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대형 건설사들의 플랜B

새 먹거리 찾아 삼만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형 건설사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생존을 위한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통적인 건설 이외의 분야에 투자하며 사업 다각화에 적극 나서는 등 과감한 도전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분주하다.
 

▲ 현대산업개발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림산업은 최근 미국 크레이튼(Kraton)으로부터 ‘카리플렉스(Cariflex)’ 사업을 약 6200억원에 인수했다. 카리플렉스 브라질 생산 공장과 네덜란드 R&D센터를 포함한 것으로 생산제품의 원천기술까지 확보했다. 이와 함께 미국과 독일, 일본 등 글로벌 판매 조직과 인력, 영업권도 갖게 됐다.

계속되는 인수
모듈러 진출

카리플렉스는 이소프렌 고무와 이소프렌 고무 라텍스 제품을 생산한다. 이 제품들은 수술용 장갑이나 주사용기 고무마개 등 의료용 소재로 사용된다.

대림산업은 여천NCC 등을 통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기초제품을 생산하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카리플렉스 인수로 고기능 부타디엔 고무 생산 사업에 진출,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분야로 사업 확장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사내이사 연임을 포기하며 경영 일선서 물러난 이해욱 회장이 석유화학뿐 아니라 에너지 디벨로퍼 사업 등을 주도하고 있어 신사업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브랜드 ‘자이’를 앞세워 주택사업에 주력하던 GS건설도 신사업 분야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해 초에는 스마트팜을 사업목적에 추가한 데 이어 올해는 2차전지와 모듈러 부문에 투자하며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허창수 GS건설 회장 장남인 허윤홍 사장이 신사업부문 대표를 맡으며 투자를 이끌고 있다.

GS건설은 올 초 2차전지 재활용 관련 사업에 진출, 2022년까지 1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2차전지서 니켈과 코발트, 리튬과 망간 등 유가금속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해 운영하는 것으로 전기차 보급 확대를 대비한 결정이다.

이와 함께 국내 건설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미국과 유럽 선진 모듈러 업체 3곳을 동시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해외 모듈러 시장을 선점하고 각 사의 강점과 기술, 네트워크를 활용해 선진 모듈러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부동산 규제 강화·불황 맞서 활로 찾기
대림산업, 수술 장갑 세계 1위 회사 인수

GS건설은 주총을 앞두고 ‘조립식 욕실 및 욕실제품의 제조, 판매 및 보수 유지관리업’을 사업 내용에 신설하는 정관변경을 안건으로 올리기도 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항공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말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컨소시엄(이하 HDC컨소시엄)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며 국적항공사를 품에 안았다. HDC컨소시엄은 4월까지 유상증자를 통한 신주 인수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당시 HDC컨소시엄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보통주 6868만8063주(지분율 31.0%·구주)를 주당 4700원에 적용해 3228억원에 인수했다. 이와 함께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는 보통주(신주) 약 2조1772억원 규모(신주가격 5000원 적용)의 유상증자(제3자배정)에도 참여해 4월30일까지 신주(보통주)를 인수하기로 했다. 
 

▲ 대림산업

HDC현대산업개발은 약 2조원을 쏟아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약 61.5%(구주+신주)를,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한 미래에셋대우는 약 15.3%의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앞서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미래에셋대우와의 지분구조를 8대2의 틀로 가져가겠다고 밝혔던 상황이다. 

HDC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건설 중심의 사업서 벗어나 항공사업을 활용한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재계 순위도 33위서 17위로 상승하게 됐다.  

HDC컨소시엄은 범현대가인 현대차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현대중공업그룹을 통해 항공물류 등의 강화를 추구할 수 있고, 이 밖에 다양한 시너지효과를 누릴 수 있는 신사업도 추진할 수 있다. 유통, 물류, 호텔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힐 수 있다.  

리츠사업 물꼬
골프장 운영

SK건설은 연료전지 주기기 제작업체인 미국 블룸에너지와 합작법인 설립을 마치고 이르면 올해부터 국내서 고체산화물 연료전지를 생산한다. 합작법인명은 ‘블룸 에스케이 퓨얼셀 유한회사’로 지분율은 SK건설이 49%, 블룸에너지가 51%다.

현재 경북 구미 공장서 생산설비를 설치 중이며 이르면 올해 안에 국내서 연료전지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라고 SK건설은 전했다. 생산 규모는 연산 50MW로 시작해 향후 400MW까지 점진적으로 확대된다.

아울러 블룸 SK 퓨얼셀은 전문 강소기업과 협업을 통해 국산 부품의 우수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활용할 방침이다. 협력업체 후보군 총 130여곳 가운데 약 10개 업체와 상반기 내 구매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SK건설은 “SOFC 국내 생산이 본격화된 뒤 블룸 SK 퓨얼셀을 아시아 시장을 상대로 하는 조달·생산·서비스 허브로 육성할 것”이라며 “국내 중소 부품업체의 수출 판로도 크게 확장하는 동반성장 롤 모델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우건설은 리츠 사업에 진출했다. 대우건설은 부동산 간접투자기구인 리츠 산업에 진출해 건설과 금융이 융합된 신규 사업모델을 만들고, 회사의 신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특히 AMC설립에 금융사를 참여시킴으로써 부동산 개발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자금 조달력과 안정성서 다른 AMC보다 경쟁 우위에 있다고 밝혔다.
 

▲ SK건설

대우건설은 개발리츠나 임대리츠에 직접 출자함으로써 디벨로퍼의 역할도 수행할 예정이다. 공사를 수주해 시공하는 단순 건설회사서 부지 매입·기획·설계·마케팅·시공·사후관리까지 하는 종합디벨로퍼 회사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의 시공이익 외에 개발이익, 임대이익, 처분이익 등을 수취함으로써 사업 수익원을 다각화한다는 전략이다.

또 대부분의 국내 리츠가 임대주택 개발·운용이나 대기업의 부동산 자산관리 수준에 그쳤다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공모 리츠를 추진할 계획이다. 대우건설은 국내 개발사업뿐만 아니라 해외 개발사업에도 진출할 예정이며, 상업시설·오피스 등 다양한 실물자산도 매입해 운용할 계획이다.


관광업 인기
폐기물 처리도

부영그룹도 제주 더클래식CC&리조트, 무주 덕유산CC, 제주 부영CC, 순천 부영CC, 안성 마에스트로CC, 태백 오투리조트 등 국내 외 다수 리조트와 골프장을 운영하고 글로벌테마파크와 호텔 건립을 추진하면서 레저, 관광사업을 벌이고 있다.

스타트업과 협업으로 사업다각화를 모색하는 곳도 있다. 우미건설은 최근 공유주방 스타트업 ‘고스트키친’과 공유주택 수타트업 ‘미스터홈즈’에 각각 투자자로 참여했다.

전국의 신도시에 ‘호반써밋’과 ‘베르디움’ 브랜드 아파트 13만 가구를 공급하며 주택의 강자로 알려진 호반건설은 종합건설, 레저, 유통 등 신사업을 통해 지속 성장하고 있다. 

호반건설의 사업다각화는 2010년대부터 시작됐다. 2011년 KBC광주방송의 대주주가 돼 방송미디어 사업에 발을 들였고, 2016년에는 울트라건설(현 호반산업)을 인수해 사업 규모를 키웠다. 2017년에는 제주도 중문 관광단지 내 퍼시픽랜드를 인수하고 본격적인 레저사업 확대를 밝혔다.

2018년에는 리솜 리조트를 인수했고, 2019년에는 덕평CC, 서서울CC도 인수해 현재 국내 7곳, 해외 1곳의 리조트, 골프장을 보유하고 있다. 


호반건설 등 호반그룹은 종합레저 영역에 더욱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리솜호텔&리조트 시설을 보수하는 동시에 중단된 제천 호텔동 공사를 재개했다. 지난 7월에는 스플라스 리솜의 플렉스타워(스파동)에서 그랜드 오픈식도 가졌다.

새롭게 선보인 스플라스 리솜의 플렉스타워(스파동)는 외관, 로비, 객실, 인테리어까지 감각적인 디자인을 갖췄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 지난해 6월에는 대아청과를 인수해 농산물 유통 사업에 진출했다. 대아청과는 가락시장 내 도매시장법인 중 하나로 가락시장에서 농산물 경매와 수의계약을 통한 농산물 도매 유통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다. 

GS건설, 올 초 2차 전지 재활용사업 가세
현대산업개발·SK건설 등도 사업 다각화

동부건설은 최근 건설폐기물 사업에 뛰어들었다.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인 WIK-용신환경개발 4개사를 인수한 에코프라임PE 사모펀드에 간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진출했다. WIK-용신환경개발은 2016년 기준 일일 평균 처리실적이 6488t가량으로 업계 1위 실적을 보유한 기업이다.

동부건설 관계자는 “기존 건설업서 확장된 신사업 진출 차원서 투자를 했다”며 “높은 마진률과 견고한 현금창출능력을 보유한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 투자를 통해 안정적 투자수익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GS건설

태영건설은 최근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태영건설은 지난 2004년 ‘TSK워터’ 설립을 시작으로 수처리·폐기물 처리·폐기물 에너지·토양 및 지하수 정화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환경부문에서 연결기준 매출 5106억원, 영업이익 950억원을 달성했다.

계룡건설산업은 최근 주주총회를 통해 제로에너지 등 신사업 진출을 위한 정관 변경을 완료했다. 올해 제로에너지 관련 설계·시공·유지관리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해 신사업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중흥그룹은 경제신문과 영자신문을 보유한 미디어그룹 헤럴드의 새 주인이 됐다. 중흥그룹과 헤럴드의 최대주주인 홍정욱 회장은 최근 홍 회장 및 일부 주주의 보유 지분 중 47.8%를 양수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중흥그룹은 주택사업에만 치중된 포트폴리오를 개선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 대상을 물색해왔으며, 특히 언론사업 진출에 적극성을 보였다. 2년 전 호남 지역지인 <남도일보> 인수에 이어 최근 미디어그룹 헤럴드까지 품으면서 중앙 언론 진출에 대한 염원을 풀게 됐다.

건설로 역부족
신규사업 어디?

이처럼 건설사들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신성장동력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의 부동산 시장 규제로 수주할 수 있는 정비사업 물량이 크게 감소하는 등 주택사업 환경이 녹록지 않은 까닭이다. 글로벌 경기 위축과 유가 하락 등 대외적인 변수도 많다. 대형 건설사들이 새로운 사업 분야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프로젝트를 수주해 시공하는 것으로는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고, 정부 정책과 경기 등 외부 변수에 따른 영향이 큰 것이 사실”이라며 “수익성이 높은 개발 사업이나 그동안 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며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