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LG화학 인도 참사 전말

어린이까지…흙바닥에 픽픽 쓰러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LG화학 인도공장서 발생한 유독가스 유출 사고로 100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LG화학은 노국래 부사장을 단장으로 지원단을 파견하는 등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사고 당시 담당자 부재 사실과 환경 규정 위반 의혹으로 비난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이번 사고를 세계 역사상 가장 참혹한 환경 및 산업재해사고로 기록된 보팔 참사와 비교하기도 했다.
 

▲ LG화학 사고 현장

LG화학 인도공장서 지난 7일, 유독가스 유출 사고로 적어도 11명이 숨지고 1000여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CNN과 AP 통신, NDTV, 인디아투데이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30분께 남부 안드라프라데시주 비샤카파트남 LG폴리머스인디아 공장서 유독가스인 스티렌(Styrene)이 누출되면서 지금까지 어린이 3명을 포함한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소 11명 사망
1000여명 부상

사망자 대부분은 사고 당시 현장 주변서 운전 중이었거나 집 테라스에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일부는 잠을 자다가 그대로 숨을 거뒀다. 또 1000여명에 이르는 인원이 유독가스에 노출돼 부상을 당했고, 이중 20∼25명은 매우 위중한 상태라고 매체는 전했다.

안드라프라데시주 재난긴급대응팀 칸나 바부 팀장은 최소한 285명이 가스중독으로 비샤카파트남 전역의 병원으로 실려 갔다고 밝혔다. 공장 인근 마을들에 거주하는 1만명의 주민 가운데 약 5000명이 대피했다고 전했다. 

비샤카파트남 지구 고위관리 테지 바라트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사람이 곳곳에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으며 1000명 정도를 즉각 분산시키고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고팔라파트남 경찰은 수백명을 구급차와 순찰차, 관용버스에 태워 현장을 벗어나게 도왔고 상당수 주민은 제 발로 탈출했다고 현지 경찰 라마나야가 말했다.

800명에 달하는 부상자는 눈이 타는 듯한 고통을 호소했으며 호흡 곤란, 발진, 구토, 의식불명 등의 증상을 보였다. 누출 가스 영향은 반경 1.5㎞ 이내였지만, 냄새 등은 3㎞ 5개 마을까지 퍼졌다. 병원으로 이송됐던 피해자 일부는 퇴원했다.

현지 당국 관계자는 “LG폴리머스 공장서 합성 화학물질인 스티렌이 유출됐다”며 “화재가 발생한 뒤 가스가 누출됐고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LG폴리머스 공장 내 화학물질을 담은 탱크서 가스가 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관계자는 “탱크 내부에서 열이 발생하고 기화하면서 가스가 샜다”고 밝혔다. 인디아투데이는 “2000t 용량의 탱크서 가스가 누출됐고, 3000t짜리 탱크는 손상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유독가스 유출 1000여명 사상자 발생
책임자 부재 의혹…근무자 절반 계약직

재난긴급대응팀은 가스누출을 최소한도로 막으면서 사고를 수습했으며 “전반적으로 상황이 진압됐고 이제는 복구와 부상자를 치료하는 수순”이라고 발표했다. 인도는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3월25일부터 전국 봉쇄령을 내려 다행히 공장 내부에서 근무 중인 인원은 거의 없었다.


지난 4일부터 봉쇄 조치를 완화함에 따라 공장의 조업재개를 위한 준비 작업 중에 사고가 발생했다. 다만 인근 상점과 제조업 등 일부 경제활동은 재개된 상태다.

한국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LG화학은 “현지 주민의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주민과 임직원의 보호를 위해 최대한 필요한 조치를 관계기관과 협조해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 당국과 LG화학은 정확한 사고 경위와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이다. 즉각적으로 가스누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당국은 공장이 정상 가동을 위해 정기보수와 점검 작업 동안 가스가 새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직원들은 저장탱크서 화학물질이 유독가스로 기화해 누출되는 것을 발견하고 화학물질 중화에 나서는 한편 1시간 만에 공장을 폐쇄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서 유출 가스가 퍼져 나가면서 인명피해가 커졌다. 당국은 오전 3시30분께야 신고전화를 받았고 긴급대응팀이 출동 명령을 받은 것이 5시30분, 현장에 도착한 시간이 6시라고 밝혔다.

더욱이 유출 가스의 냄새가 독해 진입하는데 30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사이 유독가스는 공장 굴뚝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 바람을 타고 주위로 퍼졌다.

언론에 따르면 당시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호흡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해당 지역을 빠져나가려고 뛰다가 거리에 쓰러지는 모습이 TV 화면을 통해 중계됐다.

한 목격자는 안개와 같은 가스가 지역을 덮으면서 공황에 빠졌다고 진술했다. 목격자는 “사람들이 그들의 집에서 호흡 곤란을 겪었고 도망치려고 했다”며 “어둠이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했다.

지방 관리와 해군 소속 인력은 인근 마을 5곳의 주민을 대피시켰고,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대기 중인 구급차에 부상자를 옮기는 등 사고 수습을 도왔다.

한국,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지역 환경단체, 노동조합, 전문가집단 등이 인도서 유해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일으킨 LG화학에 희생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과 건강영향조사,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한국에서처럼”
환경단체 성명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네트워크(ANROEV)는 지난 13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성명을 통해 LG화학에 인도서 발생한 사고가 한국서 일어난 것으로 간주해 피해 대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시아 전역 20여개 국가의 100여개 피해자 단체, 노동조합, 환경 및 노동단체 그리고 의학 및 법학전문가들의 연합체인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네트워크(이하 피해자네트워크)는 직장과 지역사회 건강과 안전의 개선 및 피해자의 권리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피해자네트워크는 LG화학에 “이번 인도공장 가스 유출사건을 한국서 발생한 것으로 여기고 인도주민 사상자에 대한 대책과 인도공장 주변지역의 오염대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그것이 LG가 말해온 글로벌스탠다드”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것이 보팔 참사서 미국기업 유니언카바이드가 남긴 교훈이며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영국기업 레킷벤키저가 옥시사태로 남긴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 LG화학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과문

또 성명을 통해 “LG화학의 과실로 인한 가스누출 참사의 비극은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며 희생자들에 대한 즉시적이고, 온전한 보상과 생존자들에 대한 치료 및 재활을 요구했다. 

또 재난에 대한 조사와 노출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급성 및 만성 건강영향조사가 지체 없이 즉각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네트워크는 “현장 폐쇄 조치 후 작업장의 안전이 보장되도록 현장 실사가 지역사회 및 피해자대표의 참여로 실행돼야 한다. 다시는 유사한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안전시스템과 강력한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인도 현지의 피해주민들은 유해가스 유출과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이중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며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네트워크 멤버들은 사망한 희생자를 기억하고, 살아 있는 자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네트워크가 언급한 보팔 참사는 1984년 12월3일, 인도 중부지역인 보팔에 위치한 미국 국적의 유니언카바이드 사(현재는 다우케미칼)의 살충제 제조 공장서 유해화학물질인 아이소사이안화메틸이 누출돼 50만명이 노출되고 공식 집계상 2250명이 사망한 사고를 말한다. 

보팔 참사는 세계 역사상 가장 참혹한 환경 및 산업재해사고로 기록된 사고기도 하다. 2006년 제출된 인도 정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가스 유출로 인해 3만8478명의 경상자와 3900명의 중증장애자를 포함해 모두 55만8125명의 주민이 피해를 입었다. 

사고 후 미국과 인도서 다수의 민·형사 재판이 이어졌지만 사고를 일으킨 회사와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희생자들은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했고, 사고발생 지역은 오염된 채 방치돼있다.

인도 주정부는 가스 누출 사고와 관련해 LG화학 측에 사고 원인 물질로 알려진 스티렌을 한국으로 모두 옮기라고 지시했다.

제2의 보팔 참사
스티렌 한국행?

지난 12일 인도 업계와 현지 언론에 따르면 YS 자간모한 레디 안드라프라데시 주총리는 LG화학 계열 LG폴리머스 측에 1만3000t 분량의 스티렌 재고를 한국으로 반송하라고 명령했다.

안드라프라데시 주 당국은 이미 8000t은 한국행 선박에 선적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LG폴리머스 측은 “인도 정부의 지시에 따라 공장 등에 보관하고 있던 모든 스티렌을 한국으로 옮기는 중”이라고 전했다.

화학제품 원료로 쓰이는 고농도 스티렌에 노출되면 신경계가 자극받아 호흡곤란, 어지럼증, 구역질 등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후 현지 일부 주민은 공장 폐쇄 등을 요구했으며 당국도 환경 규정 위반 사실이 적발될 경우 공장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일간 가디언과 현지 일부 언론은 LG폴리머스가 공장의 설비 확장 과정에서 환경 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LG폴리머스가 2019년 5월 당국에 신청한 설비 확장 신청 진술서를 토대로 당시 LG폴리머스는 감독관청으로부터 환경 규정과 관련해 유효한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인도 환경부도 지난 8일, 잠정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LG폴리머스 측이 지난 3월 설비 확장 허가 신청을 했는데 승인이 떨어지기 전에 가동에 들어갔다”며 “이는 환경 규정위반”이라고 지적했다.
 

▲ LG화학 본사

이에 대해 LG폴리머스 측은 “2006년 이전부터 설치 허가(CFE), 운영 허가(CFO) 등 환경 관련 인허가를 받은 상태”라며 “가디언 등에서 제기한 환경 규정위반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인도 정부가 2006년 환경허가(EC)라는 새 규정을 도입했는데 LG폴리머스는 EC 취득 대상 회사가 아니었다”며 “그럼에도 인도 중앙정부의 확실한 판단을 받기 위해 자진 신고 신청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유출 사고 당시 관리자가 현장에 없었다는 현지 조사단의 발언도 나왔다. 또 현장 근무자 중 절반이 권한이 없는 계약직이라는 증언이 제기되는 등 관리 소홀을 입증하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사실상 사고를 사전에 통제하기 어려웠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제2 보팔 참사 되지 않도록…”
노국래 부사장 현지로 파견

시바 샹카르 레디 비사카파트남 감찰관은 13일(현지시각) 인도 매체 <인디안 익스프레스(IE)>와의 인터뷰서 “공장을 안전하게 재가동할 책임은 찬드라 모한 라오 LG폴리머스 매니저 겸 운영국장에게 있었으나 사고 발생한 6일 밤부터 7일 새벽까지 그는 공장에 없었다”고 폭로했다. 

이어 “사건 발생 당시 공장에는 24명이 근무 중이었지만 상황 통제가 가능한 상급 관리자는 한 명도 있지 않았다”며 “상급자의 감독 하에서 일해야 하는 엔지니어들이 몇 명 있었으며 근무 인원 중 절반은 계약직 노동자였다”고 덧붙였다.

라지브 쿠마르 미나 비사카푸트남 경찰서장은 “사고 공장 운영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수사할 것”이라고 IE에 밝혔다. 사고를 조사 중인 전문가 위원회 역시 당시 책임자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당국이 스티렌모노머 유출 관련 사고 초기 보고서(FIR)에서 발생 장소가 LG폴리머스 공장임을 적시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 노국래 LG화학 부사장

<IE>가 입수한 FIR에 따르면 사고 발생 5시간여 뒤인 오전 7시 현지 경찰 기록에는 ‘공장서 연기가 나고 나쁜 냄새도 풍기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경찰이 스티렌모노머 유출을 확인했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고, 회사 이름 역시 보고서에 없었다고 IE는 보도했다.

LG화학은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노국래 석유화학사업본부장(부사장)을 단장으로 8명으로 구성된 인도 현장 지원단을 파견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우선 국내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사고 수습을 계속해서 총괄 지휘한다.

현장 지원단은 공장 안전성 검증과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신속하고 책임 있는 피해복구를 지원할 계획이다. LG화학은 사고원인 조사와 현장의 재발방지 지원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해 현장 지원단은 생산·환경안전 등 기술전문가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발등에 불똥
지원단 파견

노국래 지원단장은 피해주민들을 직접 만나 지원 대책을 상세히 설명하고, 현지 정부 관계자들과의 면담도 진행할 예정이다. LG화학은 “현재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출·입국이 제한된 상황이지만 한국과 인도 정부기관, 대사관의 적극적인 협조로 신속한 입국이 이뤄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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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