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 ‘혈액백 스캔들’ 막전막후

목 좋은 자리 딴 나라 주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녹십자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혈액백 담합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녹십자는 제재를 받았지만 효력 정지 가처분이 인용됐다. 다만 처분 취소 소송서 패소한다면 2년간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사업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녹십자 혈액백 사업은 매각될 예정이다. 빈자리는 누가 대신하게 될까.
 

▲ 녹십자`

혈액백은 말 그대로 혈액을 담는 용기다. 둥그스름한 사각형 모양으로 혈액을 저장한다. 혈액사업서 혈액백은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 혈액백에 혈액이 저장돼야 비로소 전국 수요처로 이송될 수 있다.

혈액 사업
유통 핵심

혈액백 수요의 대부분은 헌혈기관서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와 한마음혈액원이다. 특히 적십자사는 국내 혈액공급 90%를 도맡는다. 적십자사는 혈액백을 마련하기 위해 매년 입찰공고를 낸다. 압도적 경쟁력을 보인 곳이 있는데 바로 녹십자그룹이다.

녹십자그룹은 혈액백을 적십자사 등에 사실상 ‘독점 공급’했다. 낙찰점유율은 적십자사 70%, 한마음혈액원 100%에 달한다. 그룹 내 혈액백 담당 계열사는 ‘녹십자엠에스’다. 녹십자엠에스는 국내시장서 높은 점유율을 자랑한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녹십자엠에스 자체 분석 결과 지난 5년간(2014∼2018) 점유율은 평균 72% 정도다.

같은 기간 혈액백 매출은 172억원, 211억원, 206억원, 204억원, 244억원이었다. 녹십자엠에스 전체 매출서 20%대다. 많게는 30%까지 차지할 때도 있었다.


별 탈 없이 지속되던 녹십자 혈액백 사업은 ‘입찰 단가 담합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해 7월 녹십자엠에스에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을 단행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녹십자엠에스는 태창산업과 2011년, 2013년, 2015년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서 예정 수량을 7대3으로 나눴다. 투찰 가격도 합의했다. 두 회사는 사전 합의대로 각각 70%, 30% 물량을 투찰했다. 이들은 모두 낙찰자가 됐다. 계약 금액만 모두 443억원이었다. 투찰률은 모두 99% 이상이었다.

공정위는 담합 배경을 ‘낙찰자 선정 방식 변경’으로 봤다. 당시 낙찰자 선정 방식은 ‘최저가 입찰제’서 ‘희망수량 입찰제’로 변경됐다. 최저가 입찰제는 1개 업체 100% 납품이다. 반면 희망수량 입찰제는 최저가 입찰자부터 희망 예정 수량을 공급하고, 후순위자가 나머지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결국 전체 물량을 담당하지 못하더라도 가격을 낮춘다면 원하는 물량을 낙찰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공정위는 녹십자엠에스와 태창산업이 가격 경쟁을 피하기 위해 담합을 이뤘다고 봤다. 녹십자엠에스는 시정명령과 과징금 58억200만원을 부과 받았다. 녹십자엠에스와 소속 직원 1명은 검찰에 고발당했다.

녹십자엠에스 담합 의혹 사실로
패소하면 2년 동안 참여 불가

공정위는 이를 ‘악성담합’으로 봤다. 공정위는 “국민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혈액백 구매 입찰에 장기간 진행된 담합 행위를 제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대다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헌혈 과정에 필요한 용기를 통해 취한 부당이익을 환수했다”고 평가했다.


설상가상으로 녹십자엠에스는 적십자사로부터 ‘부정당 업자 제재 처분’을 받았다. 부정당 업자 제재란 입찰담합 등 부정행위가 드러난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조치다.

제재 결과 적십자사와 거래가 중단됐다. 녹십자엠에스는 그달 10일 ‘거래처와 거래중단’을 고시했다. 제재 기간은 2022년 1월20일까지로 2년 동안 혈액백 사업을 영위할 수 없게 됐다. 녹십자엠에스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처분 취소 민사소송’ 카드를 꺼내들었다.

녹십자엠에스는 지난달 13일 공시를 통해 가처분 신청이 인용됐다며 민사소송 선고 전까지 입찰 자격을 임시로 부여받았다고 전했다. 승소 시 사업 재개 가능성이 점쳐지지만 패소할 경우 2년간 사업이 불가능하다. 공고했던 혈액백 선두주자 자리가 위태로운 모양새다.

같은 날 녹십자엠에스는 혈액백 사업 부문 분할을 예고했다. 사실상 혈액백 사업을 그만두겠다는 해석이다. 녹십자엠에스는 혈액백 부문만 따로 떼서 전문회사를 설립할 방침이다. 신설 회사명은 ‘녹십자혈액백’이다.

녹십자엠에스는 이를 전부 매각할 예정이다. 매각이 어려울 경우 신설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할 계획이다. 녹십자엠에스 아래 자회사를 두는 방식으로 분석된다.

분할 명분은 ‘전문성 제고’와 ‘경영 효율화’다. 실제로 녹십자엠에스는 2018년에 이어 지난해에 적자를 기록했다. 2018년 녹십자엠에스 매출액과 영업손실, 당기순손실은 차례로 863억원, -59억원, -112억원이었다.

담합 적발
2년 정지

지난해 매출액은 8.99% 상승한 940억원이었다. 영업이익도 24.93% 상승했지만 -44억원에 그쳤다. 당기순손실은 오히려 큰 폭으로 늘었다. 무려 45.61% 감소한 -163억원이었다.

혈액백 사업에 제동이 걸린 가운데 재무구조 개선 필요성이 부각된 만큼 사업을 정리하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녹십자엠에스 혈액백 사업 분할 예정일은 오는 5월1일로 해당 안건은 주주총회서 통과 여부가 갈릴 예정이다. 주총은 이번달 24일 열린다.

안건은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통과될 전망이다. 녹십자엠에스 최대주주는 ㈜녹십자로 특수관계인과 자기 지분 합은 63.24%다.

녹십자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선고 전까지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 참여 자격이 있다”며 “혈액백 사업부가 녹십자엠에스서 벗어난다면 혈액백 입찰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녹십자엠에스가 사업권을 갖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입찰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녹십자엠에스가 직격탄을 받은 사이 약진이 관측되는 업체가 있다. 독일계 다국적 기업인 ‘프레지니우스카비’로 글로벌 헬스케어 회사 프레지니우스 자회사다. 현재 100여개 나라에 혈액백을 공급한다.
 

▲ 혈액백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혈액백 세계시장 규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지난해 3분기 녹십자엠에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혈액백 및 관련기기’ 상위 업체 중 프레지니우스카비가 이름을 올렸다. 프레지니우스카비는 북미·유럽·아시아 지역서 1위를 기록했다. 매출액만 12억3600만달러. 한화로 1조5000억원에 가깝다.

프레지니우스카비는 국내에 2개 법인을 뒀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와 프레제니우스메디칼케어다. 이 중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가 혈액백 사업을 진행 중이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의료기기와 수액제, 자가수혈 및 임상영양에 전문 치료제를 제공한다. 법인은 지난 2009년 설립됐다.

다국적 기업
시장에 입성?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2017년 말 국내 혈액백 시장 진출을 밝혔다. 당시 박주호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 대표는 “국내 제품으로만 공급하던 혈액백 사업에 다국적 기업이 참가해 우수한 품질과 유사 시 안정적 공급 등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2012년부터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에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장벽에 가로막혔다. 입찰 조건 때문이었다.

적십자사는 지난 2013년 4월 입찰공고에 ‘국내 직접 제조가 가능한 자’라는 조건을 신설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혈액백을 해외서 제조했다. 2018년 ‘국내 직접 제조’라는 제한이 풀리면서 문이 열렸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그 해 4월, 160억원 규모의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에 도전했다.


하지만 포도량 미달로 고배를 마셨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 측은 즉각 반발했다. 이미 100여개 국가서 자사 혈액백을 사용하고 있고,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는 이유였다.

당시 입찰 최종 낙찰자는 녹십자엠에스였다. 녹십자엠에스는 혈액백 이중·삼중·사중백 5개 품목서 모두 낙찰자로 선정됐다.

시민단체 역시 성명을 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적십자사가 입찰공고와 다르게 자의적 기준을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내 학계와 해외 혈액백 사용국 대부분은 포도당과 분리된 과당 전체량을 합산한다”며 “유독 적십자사는 과당을 불순물로 보고 제외해 전체 포도당 함량이 미달된다며 탈락시켰다”고 강조했다.

약 6개월 뒤 열린 국회 국정감사서도 입찰 관련 지적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적십자사 국감서 “혈액백 입찰을 둘러싼 적십자와 녹십자 관계는 동맹을 넘은 담합관계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 박경서 적십자 회장 ⓒ적십자사

신 의원은 “입찰 공고 때마다 입찰 조건이 자꾸 변동된다”며 “결국 녹십자엠에스 등 국내기업만 낙찰됐다”고 밝혔다. 당시 신 의원은 적십자사 감사실이 작성한 ‘혈액관리본부 혈액백 구매계약 관련 민원 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설명했다.

지난 2012년 적십자사는 입찰자격에 ‘3년간 연 13만 유니트 이상 납품 실적’ 요건을 추가하려고 했다. 당시 국내 혈액백 대부분이 녹십자엠에스서 비롯된 점을 미뤄봤을 때, 신규업체는 진입하기 어려웠다.

회사는 아예 사업 매각 예정
칠전팔기 해외기업 기회 얻나

다만 적십자사 감사실은 그해 12월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해 해당 요건은 삭제됐다. ‘국내 제조시설 생산’이라는 요건도 지난 2013년 추가됐는데 결국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국내 혈액백 시장서 철저히 배제된 셈이다.

당시 박경서 적십자사 회장은 “전혀 죄가 없다고 해도 질의 내용을 보면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투명성 강화 방안 보고를 요청했고, 박 회장도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지난해 5월 혈액백 낙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적십자사는 혈액백 이중·사중백 긴급 공고를 게재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최종 낙찰자가 됐다. 당시 경쟁자는 녹십자엠에스와 태창산업이었으며 낙찰금액은 45억원가량이었다.

일각에선 녹십자엠에스 혈액백 사업 전망이 흐릿해지면서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으로 예측한다.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측은 <일요시사>에 “올해 계약 일정에 맞춰 입찰을 통한 혈액백 공동구매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프레지니우스카비가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앞서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 모기업 프레지니우스 슈테판 슈투름 회장은 지난 2018년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서 혈액백 사업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슈투름 회장은 적십자사 등 혈액백 입찰 참여에 대해 “프레지니우스가 한국 시장서 활발히 활동했다고 생각한다”며 “프레지니우스 포트폴리오 중 한국서 선보이는 제품 수는 일부에 불과하지만, 나머지 제품도 한국서 출시할 예정이다. 한국 소비자를 위해 어떤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적절한지 살펴보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프레지니우스 제품은 경쟁품 대비 적절한 가격에 선보일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고, 제품과 서비스는 품질 측면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며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에 주목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낙찰 경험
언제 시작?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는 매년 흑자를 내고 있지만 실적은 하락세다. 2016∼2018년 회사 매출은 655억원, 649억원, 640억원 순이다. 영업이익은 59억원, 46억원, 23억원으로 감소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32억원, 18억원, 5억원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9.0%, 7.1%, 3.6% 이었다. 프레지니우스카비 코리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지난해 5월 적십자사 혈액백 입찰서 낙찰자로 선정돼 그해 8월부터 혈액백을 공급하고 있다”며 “올해 역시 적십자사 혈액백 수급 계획에 따라 입찰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적십자사 회장의 읍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혈액 수급난으로 적십자사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달 4일, 박경서 적십자사 회장은 호소문을 통해 “전 국민 헌혈과 혈액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적십자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에 대응해 등록헌혈자 헌혈 참여 요청, 약정단체 헌혈 확대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혈액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 회장은 “개인 헌혈자 수가 지난해 보다 2만명 이상 감소했고, 2월2일까지 헌혈 예정이었던 145개 단체가 헌혈을 취소했다”며 어려움을 전했다. 이어 “대한적십자사는 체온 측정, 마스크 착용 등 직원 개인위생을 강화했고, 헌혈의집과 헌혈버스에 대한 소독 작업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헌혈 동참을 독려했다.

지난 1월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장도 비슷한 내용의 헌혈 참여 호소문을 발표한 바 있다. 상황이 당장 급반전을 보일 가능성은 적지만 헌혈 동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시의회 의원과 직원 30여명은 자발적으로 헌혈에 참여했다. 같은 날 해군작전사령부는 사흘간 헌혈 운동에 동참했다. 장병, 군무원 등 참가 인원만 430명이었다.

같은 달 26일에는 동아오츠카 임직원들이 본사 앞 헌혈버스서 헌혈 릴레이를 이어갔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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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민희진·뉴진스 어두운 미래

‘사면초가’ 민희진·뉴진스 어두운 미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 여론은 한쪽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가 힘을 실어주면서다. 하지만 무대가 법정으로 옮겨간 이후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동시에 여론도 뒤집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2024년 4월 연예기획사 하이브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를 상대로 내부 감사에 착수한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민 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해 어도어를 독립시키려 한 정황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당시 어도어 소속 가수는 아이돌 뉴진스가 유일했기에 분쟁의 크기는 순식간에 커졌다. 상처 입은 톱 아이돌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분쟁, 이른바 ‘민-하 대전’이 2년째로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민 전 대표가 전면에서 하이브와 이른바 ‘맞다이’를 벌였지만 이후 뉴진스가 직접 판에 뛰어들면서 새 국면을 맞이했다. 동시에 빌리프랩 등 하이브의 다른 레이블, 어도어의 전 직원, 광고 제작사 돌고래유괴단 등이 전선에 합류했다. 민-하 대전에서 여론은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처음 민 전 대표에 대한 감사 소식이 전해진 이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민 전 대표의 기자회견은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은 민 전 대표를 옹호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민 전 대표는 ‘선’, 하이브는 ‘악’이라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뉴진스는 2024년 11월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어도어와의 전속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혔다. 민-하 대전이 시작된 지 7개월 만에 뉴진스가 전면에 나서면서 파장이 커졌다. 뉴진스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연말마다 발표하는 ‘올해를 빛낸 가수’ 순위에서 2023년과 2024년 연달아 1위를 기록할 만큼 대중성이 높다. 그런 가수가 소속사와 정면 대결을 선택하자 연예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뉴진스가 소송 대신 구두로 계약 해지를 선언한 방식이 합당한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다’ ‘소속사 간 다툼에 아티스트를 끌어들이면 안 된다’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하면서 갈등의 무대는 정치권으로까지 넓어졌다. 하이브와 뉴진스, 민 전 대표 간의 갈등 양상을 비롯해 연예인의 노동자성까지 화두로 떠올랐다. 뉴진스 상대 전속계약 유지 인정 해인 혜린 하니 복귀 다니엘 해지 일각에서는 뉴진스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한 시점을 국감 때로 보기도 한다. 연예계 갈등을 국정감사에서 다루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 전 대표와 뉴진스에 대해 여론은 나름 호의적이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미국에서 여성 BJ와 만났다는 내용의 사생활 이슈 등이 도마 위에 오른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SNS나 기자회견 등 민 전 대표와 뉴진스가 이른바 여론전을 위해 올랐던 무대가 법정으로 바뀌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하이브와 어도어, 민 전 대표와 뉴진스 등이 연루된 소송은 10여개에 이른다. 소속사와 아티스트 간 전속계약, 민 전 대표가 하이브와 맺은 풋옵션 계약, 민 전 대표와 어도어 전 직원 간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표절 논쟁에서 시작된 민 전 대표와 빌리프랩 간의 손해배상 소송, 지식재산권 침해와 관련한 어도어와 돌고래유괴단의 손해배상 소송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흥미로운 대목은 여론과 법원 판결의 괴리다. 특히 어도어가 뉴진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여론까지 뒤집을 정도로 ‘원사이드’ 판결로 이어졌다. 뉴진스 측이 제시한 전속계약 해지 이유를 법원은 단 한 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도어의 전속계약 유효 소송에 법원이 연이어 ‘인용’ 판결을 내리면서 뉴진스는 벼랑 끝까지 몰렸다. 뉴진스는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다. 어도어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끝까지 싸우겠다’던 뉴진스의 태도가 누그러진 것도 이 시기다. 독자 활동이 완벽하게 막혔고 활동을 위해서는 어도어에 돈을 지급하라는 판결도 나왔다. 연예계에서는 뉴진스가 복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여론도 뒤바뀌어 실제 뉴진스는 복귀했다. 멤버 5명 모두가 함께 어도어로 돌아가는 ‘완전체’ 복귀는 아니었기에 각종 설이 흘러나왔다. 연예계에서는 판결을 기점으로 멤버들 사이가 갈라진 것 같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법원이 어도어의 손을 들어준 만큼 향후 발생할 손해배상, 위약벌 등이 천문학적 금액에 이를 수 있다는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난해 11월 뉴진스 멤버 해린과 혜인이 먼저 복귀했다. 어도어는 두 멤버의 복귀를 발표하면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남은 세 멤버(하니, 다니엘, 민지)와도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후 하니 복귀, 다니엘 계약 해지라는 결론이 나왔다. 민지는 논의 중인 상황이다. 어도어는 완전체를 깨더라도 다니엘과는 함께 갈 수 없다고 했다. 실제 어도어는 다니엘과 그의 가족 1인, 민 전 대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다니엘 등에게 이번 사태와 관련한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어도어가 다니엘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총 431억원에 달한다. 세부적으로 다니엘에게 청구된 소송 액수는 331억원으로 이중 300억원은 위약벌, 31억원은 활동 중단과 광고 촬영 미이행 등에 따른 손해배상이다. 그외 100억원은 민 전 대표와 다니엘의 모친에게 뉴진스 이탈과 복귀 지연 등으로 인한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청구액으로 알려졌다. 다니엘은 지난 12일 어도어로부터의 피소 이후 첫 라이브 방송을 통해 심경을 전했다. 9분간 이어진 라이브 방송에서 다니엘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수백억원대의 소송에 휘말려 있는 상황에서 한마디, 한마디가 불리한 증거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재판 간 연쇄 반응 뉴진스와의 소송전에서 압승을 거둔 어도어는 이제 급할 게 없는 상황이다. 뉴진스가 이미지 훼손, 금전적 손해 등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반면, 어도어는 뉴진스라는 이름을 지켜냈다. 특히 다니엘 등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그간의 사정이 드러나면 여론 자체가 급격하게 기울 가능성도 보인다. 한때 ‘뉴진스의 엄마’로 불렸던 민 전 대표도 코너에 몰렸다. 최근 민 전 대표가 증인으로 나섰던 돌고래유괴단 관련 소송에서 법원이 어도어의 손을 들어준 것도 현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015년 설립된 돌고래유괴단은 지난해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홍보 영상 ‘주차장에서 생긴 일’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2부는 어도어가 돌고래유괴단과 그 대표인 신우석 감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돌고래유괴단이 어도어에 10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신 감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어도어 측은 “돌고래유괴단 측을 상대로 낸 소송액 11억원 중 법인의 계약 위반 10억원이 인정됐고, 명예훼손으로 별도로 제기한 1억원은 기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돌고래유괴단은 뉴진스의 곡 ‘디토’ ‘OMG’ ‘ETA’ 등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2024년 8월 ETA 뮤직비디오를 ‘디렉터스컷(감독판)’으로 제작해 자신들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일이다. 어도어는 “당시 광고주로부터 해당 영상에 대한 컴플레인을 접수했다”며 “뉴진스 관련 영상 소유권은 어도어에 있고 계약서에 명시된 사전 동의 절차가 없었으므로 영상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돌고래유괴단 10억원 배상 판결 주주 간 계약 해지&풋옵션 쟁점 그러자 돌고래유괴단은 ETA 감독판은 물론 자신들이 운영하던 비공식 뉴진스 팬덤 유튜브 채널인 ‘반희수’에 게시돼있던 뉴진스 관련 영상을 전부 삭제했다. 어도어는 ETA 감독판 영상에 대한 게시 중단을 요청했을 뿐 뉴진스 관련 모든 영상 삭제는 요구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민 전 대표는 증인으로 출석해 감독판 영상을 별도로 게시하는 것에 대한 구두 협의가 있었으며 어도어 측 주장에 “바보 같고 어이없다”고 말한 바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이번 판결이 민 전 대표의 소송에 미칠 영향이다. 민 전 대표는 현재 하이브와 주주 간 계약 및 풋옵션(주식매수 청구권) 행사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뉴진스와 어도어가 벌인 전속계약 관련 소송 등도 판결이 나왔을 당시 민 전 대표와 하이브 사이의 재판에 끼칠 영향을 두고 법조계의 의견이 분분했다.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는 하이브가 민 전 대표 등 2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 간 계약 해지 확인 소송과 민 전 대표 등 3명이 하이브를 상대로 낸 풋옵션 행사 관련 주식 매매대금 청구 소송의 마지막 변론기일 재판을 열었다. 하이브는 민 전 대표가 경영권 찬탈을 시도했다고 주장하며 주주 간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민 전 대표와 전 어도어 이사진은 풋옵션 행사에 따른 주식 매매대금 지급을 청구한 게 골자다. 이날 하이브는 데뷔도 하지 않은 뉴진스를 위해 어도어에 210억원을 투자하는 등 민 전 대표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도 민 전 대표가 신뢰 관계를 파괴하고 하이브에 타격을 주는 언론플레이를 하는 등 고의로 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민 전 대표 측은 어도어를 탈취할 지분을 갖고 있지 않았고 투자자를 만난 사실도 없다고 반박했다. 2월이면 결론 난다 법적 흐름은 민 전 대표에게 단연 불리한 상황이다. 모든 소송이 민-하 대전에서 파생된 만큼 각각 재판에 미칠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주 간 계약 해지 및 풋옵션 행사 관련 소송이 향후 어도어가 다니엘과 그 모친, 민 전 대표에게 제기한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주주 간 계약 해지 및 풋옵션 행사 관련 소송의 선고기일은 다음 달 12일로 예정돼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