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무방비 사각지대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3.16 12:24:18
  • 호수 12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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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막을 수도 없고…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코로나 확진자들의 동선이 언론을 통해 샅샅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확진자들이 다녀간 장소가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코로나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지 못하는 공공장소도 남아있다. 하지만 코로나 감염 사각지대도 여전히 존재한다.
 

▲ 서울 구로구 소재의 코리아 빌딩 ⓒ문병희 기자

서울시 구로구 신도림동 코리아빌딩 11층 콜센터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가 집단으로 발생했다. 콜센터 상담사라는 직종 자체가 집단 감염에 취약한 사무환경을 갖고 있는데 환기도 잘 되지 않는 사무실 안에서 다수가 밀집해서 근무하는 구조 탓이다. 하루 종일 말로 응대하는 업무기에 마스크 착용을 한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자체가 불가능하다. 코로나19 무방비 사각지대인 공공장소들을 모아봤다. 

다닥다닥
난감하네∼

▲클럽 =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식당 등 각종 영업점이 매출 부진에 허덕이고 있지만, 서울 강남과 홍대, 이태원 등 일대 클럽은 다른 나라 이야기다. 이곳들은 매주 주말마다 인파가 몰리고 있다.

온라인커뮤니티와 SNS 등에 따르면 서울 강남과 홍대, 이태원 등에 있는 클럽에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인 지난달 22∼23일 주말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수많은 인파가 몰리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SNS 등에 올라온 사진에는 당시 날짜와 시간을 인증하며 휴대폰을 들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서울 강남의 한 클럽 내부 전광판에는 ‘코로나 따위 개나 줘라’ 등의 문구를 게시하기도 했다. 사진 속에 나온 사람 중 일부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착용하지 않은 채 인파에 휩쓸려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태였다.


클럽뿐 아니라 번화가 술집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골목은 20∼30대 청년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술집 테이블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일부는 밖으로 나와 길거리에 침을 뱉는 등 비말(침방울)로 인한 코로나19 감염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시간 종로구 세종마을 음식문화 거리 역시 대기표를 작성하고 식당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SNS서 입소문을 탄 한 주점 앞 대기표에는 8팀이 대기를 걸어놓는 등 코로나19의 영향은 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서울 강남에선 한 ‘헌팅술집’에 들어가려고 대기하는 젊은이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헌팅포차는 호프집이나 포장마차처럼 소주, 맥주 등을 파는 일반 술집과 비슷하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테이블의 이성과 즉석만남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입소문 난 술집…8팀 대기
“마스크 착용하기도 힘들어”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강남을 비롯한 홍대, 이태원 등의 클럽 등이 자발적 휴업이 이어지자, 놀 수 있는 곳을 찾는 젊은이들이 헌팅포차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클럽 대체제’로 자리 잡은 것이다.

▲공장 = 서울시 강북구 미아사거리 인근에는 봉제공장들이 밀집해있다. 콜센터처럼 밀집된 환경서 일하는 공장 노동자들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서 “콜센터 집단 감염은 남 일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미아사거리역 근처 지하에 있는 한 봉제공장에 들어가자 마스크를 하지 않고 재봉질을 하는 직원도 있었다. 직원들은 따로 환기를 하거나 방역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A씨는 “온종일 다 같이 붙어서 일하니 한 명 걸리면 모두 걸리는 거라고 우리끼리 말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콜센터서 단체로 코로나19에 걸린 걸 보고 너무 겁이 났다”며 “우리는 줄 서서 마스크 살 시간도 없고, 자가격리되면 생계에 지장도 갈 뿐더러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 봐 무섭다”고 토로했다.
 


지하에 위치한 또 다른 봉제공장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직원들이 즐비했다. B씨는 “지금 몸살감기 증상이 있는데 말하기 조심스럽다”며 “옆 사람이 걸리면 다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뭘 더 주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2층에 위치한 봉제공장은 상황이 심각했다. 환풍기는커녕 아예 창문을 열 수 없는 구조였다. C씨는 “마스크를 못 구하고 있는데, 한 명 걸리면 모두에게 피해가 가니 겨우 구한 사람이 마스크를 나눠주기도 한다”며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기 때문에 자가격리되면 생계가 올스톱 된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를 우려해 일용직 노동자를 부르지 않는다는 사업장도 있었다. 한 봉제공장 사장은 “뉴스서 단체로 걸렸다고 보도하는 걸 보면 비슷한 사정인 우리도 걱정이다”며 “따로 체온을 잴 수도 없고 직원들이 열이 안 난다고 하면 믿어야지 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창문도 없는
밀폐된 공간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재택근무를 할 수 없고, 폐쇄 공간서 여럿이 근무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담당자를 정해 열이 있는지, 호흡기 증상이 있는지, 신천지 신도인지, 확진자 접촉 가능성이 있는지 등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며 “마스크를 쓸 수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 되도록 쓰고 공간 환기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공장 노동자들은 코로나가 두려워도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어 착용하지 않거나 몸살감기 증상이 있어도 생계 문제로 함구한다. 또 일용직 노동자를 부르는 사업체의 경우 이들에 대한 관리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약국 앞 = 지난 12일 서울 강동구 한 약국 앞에서 긴 줄이 늘어섰다. 이날 오후 2시부터 마스크를 판매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오후 1시쯤 도착해도 벌써 시민 50여명이 마스크를 쓴 채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앞사람과 뒷사람 얼굴 간격이 50cm도 채 되지 않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대화를 하면 충분히 서로 얼굴에 침이 튈 수 있을 만한 간격이었다.

줄을 선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서 있는 게 더 위험하다” “너무 가깝다”며 줄을 서는 동안 감염 위험을 걱정하는 말도 종종 오갔다. 밀폐된 장소는 아니지만, 확진자일지 모르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감염 위험이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이날 마스크를 산 50대 홍모씨는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선 것인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있었다. 마스크를 사는 게 안전한 행동인지 좀 헷갈리기도 한다. 인파가 많이 있는 밀집 장소에서는 두려움이 먼저 생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는 협소하고 밀폐된 공간서 다수가 밀집할 경우 전파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불안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놀이공원 =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매표소 앞엔 개장과 동시에 놀이공원에 입장하기 위한 사람 100명이 넘었다. 이날 매표소 앞에 줄을 선 이들 중 상당수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줄을 서는 사람들도 많았다.

마스크 사러 
갔다가 헐∼

이날 오전 11시경 롤러코스터의 종류인 ‘아틀란티스’를 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22분이었다. 아틀란티스는 보통 휴일엔 2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탈 수 있는 놀이기구로 알려져 있다.


놀이공원에 다녀온 20대 구모씨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놀이기구 특성상 사람들이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하며, 줄을 설 때 밀집된 장소서 기다려야 한다. 신경쓰지 않고 놀이공원에 갔지만, 막상 사람들과 부딪히다 보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시국에도 눈치게임 잘하면 누릴 수 있는 건 풀로 누릴 수 있겠네” “경마공원 그 넓은 주차장에 전세 내고 집사람 운전연습시켰다” “이제 이거 보고 사람 몰리는 거 아니냐” “코로나 때문에 사람 없다고 소문나서 갔나 본데, 사람 많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놀이공원 이용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엇갈린다. 우려의 시각은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하고 타인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야 하는 놀이공원 특성상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놀이공원 특성상 줄을 서고 기구를 탈 때 ‘거리두기’가 안 되는 상황이면 피해야 한다”며 “만약 환자 한 명이 있었다고 하면 동선 파악, 접촉자 파악이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지켜야 할 것들은 분명히 지켜야 한다”면서도 “마스크를 잘 착용한다는 가정 하에 놀이공원 정도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롯데월드 측은 놀이기구 손잡이 등을 소독 분무기와 거즈를 이용해 자주 소독하고 엘리베이터 버튼 등 접촉이 많은 곳에 대해 소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학원가 = 공무원 준비생들이 있는 노량진 학원가 역시 분위기가 달라졌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각종 시험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기로 가장 바쁠 때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시험은 연기됐다. 그렇다고 수험생들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일부 학원은 당분간 문을 닫아달라는 교육부의 요청에 따라 수험생들 사이의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강의를 중단하고 건물 전체를 폐쇄하기도 했다. 

놀이공원서 거리두기?
노량진 수험생 노출


하지만 상당수 학원들은 여전히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수험생들도 노량진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렇다고 문을 연 학원들이 코로나19에 대한 걱정과 경계심을 늦추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확진자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그 학원은 정상 운영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확진자는 물론 접촉자도 시험 응시 자격 자체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평소에 볼 수 없던 조치들을 진행하면서 ‘조심 또 조심’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노량진 학원가에서는 코로나19 초기부터 학생들에게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는 당부가 전달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지난 2일부터 마스크 미착용 시 학원에 들어갈 수 없는 조치까지 취해지고 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당일 아침 학원 앞에 도착해서야 마스크를 집에 두고 온 사실을 알게 된 수험생 지모씨는 학원을 뒤로 한 채 주변 카페로 발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방에 항상 마스크를 갖고 다니려고 하는데 가끔 까먹을 때가 있다”며 “마스크 때문에 학원서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게 억울하기도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해한다”고 말했다. 

노량진역 6번 출구 앞의 또 다른 학원은 건물 입구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했다. 손 소독제의 경우 엘리베이터 앞, 복도, 창문 틀 등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수험생이 많이 이용하는 교실 앞 손 소독제는 금방 바닥이 드러났다.

수백명의 수강생 앞에서 강의해야 하는 대형 강의 강사들은 현실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강의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고려해 한 학원은 하나의 마이크를 여러 강사가 공유하지 않고, 강사별로 개인 마이크를 나눠주고 강의실 스피커에 연결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물론 이런 대비도 수험생들이나 강사들을 안심시키기에는 충분치 않다.

문 닫을 수도
열어놓을 수도

정부는 서울 구로구 콜센터 집단 감염과 관련해 다른 콜센터는 물론, 노래방·PC방·클럽·스포츠센터·학원 등을 집단 감염 고위험군으로 별도 관리키로 했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이날 “사람들이 밀집해 비말 감염 우려가 있는 콜센터와 유사한 사업장 등에서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과)유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각 부처·지자체 등과 협조해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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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