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드라마 속 리더십 ‘해부’

괴짜 주인공들의 진짜 정의감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요즘 ‘라떼 꼰대’라는 말이 유행이다. 무슨 말만 나오면 ‘나 때는 말이야’라며 과거의 자신을 자화자찬하는 일부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나이 많은 어른을 무조건 꺼리는 것이 아닌, 무용담을 늘어놓는 데 급급한 어른을 싫어하는 요즘 세대의 인식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어른은 어디에 있을까? 대중은 종종 드라마 캐릭터를 통해 그런 갈증을 해소한다. 현실과 판타지를 오고 가는 듯, 카타르시스를 던져주는 드라마 속 인물은 누가 있을까.
 

▲ 이태원 클라쓰 박서준 ⓒJTBC

최근 종영한 SBS <낭만닥터 김사부2>(이하 <김사부2>)와 <스토브리그>, 현재 방영 중인 JTBC <이태원 클라쓰>(이하 <이태원>)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김사부2>와 <스토브리그>는 최고 시청률 27.1%(닐슨코리아), 19.1%로 종영했으며, <이태원>은 12.6%를 기록 중이다. 시청률 5%를 넘기는 것조차 버거울 뿐 아니라, 15%가 엄청난 ‘대박’이라 평가받는 현 드라마 시장서 남긴 놀라운 결과다.

3인의 리더십

세 드라마의 공통점은 현실서 보기 힘든 리더가 존재한다는 점. <낭만닥터 김사부> 김사부(한석규 분) 과장, <스토브리그> 백승수(남궁민 분) 단장, <이태원 클라쓰> 박새로이(박서준 분) 사장이 그 인물들이다. 

세 사람은 뚜렷한 소신과 신념을 앞세워 동료들을 이끌고 나간다. 힘 있는 자들의 불의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약자 앞에서는 포용력을 발휘한다. 마치 주머니 속 송곳처럼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이미지의 인물들이다. 

답답한 현실에 순응하기보다 소신에 따라 맞서고 싸운다. 아울러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책임질 줄 알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비전을 제시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모난 돌이 되어 세상의 비바람을 견뎌낸다. 


그 반대로 일에 미쳐서 개인적인 시간을 즐길 줄도 모르며 사회성은 어딘가 부족한 듯 보이고, 매번 누군가에게 퍼주기만 하는 기질처럼 분명한 약점과 결핍도 존재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타고난 리더인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며 자신은 물론 주변도 성장시키는 캐릭터인 것. 인물의 기질이 현실감이 있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세 인물은 신드롬에 가까울 정도로 강렬한 파급력을 보인다. 

김사부 : 신뢰의 리더십

<김사부2>의 돌담병원 외과과장 김사부는 그야말로 낭만적이다. 국내에 견줄 자 없는 엄청난 실력을 갖춘 ‘천재 의사’지만, 비즈니스 마인드로 병원을 운영하는 본원에 맞서 시골 병원서 은둔하면서도 최고급 의술을 펼친다. 사회성은 심히 떨어져 보이며 괴팍하고 거칠기도 하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환자의 생명’ 뿐이다. 의사의 본분 외에 어떤 것도 타협하지 않는다. 

망한 병원의 내부고발자로 찍혔거나 이론은 뛰어나지만 수술실에선 울렁증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등 일반적인 시선서 부족함이 있는 후배 의사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곤 기회를 제공한다. 답을 먼저 알려주기보다는 생각하게 만들고, 끝까지 신뢰하며 희망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후배가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비로소 중심을 잡아준다.

‘사부’를 자처하면서도 자리에 주어진 칼을 휘두르지 않고, 오히려 솔선수범하며 함께하는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김사부는 현실에서 보기 힘든 낭만적인 리더다. 

끝까지 믿어주고 남이 우선 가치 
손해 보더라도 안고 가는 아량도

완벽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춰보면 완벽하지 않다. 개인적 삶이 없는 워커홀릭인 데다 아픈 걸 숨기면서까지 일에 매달려 주위를 걱정시키는 인물이다. 워커홀릭 대부분이 그렇듯 옆에 있는 동료들도 일하게 만들어 피곤하다. ‘미움받을 용기’ 따윈 없는지,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정을 주는 행동들은 김사부만의 매력 포인트다.


아울러 본원서 짜놓은 함정의 판을 모두 읽고 대비책을 마련해 두거나 기회를 얻은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남기는 김사부의 리더십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낭만 닥터’인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백승수 : 효율의 리더십

만년 꼴찌 프로야구 팀 ‘드림즈’ 단장으로 부임한 백승수에게 주어진 숙제는 꼴찌 탈출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승 후 해체’다. 지역민심 때문에 억지로 야구팀을 끌어안은 모기업은 애물단지 드림즈를 타 기업에 팔거나 해체하길 바란다. 

그런 상황서 백승수는 드림즈의 곪고 부패한 인물들을 콕 짚어 처단하거나 18승 선발투수 강두기(하도권 분)나 몸은 성치 않지만 타고난 분석능력을 갖고 있는 백영수(윤선우 분)를 영입하고, 진심으로 팀을 위해 일하는 양원섭(윤병희 분)을 승진시키는 등 철저히 능력 중심의 인사를 기용한다. 
 

▲ 낭만닥터 김사부2 한석규 ⓒSBS

백승수 역시 빈틈이 존재한다. 트레이드부터 전지훈련 등 구단 업무 전반의 회의자료를 직접 완벽하게 만들어버리니 주변 동료들이 초라해진다. 본인을 위해 회식 자리를 준비한 동료들에게 “저는 빠지겠습니다”라며 ‘백승수 없는 백승수를 위한 회식’을 만들기도 한다. “핑계 대기 시작하면 똑같은 상황에 또 지게 됩니다” 등 돌려 말할 줄 모르는 화법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신임 단장으로 여겨질 수 없을 정도로 능수능란할 뿐 아니라 신출귀몰하게 대안을 마련하는 능력으로 모래알 같던 프런트와 선수, 코칭 스태프를 똘똘 뭉치게 한다. 결국 자신은 드림즈서 빠져 나오게 되지만, 그 희생은 드림즈를 지켜낸다. 백승수로 인해 올바른 시스템을 갖추게 된 드림즈는 일취월장한 결과를 얻는다. 

“어쭙잖은 신뢰 때문에 더 큰 손실을 야기하는 것도 부조리”라며 정확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 목적을 둔 백승수의 효율의 리더십은, 현 직장인들이 가장 바라는 리더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박새로이 - 포용의 리더십

동명 웹툰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는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고집과 객기로 맞서는 인물이다. 아버지가 정해준 ‘소신 있게 살자’를 삶의 기준으로 정하고 산다. 그러다가 인생이 심하게 꼬여버린 케이스다. 재벌가의 악행과 이에 동조한 경찰로 인해 고등학교를 퇴학당하고 감옥살이를 했으며,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상황서도 굴복하지 않는다.

15년짜리 계획을 세우고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국내 최대 요식업 기업 ‘장가’에 맞서기 위해 이태원에 포차를 차린다. 

미성년자임을 속인 손님에게 술을 팔았다가 2개월 영업정지를 당했음에도 훌훌 털어버릴 줄 알며, 요리를 못하는 요리사를 내쫓자는 매니저의 의견을 뒤로하고, 더 많은 월급을 주며 ‘더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달라’는 요구만 한다. 박새로이가 운영하는 단밤의 건물을 사버린 장대희(유재명 분) 회장이 아들 장근수(김동희 분)를 돌려보내고 ‘무릎 꿇고 사과하면 계속 장사할 수 있게 하겠다’는 협박에도 꿋꿋하게 대응하며, 장근수를 내보내자는 조이서(김다미 분)에게 매니저 자격이 없다며 일갈하기도 한다. 

당장은 손해를 좀 보더라도 미래를 내다보며, 강자 앞에서는 강하게, 약자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수용적으로 대하는 박새로이의 태도에 시청자들은 ‘새로이 앓이’를 하고 있다. 주류 사회서 부족하게 볼 수밖에 없는 조폭 출신, 트렌스젠더, 고졸 출신 매니저는 물론 악연을 가진 라이벌 회장의 아들까지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낸다. 그의 포용력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흔히 볼 수 있는 이기심의 반대편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세 주인공은 꾸밈없이 소통할 줄 아는,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어른이다. 그들은 정의롭지 못한 부조리에 맞서며, 대의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책임감도 갖고 있다. 딱히 뚜렷한 러브라인이 존재하지 않는 세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요즘 대중이 보고 싶은 리더상을 제공함은 물론 설렘도 안겨주는 점 때문이다.

현실과 대립

대중은 소신 있고도 따뜻하게 막막한 현실과 대립하며, 힘이 들어도 끝내 극복해내는 인물을 통해 쾌감을 만끽한다. 앞서 “<기생충>이 혁명을 제시하냐”는 한 외신기자의 질문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답변처럼, 세상이 너무 복잡해져서 ‘척결의 대상’이 불분명해지는 이 시대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세 사람이 보여준 신뢰와 포용을 중심으로 한 인간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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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