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올림픽 격변기 “게임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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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0.04.13 09:18:43
  • 호수 12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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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뉴스] 코로나19 사태로 오는 724일 개막 예정이었던 ‘2020 도쿄올림픽1년 후로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프랑스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근대 올림픽이 부활된 지 124년이 흐른 지금, 그동안 역사적인 격변기에 휘말렸던 역대 올림픽들을 살펴봤다.
 

▲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191274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서 열린 제15IOC 총회서 IOC는 후보지 중의 하나였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탈락시키고 독일 베를린서 1916년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IOC 위원장이었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독일 제국의 황제 카이저 빌헬름 2세에게 전보를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1916년 베를린

독일은 올림픽을 위해 베를린 서쪽 그뤼네발드지역에 3만 석 규모의 주경기장을 건설했다. 당시 올림픽 역사학자 볼커 클루게는 그뤼네발드 주경기장이 올림픽 최초의 스포츠 단지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며 독일 스포츠의 정신적 본거지가 될 중심지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191368일 완공된 주경기장은 카이저 빌헬름 2세의 즉위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기념행사서 독일 경기장(German Stadium)’으로 명명됐다.

올림픽 경기의 진행 프로그램은 게임 위크’(528일부터 64일까지), ‘스타디움 위크’(71일부터 10일까지), ‘세일링 위크’(812일부터 21일까지) 세 부분으로 나눠 계획됐다.


올림픽의 모든 준비는 1914627일과 28일에 열린 테스트 이벤트까지 잘 진행됐다. 그러나 628일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왕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드 대공과 그의 아내가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결국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전쟁에 휘말린 대부분 국가들 간 갈등으로 인해 결국 1916년 베를린에서는 올림픽을 개최할 수 없었다. 쿠베르탱은 전쟁 중 IOC 본부를 스위스의 로잔으로 옮겼고, 독일 제국은 전쟁 기간 중 올림픽 주경기장을 포함한 그뤼네발드의 스포츠 단지를 철거했다.

그후 독일은 동일한 장소에 다시 경기장을 건설해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주경기장으로 사용한다.

1940년 도쿄

20113월 발생한 일본의 관동대지진과 쓰나미 사태 후 2013년 일본의 도쿄가 2020년 대회 개최지로 선정된 것과 동일하게, 일본의 수도인 도쿄는 1923년 대지진 후 올림픽을 통한 재건의 기대를 품었던 1940년 올림픽 후보지였다.

당시 일본 유도의 창시자이자 일본 최초의 IOC 위원인 전설적인 스포츠인 가노 지고로가 1940년 일본의 도쿄올림픽 개최를 주도했다. 도쿄는 1936년 베를린서 열린 제36IOC 회의서 선정됐다.

왕위 계승자 아내 암살로 중단
1·2차 세계대전 때문에 연기


이 대회는 전설 속 일본의 초대 황제였던 진무의 대관식 2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릴 예정이었으나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중일전쟁이 발발하며 개최가 어렵게 됐다.

1938716일 일본 IOC 위원인 토구카와 소에시마는 코메 드 바일레-라투르 당시 IOC 위원장에게 서신을 보내 즉각적인 평화의 전망이 없는 오랜 적대행위가 도쿄 올림픽 개최의 취소를 의미하는 것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명시하며 올림픽 개최 포기를 통보했다. 동시에 같은 해 일본도 홋카이도 최북단 섬 삿포로서 열릴 예정이던 동계 올림픽 개최도 취소됐다.

그후 IOC1940년 하계 올림픽의 대체 개최지로 핀란드의 헬싱키를 선택했고, 동계 올림픽의 대체 개최지는 스위스의 상트 모리츠로 계획했고, 이후 헬싱키를 다시 독일의 가르미슈-파텐키르헨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역시 개최되지 못했다.

일본은 1964년 하계 올림픽을 도쿄서, 1972년 동계 올림픽을 삿포로서 개최하며 결국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가 됐다.

1944년 런던

39IOC 총회는 19396월 런던서 열렸으나 독일군의 군화 소리가 이미 유럽 전역에 울려 퍼지고 있던 시기였다. 독일 제3제국의 군대가 폴란드를 침공한 91일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이 시작됐다.

영국의 런던은 1944년 개최지로 로마(이탈리아), 디트로이트(미국), 로잔(스위스)에 앞서 올림픽 무대를 꾸몄다. 그러나 프랑스처럼 영국은 전쟁 발발 후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독일과의 전쟁에 참가했다.
 

세계를 폐허로 만든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의 항복으로 1945년서야 끝이 났고, 1944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였던 영국 런던과 동계 올림픽 개최지였던 이탈리아 코르티나 담페초서 올림픽은 열리지 않았다.

그후 런던은 1908년 대회 40년 후, 2차 세계대전 종전 3년 만에 두 번째로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다. 1948년 올림픽은 독일의 폭격으로 상처를 입은 영국의 수도 런던서 열렸는데 궁핍한 올림픽으로 알려졌다.

“일본 처음 아니다”
후보지 꼽혔다 포기

전쟁의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은 참가하지 않았고, 1948년 런던올림픽은 전 세계에 재건에 대한 한줄기 희망을 안겨주었다. 동계 올림픽 또한 1948년에 스위스 상트 모리츠서, 1952년에는 노르웨이의 오슬로, 1956년에는 드디어 이탈리아의 코르티나 담페초서 개최됐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대회 기간 중 경기가 중단된 사태가 발생한 올림픽이다. 1972년 뮌헨서 열린 하계 올림픽 기간 중 95일 오전 팔레스타인 테러단체인 검은 9월단(Black September)’의 테러리스트들이 올림픽 선수촌의 이스라엘 팀 숙소에 침입해 인질들을 구금한 사태가 발생했다.

인질극 과정서 11명의 이스라엘 선수, 코치, 심판, 그리고 한 명의 서독 경찰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으로 IOC는 올림픽 기간 중 34시간 동안 모든 경기를 중단시켰다.
 

다음 날 올림픽 경기장서 무고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약 8만명의 관중 앞에서 열렸고 베토벤의 3번 교향곡의 장례 행진곡이 연주됐다. 당시 IOC 위원장 에이버리 브런디지는 게임은 계속돼야 한다고 발표했다.

국제 스포츠 운동은 테러리즘에 굴복하기를 거부했고, 평화, 나눔, 단결이라는 올림픽 정신이 자리를 잡았다. 올림픽과 그 이후, 특히 올림픽 선수촌을 보호하는 면에서, 올림픽 경기에선 보안이 강화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은 이후 자국의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요원들로 해금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에 관계된 테러리스트들을 끝까지 추적해 응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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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