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30년 외길’ 신승훈 아직 못다 한 이야기

다시 ‘아티스트’란 꿈을 꾸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민가수’이자 ‘발라드 황제’로 불리는 가수 신승훈. 1990년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한 그의 가수 경력이 벌써 30년이 됐다. 1집부터 7집까지 발매한 모든 음반이 밀리언셀러에 올랐고, 총 1700만장이 팔렸다. 각종 시상식서 수상한 상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가수로서 대체 불가능한 업적을 쌓았다. 30년간 가수로서 한 길을 걸어온 신승훈의 소회를 들어봤다.
 

▲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발라드 황제‘ 신승훈 ⓒ도로시뮤직

가수 신승훈에게는 무명시절 따윈 없었다. 1집 앨범은 140만장이 팔렸고, 타이틀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시작으로 그가 무대서 부르는 모든 곡이 명곡이 됐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 SBS <인기가요>서 14주 연속 1위를 하는 대기록도 세웠다. 

벌써…
데뷔 30주년

‘처음 그 느낌처럼’ ‘로미오와 줄리엣’ ‘그 후로 오랫동안’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지킬 수 없는 약속’ ‘엄마야’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등 수많은 명곡을 만들고 불렀다. 

첫 노래 ‘미소 속에 비친 그대’의 폭발적인 성공은 지금의 국민가수이자 발라드 황제 신승훈을 만들었다. 신승훈 역시 데뷔곡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저에게 30년 활동 중에 대표곡을 꼽으라면, 어떤 때는 ‘그 후로 오랫동안’이나 ‘보이지 않는 사랑’을 꼽기도 하지만, 올해 한 곡만 뽑아야 한다면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택하고 싶다. 처음 저를 알린 노래고, 그 노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취소됐지만, 세종문화회관서 개최하려 했던 콘서트서 이 곡을 첫 곡으로 넣었다.”


어마어마한 대기록을 쌓은 신승훈은 2020년 30주년을 기념해 새 앨범을 발매했다. ‘My Personas’(마이 페르소나)가 앨범 명이다. 신승훈의 가수로서 남긴 기록을 대변해주는 명함 같은 앨범이라는 차원서 이러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최근에 영화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이 ‘나의 페르소나는 송강호’라고 하는 장면을 봤다. 나도 음악 감독이자 PD인데, 나의 페르소나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생겼다. 나의 음악이 내 페르소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연예인이다 보니 명함이 없는데, 명함 대신 이번 앨범을 들려드리고 싶었다. ‘나의 분신 같은 음악’이다.”

무려 4년5개월 만에 내놓은 새 앨범. 더블 타이틀곡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이하 여헤처)와 ‘그러자 우리’를 비롯해 ‘늦어도 11월에는’ ‘내가 나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 ‘Walking in the Rain’(워킹 인 더 레인) ‘사랑, 어른이 되는 것’ ‘Lullaby’(Orchestra Ver.) 등 총 8곡이 수록됐다. 

영원한 ‘국민가수’ ‘발라드 황제’
“스페셜 앨범은 분신과 같은 음악”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만큼 그 의미를 더하며 LP 한정판도 기획했다. 희소성과 소장가치를 높인 이번 앨범은 팬들에게도 큰 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앨범은 신승훈만의 것으로 담았다. 과거 노래를 리메이크하지도 않았고, 다른 장르의 노래를 담는 실험정신도 없다. 오롯이 나의 색깔이 강하게 반영된 음악들이다. 요즘 곡 시작 15초 안에 승부를 봐야 살아남는다는데, ‘여헤처’는 전주만 32초다. 5분이 넘는다.”

노래를 들어보면 1990년대 초반 신승훈이 맹활약하던 시기의 향수가 저절로 떠오른다. 감미로운 멜로디에 서정적인 가사, 맑고 청아한 신승훈의 보이스가 어우러졌다. 듣는 순간 ‘신승훈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모험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다른 걸 하기보다는 ‘발라드 황제’로 불렸던 시절의 음악으로 팬들에게 찾아가고 싶었다. ‘여헤처’는 ‘슬픈데 안 울어? 그럼 내가 울려줄게’라는 마음으로 부른 노래다. 전형적인 신승훈 노래답다. 스태프들 사이서 이 곡과 ‘그러자 우리’가 인기를 얻었다. 정확히 반반이었다. ‘그러자 우리’는 가만히 듣고 있으면 먹먹해지는 노래다. 서정적이면서도 울림이 더 있는 것 같다. 같은 이별의 상황서 ‘여헤처’는 남자의 입장을, ‘그러자 우리’는 여자의 입장을 대변한 것 같다.”

▲ ▲'발라드 황제‘ 신승훈 ⓒ도로시뮤직

직접 작사·작곡을 하고 무대도 서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오랜 기간을 살아온 신승훈은 최근 전문 작사가에게 작사를 맡기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사랑의 경험을 안 해봤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더 이상 내 감정서 끄집어내려야 끄집어낼 게 없다. 다비치가 리메이크한 ‘두 번 헤어지는 일’이 사랑에 대한 작사를 한 마지막 곡이다. 애쓰지 않아도 문득 생각나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메마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사를 쓰긴 하지만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지고, 너무 투박하게 쓸 것 같았다. 그래서 작사는 내려놓고 있다.”

밀리언 셀러
90년대 향수

대신 사랑에 대한 노래보다는 인생에 대한 가사를 쓰기에 더 적합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인생에 대해서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나 ‘늦어도 11월에는’ ‘내가 나에게’와 같은 곡은 어느덧 과장님, 부장님이 된 팬들이 힘들어할 때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Let it be(렛 잇 비)’와 같은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안 그래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가수는 말보다 노래로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노래를 제작했다. 평이 좋다. 가장 감동적인 댓글은 ‘전 안 힘든 줄 알았는데,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듣고 우는 걸 보니 내가 힘들었었던 것 같다’는 글이었다. 내가 노래를 다시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새 앨범의 노래와 데뷔곡을 비교해도 목소리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맑고 청아하다. 게다가그 사랑의 감성까지 잔뜩 묻어있다. 50대 중반의 나이지만, 2030과 견줘도 손색없는 짙은 감성이다. 여전히 그의 피부는 곱디곱다. 이런 배경에 일각에선 신승훈이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이 들지 않아서’라는 다소 매운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감수성 면에서 철이 들지 않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렇다고 철이 아예 안 든지는 모르겠지만, 맑고 순수한 영혼을 유지하고 싶었다. 순수한 감성이 느껴진다면, 결혼을 하지 않은 것과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내게는 지켜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크지는 않다. 그게 철이랑 연결될 것 같다. 철부지는 되지 않지만, 철들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목소리는 기술인 것 같다. 어떻게 힘을 줘야 과거의 내 목소리가 나오는지 잘 알고 있다. 말할 때는 많이 굵어졌다. 하지만 노래할 때는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과거 목소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음색을 유지하는 게 곧 신승훈의 색을 유지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특별하게 관리했다.” 

LP와 카세트 테이프, CD를 거쳐 스트리밍까지, 음악 콘텐츠의 변화를 모두 몸소 겪어온 가요계의 살아있는 레전드다. 이문세, 유재하, 김현식을 보고 자라 서태지와 H.O.T와 경쟁했고, 싸이와 동방신기, 소녀시대에 이어 BTS의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해온 그. 스스로 ‘가요계의 화석’이라 칭하는 그가 바라본 가요계는 어떠한 흐름에 있을까.

철부지는 
아니지만…

“내가 데뷔했을 때는 가요계가 중심이었다. 토요일 오후 7시면 MBC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했고, 연말 시상식도 가요제가 가장 관심이 높았다. 프라임 타임에 음악이 들렸다. 시청률이 엄청났고, 그 수혜자 중 하나가 나다. 앨범 내면 줄 서서 음반매장에 갔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가 황금기 같다. 레코드서 음원시장까지 왔는데, 예전에는 음악 감상실서 돈을 내고 들었다. 지금은 걸어다니면서 듣는다. 현대인들이 바빠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변화 같다.”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진 만큼, 가수들의 수준도 크게 발전했으며, 전문화됐다고 평가했다. 발라드 가수가 댄스나 소울, R&B 장르도 넘봤는데, 최근에는 한 분야, 한 장르만 고집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자기 장르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아이돌도 마찬가지다. 가수들 모두 각 장르에 치중한다. 퓨저너블한 면이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수준은 더 높아진 것 같다. 싸이나 BTS처럼 빌보드를 휩쓰는 후배들이 나타났다. 파란 눈을 가진 사람들 사이서 그런 성과를 내는 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과거의 추억인 ‘음악 감상실’이 다신 없을 거라는 게 다소 애석하긴 하다.”

그런 변화 속에서 베테랑 가수 위치를 꾸준히 차지했다. 스스로에 대해 대견하다고 평가했다. 30년이 지난 이제야 가수로서의 반환점을 돌았다고 소회를 전했다.

“기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반환점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10주년, 20주년에도 내게 반환점에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뭔가 하나는 짚어야 되는 시기 같다. 신인 시절에 ‘한 획을 그으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점은 찍어가겠다’고 했다. 이제 멀리서 봤을 때 그 점들이 선으로 보이는 것 같다. 내게 대단하다기보다는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자만은 아니지만, 자부심은 있다. 인간 신승훈이 아닌, 가수 신승훈에게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음악만 했던 신승훈이니까.”

가수 신승훈은 절정의 인기스타이자, 누구나가 인정하는 뮤지션이다. 최근에는 프로듀서로 포지션에 변화를 주고 있다. 

가수·뮤지션·PD로 걸어온 발자취
“아티스트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내 음악인생을 정리한다면 10년은 정말 많이 사랑받기만 했던 것 같다. 사랑을 돌려주기엔 너무 바빴다. 행사하러 가도 한 곡만 부르고 다음 행사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끼리 8·26 사태라고 하는데, 올림픽 공원 잔디마당서 1만2000명이 우비를 쓰고 폭우를 맞으며 내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이후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어 전국 투어를 시작했다. 10년부터 20년까지는, 진짜 뮤지션이 되고 싶어 히트곡 보다는 내 노래를 만들려 했고, 콘서트를 진행했다. 20년부터 30년까지는 방송을 많이 했다. MBC <위대한 탄생> M.net <보이스 코리아> 최근 M.net <내안의 발라드> 등이 있다. 대부분 프로듀서로서 나섰다. 현재 로씨라는 신인 가수를 키우고 있다. 30년부터 40년은 프로듀서 신승훈의 삶에 좀 더 집중할 것 같다.”

<보이스 코리아> 이후 그는 수많은 연습생을 휘하에 두었었다. 비록 큰 성공을 맛보지는 못했지만, 후배 가수들을 양성하는 데 꽤 많은 에너지를 투자했다. 그러던 중 최근 대다수 연습생과의 계약을 끊고 오롯이 로씨에 집중하고 있다. 
 

▲ 가수 신승훈 ⓒ도로시뮤직

“성공하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데뷔곡이 운이 좋아 성공했지만, 많은 가수들이 데뷔부터 잘되지 못한다. 아이유도 데뷔곡 ‘미아’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프로듀서가 내 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습생들을 다 내보냈다.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 애들인데, 자신이 없었다. 책임지지 못하겠더라. 그리고 로씨만 남겼다. 이 친구가 잘되게 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로씨로 인해 음악적인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트렌지한 장르도 많이 섭렵했다. 가수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많이 성장한 기분이다.”

이번 신승훈과의 인터뷰는 코로나19로 인해 화상채팅으로 진행됐다. 그는 ‘마치 유튜버가 된 기분’이라고 생소한 인터뷰 환경의 느낌을 전했다. 시작과 동시에 30주년 인터뷰가 과거에 대한 기념이 아닌 30년을 어떻게 나아가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어필했다. 그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요즘 흔히 가수나 배우 등을 지칭하는 수준의 아티스트가 아닌 뮤지션으로서 프로듀서로서, 혹은 연예인으로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 인물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있었다. 

“과거에 정말 잘나가는 스타였는데, 이제는 하강하고 있다. 어차피 떨어지게 돼있는데, 한 마리의 학처럼 아름답게 하강하고 싶다. 날개를 퍼덕퍼덕 하면서 억지를 부리기보다는, 고고하게 내려오고 싶다. 최근 10년은 내가 ‘아티스트’를 꿈꾸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가수는 노래하는 사람이고 뮤지션은 노래를 갖고 놀 줄 아는 사람이다. 아티스트는 경지에 이르러서 어느 누군가에게 뭔가를 보여줬을 때 ‘장인이 만들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중문화 안에서 그런 결과물을 내놓고 싶다.”

가요계 화석
아름다운 하강

아티스트를 꿈꾸는 신승훈은 새 앨범 발매와 함께 콘서트를 기획 중이다. 4월 공연을 생각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6월까지 기한을 미뤘다. 연습할 시간이 생긴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최대한 매진 중이다. “원래 4월 10일에 국내 공연이었고, 5월 8일에 미국 공연이 예정됐는데, 다 유야무야 됐다. 6월에 수원부터 시작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콘서트를 연습할 엄청난 시간이 주어졌다. 그간 쌓아뒀던 내 울분이나 감정을 이번 콘서트에 다 쏟아내려고 한다. 그러려고 코로나19가 불었었나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이번 콘서트를 통해 내 감정을 향유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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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