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김건희 의혹’ BMW 딜러 재벌 권오수 회장 정체

시장서 원단 팔다…태풍의 눈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 부인과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 이들이 결탁해 주가를 조작했고 경찰이 내사를 진행했다는 의혹이 보도됐다. 권 회장은 업계 안팎서 입지적 인물로 꼽히는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불쑥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된 권 회장. 그는 누구일까.

▲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은 지난해 7월 윤석열 검찰총장 청문회서 언급됐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윤 총장 부인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도이치모터스 비상장 계열사 주식에 20억원을 투자한 사안과 관련, 권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권 회장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윤 청문회
도이치 언급

그로부터 약 7개월 뒤 이들의 이름이 다시 언급됐다.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이들의 주가 조작 및 금전거래 관계 의혹을 보도했다. 매체는 지난 17일 ‘윤석열 아내 김건희,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경찰 수사 첩보 보고서와 함께 보도했다. 보고서는 지난 2013년 경찰이 직접 작성했고, 정식 내사가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보도에 따르면 권 회장은 2008년 11월 ‘다르앤코’라는 상장사를 매입했다. 목적은 도이치모터스 우회상장. 2009년 1월 두 회사가 합병하면서 도이치모터스는 우회상장에 성공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상장 이후 도이치모터스 주가는 내리막을 탔다. 상장 첫 날 주당 9000원서 이듬해 2000원까지 하락했다. 권 회장은 주식시장 ‘선수’로 통하는 이모씨를 만났다.


권 회장은 이씨에게 자신의 주식 100만주를 맡겼고, 다른 주주들도 소개시켜줬다. 이들은 이씨에게 도이치모터스 주식과 계좌, 돈 등을 빌려줬다. 이른바 ‘전주’ 역할을 한 셈이다.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김 대표도 등장한다. 권 회장은 2010년 2월 이씨에게 김 대표를 소개시켜줬다. 윤 총장과 결혼하기 2년 전이다. 경찰은 ‘작전 시작 시점’을 2009년 11월경으로 봤다. 도이치모터스 주식이 2000원 아래로 떨어졌을 때다. 이씨는 사채 100억원으로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사들였다.

작전 일환으로 증권사 매수 추천과 긍정적 기사가 뒤를 이었다. 마침 주가가 상승할 만한 호재도 있었다. 도이치모터스 주식은 2011년 3월 8000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검찰총장 부인-권 회장 무슨 이유로?
“경 내사 중단” vs“내사한 적 없어”

이어 뉴스타파는 ‘윤석열 아내 김건희-도이치모터스 권오수의 수상한 10년 거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도이치모터스 우회상장 4개월 뒤 ‘두창섬유’라는 회사는 도이치모터스 주식 8억원가량을 장외 매도했다. 매도 대상자는 다름 아닌 김 대표였다. 눈길이 가는 건 일반적인 거래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이치모터스는 인수합병 전 두창섬유에 40억원을 빚지고 있었다. 도이치모터스는 상장 이후 두창섬유에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며 채무를 털었다. 두창섬유는 이 주식의 일부를 김 대표에게 팔았다. 매입비용은 시세보다 200원 정도 낮았다.

문제는 두창섬유가 권 회장 회사라는 사실이다. 권 회장은 자신의 회사를 통해 인수합병 자금을 마련했고,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채무를 해결했다. 이 과정서 김 대표는 ‘개인’으로서 ‘오너’ 주식을 넘겨받은 셈이다. 특수 관계가 아닌 이상 통상적이지 않다는 관측이었다.


거래가 이뤄진 시기는 경찰이 ‘작전 시기’로 보는 2009년 11월∼2011년 11월과 겹친다. 권 회장이 선수 이씨에게 김 대표를 소개해준 때다. 매체는 김 대표가 매입한 8억원가량 주식을 해당 시기에 팔았다면 상당한 차익을 봤을 것으로 추정했다.

윤 총장과 결혼 이후에도 김 대표와 권 회장 간 거래는 계속됐다. 도이치모터스는 자동차 할부 금융회사 도이치파이낸셜을 설립했다. 김 대표에게 40만주가 배정됐다. 주식 가격은 액면가 500원 그대로였다. 오너 일가가 아닌 이상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 윤석열 검찰총장과 그의 아내 김건희씨 ⓒ청와대

도이치모터스는 도이치파이낸셜 신주 200만주를 주당 1500원에 추가로 매입했다. 발행 당시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을 3배 가격에 사들였다. 도이치파이낸셜 주식은 비상장 주식으로 평가액이 3배 올라갔다. 김 대표의 2억원 평가액 역시 6억원으로 뛰었다.

2017년 1월 김 대표는 도이치파이낸셜 전환사채 2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이 때 김 대표가 사들인 전환가격은 주당 800원이었다. ‘우리들 휴브레인’이라는 회사는 주식을 주당 1500원에 사들였다. 미래에셋은 주식을 주당 1000원에 사들였다. 법인이나 기관투자가보다 개인이 더 싼 값에 주식을 사들인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작성된 보고서는)경찰이 작성한 것이고, 김 대표 이름이 거론된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당시 내사 대상자는 권 회장과 이씨였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제보자만 제한적으로 접촉했으며 김 대표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 등을 위해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수상한 거래
진실? 거짓?

도이치모터스는 즉각 반박자료를 냈다. 회사는 지난 17일 ‘확인되지 않은 억측과 오해를 근거로 한 일방적 주장’이라며 ‘도이치모터스와 전혀 무관하며 대주주 또는 법률에 위반되는 행위가 일절 없다’고 강하게 부정했다.

이어 ‘추측성 보도는 당사자는 물론 회사와 투자자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사실이 아닌 보도가 확대 재생산되지 않도록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오토타임즈>에 따르면 도이치모터스 관계자는 주가 조작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관계자는 “국내 주가 조작 사건 조사 절차는 관련 법상 금융감독원이 광범위한 거래계좌 조사를 하고, 이에 앞서 증권선물위원회 의결에 의한 고발을 거치지 않고서는 금감원이 수사기관에 금융거래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사기관이 제보에 의해 신빙성을 판단하고 금감원에 통보했다면 단서로 활용하게 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에 해당한다”며 “도이치모터스는 대표 및 경영진 누구도 당시 주가 조작에 대해 외부인과 접촉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핵심 당사자로 거론되는 권 회장은 누구일까. 그는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바닥부터 시작해 정상에 오른 ‘입지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대구서 대학을 졸업했고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거쳤다. 이후 한신상사, 대웅상사, 두창섬유 대표이사 등을 거쳐 도이치모터스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권 회장은 졸업 직후 서울로 상경해 동대문시장서 원단 판매를 하던 작은 아버지 밑에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섬유 외판원이었다. 처음 받은 월급은 10만원. 하지만 남들보다 탁월한 영업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월급이 100만원까지 올랐다.

당시 섬유사업은 호황이었다. 5공화국 시절 교복 자유화 등으로 수요가 폭발하는 등 사업 환경이 나쁘지 않았다. 권 회장은 이후 독립을 결심했다. 주변 만류가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권 회장은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섬유회사 대웅상사를 설립한 그는 섬유제조 및 유통회사를 5곳까지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권 회장은 2010년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서 당시를 회상하며 “독립하면 망한다고 주변 사람들이 다 만류했다. 하지만 독립을 위해 4년간 치밀하게 준비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영업을 하면서 130여개의 회사를 담당했다. 대형 고객사 4∼5개는 평생 함께할 사업 파트너로 만들었다. 물고기 몰듯이 시장 흐름을 파악하고 대형 고객사만 쥐고 있으면 밑에 있는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권 회장은 섬유사업이 하락국면으로 접어들자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에 주력했다. 당시 권 회장이 꼽은 성장 가능성 있는 사업 분야는 자동차 딜러, 외식, 임대, 금융, 호텔업 등 5개였다. 권 회장은 장고 끝에 자동차 딜러업을 선택했다.

국내 소득수준이 높아진 만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도 직접 경험한 면이 컸다. 권 회장은 우연히 친구의 BMW를 운전했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정도 성능이면 팔아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 때다.


권 회장은 아무런 연고도 없이 BMW코리아 문을 두드렸다. 당장 차를 팔 수 있도록 딜러 권한을 요구했다. 하지만 수도권과 주요 도시에는 기존 딜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권 회장이 배정된 곳은 강원도 원주와 제주도였다.

맨손으로
자수성가

권 회장은 원주에 500평 규모 전시장을 지었다. 권 회장은 진출 첫 해에 무려 350대의 BMW 차량을 팔았다. 도이치모터스의 본격적인 신호탄이 울린 때다. 권 회장은 1년 만에 서울로 진입할 수 있었다. 권 회장은 답십리에 터를 잡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키워나갔다. 도이치모터스는 코오롱모터스, 한독모터스 등과 함께 BMW 주요 딜러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권 회장은 도이치모터스를 이끌며 ‘최초’ 타이틀을 거머줬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BMW 미니를 론칭했고, 2008년에는 업계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됐다.

‘김건희-권오수’ 의혹을 두고 반응은 제각각이다. 당장 실체를 밝혀달라는 요구가 있는 반면 이미 철지난 이야기라는 관측도 있었다.

지난 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윤석열 검찰총장 부인 주가 조작 연루 특검으로 밝혀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재됐다. 청원인은 ‘2013년 경찰 내사가 중지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과 김 대표 관여 의혹이 어둠속에 묻히게 됐다’며 특검을 촉구했다.
 

이날 오전 11시 기준 청원 동의 인원은 1만7000명을 넘어섰다. 청와대는 답변 기준을 20만명으로 제한한다. 하지만 첫 청원 이후 30일 이내 100명의 사전 동의를 받은 청원은 검토 후 게시판에 공개한다. 이후 동의 여부를 추가로 묻는다. 해당 청원은 하루 만에 공개 기준을 충족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번 <한겨레>, 이번엔 <뉴스타파>, 또다시 묻어버리려다가 실패한 듯’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경찰청 입장 보도 링크를 공유하며 ‘이거, 이거, 청문회 때 내놨지만 영양가 없어 아무도 먹지 않아서 물린 음식이죠? 그걸 다시 리사이클링(재활용)하다니, 명백한 식품위생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가 재산을 형성한 과정은 윤 총장 인사청문회서 언급된 바 있지만 특별한 주목 없이 넘어갔다.

당시 윤 총장 청문회에선 김 대표와 권 회장 간 거래를 두고 자료 요청 요구가 잇따랐다. 당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은 “후보자 배우자가 도이치파이낸셜 주식 매매를 한 부분에 대해서 주식매매계약서를 요청했지만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채 의원은 “최초로 2013년 후보자 배우자가 매수할 당시 서면답변에 보면 공모절차에 참여를 했다고 나오지만, 금감원 공시 사이트에 들어가서 자료를 다 검색해봤는데 공모에 대한 공시는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외판원서 상장사 오너로 우뚝
성장가도 달리다 걸림돌 불쑥

채 의원은 김 대표의 도이치파이낸셜 20억원 주식매매계약서와 도이치파이낸셜 주식 40만주 매도 당시 계약서 등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채 의원은 “2017년 이 주식을 다시 매각했는데 당시 회사 가치를 평가해봤을 때 기업 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액으로 처분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김진태 의원도 “일반인들이 매입하기 어려운 비상장주식을 무려 250만주를 샀다”며 “도이치파이낸셜과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미래에셋도 주당 1000주에 인수를 했는데 배우자는 주당 800원에 인수하면 차액만큼 부당한 이득을 본 것이 아니냐”고 캐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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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윤 총장은 “미래에셋은 연리 7% 수익이 보장된 배당 우선주고, 제 식구(부인)가 인수한 것은 일반 보통주로 알고 있다”며 “금액에 차이가 나는 것은 주식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여러 의원이 계약서를 요구했지만 윤 총장은 끝내 제출하지 않았다.

권 회장의 도이치모터스는 혁혁한 성과를 내고 있다. 도이치모티스는 2016년과 2017년 연결 기준 매출 6734억원, 9501억원을 올리다가 2018년 1조 매출을 달성했다.

지난해에는 사상 최대 실적을 내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도이치모터스는 매출액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이 모두 증가했다. 증가 폭도 컸다.

도이치모터스 매출액은 1조2111억원을 기록했는데 직전 년도에 비해 14.4% 증가한 수치였다. 영업이익은 무려 64.2% 증가한 831억원이었다. 당기순이익은 58.2% 증가한 548억원이었다.

도이치모터스 홈페이지에 따르면 전국에 10개 전시장이 있다. 서울에는 7곳(성수·한남·동대문·대치·양재·잠실·송파), 경기 하남, 강원 원주, 제주에는 각각 1개씩 분포돼있다.

지난해
최대 실적

서비스센터 역시 10곳이다. 서울 5곳(동대문·송파·도곡·성수·양재), 경기 3곳(구리·미사·하남), 강원도 원주와 제주에 1개씩 있다. 권 회장은 도이치모터스 최대주주다. 27.64% 지분이 있다. 친인척인 지분까지 포함하면 특수관계인 지분은 32.76%에 달한다. 도이치모터스에는 6개 계열사가 있다. ▲도이치파이낸셜 ▲디에이에프에스 ▲지카 ▲도이치피앤에스 ▲도이치오토월드 ▲도이치아우토 등이다. 도이치모터스는 이들 회사 최대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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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