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곰상 감독상’ 수상한 홍상수 ‘찌질의 역사’

스캔들 전후로 변해온 작품 세계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코로나19 관련 이슈가 한국을 지배한 가운데 영화계서 낭보가 들려왔다. 국내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꼽히는 홍상수 감독이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제70회 베를린 영화제’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한 것.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찌질함’은 홍 감독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숨기고 싶은 내면의 부끄러운 지점을 여과 없이 벗겨왔던 홍 감독이 밟아온 작품의 역사를 살펴봤다.
 

▲ ▲▲ 홍상수 감독 ⓒ베를린 영화제

영화계서 “정치와 종교, 홍상수는 대화 주제로 삼으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홍 감독의 영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기꺼이 숨기고 싶은 인간의 찌그러진 내면을 마구 벗겨버리는 홍 감독의 영화를 통해 누군가는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고, 혹자는 불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홍상수 월드

좋든 싫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을 만든 홍상수 감독은 유학파 출신이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 예술대학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한국으로 돌아와 1996년 개봉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영화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네 명의 인물의 일상을 다룬 이 영화는 시공간을 독특하고 유려하게 포착하며, 홍상수 미학의 시발점이 된다. 기존의 영화 공식을 완전히 비튼 연출은 한국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1998년 두 번째 작품인 <강원도의 힘>이나 2000년 <오! 수정> 등에서 평범한 남녀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내밀한 위선과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홍상수 월드’의 초석을 다진다. 최근 봉준호 감독이 ‘봉준호 장르’라는 평가를 받는데, 홍 감독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리얼리티를 넘어선 극사실주의로 ‘홍상수 장르’를 구축했다. 


홍상수 장르는 그의 독특한 연출 방식으로부터 기인한다. 데뷔할 당시에는 투자 여부로 인해 다른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와 대본이 있었지만, 네 번째 작품인 <생활의 발견>부터 전날 밤이나 촬영 아침에 대본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활의 발견>부터는 시놉시스만 줘도 투자가 가능해지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

<옥희의 영화>(2010)부터는 영화의 얼개 자체도 없이 촬영에 돌입했다. 그의 독특한 연출 방식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홍 감독의 머리 속에 무엇을 전달할지가 분명히 구축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 ⓒ영화 포스터

그의 영화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찌질함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김의성이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유지태는 물론, 이후 작품에 자주 등장한 김상경, 유준상, 김태우, 이선균 등 모든 인물들이 찌질하다. 말투부터 행동, 사고(思考) 등 모두가 보통 사람 이하로 여겨진다. 여성 인물들도 찌질함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른 드라마나 영화서처럼 똑똑하면서 멋있는 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 

이와 관련해 홍 감독은 “흔히들 찌질한 캐릭터라고 하는데, 남자 캐릭터들의 행동이 진짜 찌질하기보다는, 우리가 영화서 보는 인물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이상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을 조금만 돌아보면 누구든지 내면에 어두운 구석과 찌그러진 모습이 있다. 그 모습이 싫으니까 어떤 하나의 이상을 자꾸 자기에게 제시한다. 사람들이 내 인물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한다. 그 사람의 처지가 너무 힘들면 자신을 직시할 힘이 없다. 그런 상황에선 내 영화를 편히 보는 게 무리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초기 작품 대부분은 베드신이 등장했고 여성의 노출 장면이 나왔다. 기교가 가미된 베드신이 아닌 현실적인 느낌의 베드신이었던 만큼 그렇게 야한 영화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극장전> 이후로는 베드신이 중단된다. <해변의 여인> 이후로 그의 영화서 노출성 베드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홍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베드신을 찍을 때 불쾌감을 느꼈으나 그 불쾌감이 온전히 채워지지는 않았는지 다음 작품인 <극장전>서도 베드신을 촬영했고, 다시 한 번 불쾌감을 느낀 뒤로는 노출성 베드신을 찍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밥 먹는 것이나 섹스하는 것이나 뭐가 다르냐는 그런 전복서 오는 쾌감이 있었는데, 노출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나 의미 부여가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베를린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이는, 찌질한 남성과 여성의 만남과 이별 과정을 통해 인간이 가진 본질을 두고 질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그의 영화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서도 극찬을 받는다.

<북촌방향>서 두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뒤 다음 날 아침이 돼서는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면서 또 미련을 보이는 한 남자의 모습을 통해 쉽게 고쳐지지 않는 습관의 본질을 그려내며 다양한 생각을 유도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다. 그 과정서 다른 감독에게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그만의 색채감이 ‘홍상수 월드’의 핵심 요소다. 

특히 배우 김민희가 홍 감독 영화에 처음으로 등장한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는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거의 동일한 1부와 2부 형식으로 만들며 연출력의 역량이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주 작은 차이서 완전히 다른 결과로 이어지는 형태의 이 영화는 전 세계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홍 감독의 작품들은 마치 ‘자기 복제’를 하듯 각 영화가 엇비슷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주제 의식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은 조금씩 차이를 보여왔다. 마치 인간의 본질을 통찰한 듯, 비현실적인 상황서 벌어지는 대사와 행동들은 관객들의 공감을 사 왔다. 이는 그의 영화가 매우 독특하면서도 보편성을 갖췄다는 의미다.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을 탐구
스캔들로 파생된 감정과 생각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이후 김민희와의 스캔들이 불거지며, 홍 감독의 영화는 변화를 일으킨다. 스캔들 이후에는 스캔들을 통해 받았던 감정과 상처, 생각을 토로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작품으로 바뀐다. <밤에 해변에서 혼자>는 유부남과 사랑을 나눈 뒤 혼란스러워하는 여성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했으며 <클레어의 카메라>는 중년 남성과 사랑을 나눈 뒤 회사서 해고된 여성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마치 자신과 만나게 된 후 엄청난 변화를 겪은 김민희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 ⓒ&lt;도망친 여자&gt; 포스터

<그 후>는 바람을 피운 뒤 고뇌에 빠진 중년 남성을 통해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며 <풀잎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쉽게 비난하는 여인을 통해 스캔들을 둘러싸고 자신을 비난하는 대중을 향한 일침으로 해석된다. 가장 최근작인 <강변 호텔>은 죽음을 앞둔 한 시인이 두 아들을 불러놓고 이혼을 하게 된 이유를 가감 없이 토로한 뒤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를 통해 현실서 자신이 버린 가족에게 미안함을 드러냄과 동시에 스캔들 이후의 사회적 통념서 벗어나겠다는 일종의 다짐도 엿보인다. 

<도망친 여자>는?

이번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감독상을 받은 <도망친 여자>는 주인공 감희(김민희 분)가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세 명의 친구를 만나는 내용을 담는다. 아직 국내서 공개되지 않아 베일에 감춰져 있다. 베를린이 인정한 <도망친 여자>서 홍 감독은 스캔들 굴레서 벗어나 이전의 영화들처럼 좀 더 확장된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았을까. 연출하는 영화만큼 영화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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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