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명이나 죽었는데…잊혀진 이천 화재, 왜?
38명이나 죽었는데…잊혀진 이천 화재, 왜?
  • 장지선 기자
  • 승인 2020.05.11 13:33
  • 호수 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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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유족 뒤로 정치 싸움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재인정부 들어 대형 화재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황금연휴 직전인 지난 4월 끝자락에도 물류창고서 불이 나 40여명이 화마에 목숨을 잃었다. 불길은 한국 사회의 곪은 부분을 또 다시 드러냈다.
 

▲ 이천 화재 현장 ⓒ문병희 기자
▲ 이천 화재 사건 현장 ⓒ문병희 기자

38.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건으로 사망한 노동자 수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이천의 한 물류창고 공사현장서 불이 나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폭발과 함께 지하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작업자들은 대피할 겨를도 없이 작업 도중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연휴 전날

우레탄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가 용접 불꽃에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화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 화재현장에선 여러 차례 폭발음이 들렸다고 한다. 이 과정서 엄청난 양의 유독가스가 발생했고, 피해자들은 미처 대피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이천 화재 수사본부는 화재가 발생한 공사현장의 시공사 현장사무소와 공사 관계 업체 사무실 등 7곳을 대상으로 지난 4일 압수수색을 벌였다. 공사 설계·시공과 관련한 자료를 확보한 경찰은 관련법 위반 사항이 없는지 등을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참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에는 건축주인 한익스프레스의 서울 서초구 본사 사무실과 시공사인 주식회사 건우의 충남 천안 본사 사무실, 감리업체, 설계업체 등 4개 업체 5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서 이천 화재 참사를 언급하며 과거에 일어났던 유사한 사고가 대형 참사로 되풀이됐다는 점에서 매우 후진적이고 부끄러운 사고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고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하며 “2008년 냉동창고 화재 이후 유사한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대책을 마련했고, 정부도 화재 안전대책을 강화해 왔는데도 현장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질책했다.

문정부 들어 또 대형 화재
사망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

실제 이번 이천 화재 참사는 20081월 이천의 한 냉동창고서 일어난 화재 사건과 판박이다. 당시 화재로 지하층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40명이 숨졌다. 당시에도 유증기에 불티가 옮겨 붙어 연쇄 폭발과 함께 불길과 유독가스가 건물 내부로 번져 작업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또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마찬가지로 불에 취약하고 한 번 불이 나면 대형 화재로 번지는 자재로 알려진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구조물이었다는 점도 유사하다. 소방당국은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때에도 스티로폼과 우레탄폼 단열재가 내장된 샌드위치 패널을 대형 참사의 주범으로 꼽았다. 12년 전 참사 당시 아무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은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이번 참사는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참사와 똑같다당시 재발 방지 대책은 수립되지 않았고 참사를 일으킨 책임기업은 고작 벌금 2000만원으로 처벌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건설업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428명으로 제조업 206명보다 더 많다며 건설현장의 안전사고가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천 화재는 수차례 위험 경고에도 공사를 강행해서 일어난 명백한 인재라며 중대 사고를 일으킨 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천 화재 분향소 ⓒ문병희 기자
▲ 이천 화재 분향소 ⓒ문병희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서 주재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서 “38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있어서는 안 될 사고로 큰 상처를 입은 유가족들에 대한 지원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관계 부처는 범정부TF를 중심으로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현장 이행력이 담보되는 근본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유가족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지난 6일 열린 합동추모식은 유가족들의 오열로 울음바다가 됐다. 추모식 사회자가 아직도 당신의 웃음이 떠오릅니다.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며 추모사를 읽자 유가족들은 눈물을 터트렸다. 부지불식간에 아빠와 남편, 아들을 잃은 유가족들은 영정 사진 앞에서 차마 발길을 떼지 못했다.

제천 화재보다 많은데…
이낙연 논란만 되풀이

일각에선 이천 화재 참사가 과거 다른 사고들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38명의 사망자 가운데 대부분은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였다. 12년 전과 유사한 원인으로 참사가 반복됐다는 점에서 다시금 노동환경의 민낯을 드러냈지만 주목도는 낮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이천 화재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과 나눈 대화가 더 화제가 되는 실정이다.

이 전 총리는 지난 5일, 이천 화재 유가족들과 만난 자리서 국회의원으로서 제도 개선에 나서달라고 요구하는 유족들의 호소에 제가 현직에 있지 않고 책임질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단언해 말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에 격양된 유가족들이 이럴 거면 가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가겠다면서 그대로 자리를 뜬 사실이 알려져 구설에 올랐다.

미래통합당 장제원 의원은 이 전 총리의 행보에 대해 이성만 있고 눈물은 없는 정치의 진수를 본다고 비판했다. 민생당서도 유가족들에 대한 이 당선자의 대응은 적벌치 못했다조문의 순수성을 넘어 정치인들의 이미지 제고 수단으로 의심받기 충분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전 총리가 제 수양이 부족했다. 부끄럽다고 말하면서 사안은 일단락되는 모양새지만 화재 원인을 밝히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 대책을 호소하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보다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여기에 이 전 총리에 대한 비판 공세를 야당에서 이어간다면 참사 자체보다 정치 갈등이 부각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천 화재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이유로 화재가 발생한 다음날부터 부처님 오신 날, 근로자의 날 등 황금연휴가 이어진 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또 문재인정부 들어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밀양 세종병원 화재·고성 산불·강릉 산불 등 화재로 인한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화재 불감증이 생긴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화재 불감증?

이천 화재 합동분향소에 조문을 다녀왔다는 한 시민은 너무나 많은 노동자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추모 분위기는 과거에 비해 덜한 것 같다. 제천 화재나 밀양 화재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합동분향소를 방문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정치권서도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제천 화재는 지난 201712월 스포츠센터서 불이 난 사건으로 29명이 사망했다. 밀양 화재는 20181월 세종병원서 불이 나 47명이 사망한 사고다. 두 화재 당시 문 대통령은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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