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라젠 문은상 일가 수상한 부동산 투자 추적

속초 호텔·독산 타워에 260억 썼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문은상 신라젠 대표는 지난 2017년 말 주식을 대거 처분해 1325억원을 확보한 바 있다. 당시 사측은 세금 납부와 채무변제를 위해서였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문 대표 일가는 주식 매각 후 부동산사업에 착수했다. 사용된 자금 규모만 260억원대. 막대한 사업자금은 어디서 나왔을까.
 

문은상 신라젠 대표는 미공개 정보로 보유 주식을 대거 매각하고 손실을 회피한 의혹을 받고 있다. 발단은 ‘펙사백(면역항암제 후보 물질) 임상시험 중단 공고’였다. 펙사벡은 신라젠을 코스닥 시가총액 2위에 올려준 일등공신이었다. 한때 신라젠 주가는 13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펙사벡 임상시험 중단 사실이 공개되면서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그 많은 돈 
어디서 났나

신라젠 관계자들은 의혹에 휩싸였다. 문 대표 등은 펙사벡 중단 공시 전까지 신라젠 주식 292만765주를 매각한 바 있다. 모두 2515억원어치였다. 이 가운데 문 대표는 지난 2017년 12월28일부터 이듬해인 2018년 1월2일부터 3일 동안 신라젠 주식 156만2844주를 팔았다. 매각대금은 1325억원이었다.

최대주주 매각 소식에 투자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신라젠은 진화에 나섰다. 문 대표가 주식을 처분한 목적은 세금 납부와 체무변제였다고 설명했다. 펙사벡 임상 과정에 이상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문 대표가 주식 매각 직후 부동산에 손을 댄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이 일었다.

문 대표는 지난 2018년 3월 한남동 소재 단독주택과 해당 부지를 매입했다. 문 대표 부인 곽모씨는 그 다음달에 부동산 개발·공급업체 ‘람다홀딩스’를 설립했다. 주식 처분 4개월 안에 발생한 일이었다.


일각에선 문 대표의 신라젠 주식 매각 배경을 부동산 투자로 꼽았다. 다만 별다른 추가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 문 대표를 향한 의심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관련 의혹에 무게가 실릴 만한 근거가 확인됐다.

임상 중단 전 주식 매각 1325억 확보
부인·특수관계 부동산 회사 속속 설립

문 대표 부인 곽모씨는 람다홀딩스를 설립한 뒤 ‘주상복합단지 상가 분양권’을 취득하고 ‘호텔 신축사업’에 투자금을 유치했다. 람다홀딩스가 뛰어든 2건의 부동산사업은 ‘오르페움’을 브랜드로 내세우는 회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람다홀딩스 임원은 2명으로 대표이사 곽모씨와 감사 김모씨다. 오르페움을 앞세운 회사들의 대표이사는 다름 아닌 람다홀딩스 감사 김모씨다. 람다홀딩스와 오르페움 관련 회사들은 ‘특수관계자’로 분류된다. 공교롭게도 관련 회사들은 문 대표가 신라젠 주식을 처분한 이후 설립됐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람다홀딩스는 ‘독산 오르페움 타워’서 분양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독산 오르페움 타워는 주상복합단지다. 주변에는 지하철역과 고속도로가 위치해 있어 강남권 진입이 용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산 오르페움 타워의 위탁사는 ‘㈜오르페움독산’이다. 대표이사는 김모씨다. 오르페움독산은 상가 일부를 람다홀딩스에 분양했다. 람다홀딩스는 지난 2018년 분양대금으로 67억2000여만원을 오르페움독산에 지급했다. 오르페움독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거래는 특수관계자 거래로 명시됐다. 람다홀딩스는 상가 일부를 분양 받은 만큼, 분양사업에 나설 것으로 분석된다.


오르페움독산은 지난 2018년 ‘오르페움제이차’라는 회사에게 117억1000만원을 투자 받기도 했다. 이곳 대표이사 역시 김모씨다.

특수관계 회사
손잡고 함께

람다홀딩스는 호텔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강원도 속초시에 신규 설립될 ‘오르페움호텔’이 그 대상이다. 호텔은 지하2층에서 지상20층 크기의 생활숙박시설로 모두 150세대를 수용할 수 있다.

공사 발주는 ‘오르페움제일차’서 맡았다. 김모씨가 대표이사인 회사다. 오르페움제일차는 지난 2018년 4월 호텔 부지를 매입했다. 이후 한 신탁회사가 수탁한 상태다. 오르페움제이차도 호텔사업과 관련이 있다.

람다홀딩스는 오르페움제일차, 오르페움제이차와 투자약정을 맺었다. 람다홀딩스는 지난해 오름페움제일차에 75억원을 투자했다. 지난 2018년에는 오르페움제이차에 120억원을 투자했다. 모두 195억원이다.

투자 내용에 따르면 람다홀딩스는 총사업비와 기타 제반 지출 경비 일체를 제외하고 발생 경상이익의 85%를 지급받게 된다.
 

람다홀딩스의 투자는 특수관계자 거래로 분류됐다. 오르페움제일차 등은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통해 람다홀딩스에게 받은 투자금을 특수관계자 거래에 적시했다.

람다홀딩스는 특수관계자 회사를 통해 분양사업과 호텔 투자에 나섰고, 모두 262억원이 사용됐다.

주목할만한 점은 관련 회사들의 설립 시기다. 람다홀딩스는 지난 2018년 4월9일 설립됐다. 오르페움제일차는 같은 날 개설됐다. 오르페움제이차는 그 다음달인 5월29일에 세워졌다. 오르페움일차와 오르페움이차의 지점 설립일 역시 람다홀딩스와 동일하다.

매각 시점
사업 시점

종합해보면 문 대표는 지난 2017년 말 주식 매각으로 1325억원을 확보했고 ▲한남동 고가 단독주택 매입 ▲람다홀딩스 설립 ▲오르페움제일차 설립 ▲오르페움제이차 설립 등이 5개월 안에 차례로 이뤄졌다. 부동산사업도 진행됐다. 문 대표의 신라젠 주식 매각 배경에 부동산사업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에 무게가 실리는 셈이다.

문 대표 일가가 부동산사업을 지속할 가능성도 확인됐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곽모씨는 지난해 11월21일 ‘라무스’라는 부동산 개발·공급업체를 추가로 설립했다. 라무스 임원은 람다홀딩스와 마찬가지로 대표이사 곽모씨, 감사 김모씨다.

 


눈길이 가는 건 라무스의 주소지다. 라무스는 서울 마포구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김모 대표이사의 오르페움제일차, 오르페움제이차도 같은 주소를 사용한다. 이들의 지점마저 주소지가 같다. 5개 업체가 한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이들은 모두 소호 사무실에 주소지를 등록한 상태였다.

람다홀딩스도 소호 사무실에 주소지만 등록했다. 같은 주소지에 ‘오르페움㈜’라는 회사도 함께 있었다. 람다홀딩스와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이곳 대표이사 역시 김모씨다.

추가로 확인된 라무스와 오르페움은 주상복합단지 분양사업과 호텔 신축사업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 회사를 통한 별도의 부동산사업이 준비 또는 진행 중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일요시사>는 람다홀딩스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사무실을 찾았지만 회사 관계자들은 출근하지 않았다. 전화번호마저 등록돼있지 않아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람다홀딩스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오르페움은 전화번호가 등록돼있어 관계자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계자는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자마자 “통화가 어렵다”며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분양권 취득·호텔 투자에 262억 사용
사측 “신라젠·문 대표와 무관한 별건”


<일요시사>는 오르페움제일차, 오르페움제이차에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신호음만 계속될 뿐이었다. 오르페움독산과 연락이 닿았지만 김모씨는 출근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모씨의 연락처를 문의했지만 관계자는 자신을 분양대행사 직원이라며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라젠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곽모씨의 부동산 사업에 대해 “별개의 건”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 관계자는 “신라젠이나 문 대표와 연관이 있었다면 이미 검찰서 수사했을 것이고 언론에도 보도가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문 대표의 1325억원에 대해 “60∼70%는 세금 변제를 위해 사용됐고 일부는 BW(신주인수권부사채) 관련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사용됐다”면서도 “세금과 부채 해결에 1325억원이 모두 사용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신라젠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문 대표를 비롯한 대주주 3인의 주식 처분에 대한 사적 이익 취득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신라젠 측은 “지난 2017년 5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부산지방국세청 세무조사 당시 BW가 증여세 부과 대상으로 결정돼 당시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세금 1700억원(증여세 1000억원+양도세 700억원)이 부과됐다”며 “이와 함께 BW 행사를 목적으로 의사 주주들에게 대여한 주식 부채가 총 310만주로 3000억원(2018년 1월 평가금액)에 해당됐다”고 설명했다.

문 대표를 비롯한 신라젠 대주주 3인에게 부과된 세금이 모두 4700억원이었다는 것이다.

이어 “개인 자산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기 때문에 보유주식으로 현물납세를 하고자 했지만, 주식으로 세금 납부가 불가하다는 부산지방국세청의 통보를 지난 2017년 12월24일 받았다”며 “세금 납부를 위해 부득이하게 주식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세금 때문에
부득이 처분”

신라젠 측은 “일부 언론서 대주주 부당이익으로 거론하고 있는 수천억원은 국세청 요구에 따라 이미 세금으로 납부한 상태”라며 “사적 이익으로 취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주주 3인 중 세금과 부채를 모두 해결한 사람은 없기에 항간에 떠도는 수천억원 부당 이익 취득이라는 허위 기사는 사실이 아니며, 향후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기사화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은상 한남동 집 가압류 왜?

문은상 신라젠 대표가 대량으로 주식을 처분한 뒤 매입한 한남동 소재 고가 단독주택이 현재 가압류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문 대표는 지난 2018년 3월26일 해당 주택과 부지를 모두 매입한 바 있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건물과 토지 모두 지난 6일을 기준으로 가압류됐다.

등기원인은 ‘서울남부지방법원의 추징보전명령에 의한 검사의 명령’으로 적시됐다.

등기부등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추징보전액은 854억8570만1600원이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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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