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영화 ‘허물어진 경계’

메가폰 들고 안방극장으로 ‘고고’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드라마를 두고 ‘안방극장’이라고들 한다. TV를 보는 각 가정의 안방을 극장으로 비유하는 말인데, 최근 드라마의 퀄리티를 보면 안방극장이 꼭 비유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만큼 세련된 영상미와 몰입도 높은 스토리,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이 버무려져 있다. 뚜렷해 보였던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는 오래 전에 희미해졌다. 집에서 자유롭게 보는 드라마 콘텐츠가 영화의 수준으로 높아진 이유와 미래에 대해 짚어봤다.
 

▲ 박찬욱·이경미 감독

과거에는 드라마와 영화에는 보이지 않지만 뚜렷한 경계가 있었다. 영화배우와 드라마 연기자라는 구분이 있을 정도였다.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은 드라마에만,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영화에만 출연하는 풍토가 있었다. 가끔 영화 위주의 작품활동을 했던 배우가 드라마에 나오면 커다란 이슈가 되기도 했다. 

드라마를
영화처럼

배우 장동건과 신하균, 김혜수 등이 대표적인 예다. 감독과 스태프의 경계는 더욱 분명했다. 간혹 드라마 PD 중에 능력을 인정받은 PD가 영화를 연출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 경계가 허물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약 10년 사이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와 드라마를 오고 가며, 자유롭게 작품을 선정해왔다. 최근 두드러진 현상은 영화감독들이다. 특히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영화 감독들이 드라마에 대거 진출하고 있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과 <챔피언>의 김용완 감독,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 <내 안의 그놈>의 강효진 감독을 비롯해 <공작>의 윤종빈, <터널>의 김성훈 등 걸출한 영화감독 대다수가 10부작 이상의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2011년 장항준 감독이 SBS <싸인>을 연출한 예도 있었지만, 이는 특이한 경우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영화감독이 드라마를 연출하는 경우는 없었다. 영화감독들의 드라마 진출은 CJ 계열의 채널부터 바람을 일으키면서 시작됐다. 

가장 먼저 나선 감독은 영화 <역모-반란의 시대>의 김홍선 감독이다. tvN <손 더 게스트>가 공포 장르임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후로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 한지승 감독이 OCN <미스트리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김종현 감독이 OCN <프리스트>를 연출했다.

비록 흥행면에선 성공하지 못했지만, 기존 드라마와 다른 수준의 질적 향상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OCN은 더 깊은 영화계와의 협업을 선언한 후 ‘드라마 시네마틱’이라는 테마를 내건다. OCN 관계자는 “OCN 드라마가 영화 같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 강점을 부각하기 위해 드라마 시네마틱이라는 테마를 걸었다”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화감독과 협업하는 흐름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 첫 작품은 <트랩>으로 <분노의 역류>의 박신우 감독이 연출했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날선 연출과 밀도 높은 스토리라는 측면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두 번째 드라마 시네마틱 작품인 <사라진 밤> 이창희 감독이 OCN <타인은 지옥이다>를 연출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세 번째 작품은 차태현과 이선빈, 정상훈 등이 출연하는 <번외수사>다. 

달라진 브라운관의 위상
전진하던 스크린 ‘답보’

최근 연상호 감독이 집필하고 김용완 감독이 연출을 맡은 <방법>은 오컬트 장르임에도 불구, 6%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물론 엄청난 화제성을 갖고 있다. 연기파 배우들과 아역 배우인 정지소를 통해 얻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CJ 계열뿐 아니라 JTBC도 영화감독들을 기용하고 있다. JTBC의 자회사인 JTBC 스튜디오는 배우 하정우와 그의 동생 김영훈, 강명찬 대표를 주축으로 세운 영화제작사 퍼펙트스톰과 <악인전> 등을 제작한 비에이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극한직업>으로 흥행 감독이 된 이병헌 감독은 JTBC <멜로가 체질>을 연출했다. 비록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이 감독 특유의 말장난은 빛났다는 평가다.

MBC는 영화감독조합(DGK)과 손을 잡고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를 제작한다. 제목은 <SF8>. 김의석, 노덕, 민규동, 안국진, 오기환, 이윤정, 장철수, 한가람 감독이 각 러닝타임 40분인 총 8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기술발전을 통해 완전한 사회를 꿈꾸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오리지널’과 ‘감독판’ 2가지 버전으로 제작되는 <SF8>은 MBC와 wavve를 통해 각각 방영된다. SF팬을 위한 오리지널 버전은 오는 8월 MBC서 방송 예정이고, 영화 마니아를 위한 감독판은 방송에 앞서 OTT서비스플랫폼 wavve에 한 달간 독점 선 공개할 예정이다. 
 

▲ (사진 왼쪽부터)연상호·황동혁·이병헌 감독

작품 기획은 물론 연출도 맡은 민규동 감독은 “SF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탄생한 <SF8>은 8인 감독이 만드는 사이언스 픽션 장르의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포, 미스터리, 액션, 멜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의 향연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OCN <번외수사>(강효진 감독)와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경미 감독)과 <킹덤2>(박인제 감독)가 방영을 앞두고 있다. 

이렇듯 연출력이 뛰어난 영화감독들이 드라마 시장으로 뛰어들 수 있는 배경은 드라마 시장이 커진 것에서 기인한다. 드라마 시장은 아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판권을 팔며 시장의 규모가 커졌다. 드라마 제작 편수는 한 해 150편에 달한다. 아울러 넷플릭스나 wavve와 같은 OTT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콘텐츠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콘텐츠 자체에 수요가 높아진 것.

콘텐츠 품귀 현상이 크리에이터 품귀 현상으로 이어지면서 영화 감독이 드라마에 진출할 수 있는 판이 만들어졌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최근 국내 드라마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됐다. 해외 판권이나 OTT 플랫폼 덕에 한국 드라마에 대한 사이즈가 커졌다. 그런 만큼 연출가나 스태프에 대한 품귀 현상도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영화감독으로 눈이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몸집 키운
안방 시장

드라마 시장이 글로벌화 됨과 동시에 국내 드라마의 경쟁상대는 타 방송사가 아닌 해외의 드라마가 됐다. 영화 제작 방식이 필름서 디지털로 바뀌고, 드라마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두 현장의 촬영 장비 및 기법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영화계서 몸담았던 스태프들도 대거 투입하게 됐다.

과거 ‘생방 제작’이라고 불리는 등 몇 달 내내 밤을 새워가면서 만들었던 드라마 환경도 ‘반 사전 제작’ 형태로 바뀌는 등 여러 부문서 드라마와 영화의 현장 환경의 간극이 좁혀졌다. 드라마 촬영 환경의 변화가 영화와 드라마 사이에 인력 교류가 원활해진 배경이다.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 감독은 “현재 드라마와 영화 촬영 현장은 거의 비슷하다. 촬영 방법과 기법, 장비의 구분이 사라졌다”며 “영화에서밖에 표현할 수 없던 기술이 드라마서도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스태프들 사이서도 변화가 생겼다. 드라마 스태프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영화를 넘어섰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예전에는 영화 스태프들의 수익이 더 컸는데, 이제는 그 차이가 불분명해졌다. 드라마만 전문으로 하는 스태프 중에 월에 1000만원가량의 수익을 얻는 경우도 많다”며 “스태프들의 수익만 봐도 드라마의 달라진 위상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야기에 어울리는 플랫폼을 선택하고자 하는 감독들의 개인적인 욕심도 영화감독들이 드라마로 진출한 요인으로 꼽힌다.

영화 <터널>에 이어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를 연출한 김성훈 감독은 “2시간에 담지 못한 서사가 분명 있다. 드라마 산업이 성장하면서 창작자 입장에선 놀이터이자 일터가 새롭게 늘었다”고 말했으며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 감독은 “이제 어떤 플랫폼인지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7∼8년 전부터 드라마 연출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배우 도경수와 6부작 웹드라마 <긍정이 체질>을 선보이기도 했다.

영국서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 역시 “원작 내용이 워낙 방대했기 때문에 드라마로 만들기로 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근본적 차이는 없다고 생각했고 ‘긴 영화’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콘텐츠
품귀 현상

드라마 시장이 일취월장하는 사이 영화 시장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도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유다. 드라마가 글로벌화 됐음에도, 영화는 여전히 국내 시장에만 의존하고 있다. 영화 수익의 대부분이 국내 관객으로만 채워진다. 전 세계서 각광받은 <기생충>이 해외 시장서 큰돈을 거둬들였을 뿐이다. 

대규모 투자 영화에만 집중되는 현상과 함께 작가주의 영화들이 스크린을 배정받지 못하는 점, 클리셰로 점철된 양산형 영화만 대다수 만들어지는 풍토가 생겨나면서 창작자의 고유성을 유지할 수 없는 환경으로 치닫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면서 드라마로 눈길을 돌리는 창작자가 늘어났다는 주장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영화서 창의성을 고수하는 것이 드라마보다 어려워진 현실이 됐다. 성공한 적 없는 장르나 내용의 시나리오가 영화서 선택되기 어려운 형편이다. 오히려 드라마가 더 유연하다. 연출가 입장에선 드라마가 영화보다 나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 (사진 왼쪽부터) 영화 &lt;리틀 드러머 걸&gt; &lt;멜로가 체질&gt; tvN 드라마 &lt;방법&gt;

영화 감독들의 진출은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데 일조한다. “한국 드라마는 어떤 경우에든 사랑을 한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극 전개와 상관없는 ‘러브라인’은 거세된 장르물이 늘어나면서 신선함과 완성도를 고루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꼭 영화감독 출신의 연출가가 아니더라도 곳곳에 포진한 실력파 스태프들 덕에 지상파와 JTBC, CJ 계열의 6채널의 드라마 수준은 이전보다도 훨씬 더 높아졌다. 

신파가 강하게 섞였거나 개연성이 부족한 엔딩이 더러 있었으나 이젠 그마저도 보완된 수준의 작품들이 대거 보인다. tvN <호텔 델루나> OCN <왓쳐> <구해줘2> <타인은 지옥이다>, KBS2 <동백꽃 필 무렵>  SBS <스토브리그> <낭만닥터 김사부> JTBC <검사내전> 등이 호평을 받았다. 

특히 <타인은 지옥이다>는 걸출한 수작으로 꼽힌다. “드라마와 영화의 강점을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다. 연출자로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1시간짜리 영화 10개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한 이창희 감독의 연출력에 극찬이 쏟아졌다.

웹툰이 갖고있는 고유한 주제의식과 정서를 완벽하게 묘사한 것은 물론 원작과 다른 충격적이고 끔찍한 엔딩까지, ‘진일보한 드라마’라는 평가가 나온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동명 웹툰을 드라마화시킨 만큼 10∼30대 젊은 원작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고, OCN만의 스릴러 감성이 취향인 20∼30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한자 이름과 사진, 소지품으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능력을 가진 10대 소녀와 사회부 기자가 대기업의 숨은 악과 맞선다는 내용의 <방법>도 높아진 한국 드라마의 위상을 알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오컬트 장르임에도 워낙 탄탄한 개연성과 빠른 이야기의 전개,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력 등으로 신선함과 완성도를 고루 갖춘 작품으로 평가된다. 

플랫폼보다 중요한 서사
OTT의 발전, 다양성 확대

연상호 감독은 시청률 3%만 넘겨도 시즌2 제작을 약속했는데, 10회가 6%를 넘겼다. 오컬트 장르로서는 눈에 띄는 결과다. 

<방법>은 영화 및 드라마 시즌 2로도 제작된다. 영화는 드라마 시즌 1을 잇는 내용이 담기며, 시즌 2는 영화의 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드라마→영화→드라마 순으로 매체를 바꿔가며 <방법>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계획이다. 영화 메가폰은 드라마 연출을 맡은 김용완 PD가 잡는다. 작품 내외적으로 새로운 시도가 모색되고 있다. 

OCN 드라마 시네마틱의 첫 번째 주자였던 <트랩>은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에 리메이크 제안도 받았다. 한국 드라마가 로맨스물이 아닌 장르물로 해외에 진출한 사례는 드물다. 시청률을 공개하지 않는 넷플릭스서 나온 <킹덤>은 국내만큼 해외서도 큰 인기를 끈 것으로 추정된다. 구글서 ‘킹덤’의 연관검색어는 ‘킹덤 모자’ ‘킹덤 레딧(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등이 있는 것을 봐서 킹덤에 대한 반응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희미해진 가운데 드라마 시장은 더욱 팽창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 배경은 플랫폼 OTT의 발전 때문이다. 대표적인 OTT기업이 넷플릭스는 2019년 1분기 순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22% 증가한 45억 달러(한화 약 5조3752억5000만원)다.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꾸준히 한국 드라마와 손을 잡고 있다. JTBC <스카이 캐슬> <비밀의 숲>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이 그 예다. 신원호 PD의 신작 <슬기로운 의사생활> 역시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OTT의 발전으로 인해 기존의 드라마 성공 문법 역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시청자 조사기관에 의존했던 시청률 집계 방식이 무용지물이 될 공산이 크다.

앞서 각 방송사는 화제성으로 현재 인기의 척도를 알아본다. 비록 시청률이 낮다 하더라도 각종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피며, 투자 여부를 결정했다. 시청률이 인기의 척도 역할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넷플릭스 등의 발전으로 시청률과 무관하게 실제 화제성에 기인한 다양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예견이 나온다.

시청률
무용지물

한 OTT 관계자는 “OTT의 발전으로 인해 앞으로는 시청률이 아니라 취향으로 선택될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라며 “그만큼 다양한 콘텐츠가 생길수록, 시청률은 분산되겠지만 그만큼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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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