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법적 족쇄’ 풀린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5년의 기록

망자는 말이 없다 검찰도 말이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정치인으로서 막을 내리게 됐다. 그는 2015년 ‘성완종 게이트’로 불법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2017년 대법원서 무죄를 최종 선고받았다. <일요시사>는 유력한 ‘충청도 잠룡’으로 꼽혔던 그의 지난 5년 간의 몰락과 기사회생을 조명해봤다.
 

▲ 이완구 전 국무총리 ⓒ나경식 기자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가 대법원서 무죄가 확정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형사보상금 600여만원을 받게 됐다. 지난 5일 서울고법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무죄를 최종 선고받은 이 전 총리에게 형사보상금 619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1심 유죄
대법 무죄

형사보상제도란 무죄 판결이 확정된 경우에 형사재판 당사자가 쓴 재판 비용을 국가가 보상해주는 제도다. 이 전 총리는 2013년 4월4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출마 당시 충남 부여읍에 있는 자신의 사무소서 성 전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2015년에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이번 대법원의 무죄 확정으로 5년에 걸친 이 전 총리의 재판 대장정은 매듭을 짓게 됐다.

2015년 4월15일 <경향신문>은 성 전 회장과의 생전 마지막 전화 인터뷰 전문을 전격 보도했다. 성 전 회장이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 현 정부 실세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충격적인 보도였다. 해당 인터뷰서 성 전 회장은 “이완구도 지난번에 보궐선거 했잖습니까. 선거사무소에 가서 내가 한나절 정도 있으면서 한 3000만원 주고”라고 발언해 정치권에 논란이 크게 일었다.


성 전 회장은 당시 자원외교 비리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던 중이었지만 인터뷰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 후 성 전 회장 상의 주머니에는 ‘허태열 7억, 홍문종 2억, 홍준표 1억, 유정복 3억, 부산시장 서병수 2억, 김기춘 10만달러 2006년 9월26일, 이병기, 이완구’라는 내용이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 거물급 정치인 8명의 이름이 적힌 메모가 발견되자,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나서게 된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이 전 총리는 정치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해 “성 전 회장과 친밀한 관계가 아니다. 성 전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며 완강히 결백을 주장했다.

2015년 ‘성완종 리스트’ 정자법 위반 혐의
총리직 64일 만에 사임…역대 최단 불명예

하지만 2013년 성 전 회장과 이 전 총리의 부여 선거사무실 독대 정황을 뒷받침하는 증언이 나오고, 이 전 총리가 성 전 회장과 수백차례에 걸쳐 통화한 기록이 공개되면서 비난 여론은 더 거세졌다. 이 전 총리의 잦은 말 바꾸기와 거짓말 의혹이 더해지면서 그의 정치적 도덕성에는 크게 흠집이 났다.

논란이 계속되자 이 전 총리는 공식 취임 후 64일 만에 국무총리 사임의 뜻을 전격 발표하기에 이른다. 당시 이임식서 이 전 총리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당시 “짧은 기간 최선을 다했으나 주어진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떠나게 돼 무척 아쉽게 생각하며, 해야 할 일들을 여러분께 남겨두고 가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로써 그는 역대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이후 검찰은 이 전 총리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확인됐다며 같은 해 7월 이 전 총리를 불구속 기소했다.

2016년 1월, 1심서 이 전 총리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성완종이 피고인에게 3000만원을 건넸다는 인터뷰 내용과 정황 증거, 관련자 진술이 부합한다”며 이 전 총리의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이 사망해 법정서 직접 진술하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전화 인터뷰 내용을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로 인정할 수 있다고 간주했다. 성 전 회장의 진술 내용을 녹취하는 과정에 허위 개입의 여지가 거의 없고 진술 내용의 신빙성을 담보할 구체적 외부 정황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막 내린
충청 잠룡

재판부는 “성완종이 피고인에 대한 배신과 분노의 감정으로 모함하고자 허위 진술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게 하기도 하지만, 기자로부터 정권 창출 과정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설명해달라는 질문을 받고 금품 공여 사례를 거론한 문답 경위가 자연스럽다”고 판단했다.

또 검찰이 지목한 금품 공여 시점에 관해 성 전 회장 비서진들의 진술이 모두 일치하고 평소 재무본부장이 성 전 회장의 지시를 받아 금품을 포장한 방식, 사건 당일 오전 비서진이 성 전 회장 지시로 재무본부장에게 쇼핑백을 받아 차에 실었다는 진술 등이 모두 성 전 회장 진술과 딱 들어맞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들이 진실이 드러나면 위증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서 부담감을 이겨내고 허위진술을 할 가능성은 생각하기 어렵다”며 “비서진들의 진술을 믿지 않을 수 없다”고 최종 결론지었다.

이 전 총리는 1심 재판이 끝난 뒤에도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항소심서 다투겠다. 재판부가 검찰 주장을 토씨 하나 안 빠뜨리고 다 받아들였지만 나는 결백하다”며 “이 모든 수사 상황을 백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1심서 유죄를 선고 받은 이 전 총리는 같은 해 2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는 2015년 12월, 항소심을 준비하며 과거에 앓았던 혈액암이 재발하게 된다. 앞서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판정을 받아 출마를 포기한 뒤 투병생활을 했던 바 있다. 이후 지속적으로 정기검사를 받던 도중 검사에서 암세포가 발견되면서 항소심 재판 기일이 연기되기도 했다.

같은 해 9월에 선고된 항소심은 1심을 뒤집고 이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1심과 달리 성 전 회장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녹음 파일과 메모 등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고법은 성 전 회장의 대화내용 녹음파일 사본 및 녹취서, 성 전 회장이 작성한 메모 사본 등에 대해 “이 전 총리가 이를 증거로 동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원래 진술자인 성 전 회장도 숨져 진정 성립 여부를 진술할 수도 없으므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신 상태’가 증명돼야 한다”며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는 이유를 밝혔다.

쪽지 메모
증거능력 없다

특신 상태는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를 이르는 말로, 진술해야 하는 당사자가 사망했거나 질병·외국 거주·소재불명 등 이유로 진술이 불가능할 때는 특신 상태가 인정된 진술·문건 등에 한해서만 증거 능력이 인정된다.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의 대화내용 녹음파일 등에서 나온 진술 중 이 전 총리와 관련된 진술 부분은 허위 개입의 여지가 없거나 진술 내용의 신빙성·임의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정황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에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적힌 다른 사람들의 경우 이름과 함께 금액이 기재돼있고, 날짜 등이 적혀있기도 하지만, 이 전 총리에 대해서는 오로지 이름만이 적혀 있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아울러 경남기업 수사를 받고 있던 성 전 회장이 당시 이 전 총리에 대한 분노와 원망의 감정을 갖고 있었던 만큼 이 전 총리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판결 직후 이 전 총리는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 마음이 많이 무겁고 송구스럽다는 말씀드린다. 재판부 결정에 경의의 말씀드리고 진실을 밝히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3심이 남았으니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하겠다”고 언급했다.

2017년 12월, 대법원은 이 전 총리에게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이 전 총리가 성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가 인정될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그대로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형사재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갖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해야 한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합리적 의심 없이 공소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성 전 회장의 인터뷰 진술과 성 전 회장이 작성한 메모는 성 전 회장이 사망 전에 진술하거나 작성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서 이뤄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해서 증거로 삼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1심 후 혈액암 재발
'정치 야인’의 길로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기사회생하면서 명예 회복 차원서 정치를 재개할 것으로 예상됐다. 21대 총선서 대전, 세종, 충남 지역구 중 가장 파급력이 강한 곳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았다.

하지만 일각의 예상을 깨고 이 전 총리는 지난 1월 입장문을 통해 불출마 및 정치 일선서 물러날 것임을 발표했다. 그는 “오는 4월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 정치일선서 물러나 세대교체와 함께 인재충원의 기회를 활짝 열어주는 데 미력이나마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20대 초반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출발한 공직은 3선 국회의원, 민선 도지사, 원내대표,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45여년의 긴 세월이었다”고 지나온 길을 되짚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은 상생과 협치의 가치구현을 통해 국민통합에 매진해주고, 야권도 타협과 똘레랑스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며 상생과 통합을 호소했다.
 

이 전 총리는 입장문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3년여 동안 고통 속에서 지내는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이 서둘러 이뤄지길 고대한다”며 “모쪼록 자유우파가 대통합을 통해 분구필합의 진면목을 보여주길 염원한다”고 보수대통합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총리는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행정과 치안서 두루 공직경험을 쌓았다. 제15대 국회에 입성해 16대 재선에도 성공했다. 이 총리는 3선에 나서지 않고 2006년 당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충남지사에 당선됐다.

하지만 이명박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한 데 반발해 지사직을 전격 사퇴한다. 이후 이 총리는 2013년 4·24 재보선서 정계 복귀에 성공하며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올랐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얼어붙은 여야 대치정국서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기사회생
정치 재개?

정치인으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던 그는 보수 진영 내의 충청도 ‘정치 거물’로 충청 대망론에 불을 지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성완종 게이트’ 이후 엄청난 후폭풍을 겪으며 정치 야인의 길을 걷게 됐고, 21대 총선 불출마로 정치인으로서 막을 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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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