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진안군청 수상한 특혜 의혹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2.25 09:19:05
  • 호수 12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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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행위 축소…명함 보고 봐줬나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정곡리가 개인 간 소송으로 시끄럽다. 이 지역의 야산 주인인 A씨가 건축주인 B씨의 불법행위에 대한 진안군청의 행정처리가 부당하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B씨가 특정인이라는 이유로 ‘봐주기’식 행정이 아니냐며 특혜 의혹 주장이 제기됐다. 
 

<일요시사>는 최근 전북 진안군청의 부당한 행정처리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 전북 진안군 진안읍 정곡리 임야를 소유하고 있다는 제보자 A씨는 자신의 임야에 건축 과정서 특정인의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음에도 진안군청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며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평통 
자문위원

A씨는 2017년 3월 오랜만에 자신의 임야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임야 내 삼림이 훼손돼있는 현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현장을 확인한 A씨는 훨씬 이전부터 공사가 진행됐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A씨는 한국국토정보공사(당시 지적공사)의 측량 표시점을 임의로 옮긴 점, 무단으로 벌채하고 임도를 훼손한 행위에 대해 진안군청에 민원을 넣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전화 통화 내용에 따르면 A씨는 진안군청 관계자에게 “7년 이상 자란 것을 마음대로 벤 것도 어이가 없다. 이제 와서 나무 몇 개 심어준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군청 관계자는 “재산상으로 손해 난 부분에 대해서는 벌채한 분과 합의를 하거나 합의가 되지 않으면 민사로 가야 한다”며 “그런 부분은 행정상으로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 토사 반출과 관련해서는 일괄적으로 산재관리법 위반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답했다.

A씨는 지적공사 관계자와 경계점이 옮겨져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지적공사 관계자는 A씨에게 “그분(B씨)이 분명히 산을 훼손한 것은 맞다. 현장에 갔더니 말뚝을 꼽아놓은 것이 없었다. 산 쪽에 분명히 표시해놨었는데 없어진 것을 보면 그 분이(산 겉면 등을) 분명히 훼손한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지적공사서 측량 후 측량 표시점을 정했다. 하지만 건축주였던 B씨가 옮긴 건지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진안군청에 신고할 때는 공사를 중단해준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B씨가 산을 깎아서 평지처럼 만들었으며 산에 있던 흙을 퍼다가 B씨 땅을 메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 임야에 말도 없이 훼손 흔적 발견
타인이 건축 공사로 측량지점 옮겨

3∼4개월이 지나도 진안군청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길래 확인해 보니 해당 건은 고소 처리가 됐다는 말만 들었다. 그는 보다 자세한 처리 내용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진안경찰서로 찾아갔을 땐 이미 조사가 끝났고, 검찰로 이첩돼 벌금 200만원이 나온 상태였다.

A씨는 “우리가 피해자인데 고소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고소장에는 피해자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작 피해를 본 것은 우리 가족인데 왜 아무런 조사도 안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무원이 우리에게 ‘공사를 중단한다’는 말만 해놓고는 경찰에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경찰이 진안군청에 전화해 확인한 뒤에야 준공이 허가 난 것을 알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서를 찾아간 A씨는 진안군청서 허가를 내준 이유를 물었다. A씨에 따르면 이때 진안군청 측은 방법을 강구하겠다는 의견과 함께 다른 도로를 포장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A씨는 “당시 공무원은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포장공사를 해주겠다고 했다. 관계자에게 ‘B씨가 잘못한 걸 왜 공사까지 하느냐’며 따져 물었지만 뚜렷한 답은 내놓지 않았다. 해당 예산에 관해 물으니 주민숙원사업으로 한다고 했다. 주위에 주민도 살고 있지도 않은 곳인데 어느 주민이 찬성하겠느냐고 되물었더니 ‘그건 알아서 한다’며 호언장담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8월3일엔 한국국토정보공사 직원이 현장을 찾아 다시 측량지점을 정했다. 이후로 A씨는 현장을 찾아 측량지점이 바뀐 것을 확인했다.

나무 잘라 
항의했더니…

A씨는 “B씨가 또 위치를 바꿔놓은 것 같다. 원래 측량지점이었으면 B씨는 주차장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에 다시 고소했다. B씨가 저지른 경계침범죄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는 “현장조사 때 진안군청 관계자 3명이 B씨를 보고 ‘선생님’이라고 말하며 깍듯하게 대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길래 처음에는 교육계 종사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서 일하는 사람이었다”고 언급했다.

A씨는 법원으로부터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 법원의 감정인을 통해 산림훼손에 대해 복구를 위한 비용이 약 2000만원이 넘는다는 감정 결과를 받았다. 하지만 B씨는 무단 잡목 벌목 행위에 대해서만 처벌됐다. 

당시 벌목을 담당했던 C씨는 “예전에는 집을 짓거나 할 때 조금만 경계를 넘어가도 죄가 엄청나게 컸다. 벌목하던 사장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수로 경계를 조금만 넘어가도 구속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B씨는 A씨의 땅을 파고 나무도 자르고 뿌리까지 다 뽑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그 부분에 대해서 나도) 좀 의아했다”고 말했다.

C씨는 “측량을 부탁받아 현장에 갔는데 마침 런닝셔츠 차림에 문신이 보이는 B씨를 봤다”며 “내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는데 당시 그는 ‘나 이런 사람이며 나랏일 하는 사람이다. 또 전주서 끗발이 조금 있다’고 말했다. 명함 뒷면을 보니 민주평통이라는 것과 함께 대통령 직속기관이라고도 적혀있었다. 자신이 뒷배경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공무원도 
“선생님”

그는 “이후로 벌어진 일들이 참 신기했다. 당시 진안군청 관계자들이 길도 내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옆에서 직접 들었지만 그 말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A씨만 피해를 본 것”이라며 “진안군청 관계자의 말이 계속 바뀌었다. 했던 말을 안 했다고 하고 안 했던 말을 했다고 하고 거짓말의 연속이었다. 여기 있다 보니 진안군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많이 들었다. 전북서도 진안군은 유별나다. 이 지역은 벌목 허가 기준이 굉장히 모호하고 편차가 심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 사건을 담당한 진안군청 감사관은 A씨가 오해하는 부분이 크다고 주장했다.
 

진안군청 감사관 D씨는 “A씨가 해당 공무원의 발언에 대해 문제를 삼고 있다. 해당 공무원이 현장에 갔을 때 삼림이 훼손된 상태였고 전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고 답한 것”이라며 “산지 공무원은 사법권이 있는 공무원으로 사법경찰이나 다름없다. 해당 공무원이 말을 잘못하면 반대로 B씨가 피해를 볼 수 있다. A씨가 받아들이기에는 ‘B씨를 봐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적인 이야기지만 A씨가 B씨에게 금전을 요구했다고 전해 들었다. 자기의 산을 건드렸으니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다. 정확한 액수는 모르겠지만 약 2000만원 정도의 보상을 요구했다는 말도 떠돌았다”고 덧붙였다. 

D씨는 “해당 사건은 지난해 10월, 최종판결이 나서 끝난 상황이다. A씨는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고 하는 것이고, (나는)합의를 보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며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 원상복구해놨다”고 언급했다.

B씨는 “만약 민주평통만 적혀있는 명함만 건넸다면 갑질 의혹을 받을 수 있지만, 당시 건넨 것은 양면 명함이었다. 한쪽 면에는 내가 하는 일(직종)이 있고 그 뒷면에 민주평통이 적혀 있는데 그걸 보고 오해한 것”이라며 “지난해 9월부터 민주평통서 근무도 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준공기준 두고 “편파적” 소문도
“양면 명함일 뿐 갑질 아냐”


이어 “민주평통 사람들 명함은 모두 양면으로 돼있는데 다른 면에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적는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는데 이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 양면 명함을 사용하지 않는다. A씨와 합의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나도 정신적으로 피해를 많이 본 상태”라고 항변했다.

지난달 8일 A씨는 해당 사건을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다.

A씨는 민원을 통해 “과거 위성 영상서도 보이는 임도에 대해 담당 공무원은 ‘모른다’고 답했다. 검찰에서는 공무원이 임도가 있었다는 게 확인돼야 재조사하는데 신고자의 말만 듣고 처벌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임도 인근의 하천과 직원의 이름까지 알려줬는데도 불구하고 산림과는 확인도 하지 않았다. 결국 B씨는 잡목 벌목 행위에 대해서만 처벌을 받고 나머지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B씨가 없앤 임도를 왜 진안군서 복구하겠다고 약속했는지 모르겠고 약속한 것조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민신문고 담당자는 “B씨는 2017년 7월21일 전주지방검찰청으로부터 구약식 벌금 200만원 처분을 받았다. 토사 반출 및 경계침범죄 등은 담당자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사항으로써 고발할 수 없었던 점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민주평통 전북지역회의 관계자는 “자문위원이 800명이 넘는다. 명함을 가지고 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명함을 볼 땐 굉장히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비춰질 수 있지만, 그 분이 높은 직책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개인 간 갈등
조직 간 은폐?

한편 A씨가 문제를 제기한 담당 공무원은 육아휴직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진안군청의 한 관계자는 “작년까지 두 사람 간에 소송이 진행됐던 것으로 안다. 개인끼리의 싸움은 군청서 조율하기 힘들다. 진안군청 입장에서는 불법적인 요소만 봤던 것이다. 또 이 동네가 좁기 때문에 B씨에 대해 알긴 하지만 어느 일을 해서 봐준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평통은? 

헌법기관으로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국민의 통일의지와 역량을 결집해,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자하는 시대적 상황과 국민적 여망으로 인해 1980년대 초반에 범국민적 통일기구로 설립됐다. 

자문위원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 부여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

임기는 위촉된 날부터 2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신분은 무보수·명예직이나 자문위원에 위촉되면 민주평통 의장인 대통령 명의로 된 위촉장이 수여되며, 신분증과 배지가 제공된다.

법정회의 참석 시 예산의 범위 내에서 소정의 회의 출석 수당 및 여비가 지급된다.

국민화합과 통일기반 조성 활동에 크게 기여하는 등 활동실적이 뛰어난 자문위원에게는 정부훈·포장과 의장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자문위원으로서 품위를 유지해야 하며, 직위를 남용한 청탁이나 이권 활동은 금지됐다.

남북관계 개선 및 평화통일 기반 조성을 위해 다음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에 대한 자문·건의 ▲자문건의를 위한 통일여론 수렴 활동 ▲전체회의·지역회의 등 법정회의 및 각종 회의 참석 ▲지역회의나 지역협의회 단위로 실시하는 ‘평화통일포럼’ ‘통일시대 시민교실’ 등 각종 통일관련 행사 참여 ▲국민화합과 통일기반 조성을 위해 지역협의회가 실시하는 제반활동 참여 등이 있다.

지난해 9월1일 제19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출범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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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