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김정은 위중설 미스터리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4.27 10:21:47
  • 호수 12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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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생일에 사라진 위원장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진실은 무엇일까. 국내외 복수의 매체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건강 위중설을 보도했다. 진실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여기에 더해 한미 당국의 발표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심지어 미국 내 매체들도 진실 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일요시사>는 ‘김정은 위중설’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 최근 ‘건강이상설’에 휩싸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지난 16일, 태양절을 맞아 북한 고위 간부들이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태양절 불참
“불경한 일”

태양절 행사는 지난 15일에 열렸다. 이날은 김일성 북한 주석의 생일로 북한 최대 명절 중 하나다. 매년 열병식과 군중대회 등을 실시하며 성대하게 치른다. 김 위원장은 집권 시작인 지난 2012년 이후 단 한 번도 태양절 참배를 거른 적이 없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에도 불참했다.

이에 ‘건강이상설’이 불거졌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지난 17일 ‘김정은의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 불참과 건강이상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분석 자료를 통해 ‘북한과 같은 군주제적 스탈린주의 체제서 북한의 고위 간부들은 태양절 참배를 했지만, 정작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은 참배하지 않는 ‘불경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며 ‘상황이 어느 정도 심각한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김 위원장의 건강이나 신변에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이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이후 건강이상설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왔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지난 20일, 북한 내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을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12일, 평안북도 묘향산 지구 내에 위치한 김씨 일가 전용병원 향산진료소서 심혈관 시술을 받고 인근 향산 특각(별장)에 머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외신으로 확산됐고 건강이상설은 ‘위중설’로 진화했다. 미국 CNN은 지난 21일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심각한 위험(grave danger)’에 빠진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어 미국 정부가 김 위원장이 심혈관 수술 후 위중한 상태에 빠졌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도 밝혔다.

일본 언론도 합세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22일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으로의 권한 대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잠행→건강이상설→위중설 확산
가족력? 심혈관 시술 가능성도

한미일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에서 지난해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회가 열렸을 때 김 위원장이 사망 등을 이유로 통치할 수 없게 될 경우 ‘권한을 모두 김여정에게 집중한다’는 내부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또 <요미우리>는 소식통을 인용, 김 위원장의 고혈압과 심장병, 당뇨병 등이 악화돼 프랑스 의사단이 1월 북한을 방문했다는 정보도 흘러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 ▲▲ 판문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김 부부장은 김일성 주석의 손녀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딸이다. 속칭 ‘백두혈통’으로 통한다. 앞서 김 위원장이 스위스에서 유학하던 시절 김 부부장이 함께 했다. 김 부부장은 북한 내 2인자로 김 위원장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소식들은 평소 김 위원장이 보여준 건강과 관련한 징후와 더해져 주목받았다. 2012년 김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건강 문제는 주기적으로 관심을 끌어왔다. 비만으로 인한 고혈압과 당교 등 각종 지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14년 김 위원장은 한 달여 동안 잠행에 들어간 적이 있다. 당시에도 위중설이 가능성 높게 제기됐다. 김 위원장은 이후 지팡이를 짚고 공식석상에 나타났다. 이유는 발목의 낭종을 제거해서였다.

특히 심혈관 쪽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가족력이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각각 1994년과 2011년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외신 잇따라
와병설 보도

징후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난 지난 2018년 4월27일 당시, 김 위원장이 연설을 하던 중 수차례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지난 2016년 김 위원장의 체중이 꾸준히 늘어 130kg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의 건강과 북한 체제 급변 가능성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아왔다. ‘김정은 평전’인 <위대한 계승자>의 저자 애나 파이필드 워싱턴포스트 베이징 지국장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를 통해 ‘김 위원장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보기에도 안 좋은 건강 상태’라며 ‘김정은의 키는 5피트7인치(약 170㎝)인데 몸무게는 300파운드(약 136kg)’라고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한국 석좌인 정 박 박사도 같은 날 자신의 SNS를 통해 ‘김 위원장의 나쁜 건강과 조기 사망 가능성은 북한에 관한 여러 잠재적 시나리오서 언제나 와일드카드였다’고 게재했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청와대가 입을 열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CNN 보도 직후 문자메시지를 통해 ‘현재까지 북한 내부에 특이 동향이 식별되지 않고 있다’며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과 관련해 확인해줄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강원도 모처에 있는 특각(별장)에 머물며 주변 지역을 비공개로 현지 지도하는 등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정부 당국자의 말도 나왔다. 
 

▲ ▲▲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미국 정부의 발표도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백악관서 김 위원장이 위독하다는 언론 보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그런 보도들이 나왔는데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모른다”며 “나는 그(김 위원장)가 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만약 그가 언론 보도에서 말하는 종류의 상태에 있다면 그건 매우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NN 보도를 많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미 입장
미묘한 차이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지난 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김 위원장의 상태는 알지 못하며,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지난 23일 국무부 청사 기자회견서 “나는 어떤 것도 더할 게 없다”며 “(트럼프)대통령이 지난 저녁에 말한 대로 우리는 그곳(북한)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존 하이튼 미국 합참 차장은 지난 23일 “나는 뭔가를 발견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신문 기사를 계속 읽어왔고 읽고 있다”며 “나는 정보상으로 그런 것(김 위원장 건강 문제)들에 관해 확인하거나 부인할 어느 것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해줄 수 있다”고 답했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 우리 정부는 “특이 동향은 없다” “지방서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등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 정부는 “모른다” “예의주시 중이다” 등 긍정도, 부정도 아닌 유보적인 입장을 내놨다.

불씨는 국내 정치권에도 옮겨 붙었다.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출신인 미래통합당 태구민 당선인(서울 강남갑)은 지난 21일 김 위원장에 대한 보도가 외신에서 나왔음에도 북한서 별다른 반응이 없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탈북자 출신의 미래한국당 지성호 당선자 역시 지난 21일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1월 말부터 2월 초쯤 김 위원장이 심장·혈관 문제로 의사가 필요한 상태였다”며 “최근 수술한 것으로 보이고, 현재 북한이 ‘섭정 체제’에 들어갔다고 한다”고 한발 더 나아갔다.

코로나19 감염설까지…
‘평양 봉쇄설’ 언급도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같은 날 국회 소통관서 취재진과 만나 “정부 당국자는 사실무근이라고 전해왔지만, 김정은의 신변에 뭔가 이상한 징후가 있지 않느냐는 판단”이라며 “여러 상황을 보면 김 위원장의 신변에 대해 충분히 이상설을 제기할 만한 징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윤 위원장이 제기한 징후는 ▲북한이 최고인민회의를 지난 10일에 개최하기로 했다가 12일로 연기한 점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은 점 ▲지난 15일 태양절에 참석하지 않은 점 ▲최근 평양이 완전 봉쇄된 점 등이다.

각종 해석까지 더해지고 있다. 김 위원장이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를 피해 평양이 아닌 원산서 격리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묘향산 인근서 심혈관 시술을 받았다는 앞선 보도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 ▲▲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도쿄신문>은 지난 23일 복수의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원산 체류는 (코로나19를 피하기 위한)자주 격리일 것”이라며 “경호원들 가운데 코로나19 감염자가 발견돼 김 위원장이 경비태세에 불안함을 느낀 것이 원산행의 이유라는 정보가 흘러 다닌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가 단순 해프닝이라고 말하는 측도 있다.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는 측근도 알기 힘들 정도로 북한 내에서도 최고 수준의 기밀이다. 알 만한 사람은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와 여동생 김 부부장, 현송월·조용원 당 부부장,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정도다. 이 때문에 북한 매체를 통해 발표되지 않는 이상 김 위원장의 건강에 대한 정보는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복수의 북한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첩보인가
오보인가

김 위원장이 공식석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그의 건강과 관련한 의구심은 계속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이 그동안 보인 건강이상에 대한 징후와 북한의 폐쇄성 때문이다. 북한은 공식 입장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운 특수성을 갖고 있다. 그만큼 북한은 정보제공에 인색하며, 각 국가의 대북 정보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 수미 테리 전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은 “한미 정보당국이 (김 위원장의 건강에 대한 정보를)모른다고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국의 ‘김정은 유고’ 시나리오

미국 정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유고했을 때를 대비해 광범위한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2일 <폭스뉴스>는 미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현재 불분명하지만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고려한 광범위한 비상계획이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북한 개입에 대처하는 계획이 그 중 하나다.

김 위원장의 신변에 이상이 발생해 체제가 흔들린다면, 기아에 허덕이던 주민들이 대거 중국으로 탈북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폭스뉴스>는 이 같은 일이 발생했을 시 미국 정부는 중국이 북한 체제에 개입하는 상황에 대비해 비상계획을 수립했다고 전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비상계획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 지도자의 사망, 또는 내부 쿠데타 등 돌발 상황을 관리하는 차원서 비상계획을 점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건강 위중설이 불거지고 난 후 미 국방부 관계자가 비상계획을 언급한 점은 시점 상 미국 정부가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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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