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질’ 검찰의 이만희 딜레마

구원파 트라우마 ‘또 독박 쓸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신천지에 대한 수사 압박이 거세게 일고 있다. 국민은 물론 법무부장관까지 나서 신천지를 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형국이다. 반면 수사 주체인 검찰은 선뜻 신천지에 칼을 대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 당시 구원파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모양새다.
 

▲ 긴급 기자회견 갖는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 ⓒ문병희 기자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 수사를 두고 검찰과 법무부가 또 다시 맞붙는 양상이다. 신천지는 코로나19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 국민의 공적이 돼버렸다. 31번 확진환자가 대구의 신천지교회서 예배를 본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이후 확진환자 수는 가파르게 늘었고 대구는 말 그대로 초토화됐다.

공공의 적
어찌할꼬

확진환자 수는 증가하는데 병상은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사망하는 사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지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만희 총회장은 지난 2일 신천지 연수원인 경기 가평군 평화의 궁전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말 죄송하다. 뭐라고 사죄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특별편지만 보내고 모습을 보이지 않던 이만희가 신천지에 대한 비난 여론이 폭주하자 기자회견을 자처한 것이다.

그는 당국서 최선의 노력을 했다면서 우리도 즉각적으로 협조하고 있으나 정말 면목 없다. 여러분들께 엎드려 사죄를 구하겠다며 취재진 앞에서 큰절을 했다. 이어 당국서 지금까지 힘든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해줘 고맙다고마움과 동시에 정부에게도 용서를 구한다”고 한 번 더 절했다.


이만희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신천지에 대한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실제 국민 10명 중 7명은 신천지의 사단법인 설립 허가 취소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일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서 전국 18세 이상 성인 507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 결과 77.7%가 신천지의 사단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지역과 연령, 이념 성향을 가릴 것 없이 찬성 응답이 높았다. 특히 신천지발 확진환자가 가장 많이 나온 대구·경북 지역에선 87.6%가 찬성했다. 연령별로는 40(86.3%)서 가장 높았다. 진보·중도·보수층 가리지 않고 70% 이상이 신천지의 법인 허가 취소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코로나19 로 검찰-법무부 또 갈등?
압수수색 놓고 강경론 vs 신중론

지방정부 단체장들도 가세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연일 신천지 때려잡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5일에는 경기 과천에 위치한 신천지 시설에 강제진입했다. 이 지사는 대규모 감염을 막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없어 신천지 측이 명단을 제출할 때까지 더는 지체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가 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도민의 72%는 코로나19에 대한 경기도의 대처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특히 신천지 관련 집회금지 시설 강제 폐쇄 강제 역학조사 전수조사 등 경기도의 긴급조치에 대해서는 도민 10명 중 9(92%)이 잘했다고 응답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신천지를 고발했다. 서울시는 지난 1일 이만희 등 신천지 지도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박 시장은 이만희 신천지교 총회장 및 12개 지파 지파장들을 살인죄, 상해죄, 감염병예방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검찰이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있는 신천지 지도부에 대해 엄중히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윤석열 검찰총장 ⓒ나경식 기자

이어 신천지서 제출한 신도 명단의 누락 여부와 허위기재 사실이 알려져 방역당국의 업무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신천지서 한시라도 빨리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면 코로나19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일도, 다수의 국민이 사망에 이르거나 상해를 입는 일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이런 피고인들의 행위를 형법상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및 상해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동시에 부정확한 교인 명단을 제출하고 신도들에게 역학조사를 거부하도록 지시하는 등 감염병 예방법 위반의 혐의가 있다고 보고 고발조치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엎드려 
사과해도

문제는 검찰의 태도다. 검찰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정치권과 법무부장관의 강제수사 요구와 국민의 신천지 압수수색 요구가 높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달 28일 신도 수를 고의로 속여 관련 시설 역학조사 등을 방해한 등 혐의로 신천지 대구교회를 경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두 차례에 걸쳐 경찰의 신천지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특히 두 번째는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압수수색, 강제수사 언급 이후에 이뤄진 터라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이 또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4일 대구지방경찰청에 따르면 3일 신천지 대구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현 단계서 필요성 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1일에도 대구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보강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신천지 대구교회가 신도 명단을 누락하는 등 감염병 예방법 위반에 고의성이 있다고 봤다보강수사 사유를 면밀하게 검토한 뒤 수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 추미애 법무부장관 ⓒ나경식 기자

추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신천지 압수수색을 지시한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국민의 86% 이상이 압수수색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28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천지 신도 명단 압수수색에 대한 찬성이 86.2%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추 장관은 법무부장관이 특정 사안에 대한 압수수색을 검찰에 지시한 전례가 없다는 지적에 지금의 코로나19는 전례가 없었던 감염병이라며 여기에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보수적으로 전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 소극적인 행정이라고도 했다.

경찰 청구
영장 기각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도 같은 날 검찰은 즉시 강제수사를 통해 신천지의 제대로 된 명단과 시설 위치를 하루빨리 확보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 최고위원회의서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의 인터뷰를 봤다.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방역 현장서 주요 신도 명단, 시설 위치를 숨긴다는 의혹이 계속된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방역당국과 논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추 장관의 발언에 대해 대검은 코로나19와 관련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하루에도 몇 차례, 시시각각 진행상황을 공유하며 긴밀하게 소통·협력하고 있다각 지방검찰청에도 지자체 및 재난 대책본부와 긴밀히 연락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강제수사로 인해 신천지 신도들이 숨거나 활동이 활발해지면 오히려 방역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방역당국의 의견을 반영해 그동안 압수수색 같은 강제수사보다는 관련자들을 우선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해왔다. 추 장관이나 민주당이 제시한 방향과는 그 결이 다르다.


검찰 입장서선 수사가 시작될 경우 신천지서 의도적으로 거짓자료를 제출해 피해를 확산시켰는지, 이만희의 개인비리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혐의로 고발한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권경애 변호사는 박원순 시장의 신천지 고발에 대해 감염병 재난 정국서 튀어보려는 정치인들의 공포스러운 쇼맨십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지난 2SNS박 시장의 고발 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지지자들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재난을 윤 총장을 잡을 호기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외적으로는 방역당국 입장 존중
속내는 2014년 유병언 수사 실패?

그러면서 감염병예방및관리에관한법류의 벌칙 조항이 경해(가벼워)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이해하긴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이 사태의 책임을 지울 희생양을 찾는 현대판 마녀사냥식 폭력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검찰의 신중론에 대해 구원파(기독복음침례회) 트라우마를 언급한다. 검찰은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구원파에 대한 수사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검거와 엄벌을 지시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 유 전 회장 일가에 있다며 그들의 도피행각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 ▲긴급 기자회견 갖는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 ⓒ문병희 기자

수사 과정서 유 전 회장 일가와 측근들의 회삿돈 횡령 등 일부 혐의를 밝혀내긴 했지만 유 전 회장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는 끝내 실패했다. 수사 초기 구원파 시설인 금수원을 탈출해 잠적한 유 전 회장을 잡기 위해 40일간 검··군 연인원 145만명을 동원해 전국을 샅샅이 뒤졌지만 유 전 회장은 결국 은신처였던 전남 순천의 별장 근처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수사 책임자였던 최재경 인천지검장은 부실수사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했다. 수사팀장이었던 김회종 인천지검 2차장도 이후 서울고검 검사로 좌천된 뒤 검사장 승진서 배제돼 결국 옷을 벗었다.

유병언과
다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공개석상서 5차례에 걸쳐 유 전 회장의 검거와 엄벌을 지시할 정도로 구원파 잡기에 열을 올렸다. 검찰이 정권의 요구에 따라 떠밀리듯 수사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당시의 경험이 신천지 수사를 머뭇거리게 하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또 구원파 수사 때처럼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다 실패할 경우 모든 책임이 검찰에 몰릴 수 있다는 위험부담도 검찰의 발목을 잡는 이유로 꼽힌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신천지 허가 취소 상황

서울시는 신천지 사단법인 허가 취소 절차에 돌입했다.

유연식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지난 3신천지 사단법인이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했다고 보고 있다. 취소 요건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서 사단법인 허가를 취소하면 신천지는 임의단체로 남게 되는데 이 경우 부동산 취득세 면제, 신자들의 기부금이나 헌금에 대한 세금 혜택도 사라진다.

정태원 변호사는 지난 5YTN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서울시가 사단법인 허가를 취소한다고 해서 신천지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범죄가 드러나면 범죄로 취득하거나 생성한 물건은 국가가 추징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사단법인 허가가 취소되는 경우에는 그냥 법인 취소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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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