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법으로 본’ 부모 때문에 속 썩는 스타들 백태

낳아만 주고 평생 발목 잡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더 짙다’고 했던가. 화려한 조명 이면에 안타까운 가정사가 있는 연예인들이 적지 않다. 부모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쓰기도 하고, 심지어 부모와의 천륜을 끊은 예도 있다. 부모 때문에 속 썩는 연예인들을 짚어봤다. 
 

▲ (사진 왼쪽부터)배우 김혜수·조여정·차예련

지난해 11월 갑작스럽게 대중의 곁을 떠난 고(故) 구하라는 생전 모친으로 인한, 상처가 깊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구하라가 9세 되던 해 집을 나간 뒤 성인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찾지 않았다. 구하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 컸다. 

부모의 죄
자식의 한

구하라는 지난 20년 동안 모친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친모가 구하라를 찾온 때는, 구하라가 죽은 뒤였다. 구하라의 친오빠인 구호인씨에 따르면 친모는 장례식장에 상복을 입고 엄마 행세를 하려고 했다. 구씨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친모께서 상복을 입겠다고 하셨는데, 동생 지인들에게 ‘내가 하라 엄마다’라고 보여주는 게 저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도저히 상복을 입게 할 수 없었다”며 “친모를 쫓아냈다”고 했다. 

구하라가 사망한 지 일 주일도 되지 않아 친모는 변호사를 선임해 구하라의 재산을 5:5로 나눠 갖자고 주장했다. 이미 오래전에 남매의 친권을 포기한 친모는 구하라의 재산 분할을 요구하고 있는 것.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법상 혈연관계만 있으면 어떤 사정도 보지 않고 무조건 재산을 받을 수 있다. 자녀와 배우자가 1순위, 2순위가 부모다. 자녀와 배우자가 없는 구하라의 상속권자는 친부와 친모다. 


친부는 재산을 포기했지만, 친모는 ‘악마의 탈’을 쓴 듯 법의 빈틈을 노리고 구하라의 재산을 뺏으려 하고 있다. 

유족은 모친의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상속 분할심판 청구를 제기했고, 모친은 이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 서면을 냈다. 

상속, 빚투, 탈세…고통 방식 다양
연예계에 불어 닥친 ‘양육의 비밀’

참다못한 구씨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을 통해 ‘구하라법’에 대한 청원 글을 올렸고, 빠른 기간 안에 10만명의 동의를 얻어냈다. 양육 의무를 현저히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한 해 상속 결격 사유를 추가하는 내용이 구하라 법의 골자다. 하지만 법 개정이 된다고 해도 구하라의 유족들은 소급 적용 금지 원칙에 따라 이 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구씨는 “앞으로도 발생하는 피해자를 막고자 하는 마음서 청원 글을 남겼다”고 밝혔다. 

비록 오빠가 구하라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생전에도 모친으로부터 받은 아픔에 사무쳤던 구하라는 하늘서조차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 고 구하라 ⓒ사진공동취재단

최근에는 배우 장근석이 모친과 불화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장근석의 모친은 수십억원의 세금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배우 장근석의 모친이자 전 소속 연예기획사 트리제이컴퍼니 대표인 전모씨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장근석 측은 지난 2일, 탈세 혐의에 대해서는 사과하면서도, 이는 소속사 대표였던 모친이 전적으로 주도한 일로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장근석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모친의 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참담함을 느끼고 있다. 모친이 보여준 모습에 크게 실망했고, 모든 사실을 숨긴 것에 가족으로서 신뢰마저 잃었다. 단호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늘이 정한 
인연 때문에…

하늘이 정한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천륜이라 한다. 구하라나 장근석처럼 천륜 때문에 상처받은 연예인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 돈 때문이다. 성공한 자식의 이름을 차용해, 빚을 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빚을 지고, 자식이 성공했음에도 갚지 않은 예도 있다. 

이른바 ‘빚투’가 2018년 연예계를 휩쓸었다. 빚투는 가족이나 친척 등이 사기를 치거나 돈을 갚지 않는 물의를 저질렀다는 의혹들이 연이어 폭로되는 일련의 사회 현상을 일컫는다. 

래퍼 마이크로닷은 사실상 빚투 운동의 시발점이자 가장 악질적인 사례로 꼽힌다.

1998년 5월경, 충북 제천서 목장을 했던 마이크로닷의 부모는 주변 지인들에게 사기를 쳐 거액의 돈을 속여 뺏은 뒤 뉴질랜드로 도망갔다. 총 14명의 이웃으로부터 빌린 돈은 4억원여다. 항간서 증언들이 꾸준히 회자됐던 이야기가 사실로 밝혀지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마이크로닷의 부모는 사기 혐의로 기소됐고, 원심은 물론 항소심서도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받았다. 
 

▲ 마이크로닷 ⓒSBS플러스

마이크로닷의 경우 부모의 죄질이 심각했을 뿐 아니라, 마이크로닷 역시 ‘사기의 수혜자’로 취급됐다. 아울러 마이크로닷 측은 대처 과정서도 거짓말을 하는 등 최악의 언행을 보였다. 연예계서 퇴출당한 마이크로닷을 향한 여론은 여전히 냉담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빚투가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대다수 연예인이 빚더미에 앉은 부모로 인해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다. 

불화 그리고
불우한 가정사

대표적으로 배우 김혜수다. 김혜수의 모친은 사업을 이유로 지인들로부터 약 13억원을 빌린 뒤 몇 년이 지나도록 갚지 않았다. 김혜수의 모친으로부터 돈을 빌려준 사람 중에는 현직 국회의원도 포함됐다. 


피해자 대다수가 김혜수의 이름을 믿고 돈을 빌려줬다. 하지만 김혜수는 “이미 십수년 전부터 금전 문제로 인한 불화로 8년 가까이 연락이 끊겼다”며 “어머니가 혼자 행한 일들에 개입한 적 없다. 어머니를 대신해 법적 책임을 질 근거는 없다고 확인된다”고 솔직하게 밝혀 응원을 받았다. 

걸그룹 마마무의 휘인은 아버지의 과거 채무로 인해 빚투 폭로를 당했다. 이에 휘인은 2012년 부모님이 이혼한 사실과 함께, 모친이 결혼 당시 부친의 빚으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았다는 사연을 소상히 전했다.

배우 차예련은 15년 동안 연락을 끊고 살아온 부친의 빚 약 10억원을 갚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차예련은 “아버지의 사건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웠다. 또 내 이름을 믿고 빌려줬다는 말에, 책임감을 느꼈다”며 빚을 갚아온 이유를 말했다.

배우 조여정과 한고은도 아픈 가정사를 고백했다. 조여정은 “과거 부친의 채무로 인해 부모님은 이혼했고, 이후 아버지와 교류가 없었다. 아버지와 연락을 취하려 노력했지만, 거처도 번호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알렸다. 
 

▲ 개그맨 김영희 ⓒ인스타그램

빚투 폭로를 당한 한고은 역시 미국 이민 이후 아버지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졌다고 밝혔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생활비를 지원해주며 힘들게 지낸 것은 물론 여러 채무로 인해 촬영장서 협박을 받고 변제해주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드러난 안타까운 가족사
“천륜 끊었다” 연예인도


이 밖에도 개그맨 황제성, 비투비의 이민혁, 배우 마동석, 김보성, 티파니 등이 빚투를 통해 안타까운 가족사가 공개돼 안타까움을 더한 바 있다. 

빚투 때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부모와의 불화가 대중에 알려진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축구 선수이자 최근 방송인으로 전향한 안정환과 가수 장윤정이 있다. 안정환은 모친과 외삼촌이 1억5000만원을 빌려 갔으나 20년 동안 갚지 않았으며, 이 사건과 별개로 과거 1억원대의 빚으로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안정환은 한 매체와 인터뷰서 “선수로서 성공을 거둔 후 이른바 ‘빚잔치’를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아들 훈련과 양육을 명목으로 빌리신 돈 중에 실제로 제가 받은 지원이나 돈은 한 푼도 없었다”고 밝혔다.

장윤정 역시 모친과 오랜 갈등을 고생했다. 장윤정의 모친은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두 사람의 갈등은 2013년 언론 및 방송 매체를 통해 알려졌고, 극심한 입장 차이를 보이며 진실공방을 벌였다. 

장윤정의 모친과 남동생은 각종 매체에 나와 장윤정이 모친을 정신병원에 넣으려 했다는 점과 음주운전 등을 거론하며 비방했으며, 2014년 장윤정의 소속사에 빚을 갚으라고 소송을 걸기도 했다. 이 소송서 장윤정의 모친은 패소했다.

오래된 상처
공방전으로 

장윤정은 2013년 SBS <힐링캠프>서 “내가 지금까지 번 돈은 어머니가 모두 날렸다. 어느 날 은행서 연락이 와 찾아가 보니 은행 계좌 잔고에 마이너스 10억원이 찍혀 있었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샀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스타들의 부모 불화 대처법
응원과 이미지 훼손 사이

수많은 연예인들이 ‘빚투’ 등 좋지 않은 문제로 대중의 입방아에 올랐다.

빚투가 ‘현대판 연좌제’의 부정적인 성격을 띤다는 걸 대중들도 이미 인지하고 있어, 연예인들에게 꼭 나쁜 여론만 형성된 것은 아니다. 대처방식에 따라 응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의 심리를 읽지 못한 잘못된 언행으로 씻을 수 없을 정도의 이미지가 훼손괸 경우도 있었다.

▲발 빠른 사과와 문제 해결 = 배우 마동석은 빚투 사태 때 가장 교과서적인 대처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부친이 5억원의 채무가 있었다고 밝혀지자 마동석은 소속사를 통해 “금액 부분에서 차이가 있어서 재판을 진행한 부분과 함께 판결에 의해 갚아야 할 금액을 모두 지급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해명했다. 발 빠른 사과와 함께 문제도 깔끔하게 처리한 데 이어, 반성하는 태도까지 보인 그의 언행에 대중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고통스러웠다’ 호소 = 빚투 연예인 대부분이 자신의 상황을 호소하면서 대중의 비판을 면했다. 김혜수와 마마무의 휘인, 한고은, 조여정, 개그맨 황제성 등이 이 사례에 해당한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자신만의 과거사를 소상히 밝히면서, 부모와의 인연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대다수가 더 큰 반박 없이 조용히 넘어가게 됐다. 이를 알게 된 대중은 호소형 연예인들에게 안타깝다면서 동정심을 보였다.

▲돈 갚고 ‘말실수’ = 대표적으로 래퍼 도끼가 이 부분에 해당한다. 값비싼 호텔에서 거주하는 것은 물론 호화스러운 차량을 소유한 것을 일종의 ‘스웨그’로 표현했던 도끼는 모친이 과거 1000만원의 빚을 갚지 않아 논란이 됐다. 그러자 도끼는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저희 어머니는 사기 친 적 없다. 1000만원? 불만 있으면 오라고 해라. 내 한 달 밥값밖에 안 된다”고 해 또 다른 구설수를 낳았다. 어찌 됐든 피해를 받은 피해자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이후 도끼는 피해자를 만나 모두 변제하는 것은 물론, 피해자 측이 “도끼는 정중한 청년”이라고 입장을 내놨지만, 그의 훼손된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도끼는 호된 곤욕을 치르면서 느낀 심경을 신곡 ‘말조심’에 담기도 했다. 

▲잘못된 사실 확인 = 개그우먼 김영희는 빠르게 대처하려다 오히려 더 큰 논란에 휩싸였다. 부모가 6600만원의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았다는 폭로를 당한 김영희는 사실이 아니라면서 ‘재무 변제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는 김영희 부모가 돈을 갚은 것은 10만원이었으며, 이는 ‘입막음용’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대중은 김영희에 대해 비난을 쏟아냈다.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잘못이 있음을 인지한 김영희는 연극 공연에 앞서 무대에 올라 “물의를 빌어 죄송하다”고 사죄한 뒤 각종 방송 및 셀럽파이브 등 활동을 중단했다. 

최근에는 KBS2 <스탠드업! 스페셜>에 출연해 “작년 겨울 무척 추웠지만, 지금은 원만하게 해결됐다. 상처받은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거짓 대응 ‘최악의 수’ = 빚투의 시발점인 마이크로닷은 최악의 사례로 꼽힌다. 첫 의혹이 드러난 후 ‘사실무근’이라고 밝힌 마이크로닷은 피해자가 늘어나자 각 피해자를 만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도 거짓말이었다. 

사태를 해결한다고 해놓고 뉴질랜드로 떠나 잠적했다. 20년 만에 합의에 나섰음에도 이미 ‘골든 타임’은 지났고, 대중의 반응은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싸늘하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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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