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김정은 위중설 미스터리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4.27 10:21:47
  • 호수 12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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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생일에 사라진 위원장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진실은 무엇일까. 국내외 복수의 매체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건강 위중설을 보도했다. 진실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여기에 더해 한미 당국의 발표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심지어 미국 내 매체들도 진실 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일요시사>는 ‘김정은 위중설’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 최근 ‘건강이상설’에 휩싸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지난 16일, 태양절을 맞아 북한 고위 간부들이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태양절 불참
“불경한 일”

태양절 행사는 지난 15일에 열렸다. 이날은 김일성 북한 주석의 생일로 북한 최대 명절 중 하나다. 매년 열병식과 군중대회 등을 실시하며 성대하게 치른다. 김 위원장은 집권 시작인 지난 2012년 이후 단 한 번도 태양절 참배를 거른 적이 없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에도 불참했다.

이에 ‘건강이상설’이 불거졌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지난 17일 ‘김정은의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 불참과 건강이상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분석 자료를 통해 ‘북한과 같은 군주제적 스탈린주의 체제서 북한의 고위 간부들은 태양절 참배를 했지만, 정작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은 참배하지 않는 ‘불경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며 ‘상황이 어느 정도 심각한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김 위원장의 건강이나 신변에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이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이후 건강이상설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왔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지난 20일, 북한 내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을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12일, 평안북도 묘향산 지구 내에 위치한 김씨 일가 전용병원 향산진료소서 심혈관 시술을 받고 인근 향산 특각(별장)에 머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외신으로 확산됐고 건강이상설은 ‘위중설’로 진화했다. 미국 CNN은 지난 21일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심각한 위험(grave danger)’에 빠진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어 미국 정부가 김 위원장이 심혈관 수술 후 위중한 상태에 빠졌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도 밝혔다.

일본 언론도 합세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22일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으로의 권한 대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잠행→건강이상설→위중설 확산
가족력? 심혈관 시술 가능성도

한미일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에서 지난해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회가 열렸을 때 김 위원장이 사망 등을 이유로 통치할 수 없게 될 경우 ‘권한을 모두 김여정에게 집중한다’는 내부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또 <요미우리>는 소식통을 인용, 김 위원장의 고혈압과 심장병, 당뇨병 등이 악화돼 프랑스 의사단이 1월 북한을 방문했다는 정보도 흘러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 ▲▲ 판문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김 부부장은 김일성 주석의 손녀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딸이다. 속칭 ‘백두혈통’으로 통한다. 앞서 김 위원장이 스위스에서 유학하던 시절 김 부부장이 함께 했다. 김 부부장은 북한 내 2인자로 김 위원장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소식들은 평소 김 위원장이 보여준 건강과 관련한 징후와 더해져 주목받았다. 2012년 김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건강 문제는 주기적으로 관심을 끌어왔다. 비만으로 인한 고혈압과 당교 등 각종 지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14년 김 위원장은 한 달여 동안 잠행에 들어간 적이 있다. 당시에도 위중설이 가능성 높게 제기됐다. 김 위원장은 이후 지팡이를 짚고 공식석상에 나타났다. 이유는 발목의 낭종을 제거해서였다.

특히 심혈관 쪽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가족력이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각각 1994년과 2011년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외신 잇따라
와병설 보도

징후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난 지난 2018년 4월27일 당시, 김 위원장이 연설을 하던 중 수차례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지난 2016년 김 위원장의 체중이 꾸준히 늘어 130kg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의 건강과 북한 체제 급변 가능성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아왔다. ‘김정은 평전’인 <위대한 계승자>의 저자 애나 파이필드 워싱턴포스트 베이징 지국장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를 통해 ‘김 위원장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보기에도 안 좋은 건강 상태’라며 ‘김정은의 키는 5피트7인치(약 170㎝)인데 몸무게는 300파운드(약 136kg)’라고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한국 석좌인 정 박 박사도 같은 날 자신의 SNS를 통해 ‘김 위원장의 나쁜 건강과 조기 사망 가능성은 북한에 관한 여러 잠재적 시나리오서 언제나 와일드카드였다’고 게재했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청와대가 입을 열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CNN 보도 직후 문자메시지를 통해 ‘현재까지 북한 내부에 특이 동향이 식별되지 않고 있다’며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과 관련해 확인해줄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강원도 모처에 있는 특각(별장)에 머물며 주변 지역을 비공개로 현지 지도하는 등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정부 당국자의 말도 나왔다. 
 

▲ ▲▲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미국 정부의 발표도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백악관서 김 위원장이 위독하다는 언론 보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그런 보도들이 나왔는데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모른다”며 “나는 그(김 위원장)가 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만약 그가 언론 보도에서 말하는 종류의 상태에 있다면 그건 매우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NN 보도를 많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미 입장
미묘한 차이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지난 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김 위원장의 상태는 알지 못하며,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지난 23일 국무부 청사 기자회견서 “나는 어떤 것도 더할 게 없다”며 “(트럼프)대통령이 지난 저녁에 말한 대로 우리는 그곳(북한)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존 하이튼 미국 합참 차장은 지난 23일 “나는 뭔가를 발견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신문 기사를 계속 읽어왔고 읽고 있다”며 “나는 정보상으로 그런 것(김 위원장 건강 문제)들에 관해 확인하거나 부인할 어느 것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해줄 수 있다”고 답했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 우리 정부는 “특이 동향은 없다” “지방서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등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 정부는 “모른다” “예의주시 중이다” 등 긍정도, 부정도 아닌 유보적인 입장을 내놨다.

불씨는 국내 정치권에도 옮겨 붙었다.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출신인 미래통합당 태구민 당선인(서울 강남갑)은 지난 21일 김 위원장에 대한 보도가 외신에서 나왔음에도 북한서 별다른 반응이 없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탈북자 출신의 미래한국당 지성호 당선자 역시 지난 21일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1월 말부터 2월 초쯤 김 위원장이 심장·혈관 문제로 의사가 필요한 상태였다”며 “최근 수술한 것으로 보이고, 현재 북한이 ‘섭정 체제’에 들어갔다고 한다”고 한발 더 나아갔다.

코로나19 감염설까지…
‘평양 봉쇄설’ 언급도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같은 날 국회 소통관서 취재진과 만나 “정부 당국자는 사실무근이라고 전해왔지만, 김정은의 신변에 뭔가 이상한 징후가 있지 않느냐는 판단”이라며 “여러 상황을 보면 김 위원장의 신변에 대해 충분히 이상설을 제기할 만한 징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윤 위원장이 제기한 징후는 ▲북한이 최고인민회의를 지난 10일에 개최하기로 했다가 12일로 연기한 점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은 점 ▲지난 15일 태양절에 참석하지 않은 점 ▲최근 평양이 완전 봉쇄된 점 등이다.

각종 해석까지 더해지고 있다. 김 위원장이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를 피해 평양이 아닌 원산서 격리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묘향산 인근서 심혈관 시술을 받았다는 앞선 보도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 ▲▲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도쿄신문>은 지난 23일 복수의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원산 체류는 (코로나19를 피하기 위한)자주 격리일 것”이라며 “경호원들 가운데 코로나19 감염자가 발견돼 김 위원장이 경비태세에 불안함을 느낀 것이 원산행의 이유라는 정보가 흘러 다닌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가 단순 해프닝이라고 말하는 측도 있다.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는 측근도 알기 힘들 정도로 북한 내에서도 최고 수준의 기밀이다. 알 만한 사람은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와 여동생 김 부부장, 현송월·조용원 당 부부장,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정도다. 이 때문에 북한 매체를 통해 발표되지 않는 이상 김 위원장의 건강에 대한 정보는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복수의 북한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첩보인가
오보인가

김 위원장이 공식석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그의 건강과 관련한 의구심은 계속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이 그동안 보인 건강이상에 대한 징후와 북한의 폐쇄성 때문이다. 북한은 공식 입장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운 특수성을 갖고 있다. 그만큼 북한은 정보제공에 인색하며, 각 국가의 대북 정보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 수미 테리 전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은 “한미 정보당국이 (김 위원장의 건강에 대한 정보를)모른다고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국의 ‘김정은 유고’ 시나리오

미국 정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유고했을 때를 대비해 광범위한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2일 <폭스뉴스>는 미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현재 불분명하지만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고려한 광범위한 비상계획이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북한 개입에 대처하는 계획이 그 중 하나다.

김 위원장의 신변에 이상이 발생해 체제가 흔들린다면, 기아에 허덕이던 주민들이 대거 중국으로 탈북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폭스뉴스>는 이 같은 일이 발생했을 시 미국 정부는 중국이 북한 체제에 개입하는 상황에 대비해 비상계획을 수립했다고 전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비상계획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 지도자의 사망, 또는 내부 쿠데타 등 돌발 상황을 관리하는 차원서 비상계획을 점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건강 위중설이 불거지고 난 후 미 국방부 관계자가 비상계획을 언급한 점은 시점 상 미국 정부가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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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