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4주년 특집②> 특별대담 -보수 향한 ‘친이계 좌장’ 이재오의 충고

“박근혜가 지폈고 황교안이 부채질”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21대 총선도 이변은 없었다. 미래통합당은 지난 2016년 이후 전국 단위 선거서 연속으로 4번 패배하면서 기나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공천 파동, 헌장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보수 분열…. 이제 이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일요시사>는 24주년 창간을 맞아 ‘친이(친 이명박)계’ 좌장이자 정치 원로인 이재오 전 의원을 만나 보수가 살아남을 길을 물었다.
 

▲ 창간 24주년 특별대담 갖는 이재오 전 미래통합당 의원 ⓒ고성준 기자

“보수를 궤멸시킨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고 당을 궤멸시킨 건 황교안 전 대표다. 머리 깎고 단식하고 그게 무슨 당 대표가 할 행동인가?”

이재오 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의 행보에 연신 답답함을 표했다. 그는 보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 해체 후 새롭게 창당하는 심정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MB(이명박)정권서 못다한 정책에 대한 아쉬움과,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킨 현정권에 대한 참담한 심정도 함께 밝혔다.

그가 진단한 보수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다음은 이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21대 총선서 통합당 참패의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미래통합당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때문에 무너진 게 아닙니다. 선거 전부터 당이 야당으로서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대안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무조건 광화문서 데모하고 정부를 종북·친북으로 몰아갔어요. 야당은 중도 실용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극우 쪽으로 점점 향했죠. 선거에 대한 전략과 전술도 없었습니다. 지난해 조국 사태로 분위기가 유리해지니 총선서 무조건 이긴다고 자만했습니다. 총선 전 코로나19가 터지니 여기에 대응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겁니다.


-선거 전 후보들의 막말 논란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제대로 정돈된 당이라면 이런 소리가 안 나왔을 겁니다. 선거 막판에 일부 후보자들의 적절하지 못한 발언이 나온 이유는 지도부가 당을 장악할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앙선대위가 제대로 된 선거 전략을 구상하지 못했고요. 선대위는 선거 위기 상황서 흐름을 바꿔줘야 하는데, 막판에 여권에 유리한 분위기가 형성된 상황에도 150석이 가능하다는 등 말이 안 되는 소리만 했어요.

-180석의 슈퍼여당이 탄생했는데 한국 정치에 어떤 변화가 있을 거라 보십니까.

▲의석 수를 많이 얻은 건 득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여당 쪽에서는 이번 총선 승리가 국민들이 문재인정부가 잘한 걸로 평가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믿으면 문정부가 지금까지 저질러놓은 여러 정책들을 밀고 나갈 과오를 범할 수가 있어요. 남은 2년 동안 잘하라는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 해체하고 새롭게 창당해야”
중도실용보수로 환골탈태 필수

의석 수 차이는 많이 나지만, 득표수로는 1434만여표와 1191만여표로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500만표 차이로 이겼는데, 집권하고 나서 얼마나 많은 반대에 부딪혔습니까. 240만표 차이는 사실 민심서 큰 차이가 난다고 볼 순 없습니다.

-다음 대선까지 남은 2년, 문정부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국가 경제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탈원전, 주52시간 등은 문정부 임기 2년 안에 수정돼야 합니다. 이는 경제 생태계를 파괴한 것으로 한국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문정부가 3년 동안 잘못해온 것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고칠 생각을 안 하면 대선 정국서 아주 어려울 것입니다. 선거는 원래 총선서 크게 이기면 다음 대선에서는 패하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또 여당이 자만하면 국민들이 낭패 보기 십상입니다. 이대로 계속 밀고 나가면 국민들은 물론이고 특히 없는 사람들이 어려워질 겁니다.

-이번 선거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코로나19죠. 처음에는 정부가 허둥지둥하면서 대책을 제대로 못했어요. 중국인 출입도 막지 않고, 중국에 마스크도 지원해주고. 처음에는 혼란스럽게 사태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확진자가 늘어나고 나서 의료진들이 발 벗고 나섰고 중소기업들이 진단키트를 빠르게 생산했어요. 민간서 코로나19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니깐 정부가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거죠. 코로나19 초기에는 조국 사태와 경제 실정에 이어 정부의 대응 때문에 통합당이 무조건 이길 거라 생각했는데, 코로나19 중반기에 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죠.

-통합당의 코로나19 대응, 어떻게 보셨습니까.

▲선거 막판에 정부는 현금살포 계획을 밝혔어요. 사실상 정부가 표를 산겁니다. 이는 결국 국가 빚이잖아요. 야당은 이에 대해 비판해야 하는데 한술 더 떴습니다. 정부는 한 가구에 100만원 준다고 하는데 황교안 대표는 전국민 1인당 50만원 공약을 내세웠어요.

정부가 현금 푸는 걸 막아야 하는데 말려들어간 거죠. 코로나19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 집중적인 지원을 해야지, 왜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냐며 비판하고 반대했어야 합니다. 야당이 대책을 못 세우고 큰 실책을 한 겁니다.
 

▲ 이재오 전 미래통합당 의원 ⓒ고성준 기자

-통합당 주호영 신임 원내대표의 과제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현재 당 대표가 없기 때문에 주 원내대표는 당 대표 권한대행을 하게 됩니다. 당의 조직·재정·운영·전반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일을 맡게 되는 거죠. 첫째로는 선거 패배에 대한 원인 분석을 제대로 해야 될 겁니다. 야당은 중도 실용으로 가야 하는데 극우로 나아갔기 때문에 이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해야 됩니다. 둘째로는 전당대회를 통해 당의 새로운 지도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존의 당을 해체하고 새롭게 창당하는 심정으로 당이 환골탈태하도록 해야 합니다.

-김종인 비대위 출범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제약이 많아 어려울 겁니다. 새로 당선된 초선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힘겹게 당선돼서 왔는데 김 전 위원장이 전지전능한 사람도 아닌데 끌려가려고 하겠습니까. 처음에는 심재철 전 원내대표가 끌고 가니깐 어쩔 수 없었죠.

하지만 곧 개원인데 본인들 의견을 내고 싶어 하지, 남에게 끌려가지 않을 겁니다. 또 당 내 중진들은 김종인 비대위 체제 좋아하지 않습니다. 민주당에 있다가 여기에 왔으니 보수의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다고 볼 겁니다.

-당이 정상화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빠르게 전당대회를 열고 지도부를 꾸려 주 원내대표가 이끌어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적어도 정기국회 전인 8월까지는 총선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지도부를 구축해 체질 개선에 들어가야 합니다.

-보수 진영 내 거물급 인사들이 이번 선거서 대거 낙선하면서 2년 뒤 대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어떤 인물을 대선 정국에 앞세워야 한다고 보십니까.

▲탁월한 지도력을 가진 분을 모셔야 합니다. 결단할 때 결단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우유부단해선 안 됩니다. 2년 후에는 국민들의 갈등과 분열이 더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포용력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황교안 대표는 실격이고요. 현재로서는 홍준표 당선인이 지지율이 얼마 안 돼도 유력한 상황입니다. 홍 대표는 판단력과 대응력이 좋습니다. 2년 동안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어 극복한다면 야권 후보로서 근접합니다.

-현재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민통합연대서 중도실용정당을 추구하고 있지만, 극우세력으로 꼽히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이하 범투본)와 여러 활동을 함께 하셨습니다.

▲문정부 규탄, 조국 퇴진과 같은 정치적 이슈로 투쟁을 같이했을 뿐입니다. 투쟁을 함께한 거지, 노선을 함께한 게 아닙니다. 중도실용을 외친다고 하더라도 문정부가 잘못하면 반대 투쟁해야 합니다. 중도실용이란 말은 좌편향 우편향을 극복하고 바르게 나아가자는 겁니다. 앞으로도 그런 투쟁의 요소가 나오면 그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문정부를 공산주의 정권으로 몰거나 문 대통령을 간첩으로 모는 데에는 우리가 같이할 수는 없습니다.


-21대 국회서 친이계 인물들이 대거 당선됐습니다. 친이계 좌장으로서 이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이 있으시다면.

▲사실상 계파가 다 사라졌지만… 지금 친이는 ‘친 이재오’라는 말도 나오는데(웃음). 이명박정부 때 녹을 먹었던 사람들과 당시 정치권에 입문했던 사람들이 21대 총선서 24~25명 정도 당선됐습니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한 정권을 담당했던 그때를 교훈 삼아 잘못했던 것은 반면교사 삼고, 잘했던 것은 흔들리지 말고 이어가길 바랍니다.

-MB정권이 잘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잘한 거야 많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도 두 차례나 극복했고요. 4대강 사업으로 홍수, 가뭄 다 막았습니다. 2010년 G20 회담, 2012년 핵안보 정상회의, 평창올림픽 유치 등으로 국격이 얼마나 높았나요. 임기 중 정치는 이명박 대통령이 제일 잘했다고 봅니다.

“MB 구속 참담…현정부 극악무도”
2년 남은 대선, 홍 근접 황 실격

구속됐지만 재임 중에 권력을 이용한 비리는 하나도 드러난 게 없었습니다. 이명박정부가 끝나고 난 후에도 당시 장관들이나 실세들 중 감옥 간 사람들 없었습니다. 정부 끝나면 정부 실세들 줄줄이 감옥 가지 않습니까. 우선 나부터도 정권 2인자 소리 듣는 사람인데 안 가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MB정권서 아쉬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행정부의 개편을 못했습니다. 행정부는 중앙-광역-기초 3단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기초행정 자치단체를 광역에 흡수시켜 정부의 정치·통치·행정 비용을 줄여 국민들을 위해 쓰고자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또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을 못했죠. 지금 제도로는 모든 사안이 문재인 대통령을 통합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외교·국방·통일은 대통령이 갖고 나머지는 총리가 갖는 구조인데, 그걸 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보수정권의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되면서 보수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보수가 궤멸됐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는데 이는 대통령이 탄핵된 게 아니라 보수가 탄핵된 겁니다. 황교안 전 대표가 대통령 권한대행일 때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못 차리고 낡은 보수를 이어받다가 이번 총선서 진 겁니다. 그러니깐 보수를 궤멸시킨 건 박 전 대통령이고 당을 궤멸시킨 건 황 전 대표입니다. 답답합니다. 머리 깎고 단식하고 그게 무슨 당대표가 할 행동입니까. 어떻게 국면을 바꿀 수 있을지 대안을 내야지. 대표라는 사람이 단식하고 삭발하고…. 그것도 용기긴 하지만(웃음).

-MB 최측근이셨는데, 구속을 지켜보는 심정은 어떠셨는지요.

▲탄생부터 몰락까지 지켜보면서 정말 참담했지요. 내가 이명박정부 실세 2인자로 불렸어요. 보수정권이 진보정권으로 들어섰으니 지난 정권의 비리를 찾고 조사를 할 거라곤 생각했지만 구속될 거라곤 진짜 생각 못했어요. 처음엔 국정원 댓글 갖고 넣으려 했다가 몇 달 동안 아무 것도 안 나왔잖아요. 그 다음에 개인비리 갖고도 안 나왔고요. 결국은 30년 전 회사 소유권 갖고 잡아 넣었어요. 본인이 내 회사 아니라고 하는데…. 막상 구속을 시키니깐 너무 참담하고 황당했죠. 이 정권이 참 극악무도 하구나. 전직 대통령 둘을 잡아가나 싶어서….

-앞으로 보수가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금까지의 구태스러운 보수를 완전히 벗어나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새로운 보수는 중도실용적인 보수여야 하고, 이념에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옳고 그름을 얘기하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겁니다. 쓸모 있는 지혜가 진리고, 뭐든 검증할 수 있을 때만 참이 되는 겁니다. 보수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헌법적 가치인 자유의 기조 위에서 정의와 공정을 외면하지 말길 바랍니다.

-<일요시사>가 창간 24주년을 맞았습니다.

▲주간지가 어려운 환경인데 독자들을 위해 좋은 기사를 제공해주고 계십니다. 좋은 기사가 제공되지 않으면 언론사의 수명은 길지 않습니다. 24주년을 맞은 건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비판과 견제라는 언론의 사명대로, 계속해 좋은 기사를 써주길 바랍니다.


<sangmi@ilyosisa.co.kr>

 

[이재오는?]

▲1945년 강원 동해 출생
▲중앙대 경제학과, 고려대 교육대학원 석사
▲15·16·17·18·19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명박정부 특임장관
▲현 국민통합연대 중앙집행위원장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