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사회의 어두운 부분’ 박영균

치열한 현장, 느긋한 일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자하미술관이 박영균 작가의 개인전 꽃밭의 역사를 소개한다.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지 3개월 만에 관람객들과 다시 만나는 자리다. 이번 전시서 박영균은 표현주의 회화 47점을 선보인다.
 

▲ 박영균作_노랑바위가 보는 풍경, 116x80cm.2001

박영균 작가는 지난해 7월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의 추모미술전에 참가했다. 20187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 전 의원의 1주기 추모행사였다. 박영균은 2010년 서울시청 앞 광장서 열린 노동자대회 포토뉴스가 나온 작업실 모니터를 그린 구작을 살펴보다가 흐릿한 모습의 노 전 의원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의 모습을 다시 손질해 출품작으로 내놨다.

과거의 작품

지난 2016년에는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사업 중 시각예술 분야에 지원하는 생생화화의 일환으로 열린 전시 산책자의 시선전에 참여해 세월호 참사·재개발 등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했다.

당시 전시장 들머리에 놓인 박영균의 회화작품은 전시의 지배적인 이미지를 상징했다. 보랏빛으로 채색된 화면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한 아이의 방을 그린 것으로, 공중에는 노란색 비닐봉지와 세월호 팔찌가 떠있다.

코로나 19 로 닫았던 미술관
‘꽃밭의 역사’로 다시 열어


화면 가운데 보이는 그림은 1987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바라보는 여성을 그린 작품이다. 박영균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유하고 있는 투쟁의 상처를 이미지로 구현했다.

박영균의 개인전 꽃밭의 역사전은 1990년대 투쟁적이었던 벽화활동 이후, 예술가로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그렸던 소파 연작, 일상적 풍경에 색상의 변조를 더해 사회 비판적 시각 내지 세대적 경험을 드러내고자 했던 표현주의 회화들로 구성됐다.
 

▲ 86학번김대리Acrylic on canvas, 162×130cm, 1996

박영균은 화가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억들을 그림으로 그려 저장한다옛날에 그린 작품을 추려서 하는 전시라 그때 기억들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고 말했다.

박영균은 대학 졸업 후 소집단 미술운동 단체인 가는 패에 들어갔다. 가는 패는 서울 민족 민중미술 운동연합(이하 서미련)으로 확대 개편됐다. 서미련은 이적단체로 지목됐고 12명의 예술가들이 구속됐다. 그는 이 사건 이후 분하고 억울한 감정을 기록한 그림 몇 작품을 이번 전시에 내보였다. 작품 속 모델은 당시 미술활동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다.

1990년대 들어서는 북한 미술이 청년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박영균은 그 미학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사회와 동떨어진 예술 지상주의 미술교육과 미술풍토 때문에 남한 미술에 대한 반발이 컸다북쪽의 민족적 형식을 차용한 조선화의 리얼리즘 형식이 당시 나와 미술운동을 하는 청년들에게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임수경 학생이 방북 동안 보여준 발랄한 모습은 남북 냉전에 경직된 사람들에게 신선한 파열음을 줬다임수경 학생의 방북 기록화가 남쪽에 소개되면서 맑고 밝은 것을 좋아하는 대중적 기호에 영향을 받았던 그 시절의 그림들도 모았다. 전통 수묵화 기법의 유화로 실험하며 형식을 고민했던 작품들이라고 덧붙였다.


현장 미술운동에 투신
회화작품 47점 선보여

1990년대 문민정부 들어서 박영균은 황지우의 살찐 소파처럼 소파에 누워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TV를 보았다고 한다. 꺼진 TV, 캄캄한 거실 창문을 넘어 어슴푸레 새벽빛이 올라오면 잠들곤 했던 시절을 담은 작품이 김대리시리즈다.

심심할 때 혼잣말처럼 자신과 대화하며 그렸다는 자화상도 몇 작품 선보인다. 박영균은 슬플 때나 기쁠 때 작업실에서 거울을 보며 그렸던 자화상 속 표정과 색 표현을 보니 그때의 감정과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듯하다고 말했다.
 

▲ 박영균_강경대열사 장례식날 이대앞에서, on canvas, 130x97cm, 1992년

박영균은 2007년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반대 예술 행동 활동도 했다. 그러면서 동아시아서 미군의 문제가 우리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와 종으로 횡으로 연결돼있다는 것을 느꼈다한반도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동아시아 예술가들과의 연대 속에서 느낀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여 사라진 구럼비 바위서 대추리, 오키나와로 연결된 동아시아 평화의 실오라기를 붙들고 싶다고 밝혔다.

그때의 기억

자하미술관 관계자는 “7m 폭의 대형 회화작 꽃밭의 역사, 강정을 통해서 각박했던 현장 미술운동 이후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보게 된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jsjang@ilyosisa.co.kr>
 



[박영균은?]

학력

경희대 미술교육학과 졸업
경희대 대학원 회화과 졸업

개인전

함평군립미술관초대전(2018)
그곳에서 이곳으로공간41(2018)
레이어의 겹관훈갤러리(2015)
공주가 없는 공주 금강에서갤러리이레(2010)
밝은 사회 Bright Society’ 오페라 갤러리(2009)
분홍 밤부산아트센터 아트포럼 리(2009)
빨강강풍경과 노랑풍경을 지나서신세계갤러리(2008)
의무를 넘어문화일보 갤러리(2006)
저 푸른 초원 위에문화일보 갤러리(2004)
‘86
학번 김대리’ Hello Art Gallery(2002)
그해 여름부천 문예전시관(1999)
이십일세기 화랑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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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