고 하시더라.”


“당분간 남자에
감정 안 들 것”

모든 파도가 끝난 뒤 다경은 도서관서 공부를 한다. 그런 다경에게 한 남자가 커피를 주며 다가온다. 그것을 명확히 무시한 뒤 애매한 웃음으로 사라지는 게 이 작품서 비치는 다경의 마지막 모습이다. 

“사실 다경은 이제부터가 지옥이다. 혼자 아이를 스스로 키우면서 살아야 한다. 아마 남자는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못 믿지 않겠나. 지겨울 것 같기도 하고. 당분간 남자한테는 아무 감정도 안 들 것 같다. 아마 백전노장이 이등병을 보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그 남자와 그저 귀여웠을 것 같다. 잘 되긴 힘들 것 같다.”

<부부의 세계>는 비지상파 최고 시청률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불륜극이 이 정도로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30%에 육박하는 최고시청률은 평일 밤 미니시리즈에선 쉽지 않은 대기록이다. 한소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원작을 보면서 어느 정도는 인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 연령대서만 인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20대까지 이런 사랑을 받을 줄은 몰랐다. 촬영장서 이 드라마가 더 역대급으로 가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톱니바퀴가 하나씩 맞아떨어지는 기분을 받았다. 모두가 드라마에 빠져 있다는 느낌, 일하러 오는 게 아니라 모두가 작품에 애정을 갖고, 몰입하고 있었다.”

“배우뿐 아니라 스태프 모두가 집중했다. 보통 감정신이 끝나면 ‘컷’하고 다들 제 할 일을 하는데, 그 신의 분량을 다 찍어도 카메라 감독님도 계속 카메라를 주시하시고, 배우들도 감정을 유지한다. 이런 현장은 처음이었다.”


돈 때문에 혹은, 유명해지고자 배우를 시작한 게 아니다. 미술 분야서 업무하다 우연히 경험한 광고촬영을 통해 꿈을 발견했다. 그리고 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 <돈꽃> <백일의 낭군님> 등 다양한 작품서 조금씩 얼굴을 비췄다. 그러다 <부부의 세계>로 의도와 상관없이 핫한 셀럽이 됐다.

“이 일을 시작으로 꿈이라는 게 생겼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 알게 됐다. 이제는 이 일을 정말 잘하고 싶다. 성공은 아마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을 통해 기초공사를 더 튼튼히 해야겠다고 느꼈다. 흉내를 내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 인물에 대해 본질적으로 탐구하는 기초적인 부분을 더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촬영 후 비혼주의자 됐다”
“큰 숙제는 여다경 버리기”

극 초반, 한소희에게 불현듯 논란이 찾아온다. 과거 흡연과 타투를 한 모습이 공개된 것. 일각에선 이를 두고 엄청난 비난이 일었다. 반대로 ‘이게 무엇이 문제’냐며 옹호하는 세력도 있었다. 작품에 몰입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뜻밖의 논란은 타격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당시에 ‘아 이런 모습도 회자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멘탈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직업을 쟁취히기 위해 좀 달라져야 할 필요는 있겠다고 느꼈다. 누군가가 잠을 포기하는 것처럼...”

예상하기 힘든 상황을 거친 여다경과 한소희는 얼마나 닮아있을까. 여다경에게 한소희는 얼마나 녹아있는지 물어봤다. 

“감정적인 부분은 나와 다경이 비슷한 것 같다. 다경 입장에선 사랑 하나만 보고 가정을 꾸렸다. 사랑하면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점은 비슷하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오히려 비혼주의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늘어났다.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말도 나왔다. 이태오와 손재혁 같은 남자를 만나느니 혼자 사는 게 낫겠다는 결심을 한 여자들이 적지 않았다. 한소희도 비혼주의자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누군가는 막장이라고 표현하더라. 사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고, 예림(박선영 분)과 재혁(김영민 분)처럼 불신과 의심 때문에 사랑이 깨지기도 한다. 비혼주의자인 설명숙(채국희 분) 역시 부조리하다. 나는 결혼을 못할 것 같다.”

“사랑만 보고 결혼한다고 하는데, 사랑만으로 이뤄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사랑한다고 신뢰가 쌓이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랑이 영원할 수도 없고. 만약 선우 같은 일이 내게 벌어지면 너무 비참할 것 같다. 무책임한 태오를 보면서, 이건 뭔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제니 같은 아이를 둔 친구들이 있는데,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한다. 나도 최대한 미룰 계획이다.”

혼자가
낫겠다

<부부의 세계>를 막 끝낸 그는 허탈감이 크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법. 그의 1차 숙제는 ‘여다경 버리기’다. “제 일상을 빨리 되찾아야 할 것 같다. 여다경 버리기가 첫 번째 숙제다. 내 몸에 있는 여다경을 빨리 빼야 될 것 같다. 대중의 눈에서 어느정도는 잊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다경을 버리고 새로운 얼굴로 대중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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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