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4·15 무소속 돌풍 추적

‘바람몰이’ 판 커지는 패자부활전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미래통합당의 공천 작업이 거의 마무리단계에 들어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정치권엔 ‘무소속 바람’이 불고 있다. 무소속 연대의 가능성도 함께 점쳐진다. 실제로 2008년 18대 총선서 당시 한나라당 공천에 탈락한 ‘친박 무소속 연대’ 중 11명이 당선되는 파란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번 무소속 바람이 돌풍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지 관심이 쏠린다.
 

▲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

4·15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공천 작업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선택받지 못한 후보들의 무소속 출마 러시가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른바 공천 후폭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하나같이 당의 공천관리위원회 결정에 반발하면서 지역구민들을 위해 승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공천 후폭풍
정치 낭인들

38.7%.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의 현역 의원 교체율이다. 범보수 진영의 통합을 이루고자 새로 출범한 통합당은 예상대로 대대적인 물갈이 공천을 단행했다. 현역의원 119명 중 총 46명이 공천서 탈락했거나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서 김형오 전 공관위원장의 칼날은 더 매서웠다. TK 현역 의원 20명 중 11명이 출마하지 못하게 됐다. 물갈이 비율은 55%에 달한다.

김 전 공관위원장이 공관위 출범부터 공언했던 대로다. PK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은데 현역 의원 23명 중 3명이 컷오프, 10명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현역 교체율은 무려 57%에 육박한다. 당 안팎에선 비박(비 박근혜)과 친박(친 박근혜)을 모두 쳐낸 과감한 개혁공천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하지만 공관위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의원들과 지역구 당협위원장들의 무소속 출마 러시가 이어지는 등 당 내부에서는 그만큼 거센 논란에 직면해있다. 특히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와 같은 거물급 인사들의 무소속 출마는 치명적으로 보인다.

결집해도 모자랄 판인데 표가 분열되면서 상대 후보에게 ‘어부지리’ 승리를 안겨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홍 전 대표는 지난 12일, 양산을 출마를 포기하고 통합당 현역이 없는 대구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협잡에 의한 공천 배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결코 승복할 수 없어, 양산을 무소속 출마를 깊이 검토했다”며 “상대 당 후보를 도와주는 꼴이 될 수 있어 대구로 옮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탈당 및 복당에 대해서는 “후보 등록 전 탈당해야겠으나 300만명 당원이 눈에 밟히기 때문에 이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줄 때 나가겠다”며 “이 못된 협잡 공천에 관여한 사람을 나는 알고 있으며 복당한 뒤 돌아가서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거물급 인사들의 잇단 나홀로 출마행
현역 프리미엄으로 정당 담장 넘을까

통합당 공관위는 홍 전 대표의 고향인 밀양·의령·함안·창녕에 출마하려는 그에게 수도권 험지 출마를 요구했다. 잡음 끝 홍 전 대표가 양산을에 출마하는 것으로 타협안이 만들어지면서 양산행을 확정지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두관 의원과의 빅매치가 예상되는 수순이었다.

하지만 대진표는 얼마 안 가 바뀌고 말았다. 통합당이 양산을서 지역구 후보자를 추가로 모집했고, 나동연 전 양산시장이 이에 나선 것. 통상적으로 현역 혹은 거물급 주자가 있는 지역구서 추가 후보자를 모집할 경우 기존 인물의 컷오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결국 홍 전 대표는 나 전 시장과 경선도 치르지 못하고 공천서 탈락했다.


갑작스럽게 ‘정치 낭인’으로 전락해버린 홍 전 대표는 “내 길을 가겠다”며 무소속 출마 카드를 꺼냈다. 홍 전 대표는 현재 양산을 떠나 대구 수성을 출마를 발표한 상태다. 이곳은 통합당 주호영 의원이 4선을 한 곳이지만, 주 의원이 수성갑으로 옮기면서 경선 지역이 됐다.
 

▲ 홍준표 전 미래통합당 대표

수성을에서는 통합당 이인선·정상환 예비후보의 경선이 치러질 예정이다. 이 후보는 4년 전 당 공천을 받았지만 낙선했고, 정 후보는 정치 신인이다. 민주당에선 이상식 전 부산경찰청장이 단수공천을 받았는데 그 역시도 정치 초년생이다.

정치권에서는 홍 전 대표의 수성을 출마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민생당 박지원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홍준표 전 대표는 상당한 파괴력을 가지고 대구서 당선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황교안 대표가 종로서 이낙연 전 총리에게 패배할 때 어려워진다”고 내다봤다. 황 대표가 종로서 패배하고, 홍 전 대표가 대구서 승리한다면 사실상 홍 전 대표에게 당의 주도권이 넘어간다는 해석이다.

반면 일각에선 홍 전 대표의 무소속 당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홍 전 대표의 위상과 영향력이 예전과 같지 않은 만큼 총선서 크게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홍 전 대표 역시 “대구는 쉽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구는 공천을 받지 못하면 양산 못지않는 험지”라고 답했다.

대대적 물갈이
어부지리 미풍

만약 홍 전 대표가 대구서 승리한다고 해도 그의 ‘몸값’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황교안 대표가 잠재적 대권 경쟁자인 자신이 부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김 전 공관위원장과 합작해 자신을 컷오프시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성을은 대표적인 보수야당의 아성과 같은 곳이다. 사실상 험지로 꼽히는 종로에 출마하는 황 대표와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황 대표의 ‘이유 있는 희생’은 회복 가능하지만, 홍 전 대표의 패배는 추후 정치인으로 재기하기엔 상당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 전 대표의 대구행이 선거 판세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임은 확실해 보인다. 대구지역의 보수 표심이 자연스레 분열되기 때문이다. 홍 전 대표는 “대구는 무소속 출마해도 수성갑 이외에는 민주당이 될 리가 없다”고 당에 피해가 가지 않음을 확신했다. 보수 표심이 갈라진다고 해도 민주당이 반사 이익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홍 전 대표의 무소속 출마는 공관위에 불만을 가진 의원들의 무소속행에 힘을 싣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통합당 주호영 의원 역시 홍 전 대표 출마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무소속이 많아지면 당이 선거를 치르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홍 전 대표는 무소속 연대에는 선을 그은 상태다.
 

▲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또 다른 거물급 주자인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도 무소속 출마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지난 5일, 공관위로부터 공천이 배제된 이후 “당을 잠시 떠난다. 꼭 살아서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일각에선 홍 전 대표와 김 전 지사를 중심으로 공천서 배제된 PK와 TK 중진들이 뭉치는 영남권 무소속 벨트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통합당이 다시 분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지난 총선서 형성된 ‘친박벨트’와 같은 무소속 연대가 이뤄진다면 이들은 영남권을 둘러싼 보수진영 내 각축전의 한 축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공천서 탈락한 의원들이 ‘친박 무소속 연대’를 결성하면서 11명이 당선되는 돌풍을 일으켰던 바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영남권의 무소속 연대가 얼마나 파괴력을 발휘할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박 전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구심점이 있었던 당시와 상황이 달라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찻잔 속 태풍?
기사회생 기회?

미풍에 그친다면 오히려 당의 승리에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 전 지사가 출마하는 지역은 TK만큼은 아니지만 ‘통합당 공천 = 당선’ 공식이 성립되는 지역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지지율도 꾸준히 나오는 편이기에, 야권이 분열되면 여당에 어부지리 승리를 안겨줄 수도 있다.

인천 미추홀을 둘러싼 잡음도 나온다. 윤상현 의원이 공천 탈락 후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미추홀을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대 선거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그는 컷오프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지역구 기반을 워낙 탄탄하게 했던 덕분에 48.1%의 높은 지지율로 당선됐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다르다. 통합당 공관위는 인천 미추홀에 인천시장 출신인 현역 안상수 의원(3선)을 전략공천했다. 만약 이들의 내전이 격화된다면 여당 후보가 반사 이익을 받아 승리할 공산이 커진다.

현재 통합당 현역 의원 중 컷오프된 의원은 모두 20여명에 달한다. 이 중 ▲김재경(경남 진주을) ▲이은재(서울 강남병) ▲백승주(초선·경북 구미갑) ▲정태옥(대구 북갑) ▲김석기(경북 경주) ▲이주영(경남 창원시마산합포구) 등은 컷오프된 후 재심을 신청하고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최고위가 재심 요청이 타당하다고 인정해 공관위에 공천 탈락자에 대한 재의 요청을 하면, 당헌·당규에 따라 공관위는 회의를 열고 해당 공천을 재논의하게 된다. 이 경우 공관위원 9인의 3분의 2가 동의하면 공천 결과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 윤상현 미래통합당 의원

현재까지 컷오프된 민경욱 의원(인천 연수을)은 당 공천서 최고위가 재심를 요구하고 이를 공관위가 받아들임으로써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게 됐다. 하지만 재심 청구 수용 사례는 사실상 거의 없었던 만큼 향후 무소속행 대열에 합류할 의원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은 야권 표심을 분열 시키면서 당의 패배를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당 내부에서는 이들이 여당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8대 ‘친박’ 11명 당선 기염
이번엔 구심점 없어 미지수

김 전 공관위원장은 홍 전 대표 등을 향해 “앞으로 정당정치를 하는 데 있어 용납되기 어렵다”며 “특히 지금처럼 문재인정권에 심판을 하기 위해 우리가 힘을 모아도 힘겨운 이런 상태서 무소속으로 나가겠다는 것은 누구를 위한 길인가. 문정권을 위한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후보들 사이서도 무소속 출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산청·함양·거창·합천의 신성범 통합당 예비후보는 김태호 전 지사의 무소속 출마를 두고 “명분과 논리야 어떻든 결국 야권분열로 이어지고 문재인정권을 돕는 결과로 가져올 것”이라며 “여야 일대일 구도여야만 문정권을 심판할 수 있고 정권교체까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역 프리미엄보다 정당 프리미엄이 셀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다.

익명의 정치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무소속 출마는 홍 전 대표라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총선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거대 양당체제의 대결로 넘어가기 때문에 선거서 힘들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아무리 현역이래도 기존 정당의 브랜드와 조직력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무소속 출마를 유리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선거서 중요한 정서가 ‘언더독’ 정서다. 불쌍한 후보한테 표가 가는 것인데 홍 전 대표나 김태호 전 도지사 같은 공천 탈락자의 아픔도 해당된다”고 했다. 그는 “이번 공천이 상당한 후폭풍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총선은 지역구 인연이 작용한다. 다소 억울하게 컷오프된 느낌을 주는 의원들도 있고 지역 언론 반응도 안 좋다. 무소속이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리할까
불리할까

당내 일각에선 “무소속 출마 후 복당을 금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탈당 인사, 무소속 후보 등으로 선거에 출마한 인사에 대해 입당을 불허해왔지만, 보수대통합의 일환으로 지난 1월 복당을 전면 허용했다. 이와 관련해 김 전 공관위원장은 “앞으로 무소속 으로 나온 인물은 당락을 떠나 당에서 다시 받아들이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