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봉꾼’ 폴란스키 감독 향한 이중잣대

강간범에게 수여한 ‘명예’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2년 전,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MeToo·나도 고발한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는데 국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각 분야서 위력에 의한 성추문 폭로가 이어졌고 문화계는 그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방송·공연·영화를 막론하고 전 영역서 명예로웠던 창작자들의 추악한 범죄가 드러났다. 대다수가 퇴출됐지만, 성추문의 뿌리는 여전히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는 아동 성범죄자에게 감독상을 수여했다.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이목이 쏠리고 있다.
 

▲ 로만 폴란스키 감독

영화 <악마의 씨> <피아니스트> 등을 연출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세계적인 ‘악마의 재능’으로 꼽힌다. 독특한 세계관은 물론 과감하고 혁신적인 연출과 스토리텔링, 탁월한 심리묘사 등 그의 영화적 재능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서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말하듯 폴란스키 감독은 1970년대 초반 미국 내 최고의 셀럽이었다. 극 중 시대를 풍미했다가 서서히 인기가 떨어지고 있었던 릭 달튼은 폴란스키가 주최한 수영장 파티에 초대돼, 그의 새 영화에 캐스팅되길 바라기도 한다. 

악마의 재능

그런 그의 재능 이면에는 추악한 범죄사실이 있다. 미성년자에게 가혹한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1977년 배우 잭 니콜슨의 집에서 13세 미성년자에게 약물 강간 혐의로 체포됐다가 가석방 상태서 선고 직전 프랑스로 도주했다. 스스로 범죄를 자백했으나, 법원이 형량을 줄여주지 않자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이었다.

이후 약 40년 동안 도피 중인데 자신이 인정한 죗값조차 치르려는 시도조차 없어 더욱 박한 평가가 나온다. 도피 생활 시작과 동시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고, 그 뒤로 현재 파리에 거주하고 있다. 

도망자 신세인 그는 2002년 아카데미 시상식서 <피아니스트>로 감독상을 받을 때도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 도착 즉시 체포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후에도 성폭행 혐의로 12명의 여성에게 고발당했으며 폭로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지난해 프랑스 여배우 출신 발렌틴 모니에르는 18세였던 1975년 폴란스키로부터 “지독한 폭력과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폴란스키와 연관된 성추문 소식이 지속되자,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는 2018년 그를 영구 제명시켰다. 이후 미국 내에서 폴란스키와 관련된 논란은 딱히 없다. 

옹호 불가의 영화감독에 대해 분명히 선을 긋는 미국 영화계와는 반대로 프랑스 영화계는 그를 옹호하는 모양새다.

한국 영화인 <기생충>에 작품상을 포함한 4관왕을 수여하면서 백인·남성 중심의 기존 이미지를 벗어나는 변화의 물꼬를 튼 반면, 세자르 영화제는 파렴치한 성범죄 이력이 있는 그에게 감독상을 포함한 세 개의 상을 수여했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1976년 처음으로 개최된 세자르 영화제는 ‘프랑스 오스카’로 불릴 정도로 권위가 높은 영화제다. 그런데 올해는 영화제 이전부터 혼란스러웠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장교와 스파이>가 1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다. 

성범죄 혐의에 대한 추가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 감독의 영화가 45년간 권위를 쌓아 올린 시상식의 최다 노미네이트된 것.

여성단체들의 강한 반발과 함께 시상식 보이콧 움직임이 있었고, 시상식 위원회 임원진 12명 전원이 사퇴하는 사태도 일어났다. 심지어 프랑크 리스터 문화부장관까지 나서 폴란스키 감독이 수상하면 ‘나쁜 메시지’를 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지만, 영화제 측은 “후보자 선정에 있어서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된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프랑스 오스카’ 스스로 추락시킨 권위
“세자르는 거울, 권위에 대한 담론 필요”


결국, 영화제서 감독상이 폴란스키로 발표되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여주인공이자 10대 때 성추행 피해 경험이 있는 배우 아델 에넬은 “수치스럽다”고 외치며 퇴장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셀린 시아마 감독이 그 뒤를 따랐고, 여러 여배우 역시 항의의 뜻으로 우르르 식장을 빠져나갔다.

아델 에넬은 프랑스 미투 운동(MeToo)을 재점화한 인물로, 여성 운동권에서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 지난해 11월 자신의 데뷔작 감독인 크리스토프 뤼지아로부터 12살이던 당시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며 정식 고소했다. 아델 에넬의 퇴장에 이어 시상식장 밖에서 폴란스키 감독의 12개 부문 후보 지명에 항의하던 시위대 또한 들끓었다.

여성 운동가들은 세자르 영화제의 선택을 두고 “성범죄 피해 여성들의 침묵을 강요하는 수상”이라고 힐난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이 사건은 프랑스 내에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merciadelehaenel(고마워 아델 에넬)’이라는 해시태그가 유행처럼 번진 것처럼, 수많은 대중이 그를 지지하고 있는 반면, 일부 영화계 인사들은 아델을 향해 비아냥거리고 있다. 

프랑스 캐스팅 디렉터 올리비에 카르본은 자신의 SNS에 “아마 아델 에넬은 곧 배우로서 끝장날 것 같다. 아델 에넬의 연기력은 폴란스키의 연출력에 비할 것도 없다”는 글을 남겼고, 프랑스 여성 감독 클레어 드니는 최근 <르몽드>와 인터뷰서 “아델 에넬이 세자르상 시상식 중 갑자기 퇴장한 것은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다 생각하지만 ‘부끄러운 줄 알아라’라고 소리친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해 폴란스키를 감쌌다. 

국내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처럼 “작품을 작품으로만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 가운데, 세자르 영화제가 스스로 권위를 폴란스키의 위치로 추락시킨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받는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권위 있는 세자르 영화제가 로만 폴란스키에게 상을 부여한다고 해서 영화제가 가진 권위가 감독에게 전해진다고 여기는 건 옛날 생각 같다. 폴란스키에게 상을 준다고 해서 영화제의 권위가 폴란스키에게 이전된다고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로만 폴란스키에게 상을 부여하면서 영화제 스스로 권위가 추락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는 게 합당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영화 유튜버 라이너는 “우스갯소리로 ‘죄는 미워하되 영화는 미워하지 말자’는 말이 있는데, 프랑스 영화인들이 이 말을 몸소 보여준 것 같다”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폴란스키 감독 같은 사람은 퇴출돼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되려 상을 주고 있다. 폴란스키에게 상을 주는 것이 영예롭다고 생각하는 것일 텐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세자르의 폴란스키 시상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침을 뱉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예술과 윤리

최근 ‘윤리적 소비’라는 말이 번지고 있다. 동물, 환경에 해를 끼치는 상품을 사지 않고, 공정무역에 의한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자 운동을 말한다. 미투 운동 이후 전 세계적으로 창작자의 윤리의식이 고취되는 과정서 세자르 영화제를 발판삼아 우리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 교수는 “국내서 대종상이 과거에는 명예가 상당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국내를 대표하는 시상식이었지만 작금의 대종상은 ‘폐기 처분’ 직전에 몰렸다.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반복해왔기 때문”이라며 “세자르 영화제 사건은 시상식 권위에 대한 담론을 나누기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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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