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그룹 진도 괴상한 배당 왜?

‘한물간 모피’ 적자 봤는데 수십억 ‘팍팍’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진도는 국내 1위 모피 전문 기업으로 줄곧 흑자를 내다가 지난해 적자를 봤다. 눈길이 가는 건 배당이었는데 순손실을 보고도 배당을 실시했다. 왜일까.
 

▲ 임오식 진도그룹 회장

진도는 브랜드 ‘진도 모피’로 유명하다. 이 외에도 엘파, 우바, 끌레베 등이 있다. 회사는 매년 1000억원대 매출을 내는 중견 상장사다. 실적은 꾸준했다. 최근 10년만 보더라도 모두 흑자였다. 브랜드 이미지도 한층 좋아졌다. 진도는 지난해 말 ‘2019년 대한민국패션대상’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북미 최대 모피 경매사 NAFA(North American Fur Auction)에도 이름을 올렸다. 진도는 ‘2019 나파 톱 로트 클럽(NAFA Top Lot Club)’ 주인공이 됐다. 톱 로트(Top Lot)는 최고 품질이라 평가받는다.

1000억원
중견기업

당시 임영준 진도 대표는 “현대적 감각과 고유 아이덴티티를 장점으로 내세워 새로운 시장에 대한 도전을 지속할 방침”이라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침체된 모피산업을 선도하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진도는 적자 회사가 됐고 성적표 또한 초라했다. 연결 기준 매출액은 778억원. 직전년도 1200억원서 35.2% 감소한 수치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모두 ‘마이너스’가 됐다. 각각 100억원, 80억원 이상 깎였다. 진도는 29억원 영업손실과 89억원 순손실을 봤다.

사측은 “매출액 하락에 따른 감소”라고 설명했다. 진도 제품은 겨울철 계절 상품으로 매출은 4분기서만 40% 이상 발생한다. 이번 겨울은 평년보다 따뜻했는데 겨울 특수가 사라진 셈이다.


일례로 롯데백화점 모피 판매는 지난해 겨울 대비 20% 하락했으며 상품 주문도 줄었다. 올해 1월 롯데홈쇼핑 코트·패딩·모피 상품 주문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이상 하락했다.

진도는 적자를 봤지만 배당을 실시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회사는 배당금을 12억4600여만원으로 잡았다. 안건 가결 여부는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주총은 오는 30일 열린다.

배당은 회사 실적에 좌우되며 통상 손실이 발생한 회사는 배당 폭을 줄인다. 반대로 주주 가치 제고를 명목으로 배당을 실시하기도 한다.

진도는 최근 3년간(2016∼2018년) 24억원, 33억원, 18억원씩 배당했다. 연결 기준 순이익은 같은 기간 83억원, 95억원, 55억원이었다.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현금으로 지급된 배당금 비율)은 비교적 일정했다. 차례로 30%, 35.42%, 33.4%였다. 순이익이 늘어난 만큼 배당을 늘렸고, 순이익이 줄어든 만큼 배당을 줄였다.

진도 이익잉여금은 충분한 편이다. 이익잉여금은 쌓아둔 돈이다. 영업활동 결과로 벌어들인 순이익 중 상여금, 배당 등에 사용되지 않은 돈이다. 진도는 매년 194억원, 264억원, 287억원씩 이익잉여금이 발생했다.

흑자서 적자로…그래도 배당
절반 이상 오너 일가 회사로 

적자를 봤지만 무리한 배당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다만 진도를 지배하는 임오그룹 쪽으로 배당금 절반 정도가 들어간다.


진도는 한때 ‘진도그룹’으로 불렸다. 창업주는 고 김성식 회장이다. 그는 1973년 본격적으로 모피 사업에 뛰어들어 회사를 키웠다. 섬유 외에도 철강, 무역 등으로 뻗어갔다. 진도그룹은 1995년 ‘5억불 수출탑’을 받기도 했지만 외환위기 불똥을 피하지 못했고 워크아웃에 들어서면서 와해됐다.

진도는 C&그룹을 거쳐 ‘임오그룹’ 품에 안겼다.

진도 최대주주는 ‘임오파트너스’로 40.73% 지분이 있다. 임오식 임오그룹 회장은 7.70%로 2대주주다. 임영준 대표와 임병남 전무는 각각 0.24%, 2.18%를 쥐고 있다. 진도는 차등배당을 하지 않는다. 보통주 보유 순대로 배당금이 책정된다. 배당 계획대로라면 임오파트너스가 약 5억원으로 가장 많은 배당금을 받는다.

임 회장과 임원들은 9500여만원, 3000만원, 2700여만원을 수령한다. 모두 6억3000여만원으로 전체 배당 금액서 50% 정도다. 임오그룹은 임 회장이 세운 ‘임오’서 시작됐다. 임 회장은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채 상경했다. 1970년대 남대문시장 지하 1평도 되지 않는 곳에 가게를 얻었다.
 

▲ 진도 모피

임오는 주방용품 유통업체로 주방용 식기류를 수입해 판매한다. 코렐과 테팔로 유명하며 이들을 수입해 국내에 공급했다. 임오산업은 임오와 함께 코렐 등을 공식 수입하는 업체다. 수저 업체 화인센스와 냉동업체 임오냉동를 차례로 손에 넣었다. 임오는 ’국내 주방 문화 리더‘라고 자평한다.

임오그룹 핵심사는 임오와 진도다. 임 회장은 두 회사를 주무른다. 임오의 경우 지분으로 지배한다. 임 회장은 임오 최대주주다. 임 회장은 임오 지분 40.17%를 갖고 있다. 다시 임오는 화인센스 지분을 절반 보유 중이다. ‘임 회장→임오→화인센스’로 이어진다.

임 회장은 임오파트너스로 진도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임 회장은 임오파트너스서 97.2% 지분을 보유 중인데 사실상 개인회사와 다름없다.

진도에는 베이징 진도 패션과 진도유통의 2개 종속회사가 있다. 진산 최대주주기도 하다. ‘임 회장→임오파트너스→진도→베이징 진도패션·진도유통, 진산’ 순이다.

순이익 없어
잉여금 충당

최근 3년간(2016∼2018년) 임오 매출액은 209억원, 141억원, 175억원 순이다. 순이익은 15억원, 1억원, 7억원 수준이다. 지난해 임오는 코렐 측에서 직영 판매에 나서면서 코렐 사업권을 잃었다.

임오산업은 235억원, 187억원, 170억원 매출을 냈다. 순이익은 20억원에서 7000만원으로 줄었다가 18억원으로 증가했다.

화인센스는 정체기로 같은 기간 매출액은 38억원, 38억원, 32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순이익이 5000만원 5000만원, 3190만원에 그친다.


베이징 진도패션 매출액은 3년간 7400만원, 7400만원, 1억원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순손실은 1억원, 1억원, 4000만원 등이었다.

진도유통은 아예 매출이 없다. 완전자본잠식회사다. 같은 기간 부채는 26억원으로 동일했다. 반면 자산은 1억원서 587만원, 500만원으로 줄었다.

진산(옛 석진상사)은 주얼리 업체다. 진도가 지난 2018년 인수했다. 이를 두고 진도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있었다. 진산은 그 해 1억7000여만원의 매출을 냈다. 다만 1억원 순손실을 봤다.

실적 면에서 살펴봤을 때 진도가 단연 앞선다. 임오그룹 전체 실적을 좌우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룹 뿌리회사인 임오와 매출에서만 10배 차이가 난다.

임 회장은 지난 2009년 진도를 인수했다. 진도 최대주주 임오파트너스가 설립된 때도 그 즈음이다. 임오파트너스가 진도 지분을 취득하면서 진도는 임오그룹에 편입됐다.

임오파트너스는 진도를 인수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회사는 2008년 9월 설립됐다. 임오파트너스가 진도 지분을 매입한 때는 2009년 1월이다. 설립 6개월도 되지 않은 회사가 35년이 넘은 기업을 인수한 격이다.


영업 대신
지분으로

임오파트너스 최근 3년간(2016∼2018년) 실적은 연결 기준과 별도 기준서 큰 차이를 보인다. 연결 기준 매출액은 1234억원 1287억원, 1204억원 등이다. 순이익은 78억원, 89억원, 52억원 등이다.

별도 기준 매출액은 15억원, 14억원, 13억원에 불과하다. 눈길이 가는 건 순이익이다. 매출액보다 순이익이 더 높다. 29억원, 32억원, 19억원 등이다. 영업 외 수익 중 ‘지분법 이익’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임오파트너스는 진도 최대주주로 그에 따른 지분법 이익을 매년 얻고 있다. 임오파트너스는 의류 도소매업, 의류 수선서비스업을 영위한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3억원, 3억원, 1억원에 불과하다.

대부분 수익은 진도에 의한 지분법 이익에 의존한다. 지분법 이익은 지분을 보유한 회사의 손익을 지분율만큼 실적에 반영하는 것이다.

임오파트너스는 3년간 지분법 이익을 통해 33억원, 38억원, 22억원을 벌어들였다. 사실상 자체 수익보다 지분법이익을 통해 운영되는 회사라고 볼 수 있다.

10억원 단위의 임오파트너스 자체 매출액마저 내부거래로 채워지고 있다. 매출을 제공해주는 회사는 지분법 이익을 주고 있는 진도다. 지난 3년간 임오파트너스 매출액 가운데 내부거래 매출은 소폭 상승했다. 비중은 60.52%, 66.42%, 67.93% 등이다.
 

최근 들어 임오파트너스는 배당을 실시했다. 배당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 회사는 6억원, 5억원을 배당했다. 배당을 위해 잡힌 순이익은 32억원과 19억원이었다. 배당성향은 18.4%, 25.78%다.

배당성향은 그리 높지 않다. 다만 임오파트너스 순이익은 자체 매출이 아닌 지분법 이익이 대부분이다. 지분법 이익으로 올린 순이익을 바탕으로 배당을 실시하게 되는 셈이다.

회장 개인회사로 핵심사 지배
‘앉아서?’ 대부분 지분법 수익

사실상 배당금을 받는 사람은 97.2% 지분을 보유한 임 회장 한 사람이다. 그는 2017년과 2018년 5억8000여만원과 4억80000여만원을 챙겼는데 이전엔 배당이 없었다.

임오그룹은 임오, 진도 외에도 기타 특수관계 기업과 거래를 맺고 있다. 확인할 수 있는 임오그룹 특수관계 기업은 ▲임오자산관리 ▲임오프라자 ▲코닝사 등이다. 이들은 모두 개인회사이자 임 회장 친족 회사다.

임오자산관리는 건물을 관리하는 회사로 임오산업, 화인센스와 같은 건물을 쓰고 있다. 건물 이름은 임오빌딩이며 임 회장은 해당 건물과 토지 소유주다.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임오산업과 화인센스는 지난 2018년 지급수수료와 건물관리 명목으로 임오자산관리에 2000여만원씩 지급했다. 임오산업은 2015년부터, 화인센스는 2013년부터 임오빌딩에 둥지를 틀었다.

임오프라자는 임오, 화인센스와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 임오프라자는 주방용품 도소매 업체다. 회사는 지난 2018년 임오에 2억6000여만원가량의 제품을 팔았다. 화인센스에는 1900만원 어치 상품을 판매했다. 최근 3년간(2016년~2018년) 임오와 화인센스는 각각 7억8000여만원과 6600여만원 매출을 올려줬다. 모두 8억4000여만원이다.

코닝사는 주방용품 도소매 업체다. 이곳 역시 임오와 화인센스로부터 매출을 올리고 있다. 같은 기간 임오서 6억3000여만원 매출이 발생했다. 화인센스에서는 3600여만원이었다. 두 회사서 모두 6억7000여만원을 벌어들였다.

진도는 대부분 그룹 관계사들과 거래를 맺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3분기 기준 10억7000여만원의 기타비용을 썼다. 세부적으로 임오파트너스(5억원), 베이징 진도 패션(6900만원), 진산(960만원), 임오(6600만원), 임오산업(1억5000만원), 임오냉동(9200만원), 임오자산관리(8500만원) 등이다.

임오파트너스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8년 기타비용으로 모두 7억6000만원이 쓰였다. 진산(2400만원), 임오(1억8000만원), 임오산업(2억원), 임오냉동(1억원), 임오자산관리(1억원) 등이다.

특수관계
유사 업종

임오그룹 주력사 진도는 올해 유통망을 확충할 전망이다. 진도 측은 “백화점에 편중돼있는 유통망 구조를 홈쇼핑부문, 온라인 쇼핑몰, 아울렛부문 등으로 확대할 것”이라며 “신규시장 개척을 통한 매출증대, 수익 극대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고객 연령층을 확대하고, 안정감 있는 매출과 함께 모피 트렌드를 이끌어갈 수 있는 화제성을 만들어내는 신선한 브랜딩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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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