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연기’ 최악의 시나리오 다섯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3.24 08:14:41
  • 호수 1263호
  • 댓글 0개

학생도 부모도 갑갑해 죽겠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개학이 4월로 미뤄졌다. 학사일정 변경이 불가피해졌으며 2020대학수학능력시험 일정도 늦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원격수업

코로나19 여파로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개학이 2주일 더 연기됐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전국 학교 신학기 개학일을 4월6일로 추가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5주일…
3번째 연기

매년 전국 학교 개학일 날짜는 3월2일이었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지속되면서 총 5주일 미뤄지게 됐다. 교육부는 지난달 23일 개학 1주일 연기를 처음 발표했다가 이달 12일에 다시 2주일을 더 미루겠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는 3차 개학 연기(3차 휴업 명령)다. 잇달아 연기하는 바람에 “4차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개학 연기로 인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학사일정, 학원 및 급식업계까지 여파가 미칠 전망이다.

교육부는 개학을 한 차례 더 미루는 이유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등 전문가들이 밀집도가 높은 학교서 감염이 발생될 경우 가정과 사회까지 확산할 위험성이 높으므로, 안전한 개학을 위해서는 현 시점으로부터 최소 2∼3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감염 우려로 인한 긴급 조치로 3·4월 모의고사(학력평가)가 미뤄지고 여름방학마저 사라지는 등 학사일정의 대대적인 변동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대학 입시를 앞둔 학부모들과 고3 수험생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4월6일 개학마저 또 다시 미뤄질 가능성이 있어 교육계는 혼란에 휩싸였다.

통상 수시전형에 반영되는 내신 성적은 3학년 1학기까지다. 수시파들이 1학기까지 학교 시험공부에 전념하고 여름방학 시작과 동시에 2020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기출 문제를 풀면서 ‘정시’ 모드로 전환하는 이유다.

4월에는 학교 갈수 있을까
추이 보고 일정 변경 가능성

하지만 올해는 시작부터 뒤틀렸다. 이미 4월 초로 연기된 3월 학력평가는 개학이 미뤄지면서 4월 중순 이후로 밀릴 상황이다. 교육부가 의무 수업일수(190일)를 줄인다고 하지만, 학사일정이 최소 한 달 이상 밀렸기 때문에, 학생들은 사실상 여름방학을 반납하고 학교에 나가야 한다. 예년 같으면 정시 준비에 집중할 시기에 학교 수업과 수능 준비를 병행하게 돼 올해 수능이 재수생에게 유리하다는 말도 나온다.

이처럼 학생들 사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입시업체 진학사가 지난 6∼10일 고등학교 3학년 회원 233명을 대상으로 벌인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능을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이는 37.8%(88명), 연기해야 한다는 이는 36.1%(84명)로 박빙이었다.
 

▲ 개학 연기 발표하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예정대로 다음달 6일 개학할 경우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는데, 교육부는 수시 일정을 1∼2주 연기하는 내용을 우선 검토 중이다. 수시를 1∼2주 연기하되 정시 일정을 그대로 두거나 수시를 1∼2주 연기하고 정시도 연기하는 방안 등이다. 

수시와 정시 일정 모두 그대로 진행하는 방안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미 개학이 5주 밀리면서 여름방학이 줄 것으로 예상되고, 이에 따라 수시 일정이 촉박해져 학생부 마감일을 미룰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만약 코로나19 상황이 지금보다 나빠져 개학일을 다시 다음달 13일이나 20일로 미루는 경우 2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둘 다 정시를 1주일 연기하는 방안이고, 수시는 1주일이나 2주일 연기하는 것이다.

수능은?
학원은?

4월6일에 개학 시 수시 일정을 최소 한 주씩 미루는 방안이 지금으로선 유력하다. 이 경우라면 수능 연기도 불가피하다. 오는 11월19일로 예정된 올해 수능은 이미 작년 수능일(11월14일)보다 5일이 늦다. 만약 수능을 2주일 늦추면 ‘12월(3일) 수능’을 치르는데 이 경우 눈·추위 등 기상 상황에 따른 돌발 변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시험지 배부부터 수험생 수송, 대규모 지각 사태까지 시험 운영상 여러 문제가 우려되는 만큼 교육부는 12월 수능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특히 예체능 계열 수험생들의 걱정은 더 크다. 미대와 체대 등은 수능이 끝난 후 실시가 진행되는데, 수능이 연기되면 예체능계 수험생들은 실기를 준비할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앞서 수능이 연기된 적은 세 차례 있었다. 부산서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2005년과 서울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열렸던 2010년, 포항 지진이 발생했던 2017년에 각각 수능이 연기됐다. 2005년과 2010년에는 각각 3월, 2월에 미리 연기 발표가 이뤄졌으나 2017년에는 수능 전날에 연기가 발표됐다. 

이런 상황서 온라인 강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개학이 연기됐다고 학습마저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가서도 온라인 강의를 고려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는 2020학년도 1학기를 전면 온라인 강의로 운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18일 성균관대 관계자는 “코로나19 관련해 여러 가능성으로 인한 문제들을 검토하고 있고 그중에는 1학기 전면 온라인 강의 계획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해당 안을 포함해 교수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온라인 강의?

세종대·숭실대 등 일부 대학도 온라인 강의 연장을 고민하며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중앙대 관계자는 “19일쯤 온라인 강의를 더 연장할지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국민대 본부 관계자 역시 “4주간 잡아둔 온라인 강의를 운영하면서 (코로나19)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국대나 성공회대도 같은 입장을 내놨다.

지난 17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한 대학원 수업은 유튜브 방송과 같은 진기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교수가 초대한 화상 채팅방에 들어온 학생들이 실명 아닌 닉네임(별명)을 쓰기도 해 교수가 학생들을 ‘○○님’ 등 닉네임으로 부르기도 했다. 개인 사정 때문에 수업에 참여하지 못할 뻔한 학생들은 혜택을 받았다. 몇몇 학생들은 가족 행사서 휴대폰으로 수업에 참여하거나 병원 등 외부 장소서 수업에 참가하기도 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이처럼 전례 없는 강의 환경이 익숙치 않은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온갖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한 대학 강의에선 교수가 마이크를 켜지 않고 수업을 진행해 학생들이 노트에 ‘안 들려요’라고 써서 들어 보이기도 했다. 모니터 화면을 거울 모드로 설정해 칠판 글씨가 뒤집어져 보이는 일도 벌어졌다. 교수가 화상 채팅방에 비수강생 참여를 막는 기능을 설정할 줄 몰라 생긴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대학생 A씨는 “화상으로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비수강생이 접속해 ‘메시가 (축구를)잘해요, 호날두가 잘해요’ 등 수업 흐름과 전혀 맞지 않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주로 각자 집에서 수업에 참여하다 보니 교수나 학생 가족이 온라인 강의에 등장하기도 했다.

대학들도 온라인 수업 
“이참에 9월 신학기제”

일각에선 개학 연기가 또 이뤄진다면 ‘9월 신학기제’로 전환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9월 신학기제는 초·중·고교부터 대학까지 9월부터 학년과 학기를 시작하는 제도로, 현재 미국, 유럽, 중국 등 대다수 국가가 시행하고 있다. OECD 국가 중에서는 한국, 일본, 호주만이 3∼4월 학기제를 채택하고 있다.

현재 9월 학기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될 가능성이 높은 9월이 아이들에게 더 안전하다고 분석한다. 또 9월 학기제는 추가 개학 연기로 혼란스러워진 교육 과정을 바로잡는 데에도 유리하다는 의견이 있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은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인터뷰서 “이참에 한 번 9월 학기 신학기제로 변경하는 것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상황은 그냥 코로나19 사태서 만약 개학이 계속 늦어져 5월, 6월까지 간다면 전 학년 모두 6개월의 공백이 발생하는 상황이 되니 이참에 바로 9월 신학기제로 가는 게 낫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잇따른 개학 연기로 학교 급식업체 업무가 없게 되자, 관련업계도 울상이다. 경남 창원의 한 급식 유통업체는 이달 들어 매출이 전혀 없다. 학교 급식만 취급해 개학 연기 여파를 그대로 맞고 있는 것. B업체는 처음 개학이 연기됐을 때 직원들에게 휴직을 권고하기도 했다.

납품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지역 한 납품업체는 개학을 대비해 준비했던 급식 일부를 폐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유통기한이 다음달 초라서 급식판에 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업체 역시 거듭되는 개학연기 여파로 직원들에게 휴직 권고를 검토 중이다.

‘올스톱’
관련업계 울상

강원지역 급식재료 납품 농가서도 한숨이 터져나오기는 마찬가지 상황이다. 식자재로 사용될 농산물이 저온저장창고에 쌓여 상품성을 잃어가는 데다 유지비까지 들어가 손해가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저장고 천장까지 쌓인 감자를 보면서 이마의 주름이 더 깊어졌다. 지난해 이 지역 감자 농가는 13만8000t을 생산했다. 평년보다 20% 많다. 해당 지역 저장 감자는 대부분 식자재로 사용되는데 개학이 미뤄지면서 학교 납품이 멈췄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어린이집도 휴원 연장?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코로나19 감염을 최대한 방지하고 영유아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22일까지로 예고됐던 전국 어린이집 휴원 기간을 4월5일까지 2주 더 연장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어린이집은 영유아가 밀집해 생활하는 공간으로, 그 안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할 경우 쉽게 전파될 가능성이 크고 지역사회로 감염이 확산할 위험이 있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유지 차원서 개원을 추가로 연장한다”고 설명했다.

전국 어린이집은 지난달 27일부터 휴원에 들어갔다. 당초 이달 8일까지 휴원하기로 했다가 2주 연장했고, 이날 다시 한 번 2주 연장을 결정했다.

복지부는 휴원 기간이 늘어나더라도 맞벌이 부부 등을 위해 당번교사를 배치해 긴급보육을 시행한다.

긴급보육을 사용하는 사유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종일보육(오전 7시30분∼오후 7시30분)을 실시하고 급·간식도 평상시처럼 제공한다. 복지부는 긴급보육을 시행하지 않는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어린이집 이용불편·부정신고센터등을 통해 신고받는다.

어린이집은 보육실 교재·교구, 체온계, 의자 등을 아동 하원 후 매일 소독해야 하고, 현관·화장실 등의 출입문 손잡이, 계단 난간, 화장실 스위치 등을 수시로 소독해야 한다. 또 창문과 출입문을 수시로 개방해 주기적으로 환기해야 한다. <구>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