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무릎 꿇은 교주’ 이만희

잠적했다 나타나 ‘이배사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음지의 종교’ 신천지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에 신천지 교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후부터다. 교주, 총회장으로 불리는 이만희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신천지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만희는 최근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국민 앞에 섰다.
 

▲ 이만희 신천지 예수교 총회장 ⓒ신천지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이 때아닌 유명세를 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실제 신천지 교인으로 확인된 31번 확진 환자의 등장 이후 증가세가 커졌다. 특히 대구·경북의 경우 신천지발 확진 환자가 폭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코로나 확산
진원지 됐다

지난달 18일까지 코로나19의 확진 환자 수는 30명대에 머물렀다. 120일 국내서 첫 번째 확진 환자가 나오고 한 달가량 하루 1명꼴로 늘어난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달 18일 대구서 31번째 확진 환자가 나오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지역감염이 시작되자 확진 환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31번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고 열흘도 채 안 돼 확진 환자 수가 1000(226일 기준)을 넘어섰다. 31번 확진 환자의 동선을 확인하는 과정서 그가 예배를 본 대구교회가 신천지 교회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날 31번 확진 환자와 함께 예배를 보는 등 접촉한 사람 수가 1000명이 넘는다는 내용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대구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대구를 기점으로 전국 각지에서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신천지 교인이 나타났다. 검사를 거부하거나 신천지 교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확진판정 이후에야 밝히는 등의 사례가 연이어 나왔다. 코로나19 국내 첫 사망자가 나온 청도 대남병원서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의 형이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해 장례식이 치러진 사실도 드러났다.


신천지 대구교회에 따르면 이만희의 친형 이모씨는 127일 저녁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119 구급차를 타고 청도 대남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그는 일반병실에 있다가 131일 새벽 사망했다. 이씨가 사망 전 폐렴을 앓은 것으로 드러나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따로 부검을 진행하지 않아 확인되진 않았다.

이후 청도 대남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청도 대남병원 관련 확진자는 총 114(226일 기준)이다. 폐쇄 정신병동 입원환자 102명 중 101명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사망자도 7명이나 나왔다. 현재 청도 대남병원은 코호트 격리 중이다.

코호트 격리는 감염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을 그 안에 있는 환자와 의료진까지 통째로 봉쇄하는 조치를 말한다.

이씨의 장례식은 신천지 교인을 중심으로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된 매개로 지목되고 있다. 경찰은 당시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의 행적을 확인하고 있다. 경찰이 확보한 조문객 명단에는 170여명가량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조계에는 교인, 포항교회, 경주교회 등 조문객의 신원사항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정부들은 신천지 관련 시설 폐쇄 등 조치에 나섰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달 24일 경기도 내 신천지 관련 시설 353곳을 강제 폐쇄하는 긴급명령을 발동했다. 다음날에는 신천지 총회본부를 찾아 신천지 과천교회 예배 참석자 명단을 제출받았다. 경기도 신천지 신도는 33840명에 이른다. 이중 지난달 16일 과천서 예배를 본 신도는 9930명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난 폭주
사실혼 관계 2인자 폭로까지

정부는 전국 신천지 신도의 명단을 확보하고 발열 등 증상이 있는 사람을 우선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시행 중이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은 지난달 26일 정부세종청사 정례 브리핑서 “(2)25일 신천지 교회로부터 전체 신도 212000명의 명단을 확보했다지자체에 명단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지방정부의 조치로 신천지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이 과정서 중국 우한 지역에 소속 교회가 없다는 신천지의 해명이 거짓이라는 의혹까지 나왔다. 유튜브 채널 종말론 연구소는 지난달 26신천지 지도부의 구속수사를 요청합니다라는 영상서 신천지 총회 산하 12지파 중 하나인 부산 야고보 지파장의 설교가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 ▲청도 대남병원

녹취록에 따르면 야고보 지파장은 지난달 9일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서 지금 우한 폐렴 있잖아. 거기가 우리 지교회가 있는 곳이라며 중국이 지금 보니까 700명 넘게 죽었잖아요. 확진자가 3만명이 넘잖아요. 그 발원지가 우리 지교회가 있는 곳이라니까라며 우한에 교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우리 성도는 한 명도 안 걸렸어라고 말하자 신도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아멘을 외치며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신천지 측은 그동안 우한에 지교회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또 성도가 있다는 자료가 공개된 뒤에도 중국 정부가 교회당을 허가하지 않아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는 입장이었다.

신천지 측은 여전히 우한에는 신도만 있을 뿐 교회당이라는 물리적 실체는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신천지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부산 야고보 지파서 기도하고 연락도 하면서 신앙 관리를 위해 소속감도 주고 용기를 불어넣을 수는 있다면서도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우한교회 신천지 성도가 한국에 입국한 적이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알려드린다고고 주장했다.

고립에 가까울 정도로 도시가 죽어버린 대구는 물론이고, 신천지는 전 국민의 공적이 돼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서 한국종교인평화회의에 참석하는 7대 종단 지도자들을 만나 신천지는 일종의 확진자 소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만희는 지난달 21일 신천지 관련 애플리케이션에 올라온 총회장님 특별편지라는 제목의 글로 공식입장을 내놨다. 그는 금번 병마 사건은 신천지가 급성장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일으킨 마귀의 짓임을 안다면서 모든 시험에서, 미혹에서 이기자고 강조했다.

이어 당국 지시에 협조해야 한다전도와 교육은 통신으로 하고 당분간 모임은 피하자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지금 병마로 인한 피해자는 신천지 성도들이라며 어떤 풍파도 우리 마음과 믿음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승리하자고 맺었다.

친형 장례식
슈퍼 전파자?

신천지 측은 지난달 25일 이만희의 두 번째 특별편지를 공개했다. 이만희는 “신천지 전 성도 명단을 제공하고 전수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아울러 교육생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모든 것은 정부서 성도들의 개인정보를 유지 및 보안 방안을 마련하는 전제 하에 진행할 것”이라며 “정부 시책에 적극 협조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자”고 당부했다. 이어 “우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극복을 위해 정부에 적극 협조해왔다. 특히 대구교회 성도님들이 많은 피해를 입어 마음이 아프다”고도 했다.

신천지는 1984314일 창립된 이래 35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 같은 상황서도 이만희의 모습이 보이질 않아 그의 소재와 상황을 두고 궁금증이 증폭됐다. 경기도 가평 칩거설, 건강 이상설, 심지어 자연사설까지 퍼졌다. 또 그가 청도 대남병원서 진행된 친형 장례식에 참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코로나19 감염여부에도 관심이 쏠렸다.

손수호 변호사는 지난달 27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만희의 행방을 두고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 건강상의 이유로 어디선가 치료받고 있을 가능성 국내 어느 곳에 칩거하고 있을 가능성 등이다.
 

 


손 변호사는 신천지는 교주를 보위하는 12지파장, 그리고 그 아래 24장로가 조직의 핵심인데, 24명의 장로 중 1명인 A씨가 얼마 전 CBS 취재팀에게 이만희 총회장이 친형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총회서 총회장을 따라간 사람이 1명도 없다는 말을 했다김남희씨가 이만희씨의 비리를 공개하면서 공격하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이만희가 이미 사망했거나 또는 적어도 사망에 임박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고 제시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치료를 받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90세에 다다른 이만희의 나이를 근거로 들었다. 손 변호사는 이만희씨는 최근 몇 년간 큰 행사 외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2017년에도 척추 수술을 받고 한동안 모습을 감춘 적 있다무엇보다 친형 장례식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여럿 나왔다. 이만희씨도 감염 의심 상태 또는 감염 상태로 숨어 있는 중 아닌지 짐작한다고 말했다.

지방정부
시설 폐쇄

그러면서 이만희가 경기도 가평 쪽에 숨어있는 게 아닌지 추측했다. 가평에는 신천지 연수원 일명 평화의 궁전이 있다. 신천지의 큰 행사를 진행하던 곳이다. 손 변호사는 경기도 모처의 또 다른 주택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현재 CBS서 추적 중이라 구체적인 장소를 말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만희는 19319월 경북 청도서 태어났다. 가족력이 있는 한센병을 치료하기 위해 1957년 전도관에 입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식으로 신학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장막성전의 교주 유재열을 추종하다 1975년 유씨가 사기 혐의로 구속된 후 1978년 솔로몬 창조교회의 12사도 조직에 몸담았다

이후 여러 단체를 거쳐 지식을 습득한 이만희는 19843월 신천지를 만들고 경기 과천시에 본부를 세웠다. 신천지 교리서인 <신탄>지상에 천국이 임하며 신천지가 바로 그 천국이라는 지상천국론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이 다시 환생한다는 부활론 믿음이 있으면 육체가 영원히 산다는 영생론 등을 전파하고 있다.


이만희는 신천지 신도들에게 선생님, 이긴자, 보혜사, 만희왕 등으로 불린다. 1984년 창립연도를 기점으로 신천기라는 연호와 국기, 국가, 국새까지 있다. 자체 의장대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최근 신천지 2인자이자 이만희와 사실혼 관계였다는 김남희씨가 신천지와 이만희에 대한 지속적인 폭로를 예고하면서 신천지 내부갈등이 표면화됐다. 김씨의 입을 통해 이 회장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오는 중이다. 신천지 측에서는 김씨의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씨는 최근 유튜브 채널 존존테레비에 출연해 이만희는 구원자도, 하나님도 아니다. 하나님과 종교를 이용한 완전 사기꾼이라며 이만희 교주를 구원자로 믿는 종교 사기 집단 신천지는 이 땅에서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는 걸 알리기 위해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천지 입문 전 가톨릭 신자였던 김씨는 2002년 신천지 수료식서 이만희가 자신을 처음 봤을 때 올 줄 알고 있었다. 과연 꿈에서 본 그 얼굴이라며 노골적으로 접근했고, 이만희에게 세뇌돼 두 아이와 남편이 있었지만 그와 혼인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저에게는 이만희 교주가 하는 말이 법이었다. 저뿐만 아니라 교리에 세뇌되고 중독됐다면 누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며 이만희 교주의 마각을 알지 못했다. 그 마수에 걸려 들어갔다. 저는 그날 이후부터 여러분이 아는 영적 배필이 아니라 육적 배필이 됐다고 폭로했다.

“이미 사망했을 수도” 주장도
특별편지 이후 칩거했다 나타나

이어 지금 생각하면 처음부터 제게 계획적 접근을 한 것이라 생각이 든다당시 압구정동 큰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이런 내용이)미리 이만희 교주한테 상세히 보고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계룡시에 평수 넓고 전망 좋은 아파트가 있었는데 이만희 교주가 책도 쓰고 머리 쉬고 그럴 데가 필요한데 여기가 딱 좋다,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해 열쇠를 넘겨줬다”며 그러다 저한테 계룡으로 오라고 전화가 와서 갔더니 아무도 없고 이만희 혼자 있었다고 했다.

이만희와 김씨는 신천지 행사인 제6회 세계평화 광복 하늘문화 예술체전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에 따르면 이만희는 당시 본처가 있었고 본처와 이혼한 후 김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만희는 김씨에게 아들을 낳아달라고 요구하고, 하나님의 씨라는 뜻의 이천종이라는 이름까지 지어놨다.

김씨는 아마 이 얘기를 듣는 사람은 어떻게 저런 비상식적인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할 텐데 이 안에 들어오면 세뇌가 되고 중독된다이만희 교주에 대한 것을 너무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천지 떠나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세뇌와 중독이 무섭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만희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유로 돈을 들었다. 이만희가 4000억원이 필요하다면서 김씨에게 1000억원을 마련해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김남희에게 모든 돈이 흘러 들어간다’ ‘김남희가 신천지 후계자다라는 소문 때문에 억울한 마음을 (이만희가) 풀어주지 않고 1000억원을 요구해 모든 정나미가 떨어져 2017년에 집을 나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만희 교주는 돈밖에 모르는 고도의 사기꾼이라며 지금 와서 보니 제 돈이 목적이었다. 항상 부부는 네 것 내 것이 없다며 저한테 이거 사라 저거 해라 지시했다. 한쪽은 돈을 모으고 한쪽은 돈을 쓰고 산 것이다. 당시엔 거절할 생각도 못했다. 이만희 교주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했다고 폭로했다.

신천지 관계자는 <중앙일보>김남희씨가 신천지를 탈퇴할 때 약 20명의 신천지 사람들이 함께 나갔다. 그들은 대부분 일반 신자가 아니라 나름대로 교회 내 직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라며 김씨가 신천지 내부자료를 많이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총회서도 김씨의 향후 폭로 행보에 주목하고 있고 법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신도 두고
어디에?

코로나19 사태, 신천지 2인자 김남희의 폭로에도 두문불출하던 이만희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신천지 연수원인 경기 가평군 평화의 궁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말 죄송하다. 뭐라고 사죄 말씀을 드려야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당국서 최선의 노력을 했다”며 우리도 즉각적으로 협조하고 있으나 정말 면목 없다. 여러분들께 엎드려 사죄를 구하겠다며 취재진 앞에서 큰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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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