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무림파워텍 불량 기계 강매 진실공방

“기계 안 돌아가도 돈은 받아야겠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계란판 제조업체 우림산업이 원료절감을 목적으로 진행했던 기계공사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기계 설치를 담당했던 무림파워텍과의 대립 때문. 우림 측은 기계의 결함으로 받은 피해를 주장했고 무림 측은 우림의 관리부실과 저급한 원재료를 이유로 들었다. 좋은 뜻으로 시작했던 사업이지만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됐다. 
 

▲ 문제가 된 우드칩 소각 고온 열풍기

2002년부터 계란판 제조를 주업으로 삼아 온 ‘우림산업’은 국내 최초로 종이 계란판 품질 Q마크를 획득한 업체다. 우림산업은 폐지를 원자재로 생산을 하는데 이 과정서 폐지를 물과 섞어 성형 틀에 찍어내 대형 열풍 건조설비를 이용해 원형 그대로 건조시키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 

비용절감 위해
기계 설치 결정

우림산업은 사업 초기부터 LNG원료를 사용하는 건조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비용이 가중되면서 생산원가 상승을 초래했다. 이 때문에 생산원가와 에너지 비용절감을 위해 주 원료인 LNG를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강구했다.

특정 공공기관의 추천을 받은 기술을 가지고 자부담으로 시도도 해봤지만 기술적 한계와 하자로 인해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던 중 무림그룹 계열사인 무림파워텍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우드칩 소각 고온 열풍기’ 기술 및 소각 설치 및 운영을 하면 LNG를 사용하지 않고 우드칩을 주 원료로 하기 때문에 한 달에 약 7000만원 이상의 에너지 절감을 보증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우드칩의 단가가 LNG보다 현저히 낮기 때문에 새로운 기계를 사용할 때 전력량이 더 많이 발생하더도 우드칩의 저렴한 단가로 충분히 그 추가 전력 비용을 상쇄할 수 있고 이로 인한 비용절감을 수식적으로 계산해 보면 결국 동일한 열량을 내는 조건으로 한 달에 7000만원 이상의 비용절감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게 무림파워텍의 설명이었다. 

우림산업은 이러한 무림파워텍의 설명을 듣고 2015년 12월23일 우드칩 소각 고온 열풍기를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하기로 마음먹고 ‘ESCO 투자사업 사업자파이낸싱 성과보증 표준계약’을 체결했다. 

ESCO 투자사업이란 에너지 절약사업을 뜻한다. ESCO로 지정받은 에너지 전문업체가 특정 건물이나 시설서 에너지 절약시설을 도입할 때 해당 기관으로 부터 돈을 받지 않은 채 비용 전액을 ESCO업체가 투자하고 여기서 얻어지는 에너지 절감예산서 투자비를 분할 상환받도록 하는 사업방식이다. 

이 계약의 핵심은 기계를 설치하면 사업비용이 절감된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성과보증’이라는 조항을 추가해 만약 설비공사가 완료된 후에 기계가 에너지 절감효과를 발생시키지 못하면 그 차액만큼 무림파워텍서 우림산업에 지급하기로 했다. 

이렇게 공사가 진행되는 듯 했다. 계약서에 따른 공사 완료 시기는 2016년 5월31일이었다. 하지만 우림산업도 모르는 사이에 무림파워텍과 새코텍이 계약하고 이 새코텍이 다시 화성비엔텍으로 하도급을 맡겼다.

열풍기 설치하면…한 달 7000만원 절약 약속
자꾸 늦어지는 공사…시운전 확인서만 요구?

두 번의 하도급 과정서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고 그간 우림산업과는 전혀 의사소통이 없었던 화성비엔텍 담당자들이 현장에 와서 작업을 하는 과정서 또 다시 공사가 지연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무림파워텍은 공사기한 연장을 요구했고 2016년 8월25일로 공사기간을 연장하는 변경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의 핵심은 공사기간을 2015년 12월24일부터 2016년 5월31일까지로 돼있던 공사기간을 2015년 12월24일부터 2016년 9월31일까지로 3개월 연장한다는 것이다.

설치는 완성되지 않았으나 무림파워텍·화성비엔텍 직원으로 구성해 시운전을 하자고 했고 우림산업 측에서는 운전기술을 배우는 의미서 시운전에 참여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무림과 화성의 직원은 철수했고 우림산업 직원만 남아 시운전을 하게 됐다. 무림파워텍에서는 모든 것을 완성할 것을 약속하고 회사에 보고 할 것이 있어야 한다며 2번에 걸친 상환금을 지급을 부탁했다.  

기계 완성이 늦어지자 무림은 화성에 1개월치 상환금을 내게 했다. 우림산업에서는 2개월 간 투자비 상환 이후 기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그래도 기계만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회사 입장서 이익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2017년 1월 경부터 시공 담당자와 함께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부분을 보완해 기계를 완공시키는 데 주력했다. 

무림파워텍과 우림산업은 기계가 완공되는 시점까지 투자비의 지급을 연기하는 데 다시 한 번 합의했고 이때부터 무림파워텍 측에서도 투자비지급을 청구하지 않았다.

늦어지는 공사
고장난 기계?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계는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 2017년 1월부터 4월까지 3개월간은 형식적으로나마 가동됐지만 5월부터는 기계의 가동이 전면 중지됐다.

중요한 것은 기계 오류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무림파워텍은 전문기술력이 없다는 이유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고 직접 기계를 설치했던 화성비엔텍도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우림산업과 무림파워텍은 다시한번의 회의를 거쳐 열교환기 보수를 결정했고 무림파워텍과 우림산업, 화성비엔텍이 각 2000만원, 3000만원, 3000만원을 부담했다. 또 운전 방법이나 연료에 문제가 있을 것에도 무게를 두고 화성비엔텍서 운전 매뉴얼을 작성해 우림산업에 전달하기로 하고 연료에 이물질이 포함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2017년 11월27일 보수작업이 완료됐지만 다시 한 번 가동이 중단됐고 또 한 번의 보수작업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때 무림파워텍과 우림산업은 2018년 1월 효율측정을 해 금액을 확정해 투자비를 상환하기로 결정했다.
 

▲ ▲ 품질기준 검사 결과서

그러나 이후에도 기계는 가동과 중단을 반복했고 효율은 전혀 발생하지 못했다. 결국 2018년 11월 가동이 전면 중단됐고 현재까지도 기계는 작동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기계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는 상황서 무림파워텍이 대금 청구를 했다는 것이다. 무림파워텍은 계속 된 보수작업으로 상환기간 연장이 있었음에도 일방적으로 대금을 청구한 것.

기계작동 불량으로 가동일보다 수리일자가 더 많은 상황서 우림산업은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무림파워텍에서는 강제 가압류를 집행하기에 이르렀다.

두 회사의 대립은 대한상사중재원으로 넘어갔다.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의 수행 중 계약 당사자간에 발생하는 분쟁은 상호 협의에 의해 해결하며 분쟁이 발생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중재법에 따라 중재기관의 중재에 의한다’는 규정에 따라서다. 

무림파워텍 측은 설치된 기계의 고장 원인으로 ‘저급의 우드칩’ 사용과 우림산업 측의 관리부실을 들었다. 설치된 기계에는 ‘양질의 우드칩’을 사용해야 하고 작동 방법을 숙지해 제대로 운영해야 하지만 우림산업서 모래 등 불가연성 물질이 포함된 저급의 우드칩을 사용하는 등 기계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기계 파손이 종종 일어났다는 것이다.

상반된 주장
첨예한 갈등


또 하도급을 맡긴 화성비엔텍은 관련 경력이 40년이 넘고 이 사건 설비와 동일한 구조의 소각로를 납품한 실적이 상당한 점을 들어 다른 곳에 설치된 설비가 문제된 적이 없고 유독 이 사건 설비에 대해서만 문제가 생긴 점을 지적했다.

우림산업 측은 “동일한 설비를 납품한 적은 없고 유사한 설비”라고 반박했다. 화성서 여태껏 설치해온 기계는 열원이 스팀으로 공급되는 소각 보일러고 문제가 된 기계는 건조한 뜨거운 바람(고온열풍)으로 열원이 공급되는 최초설비라는 것이다. 

무림 측은 준비서면을 통해 우림산업과의 이행합의를 통해 ‘설비하자 또는 가동 중단을 이유로 상환금 지급을 거절, 유예하거나 하자보수비용과 상환금의 상계를 주장할 수 없다’는 점 ‘하자보수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고의나 과실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자료를 첨부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 합의했다고 전했다.

2018년 3월분 상환금을 지급한 후 ‘고열 열풍기에 하자가 존재한다’는 일방적인 주장을 하면서 상환금 지급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만약 기계에 하자가 있다면 객관적 증거자료를 첨부해 하자보수청구를 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우림산업은 당시의 정황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며 소송이 제기되면서 억지로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라며 반박했다.
 

소송 시작 며칠 전에 회의록에는 빠른 시일 내 마무리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회의를 했고 가동이 가능한 상태서 기계가 인도됐다면 이후 담당자들이 모여 수차례의 회의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차례의 회의가 진행됐고 그 회의록은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문제로 지적된 우드칩이 문제가 없다는 시험성적서와 정기검사 결과서도 첨부했다. 

결국 멈춰진 기계
우드칩 문제 때문?

대한상사중재원은 무림파워텍의 손을 들어줬다. ‘계약서상 설치기간이 설치의 완료검사를 종료한 날까지로 돼있는 점’ ‘우림산업서 3개월분(제작 하청업체인 화성서 지급한 금액 포함)의 상환금을 지급했던 점’ 등을 들어 열풍기의 설치가 완료돼 정상적으로 인도받았음을 것으로 묵시적으로 완료검사의 종료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또 ‘설비하자 또는 가동 중단을 이유로 상환금 지급을 거절, 유예하거나 하자보수비용과 상환금의 상계를 주장할 수 없다’는 점 ‘하자보수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고의나 과실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자료를 첨부해야 한다’는 이행합의서에 따라 기계의 보수 등을 이유로 상환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우림산업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우림산업이 여러 법조계 인원들에게 받은 자문에 따르면 대한상사중재원의 판결은 우림산업 측의 자료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대한상사중재원의 판결은 대법원의 판결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단 한 번의 판결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항소 또한 할 수 없다.

기업 간의 분쟁이 오랫 동안 지속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결정된 사항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림산업은 현재 항소를 포함한 민사소송 등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이도균 무림산업 대표이사

윤우정 우림산업 대표는 “ESCO사업의 자격이 되지 않아 큰 회사의 도움으로 연료비 절감을 위해 진행한 사업이었지만 기계의 성능검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서류상 완공 서류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대금청구를 하고 거짓된 주장을 하는 무림파워텍의 이중적인 행태에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무림그룹 측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서 “오히려 우리 쪽이 피해자”라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는 “공사는 문제없이 마무리됐지만 우림산업 측에서 저급한 우드칩 사용과 관리부실로 인한 기계 오류를 이유를 무림파워텍 측에 전가하려고 한다”며 “대한상사중재원의 판결이 난 후로도 대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역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잘해보려 시작
상처뿐인 결말

현재 우림산업은 50여명의 직원들과 그 가족들 200여명, 10만 산란계 농가들의 생계와 생존까지 위협 받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윤 대표는 “지난 2년간 어떻게든 기계를 완성시켜 단 1원이라도 생산원가를 절감해보려고 밤낮으로 발버둥쳤다. 사용할 수 있는 기계라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데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정작 무림파워텍은 그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다”며 “공장에 흉물처럼 방치돼있는 기계를 보면 억울하고 울화가 치밀어 올라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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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