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30년 외길’ 신승훈 아직 못다 한 이야기
<이슈&인물> ‘30년 외길’ 신승훈 아직 못다 한 이야기
  • 함상범 기자
  • 승인 2020.04.13 16:20
  • 호수 12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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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티스트’란 꿈을 꾸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민가수’이자 ‘발라드 황제’로 불리는 가수 신승훈. 1990년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한 그의 가수 경력이 벌써 30년이 됐다. 1집부터 7집까지 발매한 모든 음반이 밀리언셀러에 올랐고, 총 1700만장이 팔렸다. 각종 시상식서 수상한 상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가수로서 대체 불가능한 업적을 쌓았다. 30년간 가수로서 한 길을 걸어온 신승훈의 소회를 들어봤다.
 

▲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발라드 황제‘ 신승훈 ⓒ도로시뮤직
▲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발라드 황제‘ 신승훈 ⓒ도로시뮤직

가수 신승훈에게는 무명시절 따윈 없었다. 1집 앨범은 140만장이 팔렸고, 타이틀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시작으로 그가 무대서 부르는 모든 곡이 명곡이 됐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 SBS <인기가요>서 14주 연속 1위를 하는 대기록도 세웠다. 

벌써…
데뷔 30주년

‘처음 그 느낌처럼’ ‘로미오와 줄리엣’ ‘그 후로 오랫동안’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지킬 수 없는 약속’ ‘엄마야’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등 수많은 명곡을 만들고 불렀다. 

첫 노래 ‘미소 속에 비친 그대’의 폭발적인 성공은 지금의 국민가수이자 발라드 황제 신승훈을 만들었다. 신승훈 역시 데뷔곡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저에게 30년 활동 중에 대표곡을 꼽으라면, 어떤 때는 ‘그 후로 오랫동안’이나 ‘보이지 않는 사랑’을 꼽기도 하지만, 올해 한 곡만 뽑아야 한다면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택하고 싶다. 처음 저를 알린 노래고, 그 노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취소됐지만, 세종문화회관서 개최하려 했던 콘서트서 이 곡을 첫 곡으로 넣었다.”

어마어마한 대기록을 쌓은 신승훈은 2020년 30주년을 기념해 새 앨범을 발매했다. ‘My Personas’(마이 페르소나)가 앨범 명이다. 신승훈의 가수로서 남긴 기록을 대변해주는 명함 같은 앨범이라는 차원서 이러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최근에 영화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 ‘나의 페르소나는 송강호’라고 하는 장면을 봤다. 나도 음악 감독이자 PD인데, 나의 페르소나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생겼다. 나의 음악이 내 페르소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연예인이다 보니 명함이 없는데, 명함 대신 이번 앨범을 들려드리고 싶었다. ‘나의 분신 같은 음악’이다.”

무려 4년5개월 만에 내놓은 새 앨범. 더블 타이틀곡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이하 여헤처)와 ‘그러자 우리’를 비롯해 ‘늦어도 11월에는’ ‘내가 나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 ‘Walking in the Rain’(워킹 인 더 레인) ‘사랑, 어른이 되는 것’ ‘Lullaby’(Orchestra Ver.) 등 총 8곡이 수록됐다. 

영원한 ‘국민가수’ ‘발라드 황제’
“스페셜 앨범은 분신과 같은 음악”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만큼 그 의미를 더하며 LP 한정판도 기획했다. 희소성과 소장가치를 높인 이번 앨범은 팬들에게도 큰 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앨범은 신승훈만의 것으로 담았다. 과거 노래를 리메이크하지도 않았고, 다른 장르의 노래를 담는 실험정신도 없다. 오롯이 나의 색깔이 강하게 반영된 음악들이다. 요즘 곡 시작 15초 안에 승부를 봐야 살아남는다는데, ‘여헤처’는 전주만 32초다. 5분이 넘는다.”

노래를 들어보면 1990년대 초반 신승훈이 맹활약하던 시기의 향수가 저절로 떠오른다. 감미로운 멜로디에 서정적인 가사, 맑고 청아한 신승훈의 보이스가 어우러졌다. 듣는 순간 ‘신승훈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모험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다른 걸 하기보다는 ‘발라드 황제’로 불렸던 시절의 음악으로 팬들에게 찾아가고 싶었다. ‘여헤처’는 ‘슬픈데 안 울어? 그럼 내가 울려줄게’라는 마음으로 부른 노래다. 전형적인 신승훈 노래답다. 스태프들 사이서 이 곡과 ‘그러자 우리’가 인기를 얻었다. 정확히 반반이었다. ‘그러자 우리’는 가만히 듣고 있으면 먹먹해지는 노래다. 서정적이면서도 울림이 더 있는 것 같다. 같은 이별의 상황서 ‘여헤처’는 남자의 입장을, ‘그러자 우리’는 여자의 입장을 대변한 것 같다.”

▲ ▲'발라드 황제‘ 신승훈 ⓒ도로시뮤직
▲'발라드 황제‘ 신승훈 ⓒ도로시뮤직

직접 작사·작곡을 하고 무대도 서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오랜 기간을 살아온 신승훈은 최근 전문 작사가에게 작사를 맡기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사랑의 경험을 안 해봤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더 이상 내 감정서 끄집어내려야 끄집어낼 게 없다. 다비치가 리메이크한 ‘두 번 헤어지는 일’이 사랑에 대한 작사를 한 마지막 곡이다. 애쓰지 않아도 문득 생각나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메마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사를 쓰긴 하지만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지고, 너무 투박하게 쓸 것 같았다. 그래서 작사는 내려놓고 있다.”

밀리언 셀러
90년대 향수

대신 사랑에 대한 노래보다는 인생에 대한 가사를 쓰기에 더 적합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인생에 대해서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나 ‘늦어도 11월에는’ ‘내가 나에게’와 같은 곡은 어느덧 과장님, 부장님이 된 팬들이 힘들어할 때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Let it be(렛 잇 비)’와 같은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안 그래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가수는 말보다 노래로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노래를 제작했다. 평이 좋다. 가장 감동적인 댓글은 ‘전 안 힘든 줄 알았는데,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듣고 우는 걸 보니 내가 힘들었었던 것 같다’는 글이었다. 내가 노래를 다시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새 앨범의 노래와 데뷔곡을 비교해도 목소리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맑고 청아하다. 게다가그 사랑의 감성까지 잔뜩 묻어있다. 50대 중반의 나이지만, 2030과 견줘도 손색없는 짙은 감성이다. 여전히 그의 피부는 곱디곱다. 이런 배경에 일각에선 신승훈이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이 들지 않아서’라는 다소 매운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감수성 면에서 철이 들지 않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렇다고 철이 아예 안 든지는 모르겠지만, 맑고 순수한 영혼을 유지하고 싶었다. 순수한 감성이 느껴진다면, 결혼을 하지 않은 것과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내게는 지켜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크지는 않다. 그게 철이랑 연결될 것 같다. 철부지는 되지 않지만, 철들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목소리는 기술인 것 같다. 어떻게 힘을 줘야 과거의 내 목소리가 나오는지 잘 알고 있다. 말할 때는 많이 굵어졌다. 하지만 노래할 때는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과거 목소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음색을 유지하는 게 곧 신승훈의 색을 유지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특별하게 관리했다.” 

LP와 카세트 테이프, CD를 거쳐 스트리밍까지, 음악 콘텐츠의 변화를 모두 몸소 겪어온 가요계의 살아있는 레전드다. 이문세, 유재하, 김현식을 보고 자라 서태지와 H.O.T와 경쟁했고, 싸이와 동방신기, 소녀시대에 이어 BTS의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해온 그. 스스로 ‘가요계의 화석’이라 칭하는 그가 바라본 가요계는 어떠한 흐름에 있을까.

철부지는 
아니지만…

“내가 데뷔했을 때는 가요계가 중심이었다. 토요일 오후 7시면 MBC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했고, 연말 시상식도 가요제가 가장 관심이 높았다. 프라임 타임에 음악이 들렸다. 시청률이 엄청났고, 그 수혜자 중 하나가 나다. 앨범 내면 줄 서서 음반매장에 갔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가 황금기 같다. 레코드서 음원시장까지 왔는데, 예전에는 음악 감상실서 돈을 내고 들었다. 지금은 걸어다니면서 듣는다. 현대인들이 바빠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변화 같다.”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진 만큼, 가수들의 수준도 크게 발전했으며, 전문화됐다고 평가했다. 발라드 가수가 댄스나 소울, R&B 장르도 넘봤는데, 최근에는 한 분야, 한 장르만 고집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자기 장르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아이돌도 마찬가지다. 가수들 모두 각 장르에 치중한다. 퓨저너블한 면이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수준은 더 높아진 것 같다. 싸이나 BTS처럼 빌보드를 휩쓰는 후배들이 나타났다. 파란 눈을 가진 사람들 사이서 그런 성과를 내는 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과거의 추억인 ‘음악 감상실’이 다신 없을 거라는 게 다소 애석하긴 하다.”

그런 변화 속에서 베테랑 가수 위치를 꾸준히 차지했다. 스스로에 대해 대견하다고 평가했다. 30년이 지난 이제야 가수로서의 반환점을 돌았다고 소회를 전했다.

“기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반환점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10주년, 20주년에도 내게 반환점에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뭔가 하나는 짚어야 되는 시기 같다. 신인 시절에 ‘한 획을 그으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점은 찍어가겠다’고 했다. 이제 멀리서 봤을 때 그 점들이 선으로 보이는 것 같다. 내게 대단하다기보다는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자만은 아니지만, 자부심은 있다. 인간 신승훈이 아닌, 가수 신승훈에게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음악만 했던 신승훈이니까.”

가수 신승훈은 절정의 인기스타이자, 누구나가 인정하는 뮤지션이다. 최근에는 프로듀서로 포지션에 변화를 주고 있다. 

가수·뮤지션·PD로 걸어온 발자취
“아티스트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내 음악인생을 정리한다면 10년은 정말 많이 사랑받기만 했던 것 같다. 사랑을 돌려주기엔 너무 바빴다. 행사하러 가도 한 곡만 부르고 다음 행사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끼리 8·26 사태라고 하는데, 올림픽 공원 잔디마당서 1만2000명이 우비를 쓰고 폭우를 맞으며 내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이후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어 전국 투어를 시작했다. 10년부터 20년까지는, 진짜 뮤지션이 되고 싶어 히트곡 보다는 내 노래를 만들려 했고, 콘서트를 진행했다. 20년부터 30년까지는 방송을 많이 했다. MBC <위대한 탄생> M.net <보이스 코리아> 최근 M.net <내안의 발라드> 등이 있다. 대부분 프로듀서로서 나섰다. 현재 로씨라는 신인 가수를 키우고 있다. 30년부터 40년은 프로듀서 신승훈의 삶에 좀 더 집중할 것 같다.”

<보이스 코리아> 이후 그는 수많은 연습생을 휘하에 두었었다. 비록 큰 성공을 맛보지는 못했지만, 후배 가수들을 양성하는 데 꽤 많은 에너지를 투자했다. 그러던 중 최근 대다수 연습생과의 계약을 끊고 오롯이 로씨에 집중하고 있다. 
 

▲ 가수 신승훈 ⓒ도로시뮤직
▲ 가수 신승훈 ⓒ도로시뮤직

“성공하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데뷔곡이 운이 좋아 성공했지만, 많은 가수들이 데뷔부터 잘되지 못한다. 아이유도 데뷔곡 ‘미아’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프로듀서가 내 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습생들을 다 내보냈다.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 애들인데, 자신이 없었다. 책임지지 못하겠더라. 그리고 로씨만 남겼다. 이 친구가 잘되게 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로씨로 인해 음악적인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트렌지한 장르도 많이 섭렵했다. 가수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많이 성장한 기분이다.”

이번 신승훈과의 인터뷰는 코로나19로 인해 화상채팅으로 진행됐다. 그는 ‘마치 유튜버가 된 기분’이라고 생소한 인터뷰 환경의 느낌을 전했다. 시작과 동시에 30주년 인터뷰가 과거에 대한 기념이 아닌 30년을 어떻게 나아가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어필했다. 그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요즘 흔히 가수나 배우 등을 지칭하는 수준의 아티스트가 아닌 뮤지션으로서 프로듀서로서, 혹은 연예인으로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 인물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있었다. 

“과거에 정말 잘나가는 스타였는데, 이제는 하강하고 있다. 어차피 떨어지게 돼있는데, 한 마리의 학처럼 아름답게 하강하고 싶다. 날개를 퍼덕퍼덕 하면서 억지를 부리기보다는, 고고하게 내려오고 싶다. 최근 10년은 내가 ‘아티스트’를 꿈꾸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가수는 노래하는 사람이고 뮤지션은 노래를 갖고 놀 줄 아는 사람이다. 아티스트는 경지에 이르러서 어느 누군가에게 뭔가를 보여줬을 때 ‘장인이 만들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중문화 안에서 그런 결과물을 내놓고 싶다.”

가요계 화석
아름다운 하강

아티스트를 꿈꾸는 신승훈은 새 앨범 발매와 함께 콘서트를 기획 중이다. 4월 공연을 생각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6월까지 기한을 미뤘다. 연습할 시간이 생긴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최대한 매진 중이다. “원래 4월 10일에 국내 공연이었고, 5월 8일에 미국 공연이 예정됐는데, 다 유야무야 됐다. 6월에 수원부터 시작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콘서트를 연습할 엄청난 시간이 주어졌다. 그간 쌓아뒀던 내 울분이나 감정을 이번 콘서트에 다 쏟아내려고 한다. 그러려고 코로나19가 불었었나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이번 콘서트를 통해 내 감정을 향유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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