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37)바다
<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37)바다
  • 황천우 소설가
  • 승인 2020.04.22 09:30
  • 호수 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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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의 사랑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별이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으로 미루어 삼복의 입을 통해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훤히 예견할 수 있었다.

천하의 자유인 허균이 아니라 천하의 난봉꾼 허균으로 일러주었을 터였다.

“그 녀석이 뭐라 이르던가.”

그래도 별의 입이 열리지 않고 몸만 더욱 옹크리고 있었다.

그 사이 사이 슬쩍슬쩍 별의 탱탱한 가슴살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목구멍에서 다시 침이 넘어가고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눈동자

그 모습에 몸 안에 모든 힘이 중심으로 쏠리기 시작했고 그 순간 매창이 인기척을 내며 방으로 들어섰다.

허균을 향해 잠시 미소를 보이던 매창이 방문 가까이에 어색한 자세로 서 있는 별을 보았다.

“왜 거기에 그렇게 서 있느냐.”

“상을 차리고 막 물러나려던 참이었습니다.”

물론 그 말이 정상적으로 흘러나왔을 리 없었다.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시선을 허균에게 주었다.

허균이 그 시선을 모른 체하고 아니, 그보다도 뻣뻣해진 가운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새로이 차려진 상 앞에 자리 잡았다.

“아니, 어디를 갔다 오시기에 이리도 사람을 무료하게 만드는 게요.”

“소녀도 잠시 측간을 다녀오느라. 참, 별이 너도 잠시 이 자리에 앉아 보거라.”

말을 마친 매창이 자리 잡고 앉았다. 

“아씨, 소녀는 밖에서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는데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허균의 귀를 간질이고 있었다.

“일이 있으면 일을 마무리 해야지. 그래야 홀가분하게 쉴 수 있는 노릇이고.”

별을 바라보던 매창의 시선이 허균에게 향했다.

“그러면 일을 마무리하고 바로 이곳으로 오도록 하거라.”

별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급히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나리, 저 아이가 마음에 드시옵니까?”

“허 허, 이 사람은. 쓸데없는 소리를.”

“쓸데없는 소리가 아니고 진심으로 아뢴 것이옵니다.”

매창의 표정이 잔잔했다.

그 표정에서 여타의 다른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진심이오?”

“나리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기꺼이 자리를 마련하겠나이다.”

매창의 차분한 표정이 어색한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허균이 이상한 눈초리로 매창을 바라보았다.

“왜요, 나으리.”

“혹시 그대가 내게 싫증나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어 그런다오.”

매창이 잔잔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나리!”

미소를 보내던 매창이 정색하며 허균을 불렀다.

“말해보구려.”

“나리께서는 남녀 간의 사랑을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남녀 간의 사랑이라…….”

“소녀는 그간의 경험으로 사랑,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은 주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특히 자신이 마음 속 깊이 사랑하는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지요.”

허균이 가만히 매창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 이야기인즉슨, 자신을 위해서 기꺼이 별이란 아이를 주선해 줄 수 있는데 그는 결국 자신에 대한 정 때문이라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었다.

별을 탐내는 난봉꾼의 기질 발휘
매창, 별과의 자리를 권유…거절

“이보게, 매창. 이야기가 너무 난해하구려. 그러니 우리 다른 이야기나 합시다.”

에둘러 이야기를 마친 허균의 손이 다시 술잔으로 움직이자 매창이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안주에 손을 뻗었다.

“그러시다면 그 부분은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찬찬히 생각해보시도록 하시지요. 대신 그 이후의 일이나 말씀해 주시지요.”

“그 후의 일이라면.”

“강릉에서의 생활 말이옵니다.”

순간 묘한 생각이 허균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앞에 앉아 있는 매창이 처음 만난 여인이 아니라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과 함께 해왔던 그런 사람으로 생각됐다.

그윽한 시선으로 매창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의 의미는…….”

“갑자기 야릇한 생각이 들어 그런다오. 그대를 바라보니 우리 사이가 보통 사이가 아니란 생각이 드는구려. 마치 전생에 깊은 인연이었던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단 말이오.”

“송구하옵게도 소녀 역시 그런 생각했사옵니다.”

“허허, 이런 경우를 두고 일심동체니 이심이 전심이라 하는 게 아니겠소.”

“물론이옵니다.”

“나도 그러이.”

“소녀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그 은혜 하해와 같사옵니다.”

허균이 손을 뻗었다.

매창이 그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자신의 손을 뻗어 허균의 손을 잡았다.

매창의 손이 차가웠다. 

“손이 왜 이리도 차갑소.”

“그야…….”

볼일을 보고 닦은 지 얼마 되지 않으니 그런 것 아니겠느냐는 무언의 표정으로 답을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좋소, 내 이야기하리다.”

“나리, 소녀가 어색하옵니다. 이제는 그냥 하라 하십시오.”

“허허, 그것은 아니 될 말이오. 매창이 그러지 않았소. 사랑은 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해주는 것 역시 진정한 의미의 사랑 아니겠소.”

매창의 얼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일부분이라고 한다면 결국 나일 터. 나를 존중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해줘야 함이 당연하지 않겠소.”

“소녀, 하해와 같은 나리의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나이다.”

매창이 약간은 익살맞은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매창이, 강릉의 바다는 파란 것이 하늘 색깔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오. 마치 하늘을 바다에 풀어놓은 듯하오.”

“그렇다면 강릉의 바다 색깔은 바다 색깔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하늘 색깔 때문에 파란 것이 아니온지요.”

파란색의 이유

허균이 강릉의 바다를 그리고 있었다.

매창의 이야기가 맞을 듯했다.

모래 색깔도 또 물속에 있는 바위의 색깔도 파란 색이 아니었는데 바닷물은 온통 파란색이었다. 그렇다면.

“매창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구려. 아니, 그런 모양이오. 파란 하늘을 그대로 품에 안은 듯.” 

“또한 나리의 파랗게 멍든 마음의 색깔이 함께 했고요.”

매창이 가슴시리도록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잠시 매창을 바라보다가 매창의 손을 자신의 얼굴 앞으로 당겼다.

아무런 저항 없이 다가온 매창의 손에 입과 코를 마주 대보았다.

그곳에서 파란 바다 냄새가 일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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