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 2위’ 국회의장 샅바싸움 막전막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5.18 10:10:40
  • 호수 12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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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다음 권력 ‘둘 중 하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대한민국 의전 서열 2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다. 승리를 거두는 사람이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맡는다. <일요시사>는 21대 국회 원구성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장 쟁탈전을 추적했다. 
 

▲ 박병석 국회부의장(더불어민주당)과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놓고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다.

맞대결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병석 의원과 김진표 의원이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직을 놓고 경쟁 중이다. 관례상 전반기 국회의장은 원내 1당이 가져간다. 21대 총선서 대승을 거둔 민주당의 몫이다.

박 6선
김 5선

박 의원은 21대 총선을 통해 6선에 성공했다. 다음달 개원하는 21대 국회를 기준으로 최다선인데 정치권이 그의 국회의장행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이유다.

박 의원의 강점은 계파색이 옅다는 점이다. 당내 정세균계로 분류되지만, 친문(친 문재인)·비문(비 문재인)을 가리지 않고 활발히 교류해왔다. 

계파색은 옅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박 의원을 신뢰한다’는 말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 경선을 앞두고 충청권 의원 중 처음으로 박 의원을 캠프로 영입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정부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문재인정부의 철학 등을 설명한 사람도 박 의원이다. 이는 21대 총선을 통해 세 확장에 성공한 친문계 의원들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야당 의원들과도 큰 갈등 없이 관계를 원만히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당적을 내려놓고 여야 의원들을 모두 포용해야 하는 국회의장의 성격과도 들어맞는다. 일각에선 박 의원의 이런 강점을 들어 ‘전통적 의장상’과 잘 맞다는 평가도 나온다.

계파색이 옅은 점은 야당 의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등 보수 야당은 친문 색채에 대한 반감이 크다. 21대 총선을 사흘 앞둔 지난달 12일 통합당은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여당은 친문 일색 공천으로 귀결됐다. 이런 상황서 현 정권이 이번 선거를 통해 국회마저 장악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이 나라는 친문패권 세력의 나라가 될 것”이라며 저격한 바 있다.

박 의원이 충청권 의원인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충청권은 21대 총선서 민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낸 바 있다. 이에 민주당 내부에선 ‘차기 대선을 위해서라도 충청권을 배려하는 직책 안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 의원 본인의 의지 역시 강하다. 앞서 그는 21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국회의장이라는 중책이 주어진다면 과감하게 국회를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장 ‘3수생’라는 점도 박 의원의 손을 들어주는 요소다. 19대 국회서 국회부의장을 지낸 박 의원은 20대 국회 국회의장에 도전했지만, 정세균·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밀려 꿈을 이루지 못했다.

박 ‘최다선’ 김 ‘최고령’
손 편지 VS 메신저 승자는?


반면, 확실한 당내 조직이 없다는 점이 박 의원의 약점으로 꼽힌다. 확실한 당내 조직은 고정 득표, 더 나아가 확장력을 의미한다. 박 의원이 수도권에 비해 세가 약한 충청권이라는 점도 상대적 약점으로 꼽힌다.

박 의원의 경쟁상대는 5선의 김진표 의원이다. 박 의원이 국회 최다선이라면, 김 의원은 최고령이다. 74세인 김 의원은 박 의원(69세)보다 5년 위다.

김 의원 역시 의지가 강하다. 한때 민주당 내에서는 박 의원에 대한 ‘추대론’이 제기된 바 있다. 경선을 치를 경우 자칫 과열 양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열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정부여당에 180석을 몰아준 국민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김 의원의 경선 의지가 높아 추대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 문희상 국회의장 ⓒ문병희 기자

김 의원의 강점은 ‘경제 전문성’이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정통 관료 출신인 그는 자타공인 ‘경제통’으로 불린다. 현재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서 비상경제대책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 의원은 계파색이 옅은 박 의원과 달리 계파색이 상대적으로 뚜렷하다. 참여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냈으며, 문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서 위원장을 역임한 친노·친문 인사다.

두 사람이 경선서 맞붙었을 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김 의원은 당권파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이해찬 대표가 당권을 잡은 이후 민주당 당권파의 최근 기세는 무서울 정도로 상승세다.

상승세는 최근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을 통해 뚜렷해졌다. 김태년·전해철·정성호 의원이 맞붙은 경선서 김 의원이 163표 가운데 과반 이상인 82표를 획득,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김 신임 원내대표는 친문 중에서도 이 대표와 가까운 당권파다.

민주당이 21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뒤 곧바로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서 당권파가 승리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류 친문’에 대한 견제 심리와 수평적인 당청 관계를 요구하는 경향이 높아졌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포용 리더십
경제 전문가

김태년·전해철·정성호 세 명의 원내대표 후보 중 친문은 김 원내대표와 전 의원이다. 전 의원은 문 대통령의 측근인 ‘3철’(양정철·이호철·전해철)이자, 핵심 친문 의원들의 모임인 ‘부엉이 모임’의 좌장을 맡은 ‘주류 친문’이다. 부엉이 모임은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전 의원을 민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은 김 원내대표가 전 의원을 꺾을 수 있었던 이유가 주류 친문에 대한 견제심리 때문이라 해석한다.


일각에선 당권파인 김 원내대표에 빗대어 전 의원을 ‘정권파’로 불렀다. 결국 민주당 의원들은 정권파보다 당권파를 선택, 현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신임을 전했다. 이 같은 경향은 국회의장 경선에서 당권파인 김 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김 의원의 약점은 ‘이미지’다. 관료 출신이라는 점, 과거 종교인 과세 유예를 주장한 점 등 김 의원은 개혁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러한 이미지는 개혁 성향의 초재선 당선인들의 표심을 끌어오는 데 방해요소가 될 수도 있다. 

박 의원과 김 의원은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여야가 원내대표 선출을 끝내고 나서 본격화됐다. 정치권에선 박 의원이 김 의원에게 양보를 권했다는 지라시까지 등장했다. 박 의원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물밑 구애작전이 치열하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스타일로 당선인들에게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당내 계파 역학구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초선 당선인에게 맞춤식 구애작전을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민주당 초선 당선인은 68명이다. 시민당 당선인까지 합하면 그 수는 83명으로 불어난다. 국회의장 경선의 향배를 결정지을 정도의 규모다.

박 의원은 전략은 ‘정성’이다. 앞서 박 의원은 초선 당선인들에게 두 차례 손 편지를 보냈는데 “당선 후 등원까지, 지역민들에 대한 감사 인사를 성의 있게 해야 한다” “상임위는 전공을 살피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을 권한다” 등 박 의원이 초선 당선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각종 조언을 담았다.


박 의원은 4선이던 지난 19대 국회 때부터 초선 당선인들에게 의정활동에 대한 조언을 담은 손 편지를 써온 것으로 전해진다.

손 편지 외에도 박 의원은 전화와 문자로 초선 당선인들에게 지역구 관리, 보좌진 채용과 같은 부분에 조언을 해주는 등 멘토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또 식사 자리를 마련하면서 통합형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 의원의 전략은 ‘전달’이다. 그는 SNS 메신저를 적극 활용하며,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초선 표심
승패 영향

지난 8일 김 의원은 카카오톡 메신저로 의원 개개인에게 디지털 서신을 보냈는데, 메시지에는 ‘디지털 뉴딜을 선도하는 능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방역 모범국가서 경제 위기 극복 모범국가로 가는 길을 만들고 싶다’ 등의 포부가 담겼다.

김 의원은 ‘일하는 국회의장’을 캐치프레이즈로 표심 공략에 나섰다. 지난 8일 메시지서도 “국회의장이 사후적이고 절차적으로 개입하는 관행서 벗어나 책임성을 갖고 적극적으로 국회 운영에 나서야 한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국회의장 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 역시 당선인들과 오찬을 여는 등 접촉면을 늘리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 의원은 캐치프레이즈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도 내놨다. 국회의장이 주도하는 주요 현안협의체를 도입하겠다는 것.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들과 협의해 신속한 처리, 공론 수렴이 필요한 법안을 중점 안건으로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이를 위해 구체적인 법안을 이미 마련해뒀다고 밝혔다.

과연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이라는 영광을 차지하는 사람은 누가 될 것인가. 국회 선진화법으로 국회의장이 가진 권한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입법부의 수장이라는 상징성은 여전하다.
 

▲ 국회의장단에 첫 유리벽을 깰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의장 경선은 오는 25일 열린다. 후보 등록은 오는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이후 의장 후보는 10분의 정견발표를 한다. 만약 의장단 후보로 한 명만 등록하면 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된다. 

두 명 이상 후보가 경선을 치러 동률이 나오더라도 결선 투표는 진행하지 않는다. 이렇게 당선된 후보는 오는 6월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서 무기명 투표를 진행, 재적의원 과반 이상의 득표로 당선이 결정된다.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 역시 25일 윤곽이 드러난다. 부의장은 총 2명이다. 여당과 야당이 각각 1명씩을 추천해 표결을 거친다. 

당권파 표심 어디로…
최초 여성 부의장 도전

통합당이 야당 몫 부의장 1명을 가져간다. 통합당에서는 정진석 의원이 경선 없이 추대될 전망이다. 경쟁자로 거론되던 서병수 당선인이 부의장 경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서병수 당선인은 지난 13일 “국회부의장이 과연 내게 주어진 사명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일하는 국회 본연의 모습은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께서 통합당을 외면한 것은 반대만 했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반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제대로 반대하는 야당부터 만드는 것이 일하는 국회의 첫걸음이라 믿는다. 이게 내가 다시 정치를 시작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통합당 최다선들 사이서 교통정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 최다선은 5선으로 4명이다. 부의장 추대가 유력한 정 의원을 비롯해, 주호영 의원, 조경태 의원, 서 당선인이 그들이다. 앞서 주 의원은 통합당의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나머지 조 의원과 서 당선인은 차기 전당대회 출마가 유력하다.

정 의원은 기자 출신 국회의원이다. 5선 의원을 하는 동안 국회사무총장과 국회의장 비서실장, 국회 운영위원장·정보위원장·규제개혁위원장 등을 거쳤다. 이번에 부의장으로 추대되면, 사실상 국회의장을 제외한 국회의 모든 요직을 경험하게 된다.

민주당 몫 부의장 경선에서는 최초의 ‘여성 부의장’ 탄생 여부로 뜨겁다.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여성 의원 모임인 ‘행복여정’은 여성 최다선(4선)인 김상희 의원을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제헌국회 이래 여성이 의장단에 들어간 사례는 전무하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까지 7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의장단에) 여성이 없었다. 이는 정치가 지금까지 남성의 영역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라며 “이는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장·부의장은 대개 다선이 하는데, 그동안은 여성 다선 의원이 굉장히 부족했다”며 “의장단에 한 번도 여성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대의민주주의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국회서의 상징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밝혔다.

부의장도
치열하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서도 최초의 여성 부의장 탄생이라는 명분이 힘을 받고 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의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자당 남성 의원들에게 여성 부의장 선출에 동의해달라는 서명 요청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김 의원이 부의장이 되기에 선수가 낮다는 지적도 있다. 상대로는 이상민(5선), 변재일(5선) 의원이 유력하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낙연 세력 확장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이 세력 확장에 나섰다.

21대 총선 기간 자신이 후원회장을 맡았던 당선·낙선인과 잇단 회동을 가졌다.

이 위원장은 지난 15일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민주당 총선 당선인 20여명과 오찬을 열었다. 모두 당선자들로 21대 국회 초재선이다.

김병관·김병욱·백혜련·정춘숙 의원은 물론 이탄희·홍정민·김용민·고민정·이소영 당선인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이 위원장은 지난 7일 후원회장을 맡았던 후보 가운데 낙선인 15명과도 비공개 오찬을 가졌다.

이 위원장 측은 “후원회장으로서 인사 차원서 갖는 모임”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도전을 고민하고 있는 이 위원장이 본격적인 세력 확장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위원장은 당권의 걸림돌로 당내 기반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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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