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북선 경전철 시비 ‘서울시 VS 두양’ 2라운드

공익 팻말 꽂고 남의 땅따먹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동북선 경전철 사업이 소송전으로 장기 표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차량기지 토지수용 문제를 두고 서울시와 토지주의 입장이 평행선이다. 차량기지 실시계획 승인 취소소송서 법원은 서울시의 사업 진행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토지주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시는 재승인 고시로 맞섰다.
 

▲ 서울 동북부 경전철 기공식

지난해 925일 서울시는 11페이지 분량의 보도자료를 내고 2024년 개통을 목표로 하반기 동북선 경전철 사업을 착공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노원구·강북구·성북구·동대문구·성동구 등 서울 동북부 주요 지역의 대중교통 이용 편의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표류하는
대형사업

서울시는 같은 해 928일 노원구 공영주차장과 성북구 숭례초등학교서 2번으로 나눠 지역구민들과 기공식을 진행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신원철 서울시의회 의장,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정원오 성동구청장·이승로 성북구청장·박겸수 강북구청장·오승록 노원구청장 등이 참석했다.

박 시장은 동북선 경전철이 개통되면 서울 동북부 교통난이 해소되는 것은 물론 노원구 중계동 일대의 교통 여건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업의 성공적인 완공을 시민 여러분과 함께 기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된 양천구 목동서 동대문구 청량리까지 동서 25.72를 횡단하는 강북횡단선 도시철도까지 건설되면 동북선 경전철과 함께 서울시 강남·북 균형발전에 또 하나의 전환점이 마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공사의 시작을 알리는 기공식, 서류상의 착공(서울특별시 도시기반시설본부 관계자)과는 별개로 동북선 경전철 사업은 실제 땅 한 번 파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가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 보낸 동북선 도시철도 민간투자사업 지하안전영향평가 협의내용 반영결과 통보서에는 동북선 경전철의 착공예정일이 차량기지 보상 완료일로 돼있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도시철도국 도시철도사업부 동북선1과 관계자는 그 착공 예정일은 굴착사업을 시작하는 날이라며 기공식이나 서류상의 착공과 구분 지었다. 서울시 관계자 말대로라면 동북선 경전철 건설공사는 시작조차 못한 셈이다. 하지만 기공식 소식만으로 동북선 경전철 구간 주변의 집값은 호재를 만난 듯들썩였다.

차량기지 토지수용 두고 갈등
토지주와 소송전으로 이어져

동북선 경전철은 성동구 왕십리역을 기점으로 미아사거리역을 거쳐 노원구 상계역까지 잇는 구간이다. 본선, 정거장 16개소, 차량기지 1개소 등에 총 사업비 14361억원이 투입되는 대역사다. 예정된 공사기간만도 5년에 이른다. 2008서울시 10개년 도시철도 기본계획이 승인된 지 11년 만에 가시권에 들어왔다.

하지만 차량기지 토지수용 문제를 두고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수용 대상 토지 소유주인 두양주택과 두양엔지니어링이 노원구 중계동 368번지 노원자동차운전전문학원 부지인 19448중 대로와 인접한 부분의 7182만 수용하겠다는 서울시 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선 것.

두양주택과 두양엔지니어링이 해당 부지에서 운영하던 노원자동차운전전문학원은 지난해 96일 폐업했다.
 

두양 관계자는 서울시는 차량기지 편입으로 맹지가 돼버린 잔여부지에 대한 수용이나 보상작업 없이 공사를 강행하려 한다”며 달걀노른자는 빼앗아 가면서 흰자는 알아서 하라는 식의 서울시 행태를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사기간 동안 잔여부지로 통하는 임시도로를 내주겠다는 서울시의 대책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국토교통부의 토지수용 업무편람을 근거로 차량기지로 편입된 토지만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업무편람에 따르면 잔여부지가 편입면적의 25% 이하인 경우에만 전체 토지를 수용할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차량기지 편입부지를 제외한 잔여부지는 전체 토지의 63%에 이르기 때문에 보상이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두양 측은 업무편람은 정식 법령이 아닌 사실상의 업무지침에 불과하다공익사업을위한토지등의취득및보상에관한법률’(토지보상법)을 내세웠다. 서울시는 토지보상법 74조에 따라 잔여부지를 전부 수용하든지, 동법 73조에 따라 가치가 하락한 잔여부지에 대한 보상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량기지
토지 갈등

토지보상법 74조는 동일한 소유주에게 속하는 일단의 토지의 일부가 협의에 의해 매수되거나 수용됨으로 인해 잔여지를 종래의 목적에 사용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할 때 해당 토지 소유자는 사업시행자에게 잔여지를 매수해줄 것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토지보상법 73조에는 사업시행자는 동일한 소유자에게 속하는 일단의 토지의 일부가 취득되거나 사용됨으로 인해 잔여지의 가격이 감소하거나 그 밖의 손실이 있을 때 그 손실이나 공사비용을 보상해야 한다고 돼있다.

지역주민들도 서울시의 계획에 반발했다.

이모씨 등 노원구민 252명은 2018125일 서울시에 낸 주민의견서(탄원서)를 통해 노원자동차운전학원 부지에 서울시가 공고한 계획대로 불암산 힐링 단지 입구를 막아 차량기지와 관리동, 환풍구만 설치하고 나머지 잔여토지는 운전학원으로 남겨두면, 경전철 환기구 배기가스와 운전학원차량 소음, 매연 등에 시달리게 되고 불암산 힐링 단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돼 중계동 지역은 낙후지역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중계동 지역주민들은 지역 발전에 방해가 되는 차량기지만 설치하고 나머지 땅을 내버려두는 것은 결사적으로 반대한다차량기지 주변에 문화시설·학원·병의원·청소년 실내체육관·24시간 어린이 돌봄센터·어린이 실내놀이터 등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시설을 설치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 의정부 경전철

하지만 서울시는 20181227일 동북선 경전철 전체가 아닌 차량기지 부분만 떼서 실시계획 승인을 먼저 고시했다. 토지 소유주가 잔여부지에 대해 확대보상을 요구할 경우 사업이 지연될 우려가 있어 신속한 추진을 위해 차량기지 부분만 사업을 분할했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결국 두양 측은 지난해 3동북선 도시철도 민간투자사업 실시계획(차량기지) 승인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취지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지난해 118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소송서 토지 소유주의 손을 들어줬다.

차량기지만
꼼수 승인?

결정문에는 서울시가 동북선 차량기지 실시계획 승인 처분 당시 이행했어야 하는 절차인 자연재해대책법상 재해영향평가에 관한 협의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상 지하안전영향평가를 누락했다며 승인 처분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적시됐다. 동북선 차량기지 사업 착공은 전체 동북선 도시철도 사업에 대한 실시계획 승인 이후에 가능한 만큼 집행정지 가처분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소송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기공식부터 진행했던 서울시는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에 지난해 1121일 차량기지 실시계획 승인을 취소했다. 앞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여운태 구의원은 지난해 829일 노원구의회 제253회 임시회 5분 발언서 동북선 경전철이 곧 착공될 것처럼 선전했지만 착공식 등에 대해서는 주민설명회서도 들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여 의원은 그러면서 서울시는 928일 착공식이 아니라 기공식을 한다고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얄팍한 술수를 쓰고 있다차량기지는 토지보상 문제로 소송 중이고 16개 정거장 또한 사유지 매입 문제에 얽혀 있는 등 동북선 경전철 사업 진행은 산 넘어 산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법원의 지적에 따라 누락된 절차를 보완한 후 지난 130일 차량기지 실시계획 재승인을 고시했다. 하지만 이 과정서 또 다시 절차상의 하자가 의심되는 부분이 발견됐다.

두양 측은 서울시가 동북선 경전철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서 사회기반시설에대한민간투자법(민간투자법) 172주무관청이 실시계획을 승인 또는 변경승인 하려는 경우에는 다른 법률에 적합한 지 미리 관계 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해야 한다는 조항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동북선 도시계획시설에 대한 도시계획위원회의 자문 과정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시는 지난해 12동북선 도시철도 민간투자사업 도시계획위원회 자문 추진계획을 세워놓고도 실제 자문은 이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자문 추진계획에는 서울시 시설계획과서 민간투자법에 따라 의제처리해 결정하는 도시계획시설에 대해 도시계획위원회 자문을 거치도록 의견을 제시해, 동북선 도시계획시설(철도, 자동차정류장, 도로) 결정에 대해 도시계획위원회 자문을 거쳐 실시계획 승인을 고시하고 의제처리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절차적 하자로 집행정지 망신
재승인 과정서도 문제 제기돼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도시철도국 도시철도계획부 경전철설계과 관계자는 자문을 진행하지 않았다면서도 “(자문을)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데, 적법하게 했다고 해명했다. 실제 도시계획위원회의 자문을 거치지 않고도 재승인을 고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양 측은 서울시가 환경영향평가법 제302항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승인기관 장은 사업계획 등에 대해 승인하려면 협의내용이 사업 계획 등에 반영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동북선 경전철 사업의 경우 재승인 고시 이후에야 협의내용이 사업 계획에 반영됐다는 주장이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가 한강유역환경청장(환경평가과장)에게 동북선 도시철도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 반영결과 통보서를 보낸 시기는 지난 2일로, 재승인 고시를 한 130일보다 한 달가량 늦다. 서울시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를 언제까지 반영해야 하죠?”라고 묻고는 “32일은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이 반영됐다고 통보한 날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이 언제 반영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모든 절차를 적법하고 적정하게 진행했다“(두양 측에서 소송을 제기한다면)재판 결과를 보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양 측은 차량기지 실시계획 재승인뿐만 아니라 본선 구간 실시계획 승인 고시에 대해서도 취소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도시계획위원회 자문과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의 사업계획 반영 등에서 차량기지나 본선 구간 모두 서울시가 절차대로 진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2017년 적자 누적으로 파산한 의정부 경전철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정부 시민들은 경전철이 들어오면 집값이 오르고 도시가 발전할 것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투자했겠지만 결국 피해만 입었다동북선 경전철이 당장 호재로 보일지 몰라도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도 안 해도
애매한 해명

그러면서 대형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서 시가 예산부족을 이유로 토지주와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토지주나 시에서 전체 수용이나 가치 보상 등으로만 접근하는데, 부지의 도시계획을 변경해 토지 가치하락에 대해 간접적으로 보상하는 방법도 있다차량기지의 경우 현재 1종 주거지역인 부지를 3종 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하는 식으로 새로운 방향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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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