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명이나 죽었는데…잊혀진 이천 화재, 왜?

망자·유족 뒤로 정치 싸움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재인정부 들어 대형 화재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황금연휴 직전인 지난 4월 끝자락에도 물류창고서 불이 나 40여명이 화마에 목숨을 잃었다. 불길은 한국 사회의 곪은 부분을 또 다시 드러냈다.
 

▲ 이천 화재 현장 ⓒ문병희 기자

38.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건으로 사망한 노동자 수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이천의 한 물류창고 공사현장서 불이 나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폭발과 함께 지하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작업자들은 대피할 겨를도 없이 작업 도중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연휴 전날

우레탄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가 용접 불꽃에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화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 화재현장에선 여러 차례 폭발음이 들렸다고 한다. 이 과정서 엄청난 양의 유독가스가 발생했고, 피해자들은 미처 대피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이천 화재 수사본부는 화재가 발생한 공사현장의 시공사 현장사무소와 공사 관계 업체 사무실 등 7곳을 대상으로 지난 4일 압수수색을 벌였다. 공사 설계·시공과 관련한 자료를 확보한 경찰은 관련법 위반 사항이 없는지 등을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참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에는 건축주인 한익스프레스의 서울 서초구 본사 사무실과 시공사인 주식회사 건우의 충남 천안 본사 사무실, 감리업체, 설계업체 등 4개 업체 5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서 이천 화재 참사를 언급하며 과거에 일어났던 유사한 사고가 대형 참사로 되풀이됐다는 점에서 매우 후진적이고 부끄러운 사고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고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하며 “2008년 냉동창고 화재 이후 유사한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대책을 마련했고, 정부도 화재 안전대책을 강화해 왔는데도 현장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질책했다.

문정부 들어 또 대형 화재
사망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

실제 이번 이천 화재 참사는 20081월 이천의 한 냉동창고서 일어난 화재 사건과 판박이다. 당시 화재로 지하층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40명이 숨졌다. 당시에도 유증기에 불티가 옮겨 붙어 연쇄 폭발과 함께 불길과 유독가스가 건물 내부로 번져 작업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또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마찬가지로 불에 취약하고 한 번 불이 나면 대형 화재로 번지는 자재로 알려진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구조물이었다는 점도 유사하다. 소방당국은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때에도 스티로폼과 우레탄폼 단열재가 내장된 샌드위치 패널을 대형 참사의 주범으로 꼽았다. 12년 전 참사 당시 아무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은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이번 참사는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참사와 똑같다당시 재발 방지 대책은 수립되지 않았고 참사를 일으킨 책임기업은 고작 벌금 2000만원으로 처벌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건설업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428명으로 제조업 206명보다 더 많다며 건설현장의 안전사고가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천 화재는 수차례 위험 경고에도 공사를 강행해서 일어난 명백한 인재라며 중대 사고를 일으킨 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천 화재 분향소 ⓒ문병희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서 주재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서 “38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있어서는 안 될 사고로 큰 상처를 입은 유가족들에 대한 지원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관계 부처는 범정부TF를 중심으로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현장 이행력이 담보되는 근본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유가족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지난 6일 열린 합동추모식은 유가족들의 오열로 울음바다가 됐다. 추모식 사회자가 아직도 당신의 웃음이 떠오릅니다.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며 추모사를 읽자 유가족들은 눈물을 터트렸다. 부지불식간에 아빠와 남편, 아들을 잃은 유가족들은 영정 사진 앞에서 차마 발길을 떼지 못했다.

제천 화재보다 많은데…
이낙연 논란만 되풀이

일각에선 이천 화재 참사가 과거 다른 사고들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38명의 사망자 가운데 대부분은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였다. 12년 전과 유사한 원인으로 참사가 반복됐다는 점에서 다시금 노동환경의 민낯을 드러냈지만 주목도는 낮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이천 화재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과 나눈 대화가 더 화제가 되는 실정이다.

이 전 총리는 지난 5일, 이천 화재 유가족들과 만난 자리서 국회의원으로서 제도 개선에 나서달라고 요구하는 유족들의 호소에 제가 현직에 있지 않고 책임질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단언해 말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에 격양된 유가족들이 이럴 거면 가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가겠다면서 그대로 자리를 뜬 사실이 알려져 구설에 올랐다.

미래통합당 장제원 의원은 이 전 총리의 행보에 대해 이성만 있고 눈물은 없는 정치의 진수를 본다고 비판했다. 민생당서도 유가족들에 대한 이 당선자의 대응은 적벌치 못했다조문의 순수성을 넘어 정치인들의 이미지 제고 수단으로 의심받기 충분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전 총리가 제 수양이 부족했다. 부끄럽다고 말하면서 사안은 일단락되는 모양새지만 화재 원인을 밝히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 대책을 호소하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보다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여기에 이 전 총리에 대한 비판 공세를 야당에서 이어간다면 참사 자체보다 정치 갈등이 부각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천 화재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이유로 화재가 발생한 다음날부터 부처님 오신 날, 근로자의 날 등 황금연휴가 이어진 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또 문재인정부 들어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밀양 세종병원 화재·고성 산불·강릉 산불 등 화재로 인한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화재 불감증이 생긴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화재 불감증?


이천 화재 합동분향소에 조문을 다녀왔다는 한 시민은 너무나 많은 노동자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추모 분위기는 과거에 비해 덜한 것 같다. 제천 화재나 밀양 화재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합동분향소를 방문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정치권서도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제천 화재는 지난 201712월 스포츠센터서 불이 난 사건으로 29명이 사망했다. 밀양 화재는 20181월 세종병원서 불이 나 47명이 사망한 사고다. 두 화재 당시 문 대통령은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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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