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 2위’ 국회의장 샅바싸움 막전막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5.18 10:10:40
  • 호수 12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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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다음 권력 ‘둘 중 하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대한민국 의전 서열 2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다. 승리를 거두는 사람이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맡는다. <일요시사>는 21대 국회 원구성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장 쟁탈전을 추적했다. 
 

▲ 박병석 국회부의장(더불어민주당)과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놓고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다.

맞대결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병석 의원과 김진표 의원이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직을 놓고 경쟁 중이다. 관례상 전반기 국회의장은 원내 1당이 가져간다. 21대 총선서 대승을 거둔 민주당의 몫이다.

박 6선
김 5선

박 의원은 21대 총선을 통해 6선에 성공했다. 다음달 개원하는 21대 국회를 기준으로 최다선인데 정치권이 그의 국회의장행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이유다.

박 의원의 강점은 계파색이 옅다는 점이다. 당내 정세균계로 분류되지만, 친문(친 문재인)·비문(비 문재인)을 가리지 않고 활발히 교류해왔다. 

계파색은 옅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박 의원을 신뢰한다’는 말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 경선을 앞두고 충청권 의원 중 처음으로 박 의원을 캠프로 영입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정부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문재인정부의 철학 등을 설명한 사람도 박 의원이다. 이는 21대 총선을 통해 세 확장에 성공한 친문계 의원들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야당 의원들과도 큰 갈등 없이 관계를 원만히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당적을 내려놓고 여야 의원들을 모두 포용해야 하는 국회의장의 성격과도 들어맞는다. 일각에선 박 의원의 이런 강점을 들어 ‘전통적 의장상’과 잘 맞다는 평가도 나온다.

계파색이 옅은 점은 야당 의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등 보수 야당은 친문 색채에 대한 반감이 크다. 21대 총선을 사흘 앞둔 지난달 12일 통합당은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여당은 친문 일색 공천으로 귀결됐다. 이런 상황서 현 정권이 이번 선거를 통해 국회마저 장악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이 나라는 친문패권 세력의 나라가 될 것”이라며 저격한 바 있다.

박 의원이 충청권 의원인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충청권은 21대 총선서 민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낸 바 있다. 이에 민주당 내부에선 ‘차기 대선을 위해서라도 충청권을 배려하는 직책 안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 의원 본인의 의지 역시 강하다. 앞서 그는 21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국회의장이라는 중책이 주어진다면 과감하게 국회를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장 ‘3수생’라는 점도 박 의원의 손을 들어주는 요소다. 19대 국회서 국회부의장을 지낸 박 의원은 20대 국회 국회의장에 도전했지만, 정세균·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밀려 꿈을 이루지 못했다.

박 ‘최다선’ 김 ‘최고령’
손 편지 VS 메신저 승자는?


반면, 확실한 당내 조직이 없다는 점이 박 의원의 약점으로 꼽힌다. 확실한 당내 조직은 고정 득표, 더 나아가 확장력을 의미한다. 박 의원이 수도권에 비해 세가 약한 충청권이라는 점도 상대적 약점으로 꼽힌다.

박 의원의 경쟁상대는 5선의 김진표 의원이다. 박 의원이 국회 최다선이라면, 김 의원은 최고령이다. 74세인 김 의원은 박 의원(69세)보다 5년 위다.

김 의원 역시 의지가 강하다. 한때 민주당 내에서는 박 의원에 대한 ‘추대론’이 제기된 바 있다. 경선을 치를 경우 자칫 과열 양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열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정부여당에 180석을 몰아준 국민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김 의원의 경선 의지가 높아 추대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 문희상 국회의장 ⓒ문병희 기자

김 의원의 강점은 ‘경제 전문성’이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정통 관료 출신인 그는 자타공인 ‘경제통’으로 불린다. 현재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서 비상경제대책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 의원은 계파색이 옅은 박 의원과 달리 계파색이 상대적으로 뚜렷하다. 참여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냈으며, 문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서 위원장을 역임한 친노·친문 인사다.

두 사람이 경선서 맞붙었을 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김 의원은 당권파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이해찬 대표가 당권을 잡은 이후 민주당 당권파의 최근 기세는 무서울 정도로 상승세다.

상승세는 최근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을 통해 뚜렷해졌다. 김태년·전해철·정성호 의원이 맞붙은 경선서 김 의원이 163표 가운데 과반 이상인 82표를 획득,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김 신임 원내대표는 친문 중에서도 이 대표와 가까운 당권파다.

민주당이 21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뒤 곧바로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서 당권파가 승리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류 친문’에 대한 견제 심리와 수평적인 당청 관계를 요구하는 경향이 높아졌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포용 리더십
경제 전문가

김태년·전해철·정성호 세 명의 원내대표 후보 중 친문은 김 원내대표와 전 의원이다. 전 의원은 문 대통령의 측근인 ‘3철’(양정철·이호철·전해철)이자, 핵심 친문 의원들의 모임인 ‘부엉이 모임’의 좌장을 맡은 ‘주류 친문’이다. 부엉이 모임은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전 의원을 민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은 김 원내대표가 전 의원을 꺾을 수 있었던 이유가 주류 친문에 대한 견제심리 때문이라 해석한다.


일각에선 당권파인 김 원내대표에 빗대어 전 의원을 ‘정권파’로 불렀다. 결국 민주당 의원들은 정권파보다 당권파를 선택, 현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신임을 전했다. 이 같은 경향은 국회의장 경선에서 당권파인 김 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김 의원의 약점은 ‘이미지’다. 관료 출신이라는 점, 과거 종교인 과세 유예를 주장한 점 등 김 의원은 개혁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러한 이미지는 개혁 성향의 초재선 당선인들의 표심을 끌어오는 데 방해요소가 될 수도 있다. 

박 의원과 김 의원은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여야가 원내대표 선출을 끝내고 나서 본격화됐다. 정치권에선 박 의원이 김 의원에게 양보를 권했다는 지라시까지 등장했다. 박 의원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물밑 구애작전이 치열하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스타일로 당선인들에게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당내 계파 역학구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초선 당선인에게 맞춤식 구애작전을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민주당 초선 당선인은 68명이다. 시민당 당선인까지 합하면 그 수는 83명으로 불어난다. 국회의장 경선의 향배를 결정지을 정도의 규모다.

박 의원은 전략은 ‘정성’이다. 앞서 박 의원은 초선 당선인들에게 두 차례 손 편지를 보냈는데 “당선 후 등원까지, 지역민들에 대한 감사 인사를 성의 있게 해야 한다” “상임위는 전공을 살피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을 권한다” 등 박 의원이 초선 당선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각종 조언을 담았다.


박 의원은 4선이던 지난 19대 국회 때부터 초선 당선인들에게 의정활동에 대한 조언을 담은 손 편지를 써온 것으로 전해진다.

손 편지 외에도 박 의원은 전화와 문자로 초선 당선인들에게 지역구 관리, 보좌진 채용과 같은 부분에 조언을 해주는 등 멘토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또 식사 자리를 마련하면서 통합형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 의원의 전략은 ‘전달’이다. 그는 SNS 메신저를 적극 활용하며,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초선 표심
승패 영향

지난 8일 김 의원은 카카오톡 메신저로 의원 개개인에게 디지털 서신을 보냈는데, 메시지에는 ‘디지털 뉴딜을 선도하는 능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방역 모범국가서 경제 위기 극복 모범국가로 가는 길을 만들고 싶다’ 등의 포부가 담겼다.

김 의원은 ‘일하는 국회의장’을 캐치프레이즈로 표심 공략에 나섰다. 지난 8일 메시지서도 “국회의장이 사후적이고 절차적으로 개입하는 관행서 벗어나 책임성을 갖고 적극적으로 국회 운영에 나서야 한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국회의장 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 역시 당선인들과 오찬을 여는 등 접촉면을 늘리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 의원은 캐치프레이즈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도 내놨다. 국회의장이 주도하는 주요 현안협의체를 도입하겠다는 것.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들과 협의해 신속한 처리, 공론 수렴이 필요한 법안을 중점 안건으로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이를 위해 구체적인 법안을 이미 마련해뒀다고 밝혔다.

과연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이라는 영광을 차지하는 사람은 누가 될 것인가. 국회 선진화법으로 국회의장이 가진 권한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입법부의 수장이라는 상징성은 여전하다.
 

▲ 국회의장단에 첫 유리벽을 깰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의장 경선은 오는 25일 열린다. 후보 등록은 오는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이후 의장 후보는 10분의 정견발표를 한다. 만약 의장단 후보로 한 명만 등록하면 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된다. 

두 명 이상 후보가 경선을 치러 동률이 나오더라도 결선 투표는 진행하지 않는다. 이렇게 당선된 후보는 오는 6월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서 무기명 투표를 진행, 재적의원 과반 이상의 득표로 당선이 결정된다.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 역시 25일 윤곽이 드러난다. 부의장은 총 2명이다. 여당과 야당이 각각 1명씩을 추천해 표결을 거친다. 

당권파 표심 어디로…
최초 여성 부의장 도전

통합당이 야당 몫 부의장 1명을 가져간다. 통합당에서는 정진석 의원이 경선 없이 추대될 전망이다. 경쟁자로 거론되던 서병수 당선인이 부의장 경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서병수 당선인은 지난 13일 “국회부의장이 과연 내게 주어진 사명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일하는 국회 본연의 모습은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께서 통합당을 외면한 것은 반대만 했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반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제대로 반대하는 야당부터 만드는 것이 일하는 국회의 첫걸음이라 믿는다. 이게 내가 다시 정치를 시작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통합당 최다선들 사이서 교통정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 최다선은 5선으로 4명이다. 부의장 추대가 유력한 정 의원을 비롯해, 주호영 의원, 조경태 의원, 서 당선인이 그들이다. 앞서 주 의원은 통합당의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나머지 조 의원과 서 당선인은 차기 전당대회 출마가 유력하다.

정 의원은 기자 출신 국회의원이다. 5선 의원을 하는 동안 국회사무총장과 국회의장 비서실장, 국회 운영위원장·정보위원장·규제개혁위원장 등을 거쳤다. 이번에 부의장으로 추대되면, 사실상 국회의장을 제외한 국회의 모든 요직을 경험하게 된다.

민주당 몫 부의장 경선에서는 최초의 ‘여성 부의장’ 탄생 여부로 뜨겁다.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여성 의원 모임인 ‘행복여정’은 여성 최다선(4선)인 김상희 의원을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제헌국회 이래 여성이 의장단에 들어간 사례는 전무하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까지 7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의장단에) 여성이 없었다. 이는 정치가 지금까지 남성의 영역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라며 “이는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장·부의장은 대개 다선이 하는데, 그동안은 여성 다선 의원이 굉장히 부족했다”며 “의장단에 한 번도 여성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대의민주주의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국회서의 상징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밝혔다.

부의장도
치열하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서도 최초의 여성 부의장 탄생이라는 명분이 힘을 받고 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의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자당 남성 의원들에게 여성 부의장 선출에 동의해달라는 서명 요청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김 의원이 부의장이 되기에 선수가 낮다는 지적도 있다. 상대로는 이상민(5선), 변재일(5선) 의원이 유력하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낙연 세력 확장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이 세력 확장에 나섰다.

21대 총선 기간 자신이 후원회장을 맡았던 당선·낙선인과 잇단 회동을 가졌다.

이 위원장은 지난 15일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민주당 총선 당선인 20여명과 오찬을 열었다. 모두 당선자들로 21대 국회 초재선이다.

김병관·김병욱·백혜련·정춘숙 의원은 물론 이탄희·홍정민·김용민·고민정·이소영 당선인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이 위원장은 지난 7일 후원회장을 맡았던 후보 가운데 낙선인 15명과도 비공개 오찬을 가졌다.

이 위원장 측은 “후원회장으로서 인사 차원서 갖는 모임”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도전을 고민하고 있는 이 위원장이 본격적인 세력 확장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위원장은 당권의 걸림돌로 당내 기반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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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