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라젠 문은상 일가 수상한 부동산 투자 추적

속초 호텔·독산 타워에 260억 썼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문은상 신라젠 대표는 지난 2017년 말 주식을 대거 처분해 1325억원을 확보한 바 있다. 당시 사측은 세금 납부와 채무변제를 위해서였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문 대표 일가는 주식 매각 후 부동산사업에 착수했다. 사용된 자금 규모만 260억원대. 막대한 사업자금은 어디서 나왔을까.
 

문은상 신라젠 대표는 미공개 정보로 보유 주식을 대거 매각하고 손실을 회피한 의혹을 받고 있다. 발단은 ‘펙사백(면역항암제 후보 물질) 임상시험 중단 공고’였다. 펙사벡은 신라젠을 코스닥 시가총액 2위에 올려준 일등공신이었다. 한때 신라젠 주가는 13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펙사벡 임상시험 중단 사실이 공개되면서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그 많은 돈 
어디서 났나

신라젠 관계자들은 의혹에 휩싸였다. 문 대표 등은 펙사벡 중단 공시 전까지 신라젠 주식 292만765주를 매각한 바 있다. 모두 2515억원어치였다. 이 가운데 문 대표는 지난 2017년 12월28일부터 이듬해인 2018년 1월2일부터 3일 동안 신라젠 주식 156만2844주를 팔았다. 매각대금은 1325억원이었다.

최대주주 매각 소식에 투자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신라젠은 진화에 나섰다. 문 대표가 주식을 처분한 목적은 세금 납부와 체무변제였다고 설명했다. 펙사벡 임상 과정에 이상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문 대표가 주식 매각 직후 부동산에 손을 댄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이 일었다.

문 대표는 지난 2018년 3월 한남동 소재 단독주택과 해당 부지를 매입했다. 문 대표 부인 곽모씨는 그 다음달에 부동산 개발·공급업체 ‘람다홀딩스’를 설립했다. 주식 처분 4개월 안에 발생한 일이었다.


일각에선 문 대표의 신라젠 주식 매각 배경을 부동산 투자로 꼽았다. 다만 별다른 추가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 문 대표를 향한 의심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관련 의혹에 무게가 실릴 만한 근거가 확인됐다.

임상 중단 전 주식 매각 1325억 확보
부인·특수관계 부동산 회사 속속 설립

문 대표 부인 곽모씨는 람다홀딩스를 설립한 뒤 ‘주상복합단지 상가 분양권’을 취득하고 ‘호텔 신축사업’에 투자금을 유치했다. 람다홀딩스가 뛰어든 2건의 부동산사업은 ‘오르페움’을 브랜드로 내세우는 회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람다홀딩스 임원은 2명으로 대표이사 곽모씨와 감사 김모씨다. 오르페움을 앞세운 회사들의 대표이사는 다름 아닌 람다홀딩스 감사 김모씨다. 람다홀딩스와 오르페움 관련 회사들은 ‘특수관계자’로 분류된다. 공교롭게도 관련 회사들은 문 대표가 신라젠 주식을 처분한 이후 설립됐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람다홀딩스는 ‘독산 오르페움 타워’서 분양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독산 오르페움 타워는 주상복합단지다. 주변에는 지하철역과 고속도로가 위치해 있어 강남권 진입이 용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산 오르페움 타워의 위탁사는 ‘㈜오르페움독산’이다. 대표이사는 김모씨다. 오르페움독산은 상가 일부를 람다홀딩스에 분양했다. 람다홀딩스는 지난 2018년 분양대금으로 67억2000여만원을 오르페움독산에 지급했다. 오르페움독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거래는 특수관계자 거래로 명시됐다. 람다홀딩스는 상가 일부를 분양 받은 만큼, 분양사업에 나설 것으로 분석된다.


오르페움독산은 지난 2018년 ‘오르페움제이차’라는 회사에게 117억1000만원을 투자 받기도 했다. 이곳 대표이사 역시 김모씨다.

특수관계 회사
손잡고 함께

람다홀딩스는 호텔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강원도 속초시에 신규 설립될 ‘오르페움호텔’이 그 대상이다. 호텔은 지하2층에서 지상20층 크기의 생활숙박시설로 모두 150세대를 수용할 수 있다.

공사 발주는 ‘오르페움제일차’서 맡았다. 김모씨가 대표이사인 회사다. 오르페움제일차는 지난 2018년 4월 호텔 부지를 매입했다. 이후 한 신탁회사가 수탁한 상태다. 오르페움제이차도 호텔사업과 관련이 있다.

람다홀딩스는 오르페움제일차, 오르페움제이차와 투자약정을 맺었다. 람다홀딩스는 지난해 오름페움제일차에 75억원을 투자했다. 지난 2018년에는 오르페움제이차에 120억원을 투자했다. 모두 195억원이다.

투자 내용에 따르면 람다홀딩스는 총사업비와 기타 제반 지출 경비 일체를 제외하고 발생 경상이익의 85%를 지급받게 된다.
 

람다홀딩스의 투자는 특수관계자 거래로 분류됐다. 오르페움제일차 등은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통해 람다홀딩스에게 받은 투자금을 특수관계자 거래에 적시했다.

람다홀딩스는 특수관계자 회사를 통해 분양사업과 호텔 투자에 나섰고, 모두 262억원이 사용됐다.

주목할만한 점은 관련 회사들의 설립 시기다. 람다홀딩스는 지난 2018년 4월9일 설립됐다. 오르페움제일차는 같은 날 개설됐다. 오르페움제이차는 그 다음달인 5월29일에 세워졌다. 오르페움일차와 오르페움이차의 지점 설립일 역시 람다홀딩스와 동일하다.

매각 시점
사업 시점

종합해보면 문 대표는 지난 2017년 말 주식 매각으로 1325억원을 확보했고 ▲한남동 고가 단독주택 매입 ▲람다홀딩스 설립 ▲오르페움제일차 설립 ▲오르페움제이차 설립 등이 5개월 안에 차례로 이뤄졌다. 부동산사업도 진행됐다. 문 대표의 신라젠 주식 매각 배경에 부동산사업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에 무게가 실리는 셈이다.

문 대표 일가가 부동산사업을 지속할 가능성도 확인됐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곽모씨는 지난해 11월21일 ‘라무스’라는 부동산 개발·공급업체를 추가로 설립했다. 라무스 임원은 람다홀딩스와 마찬가지로 대표이사 곽모씨, 감사 김모씨다.

 


눈길이 가는 건 라무스의 주소지다. 라무스는 서울 마포구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김모 대표이사의 오르페움제일차, 오르페움제이차도 같은 주소를 사용한다. 이들의 지점마저 주소지가 같다. 5개 업체가 한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이들은 모두 소호 사무실에 주소지를 등록한 상태였다.

람다홀딩스도 소호 사무실에 주소지만 등록했다. 같은 주소지에 ‘오르페움㈜’라는 회사도 함께 있었다. 람다홀딩스와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이곳 대표이사 역시 김모씨다.

추가로 확인된 라무스와 오르페움은 주상복합단지 분양사업과 호텔 신축사업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 회사를 통한 별도의 부동산사업이 준비 또는 진행 중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일요시사>는 람다홀딩스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사무실을 찾았지만 회사 관계자들은 출근하지 않았다. 전화번호마저 등록돼있지 않아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람다홀딩스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오르페움은 전화번호가 등록돼있어 관계자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계자는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자마자 “통화가 어렵다”며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분양권 취득·호텔 투자에 262억 사용
사측 “신라젠·문 대표와 무관한 별건”


<일요시사>는 오르페움제일차, 오르페움제이차에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신호음만 계속될 뿐이었다. 오르페움독산과 연락이 닿았지만 김모씨는 출근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모씨의 연락처를 문의했지만 관계자는 자신을 분양대행사 직원이라며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라젠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곽모씨의 부동산 사업에 대해 “별개의 건”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 관계자는 “신라젠이나 문 대표와 연관이 있었다면 이미 검찰서 수사했을 것이고 언론에도 보도가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문 대표의 1325억원에 대해 “60∼70%는 세금 변제를 위해 사용됐고 일부는 BW(신주인수권부사채) 관련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사용됐다”면서도 “세금과 부채 해결에 1325억원이 모두 사용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신라젠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문 대표를 비롯한 대주주 3인의 주식 처분에 대한 사적 이익 취득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신라젠 측은 “지난 2017년 5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부산지방국세청 세무조사 당시 BW가 증여세 부과 대상으로 결정돼 당시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세금 1700억원(증여세 1000억원+양도세 700억원)이 부과됐다”며 “이와 함께 BW 행사를 목적으로 의사 주주들에게 대여한 주식 부채가 총 310만주로 3000억원(2018년 1월 평가금액)에 해당됐다”고 설명했다.

문 대표를 비롯한 신라젠 대주주 3인에게 부과된 세금이 모두 4700억원이었다는 것이다.

이어 “개인 자산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기 때문에 보유주식으로 현물납세를 하고자 했지만, 주식으로 세금 납부가 불가하다는 부산지방국세청의 통보를 지난 2017년 12월24일 받았다”며 “세금 납부를 위해 부득이하게 주식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세금 때문에
부득이 처분”

신라젠 측은 “일부 언론서 대주주 부당이익으로 거론하고 있는 수천억원은 국세청 요구에 따라 이미 세금으로 납부한 상태”라며 “사적 이익으로 취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주주 3인 중 세금과 부채를 모두 해결한 사람은 없기에 항간에 떠도는 수천억원 부당 이익 취득이라는 허위 기사는 사실이 아니며, 향후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기사화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은상 한남동 집 가압류 왜?

문은상 신라젠 대표가 대량으로 주식을 처분한 뒤 매입한 한남동 소재 고가 단독주택이 현재 가압류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문 대표는 지난 2018년 3월26일 해당 주택과 부지를 모두 매입한 바 있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건물과 토지 모두 지난 6일을 기준으로 가압류됐다.

등기원인은 ‘서울남부지방법원의 추징보전명령에 의한 검사의 명령’으로 적시됐다.

등기부등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추징보전액은 854억8570만1600원이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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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