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새 역사 <미스터트롯>이 남긴 숙제

<미스터트롯>도 마케팅 쇼에 불과할까?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이 11주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시청률 35.7%(닐슨코리아 전국기준)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겼을 뿐 아니라, 40대 이상은 물론 그 이하 세대서도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TV조선 개국 이래 최고의 영광이다.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킨 <미스터트롯>은 조작 논란에 휘말리며,  그 의미가 퇴색된 채 마무리됐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은 트로트 열풍의 최고점을 찍었다. 지난해 <미스트롯>을 시작으로 MBC <놀면 뭐하니?> 유산슬 신드롬에 이어 각종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미스터트롯>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변두리에 있던 트로트는 전 연령대의 사랑을 받는 메이저 장르로 우뚝 섰다. 

‘35.7%’
적수가 없다

시청률이 이를 방증한다. 12.5%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5회에 25%를 찍었으며, 11회에 35.7%로 마무리했다. 첫 방송 이후 쉼 없이 수직상승했다. 시청률만 따지면 최근 여타 프로그램 중 <미스터트롯>에 대항할 경쟁 상대가 없다. 불법 다운로드 행태가 있기 전이나,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이 생기기 전인 약 10년 전 KBS2 <슈퍼선데이 - 1박2일> 정도가 적수에 해당한다.

30%를 넘는 예능프로그램 자체를 찾기 힘든 현 상황에서 일궈낸 성과다. 

40대 이상의 연령층은 말할 것도 없고, 1030의 젊은 연령대에서도 <미스터트롯>은 이슈의 중심이었다. 전 세계를 잠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일한 경쟁상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미스터트롯>의 신드롬은 대단했다. 


직장인과 현역 가수 등 아마추어와 프로가 뒤섞인 출연자들의 무대는 끊임없이 회자됐다. 구성진 꺾기와 안정된 가창력, 끼가 넘치는 무대 매너 등 출연진이 선보이는 맛깔스러운 퍼포먼스는 광풍 열기를 이어나갔다. 

트롯계의 거장 이건우 작사가는 “스타가 있어야 바람이 분다”고 했다. <미스터트롯>은 스타 발굴의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 임영웅과 영탁, 이찬원, 김호중, 장민호, 정동원, 김희재 등 TOP7을 비롯한 많은 출연자는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최고 시청률, 오디션 새 역사 
지상파도 부러운 뜨거운 광풍

특히 임영웅의 ‘배신자’, 영탁의 ‘찐이야’, 이찬원의 ‘18세 순이’ 등이 음원 사이트 내 ‘트롯차트’를 넘어 ‘종합차트’서도 상위권에 등극하는 등 이들의 인기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TOP7에 속하지 못한 출연자들 역시 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높아진 인기를 실감했다. 

MC 김성주의 안정된 진행을 바탕으로 가수 장윤정과 박현빈, 노사연, 박현빈, 방송인 박명수, 조영수 작곡가 등 심사위원진의 진심 섞인 심사평과 익살스러운 입담까지, <미스터트롯>은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공 포인트만 쏙 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TOP7이 최종 결승 무대에 오른 출연진의 출중한 무대는 저마다의 개성을 오롯이 지녀 박수 받아 마땅했다. 오디션을 넘어선 7인 7색 콘서트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퀄리티였다. 제작진과 심사위원진의 역량과 별개로 출연진이 보여준 퍼포먼스가 <미스터트롯>이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소위 ‘꽃길’만 걸었던 <미스터트롯>이 오명을 쓴 건 마지막 결승 무대를 앞둔 얼마 전부터였다. 임영웅 밀어주기 논란과 함께 불공정 계약 논란이 수면 위로 올랐으며, 급기야 우승자 발표 연기라는 초유의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제작진이 열심히 차려놓은 거한 상차림에 스스로 재를 뿌린 셈이다.
 


지난 12일 녹화방송에 생방송을 붙인 마지막 방송서 우승자인 진과 2등 격인 선, 3등 미가 결정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12일 방송에서는 우승자를 가려내지 못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773만 1781콜이라는 유례없는 문자 투표수가 단시간에 몰려 투표수를 완벽히 집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정확한 집계를 위해 최종 발표를 보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시간까지, ‘좋아하는 가수’의 우승을 보기 위해 기다린 시청자들의 애타는 심정을 배신하는 결과였다.

브랜딩 도구
감춰진 진실

19일에 우승자를 발표하겠다고 밝힌 제작진은 집계가 완료된 14일 긴급 편성을 통해 우승자를 가려냈다. 진은 임영웅, 선은 영탁, 미는 이찬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논란은 우승자가 가려진 후 더욱 거세졌다. 사전 투표서 1등이었던 이찬원이 문자 투표 발표 후 3위로 내려간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이찬원은 임영웅과 더불어 출연진 중 가장 큰 팬덤을 구축한 인물이다. 결승전의 관전포인트는 이찬원 혹은 임영웅 중 누가 1위를 차지하냐는 데 있었다. 선을 차지한 영탁 역시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앞선 두 출연자에 비해서는 팬층이 얇은 편이었다. 

그런 가운데 영탁이 이찬원을 문자 투표서 누르고 2위로 올라선 점이 시청자들에게는 선뜻 납득이 되지 않고 있다. 이는 <미스터트롯>이 조작 논란의 의심을 받는 이유다. 제작진은 “최종 결과가 발표된 후 투명한 결과를 증명하기 위해 원본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냉랭한 여론은 유지되고 있다. 제작진이 앞서 발표한 773만여표 중에 유효 투표수는 542만에 그치기 때문이다. 약 30%의 문자투표가 무용지물이 됐다. 이런 이유로 제작진은 유효 투표 기준에 못 미치는 무효표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제작진이 제시한 무효표의 기준은 여러 명의 이름을 동시에 작성하는 중복 투표, 성이나 이름을 잘못 쓴 경우, 이모티콘이 들어간 경우, 기호와 이름이 같이 들어간 경우 등 총 네 가지였다. 

당초 제작진은 여러 명을 투표하는 다중 투표는 인정하나, 한 문자에 두 명의 이름을 쓰는 중복 투표는 되지 않는다고만 알렸다. 그러다 문자투표 집계 이후 기준을 늘린 것. 

이번에도
출연자와 갈등?

특히 <미스터트롯>은 40대 이상이 주요 연령층이기 때문에 문자투표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를 간과하고, 문자투표 관련 고지를 단순하게만 정리했다가 뒤늦게야 바꿨다. 제작진의 안이한 대처로 인해 23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무효표가 발생한 것. 실제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부모님의 문자투표 실수 후기 사례 글이 게재되고 있다.
 

▲ ▲▲ 영탁

시청자들은 제작진의 갑작스러운 기준 변경으로 인해 특정 출연자가 피해 봤을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가장 피해를 본 인물로 이찬원이 꼽히고 있다. 이 대목은 앞서 <미스터트롯> 한 관계자가 SNS에 올린 임영웅 게시글에 ‘장하다 내 새끼’라고 쓴 부분과 겹쳐지며, 조작 여부를 의심받고 있다. 


제작진은 해당 게시물에 대해 “당시 참가자의 담당 작가가 참가자의 곡이 차트인 된 것에 놀라움을 표현한 것일 뿐, 프로그램과 관련한 일각의 우려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임영웅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또 심사위원진의 평가가 뭉뚱그려서 표현되고 있는 점도 조작 의심을 가중시키는 대목이다. 이전까지 <미스터트롯>은 심사위원진이 하트로서 출연자에게 점수를 주는 방식을 활용했다. 어떤 심사위원이 어떤 출연자에게 애정이 있는지, 시청자들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결승 무대에서는 이러한 설명 없이 마스터 투표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선명성이 부족한 마스터 점수가 50%나 반영되는 것에 불만을 드러내는 시청자들도 많다. 뚜렷하지 않은 채점을 통해 순위를 조작하려는 수법 아니냐는 의견이 팽배하다. 

결승 무대서 ‘대형사고’
무너진 신뢰…조작 논란도

그런 가운데 CJ계열 출신 방송 관계자 A는 오디션은 ‘마케팅 쇼’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에 처음부터 시작할 때 조작은 자연스러운 관행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A는 “오디션에 보면 인기를 얻을 출연자가 눈에 보인다. 실력과 비주얼, 스토리텔링 면에서 출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출연자를 편집을 통해 밀어준다. 문자투표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런 출중한 출연자가 우승해야 잡음도 없고, 프로그램도 각광을 받는다. 우승자는 거의 정해져 있으며, 방송은 이들을 브랜딩하는 도구”라며 “제작진으로서는 꼭 원본 데이터를 공개할 필요가 없으므로 심사위원 투표 등을 통해 진실을 감출 수 있다. 오디션은 애당초 조작이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프로듀스 101> 시리즈에 직접 스태프로 참여했다는 관계자는 “완벽한 조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청자 입장서 조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행태들이 있다. 특출한 능력의 출연자를 픽하고 편집으로 교묘히 띄운다. 소위 회의실서 정하는 ‘밀실픽’을 이후에 결과를 끼워맞추는 것. 팬들도 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문제로 확산되지 않는다. 제작진으로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각종 커뮤니티 및 해당 프로그램 댓글에는 <미스터트롯>이 특정 출연자를 1위로 만들려는 프로젝트로 보인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방송 편집 부분서 다른 참가자와 분명한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 시청자들에게도 보이는 것. 아울러 <프로듀스 101> 시리즈에서 조작이 드러난 시점서 시청자들은 더욱 ‘매의 눈’으로 방송분을 분석하고 있다. 

A는 “오디션이 마케팅 쇼가 된 지는 꽤 됐다. 특히 레이블 회사와 협업하는 오디션은 조작이 불가피하다. 다 수익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라며 “오디션 제작자의 능력은 방송을 잘 만드는 것과 더불어 원하는 출연자의 인기를 교묘히 조작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누군가를 우승시키기 위한 조작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기준을 갑자기 변경해 약 230만가량의 무효표를 발생시킨 부분과 당일 문자 투표 집계에 실패한 대목 등은 아마추어다운 진행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통해 오디션에 대한 낮아진 신뢰도가 방송계 전반으로 확산된 가운데, 엄청난 파급력을 일으킨 <미스터트롯>마저 이 같은 의심서 벗어날 수 없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새로운 신화?
오명의 역사?

의심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서 TV조선은 원본 데이터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원본 데이터 공개 후 기존의 의심을 잠식하면서 신뢰성을 회복하고, 트로트 오디션의 명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아니면 M.net과 마찬가지로 오명의 역사로 남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스터트롯’ 광풍은 그대로∼
출연자 향한 끊임없는 러브콜

<미스터트롯>은 비록 잡음이 이어지고 있지만, 광풍 열기를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출연자들의 활동은 이제부터다. 

임영웅과 영탁, 이찬원은 지난 16일 방송한 TV조선 <뉴스9>에 출연하며 스타트를 끊었다. 지난 19일을 시작으로 <토크콘서트-미스터트롯의 맛>이 3주간 방송된다.

아울러 <미스터트롯> TOP7은 TV조선 <뽕 따러 가세> 시즌2에서 뭉친다. 또 TOP7은 20일 팬들과 보다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사랑의 콜센터>를 통해 관심을 이어갔다.

특정 시간 동안 전국 각지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신청자의 사연과 신청곡을 받고, 그 자리서 즉석으로 신청곡을 불러주는 전화 노래방 형식의 재능 기부 이벤트다. TOP7이 현재 사회적인 상황을 고려, 외출을 하지 못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직접 제안한 것이 알려지며 훈훈함을 더하고 있다.

TV조선 뿐 아니라 지상파나 다른 케이블 채널서도 이들을 찾는다. CJ 계열 오디션 프로그램서 활약한 스타들에 장벽을 쳤던 지상파의 변화가 눈에 띈다.

진·선·미, 세 사람과 결승 진출자 장민호는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한다. 또 JTBC <아는 형님> 등에도 출연하는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상할 수 없는 엄청난 파급력

방송가에 따르면 <미스터트롯> 대다수 참가자에 대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TOP7 득표수를 보면 TOP3 외의 출연자들도 엄청난 팬덤을 구축한 상태. <미스트롯>이 송가인의 독주체제였다면 <미스터트롯>은 각자 탄탄한 팬층을 형성한 출연자들 모두 방송가를 휘저을 전망이다.

아울러 TOP7에 속하지 못한 노지훈, 김수찬, 나태주, 류지광, 영기, 신인선, 김경민 등도 높은 인기에 힘입어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 출연하는 등 개별 가수들을 향한 인기가 확장되고 있다.

가요계에 따르면 TOP7은 1년 6개월간 TV조선 측이 매니지먼트 위탁 운영을 맡긴 뉴에라프로젝트의 지원 아래 활동을 이어간다.

TV조선 측은 TOP7을 활용해 <미스터트롯> 전국 투어 콘서트를 진행하기로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우려로 전국투어콘서트는 5월로 연기됐다.

TV조선 측은 콘서트의 취소될 가능성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프로듀스 101> 시즌2 워너원이 약 1000억원 가까이 수익을 벌어들였다는 후문이 있는 가운데 그보다도 더 강력한 티켓 파워를 가진 TOP7의 수익은 예측 불가다. 

한 관계자는 “개그우먼 출신으로 <미스트롯>서 최종 5위를 차지한 김나희가 월수익 2억원이라고 알려졌다. 몇 배의 신드롬을 일으킨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이 얼마나 큰 돈을 벌지 상상이 안 간다”고 말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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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