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곰상 감독상’ 수상한 홍상수 ‘찌질의 역사’

스캔들 전후로 변해온 작품 세계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코로나19 관련 이슈가 한국을 지배한 가운데 영화계서 낭보가 들려왔다. 국내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꼽히는 홍상수 감독이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제70회 베를린 영화제’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한 것.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찌질함’은 홍 감독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숨기고 싶은 내면의 부끄러운 지점을 여과 없이 벗겨왔던 홍 감독이 밟아온 작품의 역사를 살펴봤다.
 

▲ ▲▲ 홍상수 감독 ⓒ베를린 영화제

영화계서 “정치와 종교, 홍상수는 대화 주제로 삼으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홍 감독의 영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기꺼이 숨기고 싶은 인간의 찌그러진 내면을 마구 벗겨버리는 홍 감독의 영화를 통해 누군가는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고, 혹자는 불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홍상수 월드

좋든 싫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을 만든 홍상수 감독은 유학파 출신이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 예술대학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한국으로 돌아와 1996년 개봉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영화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네 명의 인물의 일상을 다룬 이 영화는 시공간을 독특하고 유려하게 포착하며, 홍상수 미학의 시발점이 된다. 기존의 영화 공식을 완전히 비튼 연출은 한국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1998년 두 번째 작품인 <강원도의 힘>이나 2000년 <오! 수정> 등에서 평범한 남녀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내밀한 위선과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홍상수 월드’의 초석을 다진다. 최근 봉준호 감독이 ‘봉준호 장르’라는 평가를 받는데, 홍 감독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리얼리티를 넘어선 극사실주의로 ‘홍상수 장르’를 구축했다. 


홍상수 장르는 그의 독특한 연출 방식으로부터 기인한다. 데뷔할 당시에는 투자 여부로 인해 다른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와 대본이 있었지만, 네 번째 작품인 <생활의 발견>부터 전날 밤이나 촬영 아침에 대본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활의 발견>부터는 시놉시스만 줘도 투자가 가능해지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

<옥희의 영화>(2010)부터는 영화의 얼개 자체도 없이 촬영에 돌입했다. 그의 독특한 연출 방식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홍 감독의 머리 속에 무엇을 전달할지가 분명히 구축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 ⓒ영화 포스터

그의 영화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찌질함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김의성이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유지태는 물론, 이후 작품에 자주 등장한 김상경, 유준상, 김태우, 이선균 등 모든 인물들이 찌질하다. 말투부터 행동, 사고(思考) 등 모두가 보통 사람 이하로 여겨진다. 여성 인물들도 찌질함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른 드라마나 영화서처럼 똑똑하면서 멋있는 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 

이와 관련해 홍 감독은 “흔히들 찌질한 캐릭터라고 하는데, 남자 캐릭터들의 행동이 진짜 찌질하기보다는, 우리가 영화서 보는 인물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이상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을 조금만 돌아보면 누구든지 내면에 어두운 구석과 찌그러진 모습이 있다. 그 모습이 싫으니까 어떤 하나의 이상을 자꾸 자기에게 제시한다. 사람들이 내 인물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한다. 그 사람의 처지가 너무 힘들면 자신을 직시할 힘이 없다. 그런 상황에선 내 영화를 편히 보는 게 무리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초기 작품 대부분은 베드신이 등장했고 여성의 노출 장면이 나왔다. 기교가 가미된 베드신이 아닌 현실적인 느낌의 베드신이었던 만큼 그렇게 야한 영화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극장전> 이후로는 베드신이 중단된다. <해변의 여인> 이후로 그의 영화서 노출성 베드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홍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베드신을 찍을 때 불쾌감을 느꼈으나 그 불쾌감이 온전히 채워지지는 않았는지 다음 작품인 <극장전>서도 베드신을 촬영했고, 다시 한 번 불쾌감을 느낀 뒤로는 노출성 베드신을 찍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밥 먹는 것이나 섹스하는 것이나 뭐가 다르냐는 그런 전복서 오는 쾌감이 있었는데, 노출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나 의미 부여가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베를린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이는, 찌질한 남성과 여성의 만남과 이별 과정을 통해 인간이 가진 본질을 두고 질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그의 영화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서도 극찬을 받는다.

<북촌방향>서 두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뒤 다음 날 아침이 돼서는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면서 또 미련을 보이는 한 남자의 모습을 통해 쉽게 고쳐지지 않는 습관의 본질을 그려내며 다양한 생각을 유도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다. 그 과정서 다른 감독에게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그만의 색채감이 ‘홍상수 월드’의 핵심 요소다. 

특히 배우 김민희가 홍 감독 영화에 처음으로 등장한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는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거의 동일한 1부와 2부 형식으로 만들며 연출력의 역량이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주 작은 차이서 완전히 다른 결과로 이어지는 형태의 이 영화는 전 세계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홍 감독의 작품들은 마치 ‘자기 복제’를 하듯 각 영화가 엇비슷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주제 의식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은 조금씩 차이를 보여왔다. 마치 인간의 본질을 통찰한 듯, 비현실적인 상황서 벌어지는 대사와 행동들은 관객들의 공감을 사 왔다. 이는 그의 영화가 매우 독특하면서도 보편성을 갖췄다는 의미다.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을 탐구
스캔들로 파생된 감정과 생각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이후 김민희와의 스캔들이 불거지며, 홍 감독의 영화는 변화를 일으킨다. 스캔들 이후에는 스캔들을 통해 받았던 감정과 상처, 생각을 토로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작품으로 바뀐다. <밤에 해변에서 혼자>는 유부남과 사랑을 나눈 뒤 혼란스러워하는 여성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했으며 <클레어의 카메라>는 중년 남성과 사랑을 나눈 뒤 회사서 해고된 여성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마치 자신과 만나게 된 후 엄청난 변화를 겪은 김민희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 ⓒ&lt;도망친 여자&gt; 포스터

<그 후>는 바람을 피운 뒤 고뇌에 빠진 중년 남성을 통해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며 <풀잎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쉽게 비난하는 여인을 통해 스캔들을 둘러싸고 자신을 비난하는 대중을 향한 일침으로 해석된다. 가장 최근작인 <강변 호텔>은 죽음을 앞둔 한 시인이 두 아들을 불러놓고 이혼을 하게 된 이유를 가감 없이 토로한 뒤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를 통해 현실서 자신이 버린 가족에게 미안함을 드러냄과 동시에 스캔들 이후의 사회적 통념서 벗어나겠다는 일종의 다짐도 엿보인다. 

<도망친 여자>는?

이번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감독상을 받은 <도망친 여자>는 주인공 감희(김민희 분)가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세 명의 친구를 만나는 내용을 담는다. 아직 국내서 공개되지 않아 베일에 감춰져 있다. 베를린이 인정한 <도망친 여자>서 홍 감독은 스캔들 굴레서 벗어나 이전의 영화들처럼 좀 더 확장된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았을까. 연출하는 영화만큼 영화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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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