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킬’ 이낙연의 한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5.04 10:55:31
  • 호수 12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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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도 당했었는데…추락만 남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서울 종로 당선인은 대권 레이스서 독주하고 있다. 당장 그의 자리를 위협할 잠룡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2년. 길어도 너무 길다. 친문(친 문재인)의 견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 최근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서 11개월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독주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당선인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서 2위 그룹에 크게 앞섰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지난달 20일부터 24일까지 조사하고 지난달 28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 따르면, 이 당선인은 40.2%를 기록했다. 

전국구로
떴지만…

11개월 연속 1위이자, 개인 최고 기록이다. 2위인 이재명 경기도지사(14.4%)에 비해 약 26% 포인트 앞선 수치다(자세한 여론조사 개요 및 결과는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예상된 결과였다. 이 당선인은 ‘종로 대첩’을 통해 자신을 추적하던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를 낙마시켰다.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를 제거한 셈이다. 황 전 대표의 지지율은 21대 총선 이후 큰 폭으로 추락했다.

황 전 대표가 재기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이 당선인을 견제할 야권 후보가 사라진 것이다. 이는 대권 레이스서 이 당선인의 ‘독주’를 의미한다.


종로서의 승리는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보선·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만 3명을 배출한 지역이 종로다. 이 때문에 대권을 노리는 후보라면 누구나 종로를 탐내 한다. 정치권서 종로가 ‘대권의 교두보’로 불리는 이유다. 

이 당선자는 자신의 승리는 물론, 민주당의 압승도 견인했다. 이 당선인은 앞서 같은 당 이해찬 대표와 함께 ‘투톱’을 결성,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선거전을 치렀다. 종로서의 승리로 이 당선인은 자신이 당내 가장 경쟁력있는 잠룡이라는 인식을 친문 지지층에게 각인시켰다.

이 당선인은 이번 21대 총선을 통해 ‘전국구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이전까지는 이 당선자에게 ‘호남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전남 영광서 태어났으며,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또 역대 총선서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서만 4선을 했다. 이후에는 전남도지사를 역임한 바 있다.

종로서의 승리, 전국 지원유세라는 대선주자급 행보로 이 당선자는 ‘호남 정치인’이라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이미지를 완전히 뗄 수 있게 됐다. 이를 증명하듯 21대 총선 과정서 유 권자들은 이 당선자가 나타나면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일부 유권자들은 이 당선자에게 ‘대통령’이라고 외쳤다.

지지율 40%↑“막을 자 없다”
포용리더십? 지금부터 줄서나 

이번 21대 총선은 이 당선자의 전국적 인지도를 확인하는 선거기도 했다.

가히 ‘이낙연 대세론’이라 말할 만하다. 이는 민주당 내부서 이 당선인에 대한 활용가치가 그만큼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후보들이 이 당선인에게 구애를 보내는 일이 이를 증명한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들 중 상당수가 이 당선인과의 면담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몇몇은 이미 이 당선인과 티타임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이 당선인의 지지를 받기 위함이다. 이 당선인의 존재는 이번 원내대표 경선의 주요 변수 중 하나다.

그러나 이는 이 당선인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 당선인은 정치권 내 대표적인 ‘신사’로 통한다. 그간 안정적이고 포용적인 리더십을 보여왔다. 문재인정부서 최장수 총리 기록을 경신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의 리더십 덕분이다.

포용적 리더십은 이 당선인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두루두루 잘 지낼 수는 있지만, 한 세력의 열성 지지를 얻기는 힘들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 과정서도 정치권은 이 당선인이 특정 인물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중론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일요시사>를 통해 “누구를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비쳐지느냐의 문제”라며 “총선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특정 (원내대표 경선)후보를 언급했다가 괜한 억측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의 특정 후보 지지가 자칫 ‘세 가르기’로 비쳐질 수 있다는 뜻이다.

사방이 적
내편 어디에?

이 당선자는 친문·비문(비 문재인) 중 어느 한 계파에 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반면 원내대표 경선은 계파 대리전으로 불릴 만큼 세 대결이 치열한 선거다. 대세론까지 언급되는 잠룡 1위가 특정 후보를 언급하는 순간 반대쪽 진영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정치권은 이 당선인의 약점으로 당내 지지 세력이 약하다는 점을 꼽아왔다. 지난 2014년 7월 전남도지사로 당선된 이후 이 당선인은 줄곧 여의도서 멀어져 있었다. 20대 국회만 봐도 ‘이낙연계’라 할 만한 국회의원은 설훈, 이개호, 오영훈 의원 등 손에 꼽을 정도다.
 

▲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문병희 기자

대권을 위해서는 열성 지지 세력이 필수적이다. 정치권은 이 당선인이 자신의 이 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21대 총선 과정서 민주당 후보 38명의 후원회장을 자청했다고 평가한다. 

이들이 향후 ‘이낙연계’로 발전할지는 미지수다. 이 당선인이 후원회장을 맡았던 후보들 중에는 청와대 출신은 물론, 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이었던 이해찬 대표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영입한 인사도 있다. 이들은 향후 친문행을 선택할 공산이 크다.

이 당선인의 대권 가능성은 맷집과 비례한다. 2년 동안 친문의 견제를 얼마나 견뎌내느냐에 따라 대권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느냐가 결정된다. 이는 고건 전 국무총리의 사례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고 전 총리는 한때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대권에 더욱 가까웠다. 그의 대중적 인기는 지금의 이 당선인 못지않았다. 그러나 참여정부 국무총리직을 내려놓은 이후 관료 출신의 한계를 드러내며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친문 견제
견뎌내나

부침을 겪던 고 전 총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마디로 대권가도에 치명적 타격을 받았다. 지난 2006년 12월21일 노 전 대통령은 고 전 총리를 참여정부의 첫 국무총리로 기용한 것에 대해 ‘실패한 인사’라고 평가했다. 

이에 고 전 총리 측은 “고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국민의 몫”이라며 반박했다. 친노(친 노무현)와 고 전 총리 간의 갈등은 고 전 총리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듬해 고 전 총리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당선인은 비노(비 노무현)·비문 성향에 가깝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누구를 꼽느냐는 질문에 이 당선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고 곧잘 답해왔다. 이 당선인을 정치계로 발탁한 사람도 다름 아닌 김 전 대통령이다. 
 

▲ 홍준표 미래통합당 당선인

김 전 대통령이 창당한 새천년민주당과 노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사이서도 이 당선인은 새천년민주당의 잔류를 선택한 바 있다. 정치권이 이 당선인을 친노·친문이라고 분류하지 않는 이유다. 

원내대표 경선과 8월 전당대회 사이가 친문 견제의 분수령이다. 이 당선자인은 당 대표 출마를 고심 중이다. 이 외에도 홍영표·우원식·이인영·송영길·김두관·김부겸 의원 등이 유력한 당권주자로 꼽힌다.


이 당선인 입장에서 당권은 ‘독이 든 성배’다. 민주당 내에서는 이 당선인이 당권을 차지해 잠룡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일각에선 ‘문재인식’ 대권 모델을 제시한다.

고건 VS 친노 재현?
친문과의 불편한 동침

문 대통령은 지난 2015년 2월부터 1년여간 민주당 당 대표를 역임한 뒤, 20대 총선을 앞두고 대표직서 물러났다. 이후 문 대통령은 19대 대선에 출마해 대권을 잡았다. 마찬가지로 이 당선인 역시 오는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서 민주당 당권을 잡았다가 2021년 3월 대표직을 사퇴, 20대 대선으로 직행한다면 대권까지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임기다. 민주당 당헌·당규 상 대선에 출마하려는 자는 대선 1년 전부터 당직을 맡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차기 대선은 2022년 3월에 열린다. 즉 이 당선자가 당권을 잡더라도 2021년 3월 이전에는 대표직을 내려와야 한다. 7개월짜리 ‘시한부 당 대표’인 셈이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반면 이 당선인이 당권을 건너뛰고 곧바로 대권으로 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당선인이 당권에 도전하면 다른 당권주자들 사이서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이 당선인의 당권 도전이 과욕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친문의 집중 견제 대상이 될 수 있다. 총선만큼 당권 경쟁도 진흙탕 대결이다. 역대 가장 무난했다고 평가받는 8·25전당대회 때도 이해찬·송영길·김진표 등 당권주자들은 선거일이 다가오자 상대 후보에 대한 공세를 펼친 바 있다.

21대 총선서 ‘친문의 힘’이 증명된 만큼, 오는 민주당 전당대회 때도 후보들 간 친문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친문 경쟁의 포화 속에서 계파색이 옅은 이 당선자가 자칫 타깃이 될 수 있다. ‘집안 대결로 생긴 상처가 더욱 쓰리다’는 말은 정치권의 오래된 속설 중 하나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 당선인은 친문과 당권-대권을 분리하는 ‘전략적 제휴’로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당내 주류 계파의 지원을 받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통과하는 시나리오다.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반면 이 당선인이 주인공으로 나서서 당권은 물론, 대권까지 잡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문제는 이럴 경우 친문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힌다는 점이다. 이 당선인과 함께 유력 대권주자로 언급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비문이다. 당내 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친문이 ‘친문 대권주자’를 표방하며 세 결집에 나선다면 대권 지형도는 얼마든지 요동칠 수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낙연 ‘거리 두기’ 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서울 종로 당선인은 자신의 공약 이행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 당선인 측은 지난달 26일 “이 당선인이 지난달 24일 자신의 첫 공약인 신분당선 서북부연장 사업의 추진 상황을 서울시 관계자들로부터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신분당선 서북부연장 사업뿐 아니라 지난달 25일에는 ‘홍제천 산책로 조성’ 공약 관련 소식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알렸다.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등 당의 민감한 사안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이 당선인은 지난달 17일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 이후 당과 관련된 언급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당내 기반이 약한 이 당선인이 섣불리 당내 현안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한동안 중립을 지키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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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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