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VS 김종인’ 신구 전략가 대결 관전포인트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4.06 10:44:19
  • 호수 12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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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vs 제갈량, 고도의 수 싸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그야말로 신구의 대결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 전략가들의 두뇌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과연 소속 정당을 제1당으로 올려놓을 ‘정도전’은 누구일까. 더불어민주당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이야기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서 21대 총선을 이끄는 한 축이다. 그는 정치권이 주목하는 신흥 전략가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19대 대선 당시 ‘광흥창팀’서 문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다. 문재인정권의 ‘개국공신’이다.

문의 남자
정권 공신

13명으로 꾸려진 광흥창팀은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뛸 때부터 활동한 핵심 참모 그룹이다. 선거 전략 수립과 인재영입, 메시지 작성 등 핵심 실무를 담당했다. 양 원장은 광흥창팀의 수장이었다. 

대선을 승리로 이끈 광흥창팀 멤버 중 상당수가 청와대에 입성했다. 문재인정권 1기 참모진이다.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신동호 연설비서관, 한병도 정무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조한기 의전비서관,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오종식 정무기획비서관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반면 양 원장은 청와대로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과 거리를 두겠다”며 해외로 떠났다. 미국·일본·뉴질랜드 등을 다니며 집필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지난 2018년 초 발간한 <세상을 바꾸는 언어>를 통해 해외로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가장 영광의 시간, 뒤안길을 택했다. 영광 뒤로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이 내 길 같았다. 편지 한 장 남기고 떠나 7개월 넘게 홀로 정처 없이 외국을 떠돌고 있다. 괜히 한국에 있다가 ‘비선 실세’ 따위의 억측이나 오해를 받기 싫었다. 권력과 거리를 두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문) 대통령을 돕는 길이고, 청와대 참모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꺼이 머나먼 유랑의 길에 나선 이유다.”

양 원장은 자타공인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정치 입문을 주저하던 문 대통령을 정치권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양 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과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냈던 양 원장은 그와 마찬가지로 청와대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한 바 있다.

양, 신흥 지략가 당내 입지 굳혀
김, 잔뼈 굵은 킹메이커로 재등장

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을 때는 재단 사무처장을 맡아 그를 보좌했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과 <사람이 먼저다> 등도 양 원장이 기획했다.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오랜 기간 최고의 선거 전략가로 활약해왔다. 잔뼈 굵은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킹메이커’다. 총선은 물론 대선까지, 무대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성과를 내왔다는 증표다.

‘경제민주화 전도사’인 김 위원장은 위기의 보수당을 구한 일등공신이다. 지난 2008년부터 여당인 한나라당(통합당 전신)은 광우병 촛불집회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 2010년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악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파동’ 등으로 열린 10·26재보궐 선거 당시 ‘디도스 파문’이 터졌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비서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와 원순닷컴(박원순 홈페이지)을 교란한 사건이다. 


위기의 한나라당은 지도부를 재편했다. 홍준표 당시 대표가 물러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으로 등장했다. 2011년 말 상황이었다. 박근혜 비대위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비대위에 합류했다. 이후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의 ‘경제 멘토’로서 ‘김종인=경제민주화’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었던 경제민주화를 보수 진영의 핵심 공약으로 가져온 것이다.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를 흡수한 새누리당은 지난 2012년 열린 19대 총선서 152석 확보라는 반전을 이뤄냈다.

이 당 저 당
선거의 왕

‘김종인 효과’는 그해 열린 18대 대선까지 이어졌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대통령으로 올라선 선거다. 김 위원장은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당시에도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이끌어 박 위원장의 대선 당선에 일조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도 김 위원장의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정치권은 박근혜-문재인 후보의 득표율 격차가 3.6%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만약 김 위원장이 문재인 당시 후보 측을 도왔다면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경기 부양’ 쪽으로 기울자, 이를 비판하며 결별했다. 지난 2013년 그는 “박 대통령에게 경제민주화를 기대한 건 과욕이었다”며 “경제민주화가 될 것처럼 얘기한 데 대해 국민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김 위원장이 다시 선거판에 뛰어든 시점은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였다. 당시 포지션도 ‘구원투수’였다. 민주당은 소속 안철수계와의 불화와 전통적 텃밭인 호남 민심의 이반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후 안철수계가 대거 민주당을 떠나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 위기감은 증폭됐다.
 

민주당 문재인 당시 대표에게는 선거를 지휘할 사령관이 절실했다. 이대로 가다간 총선 패배는 물론 정권 재탈환도 힘들어 보였다. 이에 문 대표가 손을 내민 사람이 바로 김 위원장이었다. 

문 대표은 삼고초려 끝에 김 위원장 영입에 성공했다. 20대 총선을 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문 대표는 김 위원장에게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라는 자리를 주고 공천의 전권을 위임했다. 김 위원장은 대대적인 물갈이에 성공,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제1당으로 올려놨다.

이후의 상황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김 위원장은 대선을 두 달 앞둔 2017년 3월, 의원직을 내려놓고 민주당과 결별했다. 박 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번에는?
이번에도?

정치를 떠나있던 신구 전략가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귀환했다. 먼저 귀환한 사람은 양정철 원장이다. 그는 지난해 5월 신임 민주연구원장으로 임명됐다. 문 대통령을 당선시킨 지 2년 만이었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의 싱크탱크로 선거 전략의 본거지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총선 준비를 총괄할 총선기획단을 구성, 양 원장은 윤호중 사무총장 등과 함께 15인에 이름을 올렸다. 기획단은 민주당의 조직, 재정, 홍보, 정책, 전략 등 산하 단위를 구성해 총선의 밑그림을 그리는 조직이다.

또 양 원장은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 등과 비공식 ‘5인 협의체’를 꾸려 총선 전략을 이끌었다.

양 원장은 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서 활동했다. 민주당이 영입한 인재는 자진사퇴한 원종건씨를 제외한 19명, 면면을 보면 ‘스토리’에 ‘전문성’을 고려한 흔적이 느껴진다. 19명 중 1호 영입인재인 발레리나 출신 척수장애인 최혜영 강동대 교수는 양 원장의 작품이라는 후문이다.

양 원장은 앞서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직후 광폭행보를 보여 주목받은 바 있다. 서훈 국정원장을 시작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과 회동했다. 박 시장, 이 지사, 김 지사는 민주당의 대권주자들이다.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지난해 2월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만났던 사실이 인사청문회 도중 알려지기도 했다. 서 원장과의 회동은 야당으로부터 “선거공작이 아니냐”는 뒷말을 낳기도 했다. 
 

총선의 전체적 흐름을 주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자 양 원장은 지난해 11월 민주당 의원 10여명과 만찬을 가지며 “청와대 출신 출마자가 너무 많아 당내 불만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지난 2월에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호남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인재영입·총선전략 주도
‘정권 심판론’ 남진할까?


더불어시민당 출범에도 양 원장의 흔적이 드러난다. 민주당 내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했을 때, 민주연구원은 위성정당 없이 선거를 치를 경우 비례대표서 미래한국당이 최소 25석을 가져가는 반면, 민주당은 6∼7석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는 보고서를 당 지도부에 보고했다. 이후 민주당 내 여론은 비례연합정당 참여 쪽으로 기울었다. 

더불어시민당 출범 과정서도 파열음이 일었다.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의 플랫폼으로 ‘시민을 위하여’를 선택하자 당초 민주당과 논의해왔던 정치개혁연합이 크게 반발하면서부터다. 정치개혁연합 측은 “비선 실세인 양 원장을 교체하라”며 항의했다. 양 원장은 21대 총선이 끝난 직후 민주연구원장직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상태다.

‘킹메이커’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통합당 황교안 대표의 ‘삼고초려’ 끝에 총선판에 뛰어들었다. 황 대표와의 투톱 체제다. 통합당호에 올라선 김 위원장은 ‘문재인정부 때리기’로 자신의 복귀를 알렸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 위원장은 통합당의 21대 총선 슬로건으로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들고 왔다. ‘경제 실정론’, 더 나아가 ‘정권심판론’이다. 경제 실정론에 이어 김 위원장이 설정한 또 다른 공격 포인트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다. 그는 수도권 후보들에 대한 지원유세를 다니던 중 “지난해 8월부터 어떤 묘한 분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면서 국민들이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다”며 “그런 인사가 공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과연 총선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그 바람의 진원지로 수도권을 선택한 모양새다. 공식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된 지난 2일부터 김 위원장은 수도권 후보를 지원사격하는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제실정론
과연 먹힐까?

나경원 후보(서울 동작을) 선거사무소를 시작으로 장진영 후보(동작갑), 권영세 후보(용산), 김대호 후보(관악갑), 오신환 후보(관악을), 최영근 후보(경기 화성갑), 임명배 후보(화성을), 석호현 후보(화성병) 등 하루에만 수도권 16명의 후보에게 찾아갔다. 81세의 나이가 무색한 강행군이다. 김 위원장은 ‘남진’ 전략이다. 수도권서 형성한 정권심판론 바람을 충청권으로 가져오는 데 이어 부산·울산·경남(PK)으로 내려 보낸다는 계획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해찬-김종인, 32년 질긴 인연과 악연

21대 총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질긴 인연’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처음 시작됐던 시점은 32년 전인 지난 1988년 13대 총선서다. 두 사람은 서울 관악을 지역 총선서 맞붙었다. 

이번에는 선수가 아닌 감독 간 대결이다.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맞대결로 정치권에서는 4·15 총선을 사실상 두 사람 간의 마지막 승부로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여당인 민정당 소속이었으며, 이 대표는 야당인 평화민주당이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재선 국회의원이었다. 반면 이 대표는 운동권 출신의 36세 정치 신인이었다.

김 위원장은 당시에도 경제민주화를 구호로 내세웠으며 이 대표는 자주외교와 평화통일을 내걸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이 대표가 승리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이 대표는 관악을에서만 내리 5선을 달성, 거물로 성장했다. 

두 번째 만남은 더불어민주당서 이루어졌다.

당시 민주당의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 위원장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영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김 위원장에게 공천에 대한 전권도 위임했다.

힘을 받은 김 위원장은 물갈이 도중 “당내 패권주의를 청산하겠다”며 친노에 대한 숙청에 들어갔다. 친노의 좌장인 이 대표 역시 칼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당시 이 대표는 “김종인 비대위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며 자신에 대한 컷오프 결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이 대표는 결국 20대 총선서 생환에 성공, 당선 6일 만에 민주당으로 복당했던 반면 김 위원장은 민주당의 경제민주화 의지에 실망감을 느낀다며 당을 떠났다.

이번 21대 총선이 세 번째 인연이다. 두 사람은 선수가 아닌 당의 감독으로 선거를 지휘하고 있다. 두 사람의 질긴 인연에도 서로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는 모습이다. 

이번 세 번째가 두 사람의 마지막 인연이 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피로 누적으로 병원서 치료를 받는 와중에 “(21대 총선은)내 정치 인생의 마지막 선거고 이번 총선이 문재인정부 성공에 아주 중요하다”고 밝혔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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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