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VS 김종인’ 신구 전략가 대결 관전포인트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4.06 10:44:19
  • 호수 12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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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vs 제갈량, 고도의 수 싸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그야말로 신구의 대결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 전략가들의 두뇌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과연 소속 정당을 제1당으로 올려놓을 ‘정도전’은 누구일까. 더불어민주당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이야기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서 21대 총선을 이끄는 한 축이다. 그는 정치권이 주목하는 신흥 전략가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19대 대선 당시 ‘광흥창팀’서 문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다. 문재인정권의 ‘개국공신’이다.

문의 남자
정권 공신

13명으로 꾸려진 광흥창팀은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뛸 때부터 활동한 핵심 참모 그룹이다. 선거 전략 수립과 인재영입, 메시지 작성 등 핵심 실무를 담당했다. 양 원장은 광흥창팀의 수장이었다. 

대선을 승리로 이끈 광흥창팀 멤버 중 상당수가 청와대에 입성했다. 문재인정권 1기 참모진이다.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신동호 연설비서관, 한병도 정무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조한기 의전비서관,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오종식 정무기획비서관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반면 양 원장은 청와대로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과 거리를 두겠다”며 해외로 떠났다. 미국·일본·뉴질랜드 등을 다니며 집필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지난 2018년 초 발간한 <세상을 바꾸는 언어>를 통해 해외로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가장 영광의 시간, 뒤안길을 택했다. 영광 뒤로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이 내 길 같았다. 편지 한 장 남기고 떠나 7개월 넘게 홀로 정처 없이 외국을 떠돌고 있다. 괜히 한국에 있다가 ‘비선 실세’ 따위의 억측이나 오해를 받기 싫었다. 권력과 거리를 두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문) 대통령을 돕는 길이고, 청와대 참모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꺼이 머나먼 유랑의 길에 나선 이유다.”

양 원장은 자타공인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정치 입문을 주저하던 문 대통령을 정치권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양 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과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냈던 양 원장은 그와 마찬가지로 청와대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한 바 있다.

양, 신흥 지략가 당내 입지 굳혀
김, 잔뼈 굵은 킹메이커로 재등장

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을 때는 재단 사무처장을 맡아 그를 보좌했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과 <사람이 먼저다> 등도 양 원장이 기획했다.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오랜 기간 최고의 선거 전략가로 활약해왔다. 잔뼈 굵은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킹메이커’다. 총선은 물론 대선까지, 무대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성과를 내왔다는 증표다.

‘경제민주화 전도사’인 김 위원장은 위기의 보수당을 구한 일등공신이다. 지난 2008년부터 여당인 한나라당(통합당 전신)은 광우병 촛불집회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 2010년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악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파동’ 등으로 열린 10·26재보궐 선거 당시 ‘디도스 파문’이 터졌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비서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와 원순닷컴(박원순 홈페이지)을 교란한 사건이다. 


위기의 한나라당은 지도부를 재편했다. 홍준표 당시 대표가 물러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으로 등장했다. 2011년 말 상황이었다. 박근혜 비대위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비대위에 합류했다. 이후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의 ‘경제 멘토’로서 ‘김종인=경제민주화’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었던 경제민주화를 보수 진영의 핵심 공약으로 가져온 것이다.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를 흡수한 새누리당은 지난 2012년 열린 19대 총선서 152석 확보라는 반전을 이뤄냈다.

이 당 저 당
선거의 왕

‘김종인 효과’는 그해 열린 18대 대선까지 이어졌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대통령으로 올라선 선거다. 김 위원장은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당시에도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이끌어 박 위원장의 대선 당선에 일조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도 김 위원장의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정치권은 박근혜-문재인 후보의 득표율 격차가 3.6%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만약 김 위원장이 문재인 당시 후보 측을 도왔다면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경기 부양’ 쪽으로 기울자, 이를 비판하며 결별했다. 지난 2013년 그는 “박 대통령에게 경제민주화를 기대한 건 과욕이었다”며 “경제민주화가 될 것처럼 얘기한 데 대해 국민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김 위원장이 다시 선거판에 뛰어든 시점은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였다. 당시 포지션도 ‘구원투수’였다. 민주당은 소속 안철수계와의 불화와 전통적 텃밭인 호남 민심의 이반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후 안철수계가 대거 민주당을 떠나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 위기감은 증폭됐다.
 

민주당 문재인 당시 대표에게는 선거를 지휘할 사령관이 절실했다. 이대로 가다간 총선 패배는 물론 정권 재탈환도 힘들어 보였다. 이에 문 대표가 손을 내민 사람이 바로 김 위원장이었다. 

문 대표은 삼고초려 끝에 김 위원장 영입에 성공했다. 20대 총선을 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문 대표는 김 위원장에게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라는 자리를 주고 공천의 전권을 위임했다. 김 위원장은 대대적인 물갈이에 성공,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제1당으로 올려놨다.

이후의 상황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김 위원장은 대선을 두 달 앞둔 2017년 3월, 의원직을 내려놓고 민주당과 결별했다. 박 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번에는?
이번에도?

정치를 떠나있던 신구 전략가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귀환했다. 먼저 귀환한 사람은 양정철 원장이다. 그는 지난해 5월 신임 민주연구원장으로 임명됐다. 문 대통령을 당선시킨 지 2년 만이었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의 싱크탱크로 선거 전략의 본거지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총선 준비를 총괄할 총선기획단을 구성, 양 원장은 윤호중 사무총장 등과 함께 15인에 이름을 올렸다. 기획단은 민주당의 조직, 재정, 홍보, 정책, 전략 등 산하 단위를 구성해 총선의 밑그림을 그리는 조직이다.

또 양 원장은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 등과 비공식 ‘5인 협의체’를 꾸려 총선 전략을 이끌었다.

양 원장은 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서 활동했다. 민주당이 영입한 인재는 자진사퇴한 원종건씨를 제외한 19명, 면면을 보면 ‘스토리’에 ‘전문성’을 고려한 흔적이 느껴진다. 19명 중 1호 영입인재인 발레리나 출신 척수장애인 최혜영 강동대 교수는 양 원장의 작품이라는 후문이다.

양 원장은 앞서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직후 광폭행보를 보여 주목받은 바 있다. 서훈 국정원장을 시작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과 회동했다. 박 시장, 이 지사, 김 지사는 민주당의 대권주자들이다.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지난해 2월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만났던 사실이 인사청문회 도중 알려지기도 했다. 서 원장과의 회동은 야당으로부터 “선거공작이 아니냐”는 뒷말을 낳기도 했다. 
 

총선의 전체적 흐름을 주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자 양 원장은 지난해 11월 민주당 의원 10여명과 만찬을 가지며 “청와대 출신 출마자가 너무 많아 당내 불만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지난 2월에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호남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인재영입·총선전략 주도
‘정권 심판론’ 남진할까?


더불어시민당 출범에도 양 원장의 흔적이 드러난다. 민주당 내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했을 때, 민주연구원은 위성정당 없이 선거를 치를 경우 비례대표서 미래한국당이 최소 25석을 가져가는 반면, 민주당은 6∼7석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는 보고서를 당 지도부에 보고했다. 이후 민주당 내 여론은 비례연합정당 참여 쪽으로 기울었다. 

더불어시민당 출범 과정서도 파열음이 일었다.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의 플랫폼으로 ‘시민을 위하여’를 선택하자 당초 민주당과 논의해왔던 정치개혁연합이 크게 반발하면서부터다. 정치개혁연합 측은 “비선 실세인 양 원장을 교체하라”며 항의했다. 양 원장은 21대 총선이 끝난 직후 민주연구원장직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상태다.

‘킹메이커’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통합당 황교안 대표의 ‘삼고초려’ 끝에 총선판에 뛰어들었다. 황 대표와의 투톱 체제다. 통합당호에 올라선 김 위원장은 ‘문재인정부 때리기’로 자신의 복귀를 알렸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 위원장은 통합당의 21대 총선 슬로건으로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들고 왔다. ‘경제 실정론’, 더 나아가 ‘정권심판론’이다. 경제 실정론에 이어 김 위원장이 설정한 또 다른 공격 포인트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다. 그는 수도권 후보들에 대한 지원유세를 다니던 중 “지난해 8월부터 어떤 묘한 분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면서 국민들이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다”며 “그런 인사가 공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과연 총선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그 바람의 진원지로 수도권을 선택한 모양새다. 공식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된 지난 2일부터 김 위원장은 수도권 후보를 지원사격하는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제실정론
과연 먹힐까?

나경원 후보(서울 동작을) 선거사무소를 시작으로 장진영 후보(동작갑), 권영세 후보(용산), 김대호 후보(관악갑), 오신환 후보(관악을), 최영근 후보(경기 화성갑), 임명배 후보(화성을), 석호현 후보(화성병) 등 하루에만 수도권 16명의 후보에게 찾아갔다. 81세의 나이가 무색한 강행군이다. 김 위원장은 ‘남진’ 전략이다. 수도권서 형성한 정권심판론 바람을 충청권으로 가져오는 데 이어 부산·울산·경남(PK)으로 내려 보낸다는 계획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해찬-김종인, 32년 질긴 인연과 악연

21대 총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질긴 인연’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처음 시작됐던 시점은 32년 전인 지난 1988년 13대 총선서다. 두 사람은 서울 관악을 지역 총선서 맞붙었다. 

이번에는 선수가 아닌 감독 간 대결이다.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맞대결로 정치권에서는 4·15 총선을 사실상 두 사람 간의 마지막 승부로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여당인 민정당 소속이었으며, 이 대표는 야당인 평화민주당이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재선 국회의원이었다. 반면 이 대표는 운동권 출신의 36세 정치 신인이었다.

김 위원장은 당시에도 경제민주화를 구호로 내세웠으며 이 대표는 자주외교와 평화통일을 내걸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이 대표가 승리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이 대표는 관악을에서만 내리 5선을 달성, 거물로 성장했다. 

두 번째 만남은 더불어민주당서 이루어졌다.

당시 민주당의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 위원장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영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김 위원장에게 공천에 대한 전권도 위임했다.

힘을 받은 김 위원장은 물갈이 도중 “당내 패권주의를 청산하겠다”며 친노에 대한 숙청에 들어갔다. 친노의 좌장인 이 대표 역시 칼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당시 이 대표는 “김종인 비대위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며 자신에 대한 컷오프 결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이 대표는 결국 20대 총선서 생환에 성공, 당선 6일 만에 민주당으로 복당했던 반면 김 위원장은 민주당의 경제민주화 의지에 실망감을 느낀다며 당을 떠났다.

이번 21대 총선이 세 번째 인연이다. 두 사람은 선수가 아닌 당의 감독으로 선거를 지휘하고 있다. 두 사람의 질긴 인연에도 서로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는 모습이다. 

이번 세 번째가 두 사람의 마지막 인연이 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피로 누적으로 병원서 치료를 받는 와중에 “(21대 총선은)내 정치 인생의 마지막 선거고 이번 총선이 문재인정부 성공에 아주 중요하다”고 밝혔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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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