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 몰린’ 검찰 총선 손익계산서

어느 한쪽은 죽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5총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 사태, N번방 사건으로 분위기는 예전만 못해도 결과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특히 청와대를 비롯해 집권여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검찰은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조직의 명운이 갈릴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 윤석열 검찰총장

20171월 정치검찰을 다룬 영화 <더 킹>이 개봉했다. 정우성, 조인성 등 유명 배우를 내세운 영화는 5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는 권력의 향방에 따라, 권력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검찰의 민낯을 조명했다.

칼과 방패
검찰 역할

<더킹>의 한강식(정우성 분)과 박태수(조인성 분)는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를 두고 불안에 떨다가 무속인을 찾는다. 배경은 DJ가 당선됐던 1998년 대선이다. 점집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의 당선을 예측하자 한강식 라인은 묵혀둔 자료를 꺼내든다. 권력의 쓰임새가 다했을 때 이들의 움직임은 더욱 기민해진다.

문재인정부 들어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이면서 청산돼야 할 적폐로 여겨졌다. 적폐로 지목된 곳에 어김없이 검찰의 칼이 겨눠졌다. 그와 동시에 검찰 개혁이 진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검찰 개혁을 주장했고, 그 방안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 ·경 수사권 조정을 내세웠다.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모두 검찰의 힘을 빼는 방안이었기 때문에 반발이 나왔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정부 정책에 몇 차례 반발하긴 했지만 무난히 임기를 마쳤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후임으로 온 이후에도 검찰과 청와대 사이의 기류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급변했다.

문 대통령이 조 전 장관을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이후 그와 관련된 온갖 의혹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검찰이 수사에 뛰어들면서 상황은 대결구도로 바뀌었다. 여기에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이 불거졌고, 최근 들어서는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태(이하 라임 사태)까지 검찰이 들여다보고 있다.

조 전 장관이 사퇴하고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취임하면서 검찰과 법무부는 사사건건 부딪쳤다. 법무부서 인사권을 휘두르면 검찰서 기소권으로 맞서는 식이었다. 그 사이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수사와 기소 주체 분리 방안을 두고도 충돌했다. 검사장회의를 둘러싸고는 집단 반발이 나올 태세였다.

청와대 정조준 수사
선거 후 본격화 조짐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전국적으로 번지면서 검찰과 법무부의 대립은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문제는 총선 이후다. 검찰은 청와대 관계자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는 사건들을 여럿 쥐고 있다. 검찰과 청와대 그리고 정부 사이의 뇌관이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다.

먼저 지난해 8월부터 검찰이 정조준한 조 전 장관을 둘러싼 의혹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진다.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김미리 부장판사)는 가족 비리 및 감찰무마 의혹 등으로 기소된 조 전 장관의 사건을 놓고 재판 절차를 시작했다. 조 전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노환중 부산의료원장,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등도 함께 재판받는다.
 

▲ 최광욱 전 청와대 비서관

조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자녀들의 입시 비리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처음 재판에 넘겨졌다. 딸 조모씨가 201711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부산대 의전원서 받은 장학금 600만원에 대해서는 뇌물수수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또 정 교수의 차명주식 투자와 관련해 공직자윤리법상 백지 신탁의 의무를 어기고 재산을 허위 신고한 혐의도 있다. 지난 1월에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특별감찰 중단을 결정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검찰은 조 전 장관 가족이 연루된 사모펀드 의혹의 핵심 인물인 조 전 장관 5촌 조카의 재판에 정 교수를 증인으로 채택해 달라고 요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승인했다. 당시 검찰은 정 교수가 공범으로 이뤄진 범행은 공모관계와 구성 요건, 준비 과정, 행위, 사후적 범행 은폐 등을 봤을 때 낮지 않다특히 정 교수는 수사 과정서 건강 등을 이유로 충실한 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증인 신문은 오는 20일 열릴 예정이다.

조국 의혹
재판 시작

검찰은 지난 123일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최 전 비서관은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로 일하던 201710월 조 전 장관의 아들 조모씨의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발급해줘 대학원 입시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조씨가 2017110월 자신의 법무법인 사무실서 문서 정리와 영문 번역 업무를 보조하는 인턴활동을 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써주고 지도 변호사명의 인장도 찍은 것으로 파악했다. 조씨는 이 인턴확인서를 고려대와 연세대 대학원 입시에 제출했다. 검찰은 인턴활동 내역이 허위라고 보고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서도 폭탄이 남아있다. 검찰은 지난 1월 송철호 현 울산시장과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한병도 전 정무수석 등 전현직 공무원 13명을 공직선거법 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2018년 울산시장 선거서 송 시장이 당선될 수 있도록 청와대가 관계기관 등을 동원했다고 본 것이다. 경찰 하명수사와 관련해 검찰은 당시 김기현 울산시장 측근에 대한 경찰 수사가 송 시장 측의 청탁에 따른 것으로 봤다.

검찰에 따르면 송 시장은 20179월 황 전 청장에게 관련 수사를 청탁했고,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은 문모 전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에게 비위 정보를 제공했다. 문 전 행정관은 이 제보를 재가공한 첩보를 작성했고, 백 전 비서관은 이를 같은 해 1112월 박 전 비서관을 통해 경찰청, 울산경찰청에 차례로 내려 보냈다.
 

▲ 황운하 전 대전지방경찰청장

황 전 청장은 하명수사 의혹 외에도 김 전 시장 측근 수사에 미온적인 경찰관들을 부당하게 인사조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검찰은 송 시장과 송 전 부시장이 공공병원 유치를 시장 선거공약으로 삼기 위해 201710월 장환석 전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게 당시 김 전 시장의 공약이던 산재모병원 예비타당성 조사 발표 연기를 부탁했다고 봤다.

당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은 기소 대상서 빠졌다. 송 전 부시장의 업무일지에는 201710월 임 전 실장이 송 시장 측과 만나 출마 요청과 함께 공약을 협의한 정황이 담겼다. 검찰은 총선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들에 대한 기소 여부는 선거 이후에 결정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기소된 인사
선거 출마


흥미로운 사실은 검찰이 기소한 관련자들 가운데 일부 인사가 이번 총선서 선수로 뛴다는 점이다. 검찰의 기소를 날치기라고 비판했던 최 전 비서관은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2번으로 총선에 나선다.

최 전 비서관은 지난달 16일 사의를 표했다. 이날 최 전 비서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정부의 성공과 대통령님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더 이상 안에서 대통령님께 부담을 드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생각했다고 전했다.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은 더불어민주당 대전 중구 후보로 나선다.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도 더불어민주당 전북 익산을 후보로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역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에 연루돼 불구속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임동호 전 최고위원도 경선 끝에 울산 중구 후보로 확정됐다.

최근 들어서는 라임 사태가 또 다른 뇌관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단순 금융권 사기로 보였던 사건에 청와대 전 행정관이 깊숙이 관여한 정황이 속속 밝혀지면서 정치권으로 불이 옮겨 붙고 있다. 미래통합당에서는 라임 사태를 권력형 게이트로 규정, 검찰의 제대로 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정당국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검찰은 라임 사태와 관련해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과 지난해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서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된 김모 팀장(현재 보직해임)의 관계를 주시하고 있다. 김 회장은 스타모빌리티를 비롯해 여러 기업을 M&A해 회사 돈을 빼낸 뒤 다시 다른 기업을 M&A하는 전형적인 기업사냥꾼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행적이 묘연하다.

라임 측이 김 회장의 M&A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기 행각에 동참했고, 역시 행적이 묘연한 라임펀드의 설계자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이 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과정서 금융사기를 적발해야 할 금감원 소속 김 팀장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김 팀장과 김 회장은 고향 친구 사이로, 최근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라임펀드를 대량으로 판매한 장모 전 대신증권 반포WM 센터장은 김 팀장의 청와대 명함을 보여주며 피해자들을 안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31일에는 김 팀장이 김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 팀장이 라임사태와 관련해 실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감원은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윤석열 둘러싼 논란 비화
법무부 감찰로 또 대립?

검찰이 청와대 관계자가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마냥 유리한 국면은 아니다. 검찰을 둘러싼 논란도 연일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모 최모씨 사건, 최측근 논란 등 윤 총장 주변서 여러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윤 총장의 장모 최씨는 지난달 27일, 통장 잔고 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로 전 동업자와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의정부지검 형사1부는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 행사,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최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31일, 윤 총장이 최씨의 혐의를 알고 있었을 경우 공수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 이사장은 이날 재난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 출연해 “(윤 총장이)최소한 알았거나 알고도 묵인·방조했거나 법률자문을 제공한 경우라면 문제가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31일에는 MBC가 채널A 법조팀 소속 B 기자가 금융사기죄로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돼있는 이철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전 대표를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서 B 기자가 현직 검사장과의 친분을 이용해 유 이사장의 비위를 털어놓으라고 취재원을 압박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기서 말한 현직 검사장이 윤 총장의 최측근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사태가 커졌다. 해당 검사장은 MBC의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지난 1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 한 인터뷰서 저도 그 기사를 보고 사실이라면 대단히 심각하다고 봤다일단 해당 기자 소속사와 검찰 관계자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나선 단계지만 녹취가 있고 상당히 구체적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간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전했다.

검언유착 의혹
법무무 감찰?

그러면서 사실 여부에 대한 보고를 먼저 받아보고 그것에 대해 합리적으로 의심을 배제할 수 없는 단계라고 본다면 (법무부의)감찰이라든가,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추 장관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등 여권에서 감찰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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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