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희생정신 무리수

“쿠팡맨도 사람이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배송업체 쿠팡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가운데 감염병에 무방비로 노출된 쿠팡맨들의 안전 역시 우려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쿠팡은 쿠팡맨들의 안전대책을 마련하기보다 직원들에게 상실감과 무력감을 안겨주며 노사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김범석 쿠팡 대표는 쿠팡맨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국민들이 불요불급한 접촉을 줄이는 데 쿠팡맨들이 기여할 수 있다면 그만큼 바이러스와의 싸움에도 도움이 되고 결국은 우리 고객과 우리 가족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중략)쿠팡이 있는 유일한 이유는 고객이다. 그 고객들이 우리를 찾고 있다. 고객이 필요할 때 그 옆을 지킬 수 없다면 우리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여러분 모두가 이 어려운 시기의 숨은 영웅들이다.’

편지 의도는?

한 쿠팡맨은 “대표가 격려하려고 보낸 건지, 위협하려고 보낸 건지 모르겠다”며 “배송물량이 폭주하고 전염병 위험에 노출돼있는 쿠팡맨들의 안전 보장과 처우개선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어 진정 쿠팡맨들을 영웅처럼 생각하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고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쿠팡맨들을 하대하는 회사 관계자들의 태도 또한 논란이 크다.


지난달 28일 방송된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는 택배 일을 하는 태사자 출신 김형준의 모습을 담았다. 쿠팡 트럭을 타고 배송하는 정직원 ‘쿠팡맨’과는 달리 김형준은 아르바이트 개념의 ‘쿠팡플렉서’다. 이날 방송서 김형준은 과거 화려했던 아이돌으로서의 삶을 뒤로한 채, 택배 아르바이트생의 일상을 보여주며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끌어냈다.

그러나 이날 회사 측이 촬영 준비를 위해 쿠팡맨들에게 보낸 공지 사항이 빈축을 샀다. 해당 공지에는 ‘시골사람처럼 어슬렁거리지 말라’ ‘밝게 인사는 필수’ 등의 하대하는 듯한 지시 사항이 난무했다.

이후 이 사실은 직장인 앱 블라인드 게시판에 올라와, 쿠팡에 대해 비난을 쏟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회사의 뜻은 알겠으나 ‘시골사람’ ‘어슬렁’이란 단어를 사용해 공지하는 마인드 자체가 관리자들이 직원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 지 알 수 있어 서글프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왕이면 ‘촬영장이 붐빌 수 있으니 안전사고 대비를 위해 촬영현장 방문을 자제해 주세요’라던가 ‘외부 인사가 방문할 시 밝은 목소리로 환영인사를 해주세요’라고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음에도 비하발언을 서슴없이 사용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사필수’라는 단어서 충성을 강요하는 갑질이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8일 쿠팡 노조는 “회사 측이 비상체제 돌입에 대한 긍정적 기사와 ‘고객들에게 과자를 받은 사진’을 기사로 유포해 쿠팡에 대한 이미지 개선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쿠팡의 입장은 ‘소비자들의 평가’가 최우선이고 쿠팡맨들은 그저 ‘배송 인력’에 불과했으며 배송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배송인력을 확충하는 데만 바빠 보였다”고 지적했다.

대표가 보낸 한 통의 편지…격앙된 택배원들
사지로 몰아넣고 확진자는 임금 70%만 지급?

그러면서 “언론을 통한 쿠팡의 브랜드 이미지 개선보다 쿠팡서 일하는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며 “소비자가 감동하는 서비스가 중요한 만큼 그 서비스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감동하는 일터를 만들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쿠팡은 지난달 21일부터 당분간 모든 주문물량에 대해 ‘비대면 언택트 배송’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코로나 사태로 늘어난 배송물량 만큼, 신속성을 위해 집까지 전달하지 않고, 문 앞에 두고 가는 방식이다.

지난달 23일 쿠팡 노동조합은 “쿠팡은 배송방식을 ‘비대면 언택트 배송’으로 바꿨지만 이것은 소비자들만 생각한 방식”이라고 지적하며 “코로나19로 노출된 일터서 일하는 쿠팡맨의 불안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부캠프에서는 심지어 쿠팡맨 중 의심환자가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이런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첫 번째로 마스크 착용, 소독, 체온 검사를 철저히 할 뿐 아니라 쿠팡서 코로나19 대응으로 검토 중인 사안, 계획 등을 쿠팡맨이 잘 알 수 있도록 소통채널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질병관리본부서 보고하고 있는 확진자들의 이동경로, 영향권은 배송운영을 최소화하는 방침을 고려해야 한다”며 “더불어 쿠팡맨의 자가격리 신청, 소독이 되지 않은 배송물품·차량 등을 교체 요청하거나 사용을 거부했을 경우 적절히 요구대로 이행이 될 수 있도록 운영방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쿠팡맨 A씨는 “전염병에 노출되는 근무환경도 문제지만 만약 코로나19 의심증상이 있어 검사할 경우, 음성이면 근무를 쉰만큼 무급휴가이며 양성으로 판정받으면 임금의 70%만을 지급 받는다”며 “이런 사측의 방침 때문에 의심증상이 발생해도 마음 놓고 검사를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회사는 3월에 들어서면서 인센티브 제도를 강화했다. 기본물량을 완수하고 그 기본물량 외의 배송물량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인데 최근 기본물량이 평균 140∼145건서 200여건으로 늘어나 인센티브를 받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기본물량을 배송하기도 힘든 상태서 인센티브를 받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라고 전했다.

이러한 기본물량 증가로 인한 애로사항은 특히 대구경북지역이 더했다. 지난달 20일 배송물량이 급증하면서 쿠팡 측은 대구 지역 쿠팡맨의 출근시간을 9시30분에서 10시로 변경했다. 이로 인해 오후 8시30분까지이던 퇴근 시간이 9시로 바뀌었다.

회사 측은 출근시간이 늦어진 것에 대해 물량 증가로 간선 상·하차 혹은 소분완료 시간이 지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쿠팡맨들의 입장은 달랐다.

쿠팡맨들은 “대구지역 캠프는 그전부터 조기출근 분위기가 형성돼왔으며 출근시간을 늦추면서 사실상 전체 근무시간이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평소보다 배송물량이 급증하면서 쿠팡맨들은 배송물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기존의 출근시간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성난 노조 

쿠팡 노조도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법적으로 보장된 휴게시간을 지키며 일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상대평가 시스템이라 정해진 시간만 일하면 하위 점수를 받고 몇 년이 지나도 월급이 인상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쿠팡맨들은 “회사는 호황이라고 하지만 정작 근로자들은 전염병의 위험 속에서 업무는 배로 가중돼 즐겁게 일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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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국힘 TK 쟁탈전

혼란의 국힘 TK 쟁탈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최근 국민의힘에선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자들만 넘쳐난다. 언론은 ‘영남 자민련’이나 ‘영남 소수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더 큰 몰락 가능성을 경고한다. 반대로 다른 지역에선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은 영남 자민련을 피할 수 있을까? 6·3 지방선거를 4개월 앞두고 있지만, 정가 안팎에선 국민의힘의 패배 가능성을 심각하게 거론하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달 15일 쌍특검(통일교 금품수수·더불어민주당 공천 헌금 비리 의혹 특검)을 촉구하면서 단식을 시작했다가 대통령실·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이어지는 패배 경고 그러다 지난달 22일 초라하게 단식을 중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제명에 대해선 강한 의욕을 드러내 친한(친 한동훈)계와 소장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장 대표는 “일부 극우 유튜버들과 밀착하는 등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자신의 정치적 공간 조성 전술로 삼는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선 “자신을 지지하는 ‘목소리 큰 집단’과 공명하면서 장 대표의 정치적 의사 청취 폭이 좁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는 사이 지방선거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5선을 노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서울시 부동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한 후 기자들을 만나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오 시장은 “장동혁 디스카운트가 선거를 덮치지 않을까 싶은 염려가 매우 크다”며 “국민의힘 소속 자치단체장들이 말을 안 해도 속은 숯검댕이”라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한 전 대표가 제명됐던 지난달 29일에도 “장 대표가 당을 자멸로 몰아넣었다”면서 장 대표 사퇴를 촉구했다. 여론조사 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지난달 24일부터 2일 동안 서울시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지난달 27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 시장은 서울시장 가상 대결에서 40.3%의 지지를 얻어 50.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성동구청장보다 10.2% 뒤처지는 결과를 얻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대구·경북(이하 TK) 외 지역에선 지방선거 전패를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분석한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를 보면, 국민의힘의 TK 지지율은 19%로 확인돼 정가에 큰 충격을 줬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지도력의 공백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불안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당한 이후에도 홍준표 전 대구시장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대표를 맡아 수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미래 구상을 제시하지 못한 채 선거 패배 후 물러났다.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지난해 5월10일 새벽 3시에 김문수 당시 대선후보를 한덕수 전 총리로 기습 교체하려다가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갈등을 매끄럽게 수습·조율할 지도력 공백의 여파였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두 전직 대통령이 구사했던 정치술이 만든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2인자·미래 권력·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1인 지배 체제를 선호했고, 다른 의견을 제시한 정치인은 퇴출하려고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장 디스카운트…현 시도지사 속은 숯검댕이” ‘북적북적’ 넘치는데 다른 지역은 구인난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국회법 개정안 관련 갈등을 빚었던 당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 심판’을 언급하면서 국무회의 도중 강하게 비판했다. 유 원내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발언 13일 후 원내대표직에서 사임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이준석·김기현 전 대표와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3명의 여당 수장에게 ‘격노’ 카드를 부여한 후 퇴출하는 정치술을 구사했다. 두 전직 대통령 모두 과도한 당내 권위·권력을 행사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권력 승계에 있어 큰 위기에 봉착했다. 정치학에선 과도한 권위·권력이 갑자기 무너진 후 진행되는 혼란상을 권력 공백이라고 한다. 두 전직 대통령이 추구했던 권력 형태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정의했던 가산관료제와 맞닿는다. 막스 베버는 “근대 관료제가 군주제 국가의 관료제보다 진보적·합리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군주제 국가 관료제에 가산관료제란 명칭을 붙였다. 군주제 국가의 각종 행정 기구는 군주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면서 군주의 개인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군주는 국가의 가부장이고, 관료는 군주의 가신에 가깝다. 군주의 주관적 의지와 자의적 판단이 법적 절차보다 우위에 있고, 군주와의 친소 관계가 관직 임용의 기준이 된다. 이로 인해 관직은 거래 수단이 되는 등 사유화된다. 두 전직 대통령도 공천권을 사적 충성심의 거래 수단으로 활용했다. 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내 친박(친 박근혜) 계열 정치인을 제20대 총선에서 대거 당선시키기 위해 공천에 개입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2018년 징역 2년형을 확정받았다. 윤 전 대통령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개입했단 의심을 받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현대 정당 시스템을 전근대적 가산관료제로 역행시켰다. 권력 공백 상황에서 발생하는 혼란은 민주적 정당성을 토대로 전임자의 권위·권력을 승계받은 후계자가 수습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혼란을 수습할 후계자를 양성할 수 없었다. 국민의힘이 지난해 5월 대선후보였던 김 전 후보를 새벽에 기습 교체하려고 했던 것도 권력 공백 상황에서 발생했던 극단적인 혼란이었다. 한 전 총리가 김 전 후보의 대안으로 선택됐던 이유도 당내 영향력이 미약한 인사·외부인을 옹립해 특정 정치 집단의 이권을 유지하려던 것이었다. 12명 중 5명 출마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을 암시하는 현 상황 중 하나는 당내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 선언만 이어지고 있단 것이다. 현재까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정치인은 ▲주호영 국회부의장(대구 수성갑) ▲추경호 전 원내대표(대구 달성군) ▲윤재옥 전 원내대표(대구 달서을) ▲최은석 의원(대구 동·군위갑) ▲유영하 의원(대구 달서갑) 등이다. 원외 정치인으로는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과 홍석준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다. TK 지역신문 <영남일보>는 지난 3일 사설을 통해 “대구 전체 의원이 12명이니, 절반 가까이 대구시장 선거에 뛰어든 셈이고, 사상 유례없는 출마 러시”라며 “추상적인 슬로건을 강조할 뿐, 대구의 미래에 대한 독자적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없다”고 비판했다.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 전한길씨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지지하고 있다. 전씨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전한길을 품는 자가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고, 향후 국회의원 공천을 받을 수 있으며, 대통령도 될 수 있다”며 “저는 공천 같은 건 안 받지만, 만약 대구시장 후보 공천을 받는다면 이 전 위원장에게 무조건 양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을 방문했고, 오는 9일 대구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서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 2022년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했다가 국민의힘 경선에서 탈락했다. 경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정치인은 ▲이철우 현 경북도지사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김재원 최고위원 ▲이강덕 포항시장 등이 있다. 이 지사는 3선에 도전하는 것이고, 이 시장은 포항시장 3기를 채웠기 때문에 더는 포항시장으로 출마할 수 없다. 최 전 부총리는 구 친박계의 핵심으로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에 연루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지난 2022년 특별사면을 받은 후 재기를 꿈꾸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경북도지사 출마로 방향을 틀었다. 김 최고위원의 의원 시절 지역구는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이었다. 반대로 다른 지역에선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했다. 서울시장 후보로는 오 시장에 이어 국민의힘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출마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지사 후보로는 새누리당 원유철 전 원내대표·심재철 전 국회부의장 등 원외 인사들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안팎에선 “과열 양상이 빚어지는 TK와는 다르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 친한계는 “서울 강남·부산의 보수 성향 엘리트들이 모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친한계는 십수명 안팎의 국민의힘 의원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탈당해 신당을 창당하더라도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없다. 사라진 2인자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은 지난달 28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 저널>에 출연해 “신당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 창당설에 선을 그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수도권 기반 의원들의 위축을 유발해 국민의힘 전체의 폐쇄적 집단 사고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선 “소장파의 성장 가능성을 완전히 거세할 위험으로 연결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당내 견제 장치가 사라져 언더 찐윤의 확증 편향 중심 의사결정 구조가 굳어질 위험으로 이어진다. TK·강원을 주된 기반으로 둔 언더 찐윤이 주도권을 장악한 것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 총선부터 연이어 참패해 국민의힘의 수도권 기반이 축소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치 구도에서 수도권 출마자들은 외연 확장의 선봉장 역할을 한다. 외연 확장이 가로막히면서 기존 텃밭을 지역 기반으로 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진다. 반대로 외연 확장 실패는 정당의 힘을 약화한다. “언더 찐윤에 해당한다”는 평을 듣는 국민의힘 내 TK 기반 정치인들은 “언론 노출을 꺼리면서 지역구 토호와의 접촉에 열중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외연 확장 실패는 외부와의 경쟁 포기·지역 기반 안주란 결과로 연결된다. “국민의힘에서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 열기만 이어진단 것은 ‘영남 자민련’ 축소를 자처하는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 모든 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힘 내 중앙 정치의 패장들이 중앙 정치에 뜻을 잃고 내부 기반의 요새로 도피하는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은 현대 정치학에서 거론하는 정치적 부족주의 개념를 뒷받침한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개인이 이성적 정책·이념보다 인종·지역·종교 등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치적 정체성에 자신을 귀속시키면서 동일시하는 현상을 말한다.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8년 저서 <정치적 부족주의>를 출간했다. 추아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해 “특정 집단의 이익만 대변하는 정체성 정치가 활개를 치면서 증오·대립이 극대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씨가 이 전 위원장의 대구 출마를 촉구·지지하는 상황은 정치적 부족주의를 넘어 계파적 부족주의로까지 축소되는 양상으로 이어진다. 연이은 수도권 참패 후유증…부족주의 강화 눈앞 아른거리는 자민련·자유선진당 뒤안길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들에 대해선 “연이은 선거 패배 때문에 이어진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지 못한 채 과거 성공했던 지역 기반 승리에 집착하는 경로의존성에 따라 보신주의를 추구한다”는 평이 나온다. 두 전직 대통령은 1인 지배 체제를 선호해 후계자 양성에 소홀했다. 이는 위기를 타개할 정치적 상상력을 가지고 미래 권력이 돼야 할 2인자가 사라졌다는 후유증으로 연결됐다. 이들은 소속 정당이 중앙 정치에서 힘을 잃더라도 지역 기반만 유지할 수 있다면,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새로운 모험을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정치적 성공을 안겨준 지역 기반에서의 승리 공식을 토대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경로의존성에 의지한다. 그 결과, 국민의힘의 대구 지역 의원 12명 중 5명이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현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 현상에 대해선 당이 “불확실한 중앙 정치를 감당할 역량마저 고갈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도 있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일부 지식인은 거듭되는 난세를 정치적·정신적으로 감당하지 못했다. 이들 사이에선 대나무숲에서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면서 노장사상을 토대로 구성된 청담을 말하는 풍조가 유행했다. 이들 중 특히 유명했던 선비 7명을 묶어 죽림칠현이라고 한다. 죽림칠현은 모친상 도중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연주하거나, 친구의 모친상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등 기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이들은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아 말년엔 고위 관직을 지내거나, 위나라 황실 사위가 되는 등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들에게 대나무숲은 정치적 실패를 잊기 위한 도피처였다. 사회 전반적로는 5가지 광물을 섞어 제조하는 마약 오석산이 유행했다. 죽림칠현도 술에 오석산을 섞어 마시면서 청담을 논했다. 오석산 복용자들은 환각 상태에서 기행을 저질렀다. 독성 때문에 피부가 약해지기 때문에 새 옷의 반듯함을 감당하지 못해 낡고 헐렁한 옷을 입어야 했다. 그래서 위나라 곳곳엔 낡고 헐렁한 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민의힘에서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만 이어지는 현상은 “텃밭으로 돌아가 연이은 선거 패배와 정권 상실이란 현실을 잊고 자아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언론이 국민의힘을 일컬어 ‘영남 자민련’이나 ‘영남 소수당’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더 큰 몰락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연립 정권의 한 축이었던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은 정치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연이어 선거에 패배한 후 2006년 한나라당에 흡수됐다. 자유선진당은 충청권에서조차 자민련만큼의 지지세를 확보하지 못해 2012년 총선 참패 후 새누리당과 합당해 소멸했다. 다가오는 몰락의 길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는 등 ‘중도 보수’ 선언을 현실 정치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과연 TK만 북적거리는 국민의힘은 자민련·자유선진당의 뒤안길을 걷지 않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