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만드는 ‘대중의 조롱’ 

대중문화 ‘밈’의 시대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과거에는 TV가 이슈를 선도했다. 방송에 등장한 것이 대중에게 스며드는 형태였다. 각 분야의 트렌드는 주로 방송이 선도했다. 최근 그 패러다임이 바뀌는 모양새다. 대중이 문화를 만들면 방송이나 콘텐츠 산업이 이를 따라가는 방식이다. 특히 밈(Meme) 현상서 이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누군가의 특별한 행동을 따라 하거나 조롱하는 방식의 문화 유전 형태를 일컫는 밈은 국내 대중문화서 빼놓을 수 없는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 ▲ⓒ뉴시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 방송인 홍진호의 게시 글에는 특별한 현상이 있다. 같은 문장의 댓글이 꼭 두 개씩 달린다는 것이다. 우승은 몇 차례 되지 않지만, 준우승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거둔 그는 숫자 2와 인연이 깊다. 이를 이해하고 있는 팬들은 홍진호의 글에 자연스럽게 댓글을 두 개씩 단다. 암묵적인 불문율이다. 심지어 숱한 준우승으로 인해 슬럼프에 빠졌다는 글에도 댓글은 두 개씩 달린다. 

특별한 현상

2009년 개봉 영화 <그림자 살인>서 황정민이 연기한 캐릭터 이름은 홍진호. 이런 연유로  많은 게임 팬들이 이 영화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별점을 1∼2점을 줬던 경우도 있었다. 당시 이 영화의 관계자들은 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 ‘별점 테러’로 혼동하기도 했었다. 이 역시도 밈(Meme) 현상 중 하나로 해석된다. 

밈 현상은 이른바 ‘탑골 문화’가 발달하면서 두드러졌다. SBS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과거 1999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SBS <인기가요>를 내보내면서 시작됐다. 10대들은 당시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대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중가요를 보면서 신조어를 쏟아냈다.

그 과정서 ‘탑골 GD’로 거론된 양준일은 JTBC <슈가맨3>를 통해 50대에 전성기를 맞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영화나 드라마서도 이러한 현상은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민예극단 출신 배우 김영철이 SBS <야인시대>에서 선보인 ‘4딸라’ 짤방(사진)은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재생산됐다. <야인시대>를 알지 못하는 초등학생들은 김영철이라는 이름 대신 ‘4딸라 아저씨’로 그를 반겼고, 급기야 김영철은 버거킹 CF를 포함해 10여개의 브랜드 광고 모델이 됐다. 

영화 <타짜>에서 곽철용을 연기한 김응수도 밈 현상의 대표적인 예다. “묻고 더블로 가”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등의 명대사를 남긴 곽철용은 어마어마한 패러디를 생산했다. 버전도 상당히 많다. 최근에는 치킨과 피자 버전도 나왔다. 김응수는 본명 대신 ‘아이언 드래곤’으로 불렸으며, 한 네티즌은 곽철용의 얼굴이 담아 영화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작품으로만 주로 활동하던 김응수는 덕분에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해 엄청난 인터뷰와 광고 요청을 받았다. 

최근에는 과거 SBS <순풍산부인과> 내용 중 43일간의 여름방학 일기를 미룬 미달(김성은 분)의 숙제를 대신 해치우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박미선이 남긴 “스토리는 내가 짤게, 글씨는 누가 쓸래?”라는 대사가 “OO은 내가 할게, XX는 누가 할래”로 변형돼 인기를 끌고 있다.

SNS에는 ‘월급은 내가 받을게. 회사는 누가 갈래?’ ‘술은 내가 마실게. 술값은 누가 낼래?’ 등으로 패러디되며 큰 웃음을 안기고 있다. 

밈 현상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도 확장됐다. 일본 환경상(환경부 장관)인 고이즈미 신지로가 그 인물이다.

“기후변화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한다”는 말을 남겨 ‘펀쿨섹좌’로도 불리는 그는 매우 당연한 말을 하는 화법으로 국내서 조롱의 대상이 됐다.

국내 넘어 해외로, 밈이 만든 스타들 
“비가 뜬 이유? 수용할 줄 아는 태도”


“매일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는 건 매일 먹는다는 것은 아니다”와 같은 발언을 일삼는다. 동어반복, 논점이탈, 순환 논법으로 일본뿐 아니라 국내서도 멍청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밈은 본래 학술적 용어다. 1976년에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서 처음 등장했다. 문화적 양식, 관습, 건축, 종교 등 인류가 축적해온 수많은 문화유산은 대부분 누군가 한가지를 모방하고 복제하며 전달됐는데, 이때 그 모방이나 복제 거리가 되는 문화 단위들이 바로 밈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화 유전 형태에 조롱의 성격이 강해졌다. 특히 탈권위를 넘어 ‘탈가식’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가식적이거나 허세가 섞인 행동은 곧바로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 조롱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은 비다. 
 

▲ ▲▲ 배우 김응수 ⓒ온라인 커뮤니티

한때는 노력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그는 최근 온라인서 가장 핫한 스타다. 과거 한류스타로 불릴 때만 하더라도 이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드라마와 영화, 심지어 음반마저 거듭 실패한 그에게 대중의 관심은 특별한 상황이 됐다. 온라인서 소환되는 비는 조롱 그 자체였다. 

약 150억원이 투입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눈뜨고는 봐줄 수 없는 정도의 완성도로 희화화됐고, 이 영화가 기록한 17만 관객은 1UBD(엄복동의 약어)로 표현되며 하나의 단위가 됐다. 이 역시 놀림 요소가 강하다. 아울러 영화를 홍보하는 과정서 비가 ‘술 한 잔 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운을 뗀 SNS 글은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후 MBC 드라마 <웰컴투라이프2>도 실패하면서 비의 이미지는 급락했다. 

그런 가운데 허세 가득한 가사와 다소 예스러운 퍼포먼스로 채워진 노래 ‘깡’이 조명됐다. 유튜브 채널 ‘호박전시현’에 처음 올라온 비의 ‘깡’ 뮤직비디오 패러디가 급작스럽게 대중의 관심을 받았고, 이제는 ‘1일1깡’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너도 나도 ‘깡’ 뮤직비디오를 올리거나 보고 있다. ‘호박전시현’에 올라온 ‘깡’ 영상은 250만 조회수를 넘기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비에 대한 관심을 포착한 MBC 김태호 PD는 <놀면 뭐하니?>로 불러 ‘깡’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매우 쿨한 태도로 밈 현상을 수용한 비의 모습에 대중은 더욱 뜨겁게 열광했다.

비의 10년 팬이 올린 상소 ‘시무 20조’와 ‘깡’ 등 비와 관련한 논란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놀면 뭐하니?>는 인터넷을 잠식했다. 조롱의 대상이기만 했던 비는 놀라운 자기관리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10대 팬들에게 선한 자극을 남겼다. 

이렇듯 이슈의 주도권은 대중에게 넘어왔다. 온라인서 화제가 되면 방송이 뒤따라가는 형태다. 대중에게서 회자된 스타들이 예능 프로그램이나 광고에 등장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된다. 

조롱의 성격이 강해지긴 했지만, 꼭 나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조롱에는 일종의 호감도 내포돼있기 때문이다.

이슈의 주도권


누군가를 놀린다는 건 꼭 밉지만은 않은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대중이 N번방 가해자들을 따라하거나 조롱하지는 않는 이유는 이들을 조금도 좋게 볼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서 대중의 조롱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면, 비의 경우처럼 엄청난 사랑을 받을 기회로 이어진다. ‘인싸의 교과서’로 불리는 밈 현상의 수혜자는 누구에게로 넘어갈까. 대중 문화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받아들일 줄 아는 태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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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