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신화’ 예림당 승자의 저주 빛과 그림자

코끼리 삼킨 보아뱀 ‘터질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모기업이 계열사 하나에 휘청거렸다. 예림당 이야기다. 티웨이항공은 성장가도를 달리며 예림당의 몸집을 키워줬다. 예림당 사업 비중은 항공 분야로 편중됐다. 최근 LCC 업계가 난관에 봉착하면서 티웨이항공은 큰 손실을 봤다. 동시에 예림당도 적자회사가 됐다.
 

‘예림당’은 국내의 중견 출판회사로 학습만화 시리즈 ‘와이(Why)?’로 유명하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한 번쯤 들어봤을 책이다. 와이 시리즈는 베스테디셀러(best steady seller)로 지난해 10월말 기준 누적판매량은 7850만부다. 해외서도 인기를 끌면서 13개국서 번역됐고, 50여개국으로 수출됐다.

7850만부
중견 출판사

예림당은 지난 2009년 코스닥에 상장된 후로 회사 규모는 꾸준히 늘었다. 3년간(2016~2018) 연결 기준 매출액은 오름세였다. 4527억원, 6433억원, 7611억원 등이다. 지난해 매출도 9.8% 증가한 8358억원이었다. 속사정은 달랐다. 예림당은 적자 회사가 됐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은 248억원, 498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직전년도와 비교했을 때 모두 100% 이상 ‘폭락’했다.

원인은 계열사 ‘티웨이항공’이었다. 사측은 실적 변동 요인으로 ‘티웨이항공 유류비 등 여객운송원가 증가 및 환율상승’을 꼽았다. 계열사 하나가 회사 전체를 흔든 셈이다. 흑자 행진을 이어가던 티웨이항공은 지난해 고꾸라졌다. 478억원 영업이익은 -192억원이 됐다. 당기순이익도 378억원에서 -433억원이 됐다.


예림당은 지난 2012년 LCC(저비용항공사) 사업에 진출했다. 그해 12월 티웨이항공 인수가 결정됐다. 당시 업계 안팎에선 예림당의 이 같은 결정에 ‘물음표’를 찍었다. 무엇보다도 인수 이유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출판사가 항공사를 품은 격이었다. 사업 연관성과 시너지를 예측할 수 없었다.

투자자 심리는 시장서 드러났다. 기대보다 우려가 앞섰다. 예림당 주가는 티웨이항공 인수 결정 이후 급락세를 보였다.

당시 티웨이항공 재무건전성이 도마에 올랐다. 2012년 티웨이항공은 자본잠식 상태였다. 자산은 190억원인 반면 부채가 358억원이었다. 순손실도 130억원에 가까웠다.

일반적으로 항공 사업은 대규모 자금을 요한다. 항공기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대부분 항공사들은 항공기를 빌리지만 리스료 역시 만만치 않다. 항공사 모기업 부채비율이 높은 까닭이다. 결국 자금 조달 능력이 관건으로 꼽힌다.

주력계열 티웨이항공 부진으로 적자
출판 실적 한 자릿수, 나머지는 항공

자본잠식 회사 티웨이항공은 수혈 자금을 더 필요로 한 사례였다. 자칫 티웨이항공 인수가 악수일 공산이 컸다. 예림당 자체 성적마저 깎아내릴 수 있었다. 예림당은 분위기를 단숨에 바꿨다. 인수 1년 만에 티웨이항공은 흑자 회사가 됐다. 당기순손실 157억원은 ‘플러스’ 140억원이 됐다.

사업 환경은 흑자 전환에 마중물을 부었다. LCC 산업은 그야말로 호황이었다. 항공여행 수요가 크게 증가했고, 국제노선이 연달아 확보됐다.


2011년 LCC 이용객은 1000만명을 넘었다. 인수가 타결된 2012년 LCC 시장점유율은 18.8%로 상승했다. 이후 LCC 국내선 점유율은 50%로 치솟았고, 전체 실적은 37.6%로 성장했다. 2016년에는 업계서 항공기 20대를 추가로 들여왔다. 이듬해 항공여객은 1억명을 돌파했다.

티웨이항공은 부지런히 내공을 쌓았다. 마침내 재무 건전성에 청신호가 들어왔다. 2017년 자산이 부채를 넘어섰다. 5대에 불과했던 항공기는 20대로 늘어났다. 티웨이항공은 어느 틈에 업계 2위로 올라섰다. 회사는 2018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다.
 

▲ 티웨이항공

나춘호 예림당 회장은 그해 <조선비즈>와 인터뷰서 티웨이항공 인수 이유를 밝혔다. 나 회장은 “예림당 실적이 꾸준히 증가했고 자금 여력이 생겼다”며 “다른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고민하던 중 티웨이항공이 경매에 나온 것을 알게 됐다”고 언급했다.

인수 뒤에는 “나보다 항공업을 더 잘 알고, 경험이 풍부한 전문경영인에게 회사 경영을 맡겼다”면서도 “최대주주로서 항공기 투입 등 중요한 투자 결정에 관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세를 넓히던 티웨이항공은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발발한 일본 불매운동이 결정적이었다. 불매운동 슬로건은 ‘사지도 말고 가지도 말자’였다. LCC 업계는 일본 노선이 많았다. 직격탄을 맞는 건 시간문제였다.

우려는 기우?
단숨에 개선

곧 위기가 찾아왔다.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LCC는 피해주로 찍히며 줄줄이 저가를 찍었다. 티웨이항공도 불똥을 피할 수 없었다. 회사가 보유한 국제선 53개 중 일본 노선만 23개였다.

티웨이항공은 ‘노선 구조조정’에 나섰다. 일본 노선을 줄이는 대신 중국 노선을 확충했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자구책이었다. 하지만 악화일로였다. 일본 불매 운동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서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됐다. 일본 노선에 이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노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회사는 비상 경영체제로 진입했다. 정홍근 티웨이항공 사장은 지난달 사내 게시판을 통해 “코로나19 확산으로 국내를 포함한 글로벌 항공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과거 국내 항공 산업 성장 과정을 돌이켜보면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연속된 악재가 겹쳐 퇴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티웨이항공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대표이사와 임원 임금을 20∼30% 삭감했으며 임직원 희망휴직도 실시할 계획이다. 다수 국제노선이 중단되면서 유휴인력이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앞서 티웨이항공은 ‘인천∼우한’ 노선을 신규 취항할 예정이었지만 중국 노선 6개 운항과 함께 잠정 중단됐다.

티웨이항공 부진은 예림당에게 치명적이다. 사업 구조상 그렇다. 예림당은 ‘티웨이항공 의존도’가 상당하다. 2012년(티웨이항공 인수 전) 예림당 매출액은 513억원에 그쳤다. 2013년(티웨이항공 인수 후) 매출은 60% 이상 올랐다.
 

▲ 나춘호 예림당 회장

예림당 본 사업은 도서출판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출판사업은 내리막을 탔고, 항공 사업은 상승세를 탔다. 예림당서 항공 부문 매출 비중은 매년 늘었다. 2013∼2017년까지 62.1%, 74.6%, 83.6%, 84.5%, 90.8% 등이었다. 2018년에는 무려 96.1%에 달했다.


반면 출판 부문의 매출은 하락이 지속됐다. 같은 기간 43%에서 24.5%, 13.5%, 12.3%, 5.2%, 3.1%로 떨어졌다. 판매제품도 같은 양상이었다. 2013년 출판제품은 전체 판매제품서 35.3%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4∼2018년 동안 19.2%, 9.4%, 8.8%, 4.5%, 3%까지 줄었다. 빈자리는 항공 사업이 차지했다.

결국 지난 2018년 연결 기준 예림당 전체 매출액 7611억원서 항공 부문 매출이 7319억원에 달했다. 무려 90%를 훌쩍 뛰어넘는다. 출판 부문 매출은 236억원에 그쳤다.

출판 3%
항공 96%

출판 매출은 지속 감소할 전망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출판 부문 매출액은 직전년도 보다 40% 이상 감소한 136억원이었다. 전체 판매제품서 출판제품 비중은 약 2%에 불과했다. 계열사 사업이 모기업 사업을 밀어낸 형국이다.

출판사업에 힘이 실릴 가능성은 적다. 예림당 성장 발판은 티웨이항공으로 넘어갔다. 티웨이항공은 예림당 전체 실적을 좌우할 만큼 비대해졌다. 최근 티웨이항공은 가시밭길에 놓여있다. 결국 예림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림당은 창업주와 오너 2세가 각각 사업을 분담한다. 나춘호 회장은 예림당 대표이사로 출판 경영을 진두지휘한다. 앞서 나 회장은 지난 2005년 장남에게 바통을 넘겨줬다. 그는 경영 일선서 물러났지만 13년 만에 복귀를 선언했다. 인터넷·모바일시장 발달로 국내 출판업계가 하락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오너 2세는 장남 나성훈 티웨이항공 부회장으로 부친이 경영 복귀를 선언하면서 항공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 회장은 언론 인터뷰서 “나 부회장은 전문경영인과 함께 티웨이항공 경영에 보다 집중할 것”이라며 “출판보다는 항공업이 젊은 사람에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업 규모도 항공업이 훨씬 크다”며 “난 한 평생을 바친 예림당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것“이라고 전했다.

나 부회장은 항공 계열사를 책임진다. 그는 지난 2018년 8월 티웨이항공 부회장에 올랐다. 현재 티웨이항공 경영 총괄을 맡고 있다. 동시에 티웨이홀딩스 사내이사이기도 하다.

나 부회장은 티웨이항공 경영 정상화에 전념할 전망이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지난해 이미 큰 적자를 봤다. 첩첩산중으로 올해 업황 역시 깜깜하다. 코로나19 역시 종식을 가늠하기 어렵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LCC는 재도약이 사치로 여겨질 정도”라며 “당장 생존이 급한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지난달 17일 ‘LCC 긴급 지원책’을 내놨다. 긴급 대출 3000억원과 공항 사용료 3개월 납부 유예 등이었다. 그 달 28일 LCC 6곳 대표들은 오히려 공동 건의문을 발표했다. 티웨이항공도 이름을 올렸다.

지나치게 쏠린 사업구조로 흔들
‘애물단지’에 모기업 운명 달려 

이들은 “지난해 일본 불매운동에 이은 코로나19 사태로 어떤 자구책도 소용없고 퇴로도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이어 “지금 위기가 특정 항공사만의 위기가 아닌 국내 LCC 산업 전체 위기”라며 “산업기반의 공멸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있다”고 강조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으면서 LCC 매각설이 불거졌다. 지난해 적자 발생과 일본 불매운동, 코로나19 여파가 ‘삼중고’로 작용했다. 티웨이항공도 매각설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예림당 실적이 티웨이항공으로 흔들린 점을 간과하기 어려웠다.

반대로 매각은 쉽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예림당 기존 사업은 사실상 힘을 잃었다. 성장 동력은 티웨이항공이다. 또 예림당 2세가 티웨이항공 부회장에 취임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 나성훈 티웨이항공 부회장

<일요시사>는 예림당 측에 티웨이항공 등 관련 사안을 질의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예림당 관계자는 “공시자료 외에 따로 답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현재 예림당은 나 회장 일가가 지배 중이며 최대주주는 나 회장으로 31.47%의 지분을 갖고 있다. 뒤이어 나 부회장(9.63%), 부인 김순례씨(6.29%), 차남 나도연씨(3.15%) 등이다.

오너 일가는 예림당 ‘정점’서 계열사를 주무른다. 지난해 9월 기준 계열사는 모두 8개로 항공 부문은 ▲티웨이홀딩스 ▲티웨이항공 ▲티웨이에어서비스 등이다. 나머지 계열사는 ▲예림랜드 ▲예림문고 ▲행간 ▲성원디앤아이 ▲예림융합교육 등이다.

삼중고
매각설?

출판 계열사는 ‘예림문고’와 ‘행간’이다. 예림문고는 도서 도·소매업을 영위한다. 행간은 출판과 광고대행업을 맡고 있으며 두 회사 최대주주는 나 부회장이다. 각각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데 대표이사기도 하다. 사실상 오너 2세 개인회사로 볼 수 있다. ‘예림랜드’는 동물원과 식물원을 운영하는데 나 회장은 이곳의 최대주주다. 차남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성원디앤아이’는 시설관리 용역업체다. ‘예림융합교육’은 포털 및 기타 인터넷 정보 매게 서비스업을 수행한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제주항공 품에 안긴 이스타항공 운명은?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했다. 제주항공은 지난 2일, 이스타홀딩스와 이스타항공 주식 497만1000주를 545억원에 매매한 주식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양해각서 체결 당시 매각 예정 금액은 695억원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 전체가 흔들리면서 인수 금액이 150억원 하향 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양해각서 체결과 이행보증금으로 지급한 115억원을 제외하고 430억원이 다음달 29일 납입될 예정이다.

LCC 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5위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특히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는 항공업계 최초 동종사업자 간 결합인 만큼 의미가 있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을 인수로 원가절감과 노선 활용 유연성 확보, 가격경쟁력 확보 등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계획이다.

이석주 제주항공 사장은 사내 메시지를 통해 “이스타항공 인수에 대한 우리 직원들의 우려가 크다는 것을 경영진도 잘 알고 있다”면서도 “공급과잉의 구조적 문제를 안은 국내 항공업계는 조만간 공급 재편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며 “우리 모두 힘을 모아 함께 도전하자”고 강조했다.

시장 기대는 높았다. 제주항공 주가는 이스타항공 인수 발표 다음날인 지난 3일 급등했다. LCC 업계들이 역대 최악의 불황에 빠진 만큼 리스크가 상당하지만 주가 상승으로 이목이 쏠렸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국내 국제선 여객 수는 전년 동월대비 47%나 급감했다”며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은 각각 51%, 64% 역성장해 1분기 대규모 영업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번 인수만으로 제주항공이 LCC 재편의 승자라는 확신은 아직 부족하다”며 “이스타항공을 정상화시킬 만큼 재무 체력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향후 주가 반등을 위한 선결 과제”라고 전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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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