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 ‘혈액백 스캔들’ 막전막후

목 좋은 자리 딴 나라 주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녹십자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혈액백 담합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녹십자는 제재를 받았지만 효력 정지 가처분이 인용됐다. 다만 처분 취소 소송서 패소한다면 2년간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사업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녹십자 혈액백 사업은 매각될 예정이다. 빈자리는 누가 대신하게 될까.
 

▲ 녹십자`

혈액백은 말 그대로 혈액을 담는 용기다. 둥그스름한 사각형 모양으로 혈액을 저장한다. 혈액사업서 혈액백은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 혈액백에 혈액이 저장돼야 비로소 전국 수요처로 이송될 수 있다.

혈액 사업
유통 핵심

혈액백 수요의 대부분은 헌혈기관서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와 한마음혈액원이다. 특히 적십자사는 국내 혈액공급 90%를 도맡는다. 적십자사는 혈액백을 마련하기 위해 매년 입찰공고를 낸다. 압도적 경쟁력을 보인 곳이 있는데 바로 녹십자그룹이다.

녹십자그룹은 혈액백을 적십자사 등에 사실상 ‘독점 공급’했다. 낙찰점유율은 적십자사 70%, 한마음혈액원 100%에 달한다. 그룹 내 혈액백 담당 계열사는 ‘녹십자엠에스’다. 녹십자엠에스는 국내시장서 높은 점유율을 자랑한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녹십자엠에스 자체 분석 결과 지난 5년간(2014∼2018) 점유율은 평균 72% 정도다.

같은 기간 혈액백 매출은 172억원, 211억원, 206억원, 204억원, 244억원이었다. 녹십자엠에스 전체 매출서 20%대다. 많게는 30%까지 차지할 때도 있었다.


별 탈 없이 지속되던 녹십자 혈액백 사업은 ‘입찰 단가 담합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해 7월 녹십자엠에스에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을 단행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녹십자엠에스는 태창산업과 2011년, 2013년, 2015년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서 예정 수량을 7대3으로 나눴다. 투찰 가격도 합의했다. 두 회사는 사전 합의대로 각각 70%, 30% 물량을 투찰했다. 이들은 모두 낙찰자가 됐다. 계약 금액만 모두 443억원이었다. 투찰률은 모두 99% 이상이었다.

공정위는 담합 배경을 ‘낙찰자 선정 방식 변경’으로 봤다. 당시 낙찰자 선정 방식은 ‘최저가 입찰제’서 ‘희망수량 입찰제’로 변경됐다. 최저가 입찰제는 1개 업체 100% 납품이다. 반면 희망수량 입찰제는 최저가 입찰자부터 희망 예정 수량을 공급하고, 후순위자가 나머지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결국 전체 물량을 담당하지 못하더라도 가격을 낮춘다면 원하는 물량을 낙찰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공정위는 녹십자엠에스와 태창산업이 가격 경쟁을 피하기 위해 담합을 이뤘다고 봤다. 녹십자엠에스는 시정명령과 과징금 58억200만원을 부과 받았다. 녹십자엠에스와 소속 직원 1명은 검찰에 고발당했다.

녹십자엠에스 담합 의혹 사실로
패소하면 2년 동안 참여 불가

공정위는 이를 ‘악성담합’으로 봤다. 공정위는 “국민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혈액백 구매 입찰에 장기간 진행된 담합 행위를 제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대다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헌혈 과정에 필요한 용기를 통해 취한 부당이익을 환수했다”고 평가했다.


설상가상으로 녹십자엠에스는 적십자사로부터 ‘부정당 업자 제재 처분’을 받았다. 부정당 업자 제재란 입찰담합 등 부정행위가 드러난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조치다.

제재 결과 적십자사와 거래가 중단됐다. 녹십자엠에스는 그달 10일 ‘거래처와 거래중단’을 고시했다. 제재 기간은 2022년 1월20일까지로 2년 동안 혈액백 사업을 영위할 수 없게 됐다. 녹십자엠에스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처분 취소 민사소송’ 카드를 꺼내들었다.

녹십자엠에스는 지난달 13일 공시를 통해 가처분 신청이 인용됐다며 민사소송 선고 전까지 입찰 자격을 임시로 부여받았다고 전했다. 승소 시 사업 재개 가능성이 점쳐지지만 패소할 경우 2년간 사업이 불가능하다. 공고했던 혈액백 선두주자 자리가 위태로운 모양새다.

같은 날 녹십자엠에스는 혈액백 사업 부문 분할을 예고했다. 사실상 혈액백 사업을 그만두겠다는 해석이다. 녹십자엠에스는 혈액백 부문만 따로 떼서 전문회사를 설립할 방침이다. 신설 회사명은 ‘녹십자혈액백’이다.

녹십자엠에스는 이를 전부 매각할 예정이다. 매각이 어려울 경우 신설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할 계획이다. 녹십자엠에스 아래 자회사를 두는 방식으로 분석된다.

분할 명분은 ‘전문성 제고’와 ‘경영 효율화’다. 실제로 녹십자엠에스는 2018년에 이어 지난해에 적자를 기록했다. 2018년 녹십자엠에스 매출액과 영업손실, 당기순손실은 차례로 863억원, -59억원, -112억원이었다.

담합 적발
2년 정지

지난해 매출액은 8.99% 상승한 940억원이었다. 영업이익도 24.93% 상승했지만 -44억원에 그쳤다. 당기순손실은 오히려 큰 폭으로 늘었다. 무려 45.61% 감소한 -163억원이었다.

혈액백 사업에 제동이 걸린 가운데 재무구조 개선 필요성이 부각된 만큼 사업을 정리하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녹십자엠에스 혈액백 사업 분할 예정일은 오는 5월1일로 해당 안건은 주주총회서 통과 여부가 갈릴 예정이다. 주총은 이번달 24일 열린다.

안건은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통과될 전망이다. 녹십자엠에스 최대주주는 ㈜녹십자로 특수관계인과 자기 지분 합은 63.24%다.

녹십자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선고 전까지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 참여 자격이 있다”며 “혈액백 사업부가 녹십자엠에스서 벗어난다면 혈액백 입찰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녹십자엠에스가 사업권을 갖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입찰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녹십자엠에스가 직격탄을 받은 사이 약진이 관측되는 업체가 있다. 독일계 다국적 기업인 ‘프레지니우스카비’로 글로벌 헬스케어 회사 프레지니우스 자회사다. 현재 100여개 나라에 혈액백을 공급한다.
 

▲ 혈액백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혈액백 세계시장 규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지난해 3분기 녹십자엠에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혈액백 및 관련기기’ 상위 업체 중 프레지니우스카비가 이름을 올렸다. 프레지니우스카비는 북미·유럽·아시아 지역서 1위를 기록했다. 매출액만 12억3600만달러. 한화로 1조5000억원에 가깝다.

프레지니우스카비는 국내에 2개 법인을 뒀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와 프레제니우스메디칼케어다. 이 중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가 혈액백 사업을 진행 중이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의료기기와 수액제, 자가수혈 및 임상영양에 전문 치료제를 제공한다. 법인은 지난 2009년 설립됐다.

다국적 기업
시장에 입성?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2017년 말 국내 혈액백 시장 진출을 밝혔다. 당시 박주호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 대표는 “국내 제품으로만 공급하던 혈액백 사업에 다국적 기업이 참가해 우수한 품질과 유사 시 안정적 공급 등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2012년부터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에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장벽에 가로막혔다. 입찰 조건 때문이었다.

적십자사는 지난 2013년 4월 입찰공고에 ‘국내 직접 제조가 가능한 자’라는 조건을 신설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혈액백을 해외서 제조했다. 2018년 ‘국내 직접 제조’라는 제한이 풀리면서 문이 열렸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그 해 4월, 160억원 규모의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에 도전했다.


하지만 포도량 미달로 고배를 마셨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 측은 즉각 반발했다. 이미 100여개 국가서 자사 혈액백을 사용하고 있고,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는 이유였다.

당시 입찰 최종 낙찰자는 녹십자엠에스였다. 녹십자엠에스는 혈액백 이중·삼중·사중백 5개 품목서 모두 낙찰자로 선정됐다.

시민단체 역시 성명을 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적십자사가 입찰공고와 다르게 자의적 기준을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내 학계와 해외 혈액백 사용국 대부분은 포도당과 분리된 과당 전체량을 합산한다”며 “유독 적십자사는 과당을 불순물로 보고 제외해 전체 포도당 함량이 미달된다며 탈락시켰다”고 강조했다.

약 6개월 뒤 열린 국회 국정감사서도 입찰 관련 지적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적십자사 국감서 “혈액백 입찰을 둘러싼 적십자와 녹십자 관계는 동맹을 넘은 담합관계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 박경서 적십자 회장 ⓒ적십자사

신 의원은 “입찰 공고 때마다 입찰 조건이 자꾸 변동된다”며 “결국 녹십자엠에스 등 국내기업만 낙찰됐다”고 밝혔다. 당시 신 의원은 적십자사 감사실이 작성한 ‘혈액관리본부 혈액백 구매계약 관련 민원 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설명했다.

지난 2012년 적십자사는 입찰자격에 ‘3년간 연 13만 유니트 이상 납품 실적’ 요건을 추가하려고 했다. 당시 국내 혈액백 대부분이 녹십자엠에스서 비롯된 점을 미뤄봤을 때, 신규업체는 진입하기 어려웠다.

회사는 아예 사업 매각 예정
칠전팔기 해외기업 기회 얻나

다만 적십자사 감사실은 그해 12월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해 해당 요건은 삭제됐다. ‘국내 제조시설 생산’이라는 요건도 지난 2013년 추가됐는데 결국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국내 혈액백 시장서 철저히 배제된 셈이다.

당시 박경서 적십자사 회장은 “전혀 죄가 없다고 해도 질의 내용을 보면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투명성 강화 방안 보고를 요청했고, 박 회장도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지난해 5월 혈액백 낙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적십자사는 혈액백 이중·사중백 긴급 공고를 게재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최종 낙찰자가 됐다. 당시 경쟁자는 녹십자엠에스와 태창산업이었으며 낙찰금액은 45억원가량이었다.

일각에선 녹십자엠에스 혈액백 사업 전망이 흐릿해지면서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으로 예측한다.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측은 <일요시사>에 “올해 계약 일정에 맞춰 입찰을 통한 혈액백 공동구매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프레지니우스카비가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앞서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 모기업 프레지니우스 슈테판 슈투름 회장은 지난 2018년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서 혈액백 사업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슈투름 회장은 적십자사 등 혈액백 입찰 참여에 대해 “프레지니우스가 한국 시장서 활발히 활동했다고 생각한다”며 “프레지니우스 포트폴리오 중 한국서 선보이는 제품 수는 일부에 불과하지만, 나머지 제품도 한국서 출시할 예정이다. 한국 소비자를 위해 어떤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적절한지 살펴보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프레지니우스 제품은 경쟁품 대비 적절한 가격에 선보일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고, 제품과 서비스는 품질 측면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며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에 주목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낙찰 경험
언제 시작?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매년 흑자를 내고 있지만 실적은 하락세다. 2016∼2018년 회사 매출은 655억원, 649억원, 640억원 순이다. 영업이익은 59억원, 46억원, 23억원으로 감소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32억원, 18억원, 5억원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9.0%, 7.1%, 3.6% 이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지난해 5월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서 낙찰자로 선정돼 그해 8월부터 혈액백을 공급하고 있다”며 “올해 역시 적십자사 혈액백 수급 계획에 따라 입찰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적십자사 회장의 읍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혈액 수급난으로 적십자사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달 4일, 박경서 적십자사 회장은 호소문을 통해 “전 국민 헌혈과 혈액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적십자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에 대응해 등록헌혈자 헌혈 참여 요청, 약정단체 헌혈 확대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혈액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 회장은 “개인 헌혈자 수가 지난해 보다 2만명 이상 감소했고, 2월2일까지 헌혈 예정이었던 145개 단체가 헌혈을 취소했다”며 어려움을 전했다. 이어 “대한적십자사는 체온 측정, 마스크 착용 등 직원 개인위생을 강화했고, 헌혈의집과 헌혈버스에 대한 소독 작업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헌혈 동참을 독려했다.

지난 1월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장도 비슷한 내용의 헌혈 참여 호소문을 발표한 바 있다. 상황이 당장 급반전을 보일 가능성은 적지만 헌혈 동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시의회 의원과 직원 30여명은 자발적으로 헌혈에 참여했다. 같은 날 해군작전사령부는 사흘간 헌혈 운동에 동참했다. 장병, 군무원 등 참가 인원만 430명이었다.

같은 달 26일에는 동아오츠카 임직원들이 본사 앞 헌혈버스서 헌혈 릴레이를 이어갔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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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