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VS 김종인’ 신구 전략가 대결 관전포인트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4.06 10:44:19
  • 호수 12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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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vs 제갈량, 고도의 수 싸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그야말로 신구의 대결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 전략가들의 두뇌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과연 소속 정당을 제1당으로 올려놓을 ‘정도전’은 누구일까. 더불어민주당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이야기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서 21대 총선을 이끄는 한 축이다. 그는 정치권이 주목하는 신흥 전략가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19대 대선 당시 ‘광흥창팀’서 문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다. 문재인정권의 ‘개국공신’이다.

문의 남자
정권 공신

13명으로 꾸려진 광흥창팀은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뛸 때부터 활동한 핵심 참모 그룹이다. 선거 전략 수립과 인재영입, 메시지 작성 등 핵심 실무를 담당했다. 양 원장은 광흥창팀의 수장이었다. 

대선을 승리로 이끈 광흥창팀 멤버 중 상당수가 청와대에 입성했다. 문재인정권 1기 참모진이다.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신동호 연설비서관, 한병도 정무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조한기 의전비서관,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오종식 정무기획비서관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반면 양 원장은 청와대로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과 거리를 두겠다”며 해외로 떠났다. 미국·일본·뉴질랜드 등을 다니며 집필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지난 2018년 초 발간한 <세상을 바꾸는 언어>를 통해 해외로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가장 영광의 시간, 뒤안길을 택했다. 영광 뒤로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이 내 길 같았다. 편지 한 장 남기고 떠나 7개월 넘게 홀로 정처 없이 외국을 떠돌고 있다. 괜히 한국에 있다가 ‘비선 실세’ 따위의 억측이나 오해를 받기 싫었다. 권력과 거리를 두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문) 대통령을 돕는 길이고, 청와대 참모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꺼이 머나먼 유랑의 길에 나선 이유다.”

양 원장은 자타공인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정치 입문을 주저하던 문 대통령을 정치권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양 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과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냈던 양 원장은 그와 마찬가지로 청와대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한 바 있다.

양, 신흥 지략가 당내 입지 굳혀
김, 잔뼈 굵은 킹메이커로 재등장

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을 때는 재단 사무처장을 맡아 그를 보좌했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과 <사람이 먼저다> 등도 양 원장이 기획했다.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오랜 기간 최고의 선거 전략가로 활약해왔다. 잔뼈 굵은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킹메이커’다. 총선은 물론 대선까지, 무대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성과를 내왔다는 증표다.

‘경제민주화 전도사’인 김 위원장은 위기의 보수당을 구한 일등공신이다. 지난 2008년부터 여당인 한나라당(통합당 전신)은 광우병 촛불집회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 2010년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악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파동’ 등으로 열린 10·26재보궐 선거 당시 ‘디도스 파문’이 터졌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비서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와 원순닷컴(박원순 홈페이지)을 교란한 사건이다. 


위기의 한나라당은 지도부를 재편했다. 홍준표 당시 대표가 물러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으로 등장했다. 2011년 말 상황이었다. 박근혜 비대위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비대위에 합류했다. 이후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의 ‘경제 멘토’로서 ‘김종인=경제민주화’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었던 경제민주화를 보수 진영의 핵심 공약으로 가져온 것이다.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를 흡수한 새누리당은 지난 2012년 열린 19대 총선서 152석 확보라는 반전을 이뤄냈다.

이 당 저 당
선거의 왕

‘김종인 효과’는 그해 열린 18대 대선까지 이어졌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대통령으로 올라선 선거다. 김 위원장은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당시에도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이끌어 박 위원장의 대선 당선에 일조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도 김 위원장의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정치권은 박근혜-문재인 후보의 득표율 격차가 3.6%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만약 김 위원장이 문재인 당시 후보 측을 도왔다면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경기 부양’ 쪽으로 기울자, 이를 비판하며 결별했다. 지난 2013년 그는 “박 대통령에게 경제민주화를 기대한 건 과욕이었다”며 “경제민주화가 될 것처럼 얘기한 데 대해 국민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김 위원장이 다시 선거판에 뛰어든 시점은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였다. 당시 포지션도 ‘구원투수’였다. 민주당은 소속 안철수계와의 불화와 전통적 텃밭인 호남 민심의 이반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후 안철수계가 대거 민주당을 떠나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 위기감은 증폭됐다.
 

민주당 문재인 당시 대표에게는 선거를 지휘할 사령관이 절실했다. 이대로 가다간 총선 패배는 물론 정권 재탈환도 힘들어 보였다. 이에 문 대표가 손을 내민 사람이 바로 김 위원장이었다. 

문 대표은 삼고초려 끝에 김 위원장 영입에 성공했다. 20대 총선을 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문 대표는 김 위원장에게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라는 자리를 주고 공천의 전권을 위임했다. 김 위원장은 대대적인 물갈이에 성공,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제1당으로 올려놨다.

이후의 상황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김 위원장은 대선을 두 달 앞둔 2017년 3월, 의원직을 내려놓고 민주당과 결별했다. 박 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번에는?
이번에도?

정치를 떠나있던 신구 전략가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귀환했다. 먼저 귀환한 사람은 양정철 원장이다. 그는 지난해 5월 신임 민주연구원장으로 임명됐다. 문 대통령을 당선시킨 지 2년 만이었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의 싱크탱크로 선거 전략의 본거지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총선 준비를 총괄할 총선기획단을 구성, 양 원장은 윤호중 사무총장 등과 함께 15인에 이름을 올렸다. 기획단은 민주당의 조직, 재정, 홍보, 정책, 전략 등 산하 단위를 구성해 총선의 밑그림을 그리는 조직이다.

또 양 원장은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 등과 비공식 ‘5인 협의체’를 꾸려 총선 전략을 이끌었다.

양 원장은 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서 활동했다. 민주당이 영입한 인재는 자진사퇴한 원종건씨를 제외한 19명, 면면을 보면 ‘스토리’에 ‘전문성’을 고려한 흔적이 느껴진다. 19명 중 1호 영입인재인 발레리나 출신 척수장애인 최혜영 강동대 교수는 양 원장의 작품이라는 후문이다.

양 원장은 앞서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직후 광폭행보를 보여 주목받은 바 있다. 서훈 국정원장을 시작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과 회동했다. 박 시장, 이 지사, 김 지사는 민주당의 대권주자들이다.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지난해 2월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만났던 사실이 인사청문회 도중 알려지기도 했다. 서 원장과의 회동은 야당으로부터 “선거공작이 아니냐”는 뒷말을 낳기도 했다. 
 

총선의 전체적 흐름을 주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자 양 원장은 지난해 11월 민주당 의원 10여명과 만찬을 가지며 “청와대 출신 출마자가 너무 많아 당내 불만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지난 2월에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호남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인재영입·총선전략 주도
‘정권 심판론’ 남진할까?


더불어시민당 출범에도 양 원장의 흔적이 드러난다. 민주당 내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했을 때, 민주연구원은 위성정당 없이 선거를 치를 경우 비례대표서 미래한국당이 최소 25석을 가져가는 반면, 민주당은 6∼7석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는 보고서를 당 지도부에 보고했다. 이후 민주당 내 여론은 비례연합정당 참여 쪽으로 기울었다. 

더불어시민당 출범 과정서도 파열음이 일었다.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의 플랫폼으로 ‘시민을 위하여’를 선택하자 당초 민주당과 논의해왔던 정치개혁연합이 크게 반발하면서부터다. 정치개혁연합 측은 “비선 실세인 양 원장을 교체하라”며 항의했다. 양 원장은 21대 총선이 끝난 직후 민주연구원장직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상태다.

‘킹메이커’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통합당 황교안 대표의 ‘삼고초려’ 끝에 총선판에 뛰어들었다. 황 대표와의 투톱 체제다. 통합당호에 올라선 김 위원장은 ‘문재인정부 때리기’로 자신의 복귀를 알렸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 위원장은 통합당의 21대 총선 슬로건으로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들고 왔다. ‘경제 실정론’, 더 나아가 ‘정권심판론’이다. 경제 실정론에 이어 김 위원장이 설정한 또 다른 공격 포인트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다. 그는 수도권 후보들에 대한 지원유세를 다니던 중 “지난해 8월부터 어떤 묘한 분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면서 국민들이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다”며 “그런 인사가 공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과연 총선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그 바람의 진원지로 수도권을 선택한 모양새다. 공식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된 지난 2일부터 김 위원장은 수도권 후보를 지원사격하는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제실정론
과연 먹힐까?

나경원 후보(서울 동작을) 선거사무소를 시작으로 장진영 후보(동작갑), 권영세 후보(용산), 김대호 후보(관악갑), 오신환 후보(관악을), 최영근 후보(경기 화성갑), 임명배 후보(화성을), 석호현 후보(화성병) 등 하루에만 수도권 16명의 후보에게 찾아갔다. 81세의 나이가 무색한 강행군이다. 김 위원장은 ‘남진’ 전략이다. 수도권서 형성한 정권심판론 바람을 충청권으로 가져오는 데 이어 부산·울산·경남(PK)으로 내려 보낸다는 계획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해찬-김종인, 32년 질긴 인연과 악연

21대 총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질긴 인연’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처음 시작됐던 시점은 32년 전인 지난 1988년 13대 총선서다. 두 사람은 서울 관악을 지역 총선서 맞붙었다. 

이번에는 선수가 아닌 감독 간 대결이다.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맞대결로 정치권에서는 4·15 총선을 사실상 두 사람 간의 마지막 승부로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여당인 민정당 소속이었으며, 이 대표는 야당인 평화민주당이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재선 국회의원이었다. 반면 이 대표는 운동권 출신의 36세 정치 신인이었다.

김 위원장은 당시에도 경제민주화를 구호로 내세웠으며 이 대표는 자주외교와 평화통일을 내걸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이 대표가 승리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이 대표는 관악을에서만 내리 5선을 달성, 거물로 성장했다. 

두 번째 만남은 더불어민주당서 이루어졌다.

당시 민주당의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 위원장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영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김 위원장에게 공천에 대한 전권도 위임했다.

힘을 받은 김 위원장은 물갈이 도중 “당내 패권주의를 청산하겠다”며 친노에 대한 숙청에 들어갔다. 친노의 좌장인 이 대표 역시 칼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당시 이 대표는 “김종인 비대위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며 자신에 대한 컷오프 결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이 대표는 결국 20대 총선서 생환에 성공, 당선 6일 만에 민주당으로 복당했던 반면 김 위원장은 민주당의 경제민주화 의지에 실망감을 느낀다며 당을 떠났다.

이번 21대 총선이 세 번째 인연이다. 두 사람은 선수가 아닌 당의 감독으로 선거를 지휘하고 있다. 두 사람의 질긴 인연에도 서로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는 모습이다. 

이번 세 번째가 두 사람의 마지막 인연이 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피로 누적으로 병원서 치료를 받는 와중에 “(21대 총선은)내 정치 인생의 마지막 선거고 이번 총선이 문재인정부 성공에 아주 중요하다”고 밝혔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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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