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윤석열 검찰총장의 반격카드

라임 몸통 잡고 되치기 한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라임 사태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전 청와대 행정관이 구속된 데 이어 라임 사태의 몸통으로 불리는 인물들의 신병이 차례로 확보되면서 수사 속도에 불이 붙을 전망이다. 정관계 로비 의혹이 불거져 있는 터라 검찰의 칼끝이 어디까지 향할지를 두고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윤석열 검찰총장 ⓒ문병희 기자

라임펀드 환매중단 사태(이하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이 지난달 25일 구속됐다. 이 전 부사장과 함께 경찰에 붙잡힌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도 지난달 26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서울 성북구의 한 주택서 함께 도피생활 중이던 두 사람은 지난달 24일 경찰에 검거됐다.

5개월
도피생활

앞서 라임 사태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간부 출신 김모 전 청와대 행정관도 지난달 18일 구속됐다. 김 전 행정관과 이 전 부사장, 김 전 회장 등 라임 사태와 관련된 인물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검찰 수사가 궤도에 오르고 있다. 16000억원대의 피해가 발생한 만큼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피해자 구제 문제도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라임펀드를 운용한 라임자산운용은 2012년 투자 자문사로 시작했다가 2015년 펀드 운용사로 업종을 바꿨다.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 시점이다. 지난해 7월에는 운용 자산규모가 59000억원을 넘어 국내 1위 헤지펀드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라임은 결국 환매중단을 결정하면서 피해 투자자를 대거 양산했다.

지난해 7월 라임이 펀드 수익률을 돌려막기 한다는 의혹이 한 언론을 통해 제기됐다. 대형증권사들을 끼고 상장사 전환사채(CB)를 장외업체와 편법으로 거래해 펀드 수익률을 관리해 왔다는 의혹이다. 새로운 투자자들의 투자자금을 기존 투자자들의 수익금으로 돌리는 이른바 카드 돌려막기와 비슷한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지난해 8월 라임에 대한 검사에 들어갔다. 이 과정서 이 전 부사장이 펀드를 운용하며 회사 안팎의 자금을 횡령한 정황이 포착됐다. 금감원은 라임 관계자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혐의 등으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불안해진 투자자들은 환매를 요청했지만 라임은 지난해 10월 환매중단을 결정했다.

당시 원종준 라임 대표는 기자회견서 최근 코스닥 시장이 침체하면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주식으로 전환하려던 메자닌 펀드의 수익률이 떨어져 유동성 확보가 어렵게 됐고 결국 환매를 중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메자닌은 건물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라운지 공간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로, 채권과 주식의 중간 위험 단계에 있는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이종필·김봉현·청 전 행정관
핵심인물 구속으로 수사 속도↑

라임은 지난해 10국내 사모채권에 주로 투자하는 플루토 FI D-1국내 메자닌에 주로 투자하는 테티스 2해외 무역금융 관련 자산에 투자하는 플루토 TF 1호 등 3개 모펀드와 157개 자펀드의 환매중단을 선언했다.

지난 1월에도 무역금융 펀드 크레딧 인슈어드(모펀드)16개 자펀드(2949억원 규모)의 환매를 중단했다. 환매중단 펀드는 모펀드 4개와 자펀드 173개로 늘어났고 금액 규모도 총 16679억원으로 확대됐다.

지난해 6조원에 달했던 라임의 사모펀드 운용 규모는 2조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환매중단 펀드 규모가 17000억원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라임이 운용하는 펀드 자산의 80%가량은 환매가 안 되는 상황인 셈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기준 라임 운용 사모펀드는 232개이며, 순자산은 2902억원이다.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지난해 723(22107억원)보다 66.3%(41205억원) 줄었다.
 

▲ 금융감독원 ⓒ문병희 기자

검찰은 지난해 10월 라임의 최대주주였던 코스닥 상장사 리드 경영진 4명을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했고, 이 전 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이 전 부사장은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지난해 11월 잠적했다. 지난해 1월 경기도버스운송업체인 수원여객 횡령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경찰에 수사망에 올랐던 김 전 회장도 지난해 12월 사라졌다.

핵심인물 두 명이 검찰의 수사망을 피해 달아나면서 지지부진했던 수사는 금감원 간부 출신 김 전 청와대 행정관의 등장으로 다시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2월부터 1년간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으로 파견 근무했다.

피해액만
1조6000억

김 전 행정관의 존재는 라임 펀드를 1조원 이상 판매한 대신증권 전 센터장 장모씨가 피해 투자자와 나눈 대화 녹취록에도 등장한다. 그는 녹취록서 라임 사태의 확산을 막고 있다는 취지로 언급됐다. 녹취록에 따르면 장씨는 피해자에게 김 전 행정관의 명함을 보여주며 그가 금융당국의 검사를 막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고 라임의 투자자산 매각을 돕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김 전 행정관은 김 전 회장과 유흥업소서 어울렸으며 스타모빌리티 법인카드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달 18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됐다. 김 전 회장에게 직무상 취득한 정보나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4900만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다.

세 사람 외에도 검찰은 라임 사태에 가담한 인물들을 줄줄이 구속기소한 상태다. 지난달 14일에는 라임펀드 자금이 투입된 상장사의 주가를 조작해 약 83억원을 챙긴 일당을 구속기소했다. 같은달 13일에는 이 전 부사장과 김 전 회장의 도주를 도운 운전기사 2명을 구속 기소했다.

지난달 10일에도 라임펀드의 부실을 숨기고 투자자들에게 수백억원의 상품을 판매한 신한금융투자 임모 전 본부장을 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해 재판에 넘겼고, 이 전 부사장의 공범인 김모 대체투자운용본부장도 구속해 조사 중이다.

검찰은 구속한 피의자들을 대상으로 이 전 부사장과 김 전 회장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라임 사태의 정확한 피해 규모나 범행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신병 확보가 무엇보다 급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난달 24일, 경찰은 이 전 부사장과 김 전 회장의 신병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금융권에도
불똥 튈라

경찰은 지난달 27일 김 전 회장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이날 변호인 입회하에 경기도 버스업체 수원여객의 회삿돈 241억원을 빼돌린 혐의에 대해 김 전 회장을 조사했다. 조사는 11시간 넘게 강도 높게 이어졌다.

이 과정서 경찰은 김 전 회장의 업무수첩 두 권을 압수했는데, 이 중 한 권에는 20페이지 분량으로 업무와 관련된 법인명과 직원, 자금 흐름 내용 등이 적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치권 인사나 로비 대상으로 보이는 명단은 업무수첩 내용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라임 사태의 핵심인물이 모두 검거되면서 향후 검찰 수사가 정관계 로비 쪽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구속된 김 전 행정관과 김 전 회장, 이 전 부사장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면 검찰의 칼끝이 윗선까지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

금융권은 이미 바짝 엎드린 상태다. 금융권에 따르면 검찰은 금감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두 차례 실시한 데 이어 금융위원회도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감독 업무를 총괄하는 당국의 허술한 관리가 집중 타깃이 되는 모양새다. 앞서 검찰은 신한금융투자사와 대신증권, KB증권, 우리은행 등 펀드 판매사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했다.

일각에선 21대 총선 이후 전방위적으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라임 사태 수사를 통해 반전을 꾀할 기회를 잡은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윤석열 검찰은 총선 직후부터 청와대나 여권 인사들이 연루돼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들의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1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거래의혹을 받고 있는 신라젠을 압수수색했다. 신라젠은 라임 사태 건과 유사하게 정관계 유력인사 연루설이 끊이지 않았던 사건이다. 검찰은 총선 이후로 미뤄놨던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도 수사를 재개했다. ‘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수사는 앞으로 좀 더 강도 높게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정관계 로비 의혹 밝혀질까
검찰 칼끝 더 ‘윗선’으로?

문제는 정치지형의 변화와 시간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총선서 유례없는 승리를 거뒀다. 지역구서만 과반(163) 의석을 얻었고, 비례 위성정당이 얻은 의석(17)과 합치면 단독으로 180석을 확보한 상태다. 헌법을 고치는 일 빼고는 의회서 뭐든지 할 수 있는 절대권력을 손에 넣었다.


검찰 개혁을 내세운 집권여당의 총선 승리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범은 가시권에 들어왔다. 당장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공수처장 후보를 선정하는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선 공수처장 후보자 추천 권한을 두고 합종연횡에 돌입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초대 공수처장으로 여러 인물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 인사들이나 검사 출신 친문(친 문재인) 인사들이 거론된다. 지난달 27일 퇴임한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도 그중 한 사람이다. 김 전 차관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관련 논란이 불거졌을 무렵 검찰 개혁을 강조했던 바 있다.

공수처 자체가 검찰 권력을 축소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만큼 누가 공수처장이 되든 윤 총장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검찰이 라임 사태나 신라젠 등의 수사를 서두르는 것도 7월 출범이 예정돼있는 공수처 때문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 이종필

또 이 과정서 윤 총장 흔들기가 이뤄질 수 있다는 예상도 제기된다. 실제 총선 이후부터 윤 총장에 대한 비판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당선자를 비롯, 더불어시민당 우희종 대표,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 등은 선거 기간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윤 총장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검찰이 울산시장 선거개입 수사를 재개했지만 친여 세력이 이를 무력화시키려 조국 대 검찰프레임을 가동시키고 있다참 징그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이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해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재소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언론보도를 전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사퇴 압박
한방 먹이나

진 전 교수는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의 첫 구절을 인용하며 님은 갔지만 저들은 님을 보내지 않았다조국은 갔지만 문제를 처리하는 조국 모델을 그대로 남아 정권을 향한 다른 수사 등에도 요긴히 사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선거개입 수사는 청와대 부서 전체가 연루돼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며 전방위적인 검찰 흔들기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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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