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N번방 개설자 ‘갓갓’ 문형욱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5.18 14:20:05
  • 호수 1271호
  • 댓글 0개

악마의 탈 벗겨 보니 멀쩡한 대학생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또 악마의 탈을 쓴 인간이 대중에게 공개됐다. 온라인서 온갖 잔인한 범죄행위를 저지르던 그가 현실에선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의 동창들은 이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 텔래그램 N번방 개설자 ‘갓갓’ 문형욱

성 착취물 동영상으로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던 악마 조주빈에 이어 ‘갓갓’ 문형욱(24·대학생)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성 착취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인 ‘N번방’의 최초 개설자다. 문씨는 경찰 소환조사 초기부터 “나는 갓갓이 아니다”라며 부인하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9일 소환조사 당시에도 버티던 그는 ‘마라톤 조사’가 이어진 당일 오후 늦게 범행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세 청년
얼굴 공개

문씨의 신상이 공개됐다. 경북지방경찰청은 지난 13일,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전날 구속된 문형욱의 이름과 나이, 얼굴(사진)을 공개했다. 이날 오후 경찰관 3명과 변호사, 대학교수 등 내외부 위원 7명으로 구성된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문씨는 대화명 갓갓으로 활동하면서 텔레그램 내에 N번방을 만들고, 미성년자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유사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조주빈(24)이 운영한 ‘박사방’ 등 성 착취물 공유 대화방의 시초 격인 N번방을 처음 개설했다.

경찰은 문씨에게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상 음란물 제작 배포, 아동복지법 위반, 형법상 강요·협박죄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문씨는 경기도 시흥의 한 중학교를 졸업 후 같은 지역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건축학도를 꿈꾼 그는 현재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한경대학교(4년제) 이공계열 4학년(2014학번)에 재학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위원회는 “피의자의 신상공개로 인한 피의자의 인권 및 피의자의 가족, 주변인이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 등 공개 제한 사유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했다”며 “그러나 피의자는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노예로 지칭하며 성 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하는 등 범행 수법이 악질적·반복적이었다”고 신상공개의 이유를 밝혔다.

이어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10명에 이르는 등 범죄가 중대할 뿐 아니라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며 “국민의 알 권리, 동종범죄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차원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심의해 피의자의 성명, 나이, 얼굴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문씨는 “2018년 대구 여고생 성폭행 사건도 내가 지시했다”고 시인했다.

대구 여고생 성폭행 사건은 2018년 12월 대구 시내 한복판서 만난 여고생 A씨를 인근 대형마트 주차장과 모텔로 데리고 다니며 성폭행한 사건이다. 당시 가해자 이모씨는 “SNS(소셜미디어)서 만난 한 성명불상자로부터 ‘17세 여자를 만날 생각이 있냐? 내 노예인데 스킨십은 다 해도 된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뿐만 아니라 A씨를 성폭행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성명불상자에게 발송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으로 이모씨는 지난해 8월 1심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일본에 본사가 있는 메신저 회사 측에 가입 정보와 접속 기록을 요청했음에도 회신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문씨의 학과 지도교수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서 “프로젝트나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면담할 때 만났다. 정말 평범한 학생이라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면서도 “문씨가 속한 팀의 졸업작품을 지도하던 한 달 전쯤 전화가 와서 ‘학교를 갑자기 쉬게 됐다. 사정이 정리되면 나중에 찾아뵙고 설명해드리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성 착취물 공유 텔레그램 대화방 개설
조주빈이 운영한 ‘박사방’ 시초 격

이 시점은 경찰이 갓갓 추적에 모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던 시기다.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학교를 휴학하려 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대학 관계자도 “문씨가 따로 서류를 통해 휴학 의사를 밝히지 않았지만, 이번 주 대면강의가 시작된 뒤 수업에 참석하지 않아 확인하려고 했다”며 “휴학 등 신변 조치는 경찰 조사 결과가 통보되는 대로 신속하게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학교를 생활을 한 주변 학생들도 문씨가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증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문씨의 대학 동기는 “1학년 때는 문씨가 학부 단체활동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튀거나 공부를 잘하는 등의 특징 없이 조용하게 생활했다”고 말했다. 전공 수업을 함께 들었다는 다른 동기 역시 “대인관계가 정말 무난했다. 그런 일을 벌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현재 졸업을 준비하고 있는 문씨의 동기들 중 일부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갓갓’ 문형욱 ⓒ경북지방경찰청

또 학교 관계자 및 주변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문씨는 별도 동아리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10월 학생 논문발표대회에 참가했고, 평소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긴 하지만 착실했다.

다만 문씨와 같은 학과에 속한 한 학생은 “경찰이 신원을 공개하기 전부터 학교 내에선 암암리에 문형욱이 갓갓이라는 소문이 돌아 이미 알고 있었다”며 “같은 과에 그런 파렴치범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소름 끼친다”고 말했다.

한경대 측은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서 “사안이 중대하다 보니 퇴학까지 고려하고 있다”며 “확실히 징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퇴학은 학칙 내 최고 징계다.

한경대 학칙 학생포상 및 징계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생 신분에서 벗어난 행위를 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경우 학교에서 징계가 가능하다. 퇴학은 재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으로서 지도가 불가능하다고 인정한 경우에 해당한다. 

평범한 학생
동창들 경악

문씨의 중·고교 동창들에 따르면 문씨는 학창시절 친구들과 다투거나 누군가에게 화 한번 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온순한 성격이었다. 초중고 등 학창시절을 모두 경기도서 보낸 문씨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이런 이유로 문씨가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른 갓갓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그의 동창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다.

문씨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B씨는 “학창시절에는 아무 문제도 없고 교우관계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는데, 무엇이 그를 끔찍한 범죄자로 만들었는지 저도 궁금할 따름”이라며 “성인이 된 이후 동네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확실히 예전보다 어두워진 느낌은 있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문씨는 비행, 일탈행위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고 한다. 친구가 그리 많진 않았지만 반 아이들과도 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남들이 하는 만큼 공부도 곧잘 했다. 친구들 눈에 비친 그는 ‘반마다 한 명씩 있는’ 조용하고 소심한 학생이었다.

문씨의 중학교 동창 C씨는 “(문씨는)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친구가 한두 명에 불과할 정도로 소심한 면도 있었다”며 “선생님께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조용히 학교생활을 하던 친구가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에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고교시절 문씨는 공부에도 힘쓰고 교우관계서도 중학교 때보단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도 그의 학창 시절은 평범했다는 게 주변 친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고교 2학년부터 문씨와 같은 반이었다는 D씨는 “공부도 적당히 했던 것 같고 인간관계도 나쁘지 않았다”며 “함께 게임 이야기를 함께 하던 그가 갓갓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고 다른 동창생 E씨는 “그냥 평범한 친구로 기억한다. 특별한 행동을 하거나 이상한 부분도 일절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문씨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2018년부터 텔레그램에 가입해 단체 대화방서 ‘뀨릅’이란 대화명으로 음란물을 공유하면서부터 그의 악마적 본성이 각성하기 시작했다.
 

당시 텔레그램은 소위 ‘일탈계 운영자’들을 중심으로 일반인들의 나체 사진이나 영상 등이 활발히 공유되고 있었다. ‘일탈계 운영자’란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나체 사진, 음란 행위 등을 공개하며 이를 보는 이용자들의 반응을 즐기는 이들을 지칭한다.

문씨는 일탈계 운영자들의 신상을 캐고 이를 협박의 도구로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신상을 캐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준비할 것은 두 개의 가상 계정이면 충분했다. 우선 문씨는 일탈계 운영자들에게 ‘제보자’라는 계정으로 접근한다. 이후 ‘당신의 얼굴이 지금 유출됐다. 내가 도와주겠다’며 간단한 신상정보를 요구했다.

추적 피해
휴학 결정

그 다음엔 ‘협박범’ 계정으로 연락해 입수한 신상정보를 거론하며 주변 지인과 가족들에게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실제로 일탈계 운영은 음란물 제작 및 유포 행위로 처벌 대상이 된다.) 겁먹은 일탈계 운영자들이 앞선 ‘제보자’ 계정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문씨는 해킹 코드를 심은 링크를 보내 이들의 트위터 계정과 암호를 알아냈다.

이후 문형욱은 범행 대상자(주로 여성)들을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 불러 모은 뒤, 카메라 앞에서 나체로 온갖 엽기적인 행위를 하도록 강요했다. 이 비밀 대화방은 입소문을 타며 ‘입장객’이 순식간에 늘어나게 됐고, 문형욱은 대화방을 여러 개로 나눠 1번방부터 8번방까지 운영하기 시작했다.

각 방에는 미성년자 여학생부터 성인 여성에 이르기까지 가학적인 성 착취 영상들이 연일 수십개씩 업로드됐다. 

문씨가 개설한 N번방은 방마다 300∼700명의 입장객이 참여했다고 한다. 심지어 문형욱은 N번방 이용자인 이모씨에게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을 보내며 ‘내 노예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성폭행을 종용했다. 

문씨는 주로 경찰을 사칭해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수위가 높은 사진을 올린 피해자를 물색한 뒤 ‘음란 게시물 신고가 접수됐으니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조사에 응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식이었다고 한다. 신원 확인을 위해 필요하니 신체 사진 일부를 보낼 것을 요구하고, 점차 수위를 높여갔다.

피해자가 뒤늦게 덫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그동안 알아낸 신상정보와 성 착취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며, 또 다른 성 착취물을 보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문씨는 단순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방편으로 범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2월 ‘와치맨’이라는 닉네임을 쓰던 전모(38)씨와 나눈 대화 내용을 보면 문씨는 범행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일탈”이라고 답했었다. “피해자들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미안해. 이제 안 할게”라고 답하면서도 “아직 연락하는 피해자가 있느냐”는 추가 질문엔 “있을 걸”이라고 답했다.

1∼8번 방마다 300∼700명 입장객 참여
‘노예니 하고 싶은 대로’ 성폭행 종용도

잠적하기 직전까지도 일부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범행이 지속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지난 1월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시 등장한 문씨는 “내 제자(와치맨 전씨)가 잡혔다고 해서 분위기를 보러 왔다”며 “나는 잡히지 않는다”고 경찰을 조롱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만약 내가 경찰에 잡히면 갖고 있는 자료를 다 유포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적도 있다.

‘박사방’ 조씨와 나눈 대화에서는 “피해자를 한 대화방에 초대한 뒤 한 명이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나머지 피해자에게 더 가혹한 학대를 가했다”며 자신의 범행 수법을 자랑스레 설명하기도 했다.

문형욱과 조주빈, 강군, 이원호 등 N번방 일당의 평균 나이는 21.3세다. 또 다른 텔레그램 성 착취물 공유방인 고담방을 운영해 문형욱, 조주빈과 함께 3대 주범으로 불리는 아이디 ‘와치맨’ 전모(38)씨를 포함해도 24.6세에 불과하다.
 

▲ 문형욱 ⓒ온라인 커뮤니티

피해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유희의 도구로 여기며 그들의 삶을 짓밟은 충격적인 범죄 수법에 비춰보면, 겉으로 보이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평이한 데다 그들의 일상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박사방을 운영한 아이디 ‘박사’는 조주빈(24)으로 전문대를 졸업했다. 조주빈의 공범 격인 아이디 ‘부따’와 ‘이기야’는 각각 강훈(18)과 이원호(19)로, 이들은 10대다. 특히 강군은 미성년자인 10대 피이자로는 처음으로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조주빈은 전문대 재학시절 성적이 우수하고 학보사 활동을 열심히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대학 도서관이 주최한 교내 독후감 대회서 1등 상을 받았으며 장애인시설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신체 사진으로
신원 확인 인증

조주빈은 본인이 고백한 바와 같이 수익을 목적으로 음란물을 제작하고 유포했다. 하지만 문형욱은 자신의 비인간적인 지시에 노예처럼 따르며 괴로워하는 이들을 보는 것이 그저 ‘즐겁기 때문에’ 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실제로 문형욱은 자신에게 복종한 피해자들을 1년 뒤엔 해방해줬고, 신상도 공개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N번방서 생겨난 수익을 피해자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문형욱에게 있어서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재미있는 게임’이었던 셈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등장하자 보수의 심장인 대구가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광폭 행보에 나선 김 전 총리를 바라보는 대구 시민들도 양가감정이 교차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1995년 민선 시장 선출 이래 대구에서 단 한 번도 시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구 민심이 심상치 않은 만큼 최초의 진보 대구시장이 탄생할지 이목이 쏠린다. 대구는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광역자치단체이다. 지난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대구에서 23.22%(37만9130표)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반면 국민의힘 대선주자였던 김문수 후보는 67.62%(110만3913표)를 기록했다. 이처럼 대구는 윤석열정부 퇴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조차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약세를 보이는 지역이었다. 적절한 타이밍 그런 대구에서 최근 국민의힘이 힘을 못 쓰고 있다. 지도부를 중심으로 당이 지리멸렬하는 사이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구시장에 출사표를 던졌고, 민주당이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우위를 선점했다. 지난달 30일 김부겸 후보는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발전, 그것이 저의 마지막 소명”이라며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김 후보는 대구에 당선된 경험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2012년과 2014년 각각 제19대 총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대구광역시장)에서 낙선했으나 2016년 제20대 총선을 통해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에서 당선됐다. 이후 제21대 총선에서 또다시 낙선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김 후보는 캠프 해단식에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면목이 없다”면서도 “포기하지 않겠다. 새로운 날들을 향해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던 바 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김 후보가 다시 대구 전면에 등장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대구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며 “굳이 이런저런 수치를 열거하지 않겠다. 대구의 정치, 한 당이 독식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후보는 “정치인이 일을 안 한다. 일 안 해도 서울에서 공천만 받으면 또 된다. 대구 시민을 표 찍어주는 기계로 취급한다”며 “요즈음 시장 공천 과정을 보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냐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지금 대구에 필요한 사람, 김부겸이다. 나를 잘 써달라. 김부겸과 함께 대구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날 김 후보는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도 공개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김부겸으로서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겠다”며 “경기도 군포 초선 시절부터 해왔던 대로 제 전화번호를 공개하겠다. 대구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 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의힘을 버려야 진짜 건강한 보수가 살아난다”며 “이번 선거는 대구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 발전이 제 마지막 소명이다.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보수 심장’ ‘민주당’ 없는 민주당 동진 전략 지난 3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중앙당의 만장일치로 김 후보를 대구광역시장 후보자에 선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김 후보는 광폭 행보를 보였는데, 특히 김 후보는 ‘민주당’이라는 여당 프리미엄을 전면에 세우는 대신 “김부겸을 도구로 써달라”는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김 후보는 대구·경북(TK)의 상징인 박근혜·박정희 마케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있고 대구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꼈다면 과오 논쟁을 넘어 대구의 미래를 향한 논쟁으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포용의 정치를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 가능성을 열어둔 데 이어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KBS에서 김 후보의 박 전 대통령 예방에 대해 “대구 현실에 대한 판단으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측근인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이 회동의 전제 조건으로 ‘박 전 대통령의 실질적인 명예회복 방안’을 언급한 데 대해서는 “당 차원의 명예회복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조명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출마 선언문을 보면 김 후보는 민주당을 강조하는 대신 대구의 발전 방향만 이야기했다”며 “김 후보가 민주당 출신인 것을 모르는 대구 시민은 없다. 그럼에도 ‘내란’ ‘계엄’ 등 예민한 단어를 빼버림으로써 시민들은 김부겸이란 인물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 김 후보는 국민의힘을 비판한다. ‘지금까지 국민의힘이 대구시장을 해 왔는데 대구가 뭐가 바뀌었냐, 그건 국민의힘이 무능해서’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준다. 절대 왼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현재 보수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분위기가 안 좋다. 그때는 TK를 제외하고 몽땅 내줬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처절하게 패배할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명확하게 ‘절윤’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워낙 김 후보가 전략을 잘 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빼고 ‘경제’ 넣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참전했다. 홍 전 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대구에 도움이 된다면 당을 떠나 정치꾼이 아닌 역량 있는 행정가를 뽑아야 한다”며 김 후보를 추켜세웠다. 그는 “부산은 스윙 보터 지역이라 민주당이 가덕신공항도 해주고 해수부도 이전해 주지만, 대구는 막무가내식 투표를 하니까 민주당 정권이 도와주지도 않고 버린 자식 취급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후임 대구시장이 능력 있고, 중앙정부와 타협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김부겸 전 총리를 언급한 것”이라며 “민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김부겸을 지지했다고 봐주시면 한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의 지지율이 연일 상승하면서 안정궤도에 돌입했다는 평이 나온다. 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8~29일 대구 시민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는 차기 대구시장 적합도 49.5%를 기록해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15.9%)을 큰 격차로 앞섰다. 김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 간의 1대1 가상 대결에서도 추 의원과 맞붙을 경우 52.3% 대 36.6%로 오차범위 밖 우세를 보였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전화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김 후보는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하 방통위원장)과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컷오프되자 반발 차원에서 대구 시민이 역결집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오름세를 보이면서 이 같은 현상은 단순 역결집이 아니라 실제 보수 민심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민주당도 김 후보 지원사격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8일 대구에서 최고위원 회의를 열고 김 후보를 ‘제2의 노무현’ ‘제2의 이재명’이라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노무현이 종로 꽃길을 마다하고 부산 가시밭길에 도전했듯이 김부겸도 군포 꽃길을 마다하고 대구 가시밭길에 내려왔다”며 “김부겸도 이재명도 대구·경북 사람이고 민주당에서 비주류였다”고 말했다. 이날 정 대표는 당정 차원에서 지역 숙원사업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이 지난 대구 타운홀미팅에서 TK 신공항 건설, 취수원 문제 등 대구 숙원 사업 추진 의사를 밝혔다”며 “그 의지는 앞으로 예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팍팍 깎이는 현지 민심 TK 통합에 대해선 “국민의힘이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통합이 멈춰 섰다”며 “김 전 총리와 힘을 합쳐 통합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화답하듯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대구에 중요한 약속을 했고, 정 대표도 ‘무엇이든지 다해드림센터장’이 되겠다고 했다. 이 보증수표를 믿고 대구를 메딕시티, AI·로봇 수도, 미래 모빌리티 산업 선도 도시로 만들어 그 약속을 시민의 삶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전략은 ‘민주당’을 빼고 대신 ‘대구 발전’ ‘민생’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9일 김 후보는 후보 등록을 마친 뒤 취재진들과 만나 1호 공약을 소개하는 등 민생·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1호 공약으로 대구의 지역 경제 발전을 꼽으며 “지역의 주요 기관과 단체, 어른들께 조속히 인사를 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대구 곳곳을 마주하며 지역의 어려움과 스스로의 부족함을 동시에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최대 현안인 인구 유출 문제를 언급하며 “젊은이들이 떠나는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굳어져서는 안 되는데 이를 막지 못하는 현실에 시민들이 아픔을 느끼고 있다”며 “그만큼 책임감이 무겁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 일자리 해결과 경제 도약에 집중할 것”이라며 “대구의 절실한 요구를 예산과 법률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 핵심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안방마저 내줄 상황에 몰렸다. 김 후보가 우후죽순 치고 나가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당내 교통 정리에서조차 애를 먹으면서 표가 갈릴 위험에 처한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싸움이 일어나는 만큼 여의도에서는 ‘김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장동혁 대표’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나온다. 국민의힘을 향한 대구의 실망감은 숫자로도 나타났다. 지난 9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은 54%,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30%로 집계됐다. 특히 TK에서 여당 44%·야당 34%로 집계되면서 국민의힘에서도 위기감을 감지한 모양새다. 잘나가는 김 멍 때리는 장 대구 달서병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은 “대구 여론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며 “모두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이 대구시장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 의원은 MBC 라디오를 통해 최근 대구 민심에 대해 “그동안 국민의힘에 대한 불만으로 ‘이번에는 갈아보자’고 했지만 대안이 없어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민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에 반이재명 정서가 강했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다. ‘윤석열보다는 이재명이 잘한다’, 심지어 ‘얄밉게 잘한다’는 사람도 있다”며 여기에 “김부겸이란 대안도 있어 대구 민심이 그 대안으로 옮겨가기 직전”이라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국민의힘 지도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인데도 당은 ‘무난히 여섯 명(예비 후보) 중 한 명을 뽑으면 된다고 하고 있다”며 “자칫 잘못하면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으로 ‘김부겸을 통해 이익이라도 챙기자’라고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주호영, 이진숙을 다독거려서 될 문제가 아니다. 6명 중에서 뽑힌 후보가 김부겸을 이기기 힘들 만큼 대구 민심은 훨씬 더 나쁘다”며 “상황이 이렇기에 보수 기득권에 안주하는, 보수 결집으로 이기겠다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은 무소속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혔으며, 가처분이 기각된 주호영 의원은 “항고심을 지켜본 뒤 거취를 판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주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장애물은 장동혁 대표 체제 그 자체”라며 국민의힘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기까지 했다. 앞서 주 의원은 지난달 26일 법원에 컷오프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고 법원은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이후 주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장 대표를 향해 “민심을 붙잡을 대책도, 보수를 다시 세울 노선도, 국민 앞에 사과하고 변화를 약속하는 모습도 없다”며 “대신 곳곳에서 공천 작당만 벌였다는 비판만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대구 현장에서도 장 대표가 싫어 국민의힘을 못 찍겠다는 말이 적지 않다. 장 대표가 먼저 결단해야 한다”며 “비상대책위원회든 선거대책위원회든 새로운 책임 체제를 즉각 구성하라”라고 장 대표의 후퇴를 촉구했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의 변수는 시민들의 막판 결집력이다. “당장 내일 선거가 치러지면 김부겸을 찍겠다”는 이들조차 투표소에 들어가면 “그래도 보수를 찍어야지”라는 마음으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삼진 아웃? 다만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런 ’습관성 투표‘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 관계자는 “‘보수가 큰일 났다’ ‘대구가 위험하다’라는 위기의식이 있어야 이들이 똘똘 뭉쳐 결집하고 표가 된다”며 “지금은 장 대표가 위기 그 자체다. 그래서 ‘이번에는 김부겸 한번 믿어보자’는 기대감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14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 보수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가면서 보수 지역 민심도 그에 맞춰가는 것”이라며 “김 후보가 크게 실수하지 않는 이상 ‘이대로라면 대구가 민주당에 뺏긴다’라는 위기감보다 ‘그래도 보수를 먼저 살려야지’라는 여론이 형성될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