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춤 추는’ 김형오 공관위원장 양날의 칼 막전막후

‘싹둑싹둑’ 작두질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정부여당의 독선에 몸 던진 적 한 번이라도 있나. 지금은 죽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미래통합당 김형오 공관위원장이 지난해 8월 연찬회서 했던 말이다. 그로부터 7개월 후 당의 저승사자를 자임한 그의 서릿발 같은 칼날은 정점을 향하면서 당내에선 분열 조짐마저 조금씩 보이고 있다. 그의 칼날이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정말 그럴까.
 

▲ 최근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부당공천 주장에 직면해있다.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김형오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 위원장은 21대 총선 승리를 위해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했다. 통합당이 쇄신 없이는 이번 총선서 필패할 것이라는 절박함이 깔렸던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아끼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칼날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최대한 공정하고 투명하게 공천에 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팽당한
위원장들

하지만 최근 ‘공정’을 강조한 김 위원장의 칼날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당 내부를 통해 새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이 공천이 아닌 ‘사천’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과 달리 공관위에 의한 인위적인 교체 방식을 선택했다. 공천 배제 지역에 대해선 경선을 원칙으로 내세우거나 전략공천을 추진하는 식이다.

이 같은 방식은 어떤 지역이 전략공천 지역이며, 또 어떤 지역이 경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부산 중·영도구를 둘러싼 잡음은 김 위원장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에 방아쇠를 당기는 계기가 됐다. 이 지역에 출마를 희망했던 무소속 이언주 의원과 지역 당협위원장인 곽규택 예비후보 둘 다 배제될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이 들어맞으면서다. 공관위 결정에 따라 이 지역은 황보승희 전 부산시의원과 강성운 전 국회의원 정책특보가 경선을 치르게 됐다.


부산 중·영도구는 이 의원이 ‘전략공천’을 약속받았다는 발표로 인해 논란이 됐던 곳이다. 이로 인해 지역구 현역 의원인 김무성 의원까지 나서서 경선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했고, 곽 예비후보는 삭발까지 강행하면서 공관위에 반발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지난 5일 중·영도구에 두 인물을 모두 배제했다. 이 의원은 부산 남구을에 전략공천이 확정됐고, 곽 예비후보는 부산 서동에 추가공모를 신청했다.

통합당 공관위는 발표 전 곽 예비후보에게 부산 서구·동구의 추가 공모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해당 자리에 자리를 비워놨으니 지역구를 옮겨 경선을 임하라는 제안이었다. 이에 곽 예비후보는 중·영도 지역구를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을 당에 전달했다. 지난 1년 동안 총선을 위해 지역 민심을 잡아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곽 예비후보는 공관위에 의해 중·영도구서 배제되면서 자연스레 활동했던 지역구서의 경선 기회가 박탈됐다.

저승사자 서릿발 같은 칼날 정점
주요 인사들 컷오프…‘사천’ 논란

그런 와중에 추가로 공모한 ‘새 인물’ 황보승희 전 부산시의원이 중·영도구에 도전장을 내면서 경선에 올라가게 됐다. 황 전 시의원은 김 위원장의 측근 인물로, 그의 의원 시절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정가에선 그를 ‘김형오 키즈’라고 부른다.

황 전 시의원은 김 위원장이 공관위를 맡은 후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의 의사를 거듭 밝혀왔다. 지난달 12일 곽 예비후보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는 지지자들을 대표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통합당 부산 중·영도구에 추가 공모에 응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그의 행보가 석연치 않다며, 황 전 시의원이 공모 이전 김 위원장과의 사전 교류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황 전 시의원은 이 같은 김 위원장과의 교감설에 대해 부인했다.
 

▲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 ⓒ나경식 기자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사전 교감설은 사실이 아니다. 김 의장님이 공관위원장이 되신 후 바쁘셔서 연락도 못했다. 독자적으로 제 이름을 걸고 정치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언주 의원이 영도에 온다면서 아주 핫하지 않았나. 당협위원장이 일년 전부터 와 계셨기 때문에 저도 당원으로서 그분하고는 유대감을 가지면서 선거를 지원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정가서 공관위 분위기상 양쪽 다 어렵다는 이상 기류가 나왔다. 저 역시도 16년 동안 이 지역서 구의원과 시의원을 했기 때문에 도전하게 됐다”고 전했다.


언론서 지속적으로 김 위원장과의 교감설이 보도되는 점에 대해 억울하지는 않냐는 질문엔 “그렇게 예측하는 건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의장님과는 좋은 관계니 ‘김형오 키즈’라고 말을 안 할 수도 없다. 의장님은 여성에 대한 배려가 많으신 분이다. 하지만 전 김형오 키즈이자 김무성의 오른팔이기도 하다. 그분들은 다 스승들”이라고 말했다.

마음대로?
공정하게?

이 외에도 김 위원장과 친분이 있는 인물들의 단독 공천이 확정되면서 논란이 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서울 강남을에 단독공천을 받은 최홍 전 맥쿼리투자신탁운용 사장이다.  최 전 사장은 김 위원장이 19대 총선 당시 영도서 불출마할 때 ‘후계자’로 영입하려 했던 인물이다.

최 전 사장은 부산 영도의 판자촌서 태어나 외할머니 밑에서 홀로 크며 자수성가했다. 그는 지난 20대 총선서 부산 영도에 예비후보로 나섰다가 통합당 김무성 의원과의 경선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당시 경쟁자였던 김 의원이 그를 ‘흑진주’라고 일컬을 정도로 인재였다는 전언이다.

경쟁력 있는 인물이지만 최 전 사장은 강남을에 공천 신청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천을 받았다.

강남은 ‘보수의 텃밭’이라 불리는 곳으로 공천만 확정되면 무난하게 국회에 입성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최 전 사장은 강남 지역과 연관성도 없다. 이번 전략공천이 ‘낙하산 공천’이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는 배경이다. 공관위 관계자는 공천 신청도 하지 않은 최 전 사장이 전략공천된 것은 낙하산 공천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비공개로 공천 신청을 했다”고 일축했다.

강남을에는 청사진 대표인 정원석 전 당협위원장과 김현기 전 서울시 의원 등이 출사표를 낸 상태였다. 특히 정 전 위원장은 지난해 통합당의 당협위원장 공개 오디션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한 30대 청년 정치인이다. 하지만 이번 전략공천으로 경선길이 막혀 버렸다.
 

▲ 기자회견 직후 백브리핑 갖는 홍문종 미래통합당 의원 ⓒ나경식 기자

김형오계 인물로 분류되는 배준영 인천경제연구원 이사장과 허용범 전 국회도서관장도 최근 김 위원장의 ‘사천’ 논란에 불을 지폈다.

배 이사장은 김 위원장의 국회의장 시절 의장비서실 공보비서관과 국회 부대변인을 지낸 인물이며, 허 전 관장 역시 김 위원장이 의장 시절 국회 대변인을 지냈다. 배 이사장은 지난 20대 총선 인천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서 현역인 안상수 의원을 제치고 공천을 받았으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안 의원에게 패했다.

최근 공관위는 이 지역서만 내리 3선을 지낸 안 의원을 인천 미추홀구로 차출시킨 후 배 이사장을 단독공천했다. 배 이사장이 50대 초반의 원외 인사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 역시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낙하산 공천
교감설 돌아

이뿐 아니다. 최근 김 위원장이 영입한 인물들이 다수 공천되면서 김형오계가 득세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측근뿐만 아니라 그가 공들여 영입한 인재들에게 적극적으로 공천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영입한 인물 중 송한섭 검사(서울 양천갑),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서울 서초갑), 이수희 변호사(서울 강동갑), 태영호 전 주 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서울 강남갑)가 그런 케이스다. 이들은 김 위원장이 직접 발표했던 영입 인사들로, 경선 과정 없이 단수공천 혹은 우선 추천을 받으며 무난하게 지역구에 입성했다.

아울러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성남 분당갑)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김 전 대변인과 김 위원장은 MB(이명박 전 대통령) 인수위를 함께 활동한 인연이 있다. 김 전 대변인은 서울 강남병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선거구 획정(재조정)으로 강남병 지역이 없어질 가능성이 제기되자 김 위원장이 송파을로 공천을 주려고 했다는 전언이다. 

송파을은 ‘홍준표 키즈’로 꼽히는 배현진 당협위원장이 2년간 지역구를 맡아온 곳이다. 공관위가 지난달 28일 송파을에 대해 추가 후보자를 공모받자 당내에선 ‘배 위원장의 컷오프 수순 아니냐’는 말이 나오며 당내 논란이 계속됐다. 결국 공관위는 배 위원장을 송파을로 공천 확정하면서 김 위원장을 성남 분당갑으로 공천했다.
 

▲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 ⓒ나경식 기자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내에서는 공정한 경선에 대한 요구와 함께 김 위원장의 사퇴 촉구를 주장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김 전 대표와 관련된 개인적인 인연들의 공천 방식이 공정하지 않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역과 아무 연고도 없는 인물들이 공천되면서 지역구를 지켜왔던 이들로선 경선도 못해보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당사자들 사이서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통합당 예비후보자들로 구성된 ‘부당공천 반대모임’은 부당·특혜 공천을 철회하고 최소한 공정하게 경선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통합당 공관위 공천방식은 경선보다 단수공천과 우선 추천이 주류를 이룬다”며 “이는 지역서 활동한 예비후보들에게 경선의 기회마저 상실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키즈, 후계자 …‘뜨는’ 김형오계
총선 코앞에 두고 보수 분열 조짐


통합당 강요식 구로을 전 당협위원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 위원장의 행보에 대해 차기 대선 주도권을 위한 행보라고 지적했다.

강 전 당협위원장은 “지역구서 오래 일한 당협위원장들, 장외투쟁하면서 당을 지켜온 사람들은 다 잘렸다. 집토끼를 내쫓고 충신도 내치는 마이너스 정치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양천갑에 공천된 송한섭 검사를 김 위원장이 훌륭한 인재가 있다며 직접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공관위원장이지 인재영입위원장이 아니다. 인재영입위원장은 당 대표 산하기구다. 명백한 월권행위”라며 “본인 사람 심고, 차기 대선 주도권을 잡으려는 속셈”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김형오계 인물들을 우대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잘못된 설’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지난 5일, 국회서 공천 결과 발표를 마친 후 “임명하면 전부 김형오계라고 하는데, 거듭 말하지만 끝나고 나면 자연인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계보가 나오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계보는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그런 차원서 누구를 심고 안 심고 하는 것은 조금도 생각 안 한다고 거듭 말씀드린다”며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 이번에 전부 배제되고 탈락했다는 사실이 저를 너무 가슴 아프게 한다. 이런 진정성 있는 공관위의 태도에 대해 봐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의 공천 방식에 대한 불만으로 영·호남권서 탈당과 신당 창당 등 집단행동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역마다 무소속 후보가 난립하면서 보수 지지자들의 표가 갈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윤상현 의원, 홍준표 전 대표, 김태호 전 경남지사 모두 공관위에 의해 컷오프된 가운데 윤 의원과 김 전 지사는 무소속 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 배준영

역대 총선서 선거를 한 달 정도 앞둔 시기에 어김없이 공천 갈등이 불거져 나왔다. 지난 20대 총선서 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김무성 전 대표와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공천 과정서 부딪힌 후 ‘옥새 파동’으로 쓴잔을 마셨던 바 있다. 새누리당은 당시 공천 파동으로 과반은커녕 야당인 민주당의 123석에 못 미치는 122석을 얻으면서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을 불러왔다. 통합당의 텃밭인 영남권서도 65곳 중 17곳을 뺏겼다.

위험한 결정
뒷감당은?

김무성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SNS에 “김형오 위원장의 현재 모습서 과거 이한구 위원장의 모습이 비쳐진다. 이한구 위원장은 당시 늘 공정하고 엄정하게 심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김 위원장의 얘기와 똑같다”고 적었다. 박강수 칼럼리스트는 한 언론을 통해 “김 위원장이 오락가락 행보로 정치권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지난 번 총선 당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계파 공천으로 선거를 망친 바 있듯이, 통합당도 이번 공천서 원칙과 기준이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참으로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